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비용 절감 및 관리 솔루션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기자님도 일할 때 챗지피티(ChatGPT) 꼭 쓰세요.”
기자의 밥줄을 위협하는 챗지피티를 권하다니. 스타트업 원더무브 김태원 대표(47)의 첫인상은 괴짜였다. 대화를 나눠 보니 그는 기술과 인간의 동행을 도모하는 현실주의자였다. 기술에 산업을 접목한 산업공학을 전공한 후 산업 현장에서 ‘프로그래밍’이라는 재능을 발휘한 경력이 대번에 납득이 갔다.
요즘 그의 궤적은 ‘클라우드 산업’에 닿아 있다. 디지털 영토인 클라우드는 때때로 무거운 먹구름이 된다. 김 대표는 먹구름을 가벼운 뭉게구름으로 만드는 기술을 고안했다. 그가 개발한 기술을 적용하면 클라우드 기반의 온라인 서비스가 구동되는 데 투입되는 리소스와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를 만나 클라우드에 날개를 다는 법에 대해서 들었다.
◇쓰라린 실패에도 바로 일어설 수 있었던 비결
김 대표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했다. “집에서 팔까 말까 했던 컴퓨터가 인생 첫 프로그래밍 교본이었습니다. 단순히 컴퓨터만 잘 다루는 것보다는 산업과 연계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산업공학과에 진학한 이유죠.”
졸업 후 DB Inc.(구 동부CNI), 현대오토에버에서 경력을 쌓았다. “자양분이 될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동부 시절 ‘주니어보드’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성과가 좋은 저연차 직원들과 임원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자리인데요. 사원 입장에서 회사 주요 의사결정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 때의 경험이 사회생활의 지침이 됐죠.”
원더무브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사내벤처로 출발했다. “회사에서 신사업 공모전을 했는데요. 제출한 8개의 아이디어 중에서 3개가 최종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 중 가장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것 하나로 발표를 했는데요. 누군가 ‘진짜 현실 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일까’ 의문을 제기하더군요. 순간 오기가 발동했습니다. 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하고 싶었어요. 사내벤처로 시작하기로 결심했죠.”
최초의 아이디어는 ‘원더풀’(wonderpool)이라는 이름의 카풀 파트너 매칭 서비스였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었지만 미래가 불투명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상황과 제도적 장벽 등이 맞물려 한계점이 보였거든요. 서비스 운영 1년 만에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곧바로 해외 진출의 기회를 잡았다. 유럽의 차량 판매사로부터 솔루션 개발 요청을 받은 것이다. “자동차 고객/딜러용 모바일 플랫폼, CMS 솔루션, 차량 라이브 컨설팅 소프트웨어 등 자동차 판매 관련 솔루션 3개를 개발해 유럽 19개국 371개 딜러사에 납품했습니다. 실력도 인정받았어요. 자동차 고객/딜러를 위한 플랫폼으로 세계 3대 디자인 상인 IF 디자인 어워드 2023 본상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2023 본상을 받았습니다. 쓰라린 실패를 겪고도 뭐든 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확인할 좋은 기회였어요.”
◇서버 사용 정점일 때 낭비되는 리소스에 주목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새롭고 지속가능한 아이템을 찾아 나섰다. “클라이언트들을 만나보니 특정 산업에 집중하는 것이 스타트업 성장에 유리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소비자 사회를 겨냥하는 것보단 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B2B 서비스가 꾸준한 성장의 열쇠였던거죠.”
어떤 산업군에 진출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모든 산업군이 공통으로 사용해야 하는 클라우드 산업이 눈에 들어왔다. “클라우드란 온라인 서비스를 구동하기 위한 컴퓨팅인데요. 모든 서비스가 디지털화되는 요즘, 기업은 다양한 형태로 클라우드를 사용합니다. 클라우드 사용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클라우드 서비스에 쓰는 비용은 기업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미국의 정보 기술 연구 및 자문 기업인 가트너는 2025년 기업이 클라우드에 지출하는 비용이 약 25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는데요. 클라우드에 지출하는 비용의 상당수는 ‘안전성’을 담보하는데 활용됩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리소스가 낭비되고요.”
글로벌 대기업 웹사이트 구축 및 운영을 담당했던 시절의 기억이 스쳤다. “신차 론칭 시 평소 대비 100배 이상의 트래픽이 발생합니다. 기업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 전년 최고치의 120~130%에 달하는 클라우드 리소스를 할당합니다. 신상품을 출시한 기업의 홈페이지가 먹통이 되는 건 언론에 보도될 만큼 큰 일이거든요. 1년에 겨우 몇 번 발생하는 일에 대비하기 위해 방대한 리소스가 투입되는 셈이죠. 리소스의 약 86%는 사용되지 않고 낭비된다고 보면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어요.”
◇클라우드 관련 비용 최대 40% 절감하는 솔루션
클라우드를 운영 및 관리하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스쿠버(Skuber)’를 개발했다. “유입되는 트래픽을 토대로 리소스를 탄력적으로 조율하는 인공지능을 탑재했습니다. 스쿠버로 클라우드 사용 현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비용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클라우드 관련 비용을 최대 40%까지 줄일 수 있죠.”
‘당연함’을 벗어나는데 방점을 뒀다. “검증된 기술을 활용하는 대신 누구도 걷지 않은 어려운 길을 택했습니다. 그게 경쟁력이니까요. 효율적인 아키텍처(구조)를 통해 클라우드에 수반되는 리소스의 무게를 줄였어요. 소프트웨어의 핵심 로직을 담당하는 부분을 ‘서비스 컨테이너’라고 하는데요. 보통 하나의 서비스 컨테이너에 하나의 사이드카 프록시를 붙여 해당 컨테이너의 트래픽과 보안정책을 관할합니다. 이런 서비스 컨테이너와 사이드카 프록시의 조합이 ‘서버’고요. 컨테이너 하나당 하나의 프록시가 필요한 구조는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데요. 저희는 한 서버당 하나의 사이드카 프록시로 여러 개의 서비스 컨테이너를 운영이 가능하게 커널(Kernel)이라는 기술을 구축했습니다.”
솔루션을 구현하기 위해 어렵고 복잡한 기술을 총동원했지만 ‘쉽게’ 사용할 수 있는데 주력했다. “사용자 경험(UI/UX)을 엔지니어가 기획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접근했습니다. 엔지니어가 서비스 구조를 짜면 절대로 쉬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 없다고 판단했거든요. 디자이너를 채용해서 기술 교육을 시킨 다음에 꼭 들어가야 하는 기능의 목록을 전달했습니다. 디자이너를 교육하는 데만 6개월을 할애했어요. 이후 끊임없이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서비스를 기획해 나갔어요.”
작년 8월 해외에서 먼저 스쿠버를 기술검증(PoC)을 진행했다. 사용법이 직관적이며, 비용 효율성 측면에서 큰 효과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클라우드 핵심 기술을 변경하거나 만들 수 있는 시스템 엔지니어는 전체의 10%도 되지 않아요. 나머지 90%는 만들어진 기술을 활용해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엔지니어를 뜻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알아야할 기술은 너무 많아요. 저희는 이 90%의 엔지니어가 보다 쉽게 최신 기술을 활용해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지원합니다. 사용하는 이의 기술 문턱을 대폭 낮췄죠.”
◇손익분기점 달성, 해외 진출 목전
스쿠버를 본격 시판하기도 전에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작년 6월 메르세데스벤츠 본사에서 열린 '스타트업 아우토반 엑스포 2023’에 현대자동차 추천 스타트업으로 참가했다. 9월엔 ‘더 사스 어워즈(The Saas awards) 2023'에서 글로벌 엔터프라이즈 부문 최고의 서비스 상을 받았다. 11월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스타트업 페스티벌 ‘2023 디캠프 올스타전’ 본선에 진출했다. 작년 매출은 23억원으로 스타트업으로서는 드물게 손익분기점을 달성했다.
스쿠버의 시간은 이제부터다. “작년 말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의 클라우드컴퓨팅서비스 품질·성능 검증을 성공적으로 통과했습니다.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을 위한 품질 안정성과 확장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했다는 의미죠.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일본, 미국으로 진출할겁니다.”
클라우드 모니터링뿐만 아니라 관리 분야까지 진출할 구상이다. 비용을 줄이는 구체적인 대안까지 제시하는 것이다. “클라우드 기술의 표준을 선도하는 집단인 클라우드 네이티브 컴퓨팅 재단(CNCF)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클라우드 네이티브 기술 발전에 기여하고 여러 성과를 쌓아야 하는데요. 졸업하면 성장 가도를 밟게 됩니다. 목표한 바를 하나씩 이뤄서 글로벌 클라우드 기술 생태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임하고 있지만 어려운 상황이 닥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심리적인 여유를 가지고 임하고 있다. “우리가 두근거리는 기술로 문제를 해결했을 때 달라질 클라우드 환경을 상상할 때마다 뿌듯합니다. 글로벌 기술 기업과 경쟁하는 만큼 어려운 상황이 닥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문제를 온 힘을 다해서 재미있고, 멋지게 풀어나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당장 눈앞의 돈을 목표로 하지는 않습니다. 회사의 성장과 누구나 부러워 할 만한 팀을 이끄는데 욕심이 있어요. 이들과 멋진 일을 하다 보면 원하는 바를 이루지 않을까요.”
/진은혜 에디터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면으로 고민하던 변리사, 아버지 친구 만나 함께 개발한 것 (0) | 2024.06.20 |
---|---|
경희대 나온 한의사가 하루 종일 온라인 쇼핑몰만 들여다 보는 이유 (0) | 2024.06.20 |
수포자가 숫자에 눈 뜨고 개발한 것 "당신의 일이 요즘따라 부진한 이유" (0) | 2024.06.20 |
카이스트 교수부터 4DX설계자까지, 미국 사로잡은 K-골프 어벤저스 (0) | 2024.06.20 |
비상금 5천만원으로 645억원 기업 만든 공부 벌레의 아이디어 (1) | 2024.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