인터뷰

이 가격 맞아? 40만원 노트북으로 돌풍 일으킨 한국 기업

더 비비드 2024. 6. 20. 15:40
중국산에 맞서는 중저가 노트북 한국 스타트업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경쟁사는 ‘삼성전자’라 말하는 베이직스 황현욱 본부장/더비비드

노트북 한 대 장만하려면 수십 번 검색을 하게 된다. 화면 크기·무게·가격 같은 정보부터 SSD·램·CPU 등 확인할 것들 투성이다.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다, 결국 누군가의 추천 글을 보고 이름 있는 브랜드의 노트북을 결제하게 된다. 하지만 유명 브랜드 제품은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국내 생활 가전 전문 회사 베이직스의 황현욱 본부장(34)은 모두에게 100만원짜리 노트북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말한다. 베이직스는 40만원 내외 노트북을 2023년에만 3만대 이상 판매했다. 황 본부장을 만나 노트북을 살 때 어떤 점을 꼭 확인해야 하는지 들었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

베이직스에서 개발한 베이직북14 3세대. /베이직스

베이직스는 저가형 노트북 ‘베이직북’을 개발한 국내 기업이다. 50만원 미만의 노트북 시장에서 2022년부터 국내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 전체 노트북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LG·삼성에 이은 3위다.

가격을 낮췄지만 성능은 유지했다. 2022년 7월 출시한 베이직북14 3세대는 인텔의 CPU와 8GB 메모리, 256GB SSD를 탑재했다. 윈도우 11 pro 정품까지 설치됐지만 가격은 40만원을 넘지 않는다. 베이직북14 pro는 전문가를 위해 만들어진 40만원대 나름 고사양 노트북이다. 포토샵 등 무거운 프로그램도 거뜬하다.

황 본부장은 출판사 콘텐츠 기획 담당자 출신이다. /더비비드

2018년 고려대 미디어학부를 졸업했다. 한 출판사의 콘텐츠 기획 담당자로 입사했다. “저자를 발굴하고 그 사람이 가진 콘텐츠를 대중이 원하는 메시지로 변환하는 일을 ‘기획’이라고 하는데요. 1년 내내 편집장에게 혼나기만 하고 성과는 없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메시지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메시지의 간극이 컸죠.”

2년 차에 접어들면서부터 한 달에 한 명씩 저자를 발굴해 냈다.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먼저 찾았습니다. 시장에 잘 팔리는 책을 분석하거나 어린아이를 둔 엄마, 대학생 등 특정 타깃층의 검색 동향과 주 소비 콘텐츠를 찾아봤어요. 그렇게 사람들의 흔적을 되짚어보면서 아이디어를 찾았습니다.”

2020년 퇴사 후 한동안 프리랜서로 일했다. 그 시기에 국내 노트북 제조사인 베이직스의 강신경 대표를 처음 만났다. “노트북 소비자가 정보를 얻는 과정에 대해 분석해달라고 의뢰해 왔어요. 상품 기획부터 디자인, 생산, 판매까지 모두 혼자서 하고 있다더군요. 첫인상만 봐선 그리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효율을 극도로 중시해 늘 날이 선 사람처럼 보였죠. 일할 땐 오히려 그런 면이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업무상 소통도 늘 ‘효율적’으로 할 말만 했거든요.”

베이직북 사용 예시 화면. /더비비드

3개월의 프로젝트를 마치고 며칠 뒤 강 대표가 갑자기 집으로 찾아왔다. “선약이 있어 어렵다고 했지만 강 대표는 지하 주차장에서 1시간 넘게 기다렸습니다. 만나서 대뜸 ‘같이 일해보자’고 말하더군요. 일회성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과 손을 잡고 쭉 같이 일하는 건 천지 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몇 개월간 일하면서 노트북은 책보다 더 복잡하고 유통구조가 큰 분야란 사실도 알게 됐고요. 겁이 났어요.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일주일하고도 3일을 더 고민한 끝에 강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간 베이직스의 성과를 들여다봤어요. 베이직스는 2020년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 2개월 만에 30억원의 매출을 냈습니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에서 제품력 하나는 믿을 만하다고 봤죠. 무엇보다 강 대표를 믿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바닥부터 한 칸씩 쌓아 만든 노트북

베이직북을 한 손에 들어보이는 황 본부장. /더비비드

2021년 1월 베이직스의 기획본부장으로 합류했다. 주어진 임무는 소비자의 마음을 훔치는 일이었다. “지난 프로젝트에 이어 소비자의 구매 단계를 분석하는 일을 해야 했는데요. 소비자에게 베이직스 노트북을 알리기 위해선 제품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베이직스 노트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되짚어봤습니다.”

베이직스(BASICS)는 기본 권리(Basic rights)를 뜻하는 브랜드명이다. 노트북은 늘 100만원이 넘는 비싼 물건으로 취급된다. 특히 브랜드 로고가 박히는 순간 수십만원이 더해진다. 강 대표는 이를 ‘비효율’이라고 봤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학생들이나 고사양이 필요치 않은 중년층을 위한 저가형 노트북을 고안했다. 가격이란 장벽이 허물어지면 배움의 폭도 넓어지리라 기대했다.

노트북 제조 과정. /베이직스

노트북을 만드는 과정은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안마기·의료기기 등을 개발한 경험이 있던 강 대표가 노트북을 만들기 시작한 건 2018년부터다. “중국 박람회에 무작정 찾아가 명함 돌리는 일부터 했다고 해요. 부품을 받아야 하는 업체들이 죄다 글로벌 기업이라 미팅 잡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고 했죠. 그러다 인텔의 협력업체인 중국의 한 공장과 연이 닿아 12개월 만에 시제품을 제작했습니다.”

2019년 5월 베이직북 1세대 14인치 모델을 출시했다. 첫해에 1만2500대를 판매했다. 이듬해 7월 출시한 베이직북 2세대는 1만4900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매출로 따지면 50억원에 달하는 성과다. “딱 이 무렵에 제가 합류한 겁니다. 베이직북의 정체성과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었던 이유를 정리해 나갔습니다.”

◇저가형 노트북의 한계 극복

베이직북 프로로 화상회의를 하는 모습.램, SSD 같은 성능과 직결되는 주요 부품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했다. /베이직북

베이직북은 소구점은 ‘가성비’다. “그간 저가형 노트북이 없었던 게 아니에요. 품질 저하로 장기전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뿐이죠. 베이직북은 램, SSD 같은 성능과 직결되는 주요 부품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했습니다. 램은 손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손이 많으면 여러 창을 띄워둘 수 있죠. SSD는 저장용량이에요. 용량이 클수록 속도가 빨라집니다.”

황 본부장의 역할은 소비자의 발자국을 쫓아 사람들의 욕구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판매 플랫폼의 주 사용자층에 따라 전략을 달리 짰다. “가령 20~30대 여성이 주로 찾는 쇼핑몰에는 A/S가 간편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회수 당일 수리율이 95%를 넘고 ‘7일 내 수리 정책’을 고수한다고 굵은 글씨로 썼죠.”

베이직북S의 특성을 보여줄 수 있는 GIF파일. 상세페이지 제일 상단에 올렸다. /베이직스

사안에 따라 강 대표와 대립하기도 했다. “대표라고 해서 늘 정답을 알고 있는 건 아닙니다. 강 대표는 ‘윈도우 포함’이란 옵션에 회의적이었어요. 저렴한 가격이 더욱 중요하다고 했죠. 전 반대였습니다. 우리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은 ‘쉬운 노트북’을 원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2023년 7월 신제품을 출시했을 때 판매량의 60% 이상이 윈도우 포함 제품이었습니다. 강 대표도 결과를 보고선 고개를 끄덕였어요.”

제품의 특성에 따라 상세페이지 구성에 변주를 줬다. “베이직북S는 모니터와 키보드를 분리할 수 있는 모델입니다. 때에 따라 노트북으로도, 태블릿으로도 쓸 수 있죠. 기존 상세페이지를 보니 소비자가 이런 제품의 특징을 알아차리기 어려워보였어요. 사진만 봐선 일반 노트북처럼 보였죠. 상세페이지 첫 이미지를 소위 ‘움짤’이라고 불리는 gif 파일로 바꿨습니다. 화면과 자판이 분리되는 모습을 제일 먼저 보여줬죠. 상세페이지 변화만으로 판매율이 전일 대비 15% 올랐습니다.”

◇13%의 행복

베이직스 노트북을 들고 활짝 웃고 있는 황 본부장. /더비비드

베이직스 직원은 3년새 7명에서 30명으로 늘었다. 직원들 사이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은 복지는 근무시간이다. 오전 10시부터 4시까지 하루 6시간만 일한다. “강 대표의 효율 철학 때문입니다. 100만원짜리 노트북을 40만원에 살 수 있다면 다른 60만원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에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6시간이면 하루 업무량을 수행하기엔 충분한 시간이니, 그 외의 시간은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한다더군요. 그래야 업무 시간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는 논리죠.”

2021년 기준 국내 50만원 미만 노트북 시장에서 베이직스는 약 13%(3위)를 점유했다. 이듬해인 2022년엔 1위에 올라 현재까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경쟁사는 삼성전자다. “타 중저가 브랜드는 성능 면에서 이미 뛰어넘었다고 봅니다. 물론 전문가를 위한 최신 사양의 노트북을 찾는다면 대기업 제품이 적합하겠죠. 하지만 베이직북으로도 영상 편집이 가능합니다. 거품 뺀 가격만큼 나머지 비용은 자유롭게 쓸 수 있을 겁니다.”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