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보성에서 26년째 감자 재배하는 김병욱 농부
감자는 못생긴 사람을 두고 비유하는 표현으로 흔히 쓰이지만, 사실 감자는 팔방미인이다. 감자의 비타민C 함량은 사과의 6배에 달한다. 하루에 찐 감자 2개면 비타민C 하루 필요량을 모두 섭취할 수 있을 정도다. 칼륨 성분도 높아 나트륨 배출을 돕는다. 일 년 내내 두고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전라남도 보성군은 전국에서 햇감자가 제일 처음으로 나오는 지역이다. 보성군 회천면에서 26년째 감자 농사를 짓고 있는 김병욱(56) 농부를 만나 잘생긴 감자 이야기를 들었다.
◇육지의 첫 햇감자, 보성 감자
보성군 회천면과 득량면을 중심으로 약 650만㎡의 면적에서 감자를 재배하고 있다. 다른 지역과 다르게 황토 땅에서 재배되기 때문에 색깔이 붉고 단단하며 저장성이 좋다. 칼륨 성분이 높아 나트륨 배출 효과가 탁월해 고혈압 환자에게 좋은 식품이다. 또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에 좋고 빈혈 예방, 변비 개선까지 된다.
옛날부터 ‘회천감자’는 육지의 첫 햇감자로 명성이 높았다. 풍부한 일조량과 서늘한 해풍 덕분에 맛과 영양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특히 6월 초부터 수확되는 감자는 전분 함량이 높고 비타민C가 많아 여름철 건강식품으로 인기가 높다. 지리적 표시 제88호로 등록된 지역특산품이며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50대인 나보다 오래된 보성 감자
보성에서 나고 자랐다. 이후 광주에서 15년간 사회생활을 했다. 철골·철물을 이용해 조립식 건물을 짓는 건축사업이었다. 연 매출 5억~10억원을 낼 정도로 건실한 기업이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모든 게 꿈처럼 사라졌다. 1년간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선택의 여지 없이 귀촌을 결심했다. 감자 농사를 짓던 부모님을 따라 농부의 길로 들어섰다.
- 처음 농사를 짓던 때가 기억 나나요.
“1998년이었어요. 7000평(약 2만 3000㎡)의 땅에서 부모님과 함께 감자를 재배했죠. 당시엔 기계가 없었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습니다. 모든 게 사람의 손으로만 이뤄졌죠. 모종을 심고, 비닐을 씌우고, 비료를 뿌려 감자를 키웠습니다. 수확 철엔 감자가 상하지 않도록 손과 호미로 흙을 흩트려가면서 한 알씩 캤죠. 속도가 더딜뿐더러 허리며 무릎이며 쑤시지 않는 곳이 없었어요.”
- 보성 감자는 언제부터 유명했나요.
“어릴 적부터 부모님 뿐만아니라 대부분의 동네 어른의 생업이 ‘감자’였어요. 강원도 등 다른 지역에선 3~4월에 파종하고 6월 하순에 수확해 ‘하지 감자’라고 부르는데요. 보성 감자는 그보다 이른 5월 말에서 6월 초순에 수확합니다. 소비자에게 ‘올해 첫 감자’라고 소개할 수 있어요. 장맛비를 맞을 염려도 적죠.”
- 비가 감자의 품질에 많은 영향을 주나요.
“아무래도 비를 많이 맞을수록 감칠맛이 줄어들죠. 좀 싱거워진다고나 할까요. 비 오는 날엔 수확 작업도 여의찮습니다. 땅이 너무 질퍽하면 감자를 캐기 어렵기 때문이죠. 어제도 비가 오는 바람에 수확을 못 했어요. 적어도 하루 정도는 땅속 물기가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동글동글 감자 재배 이야기
7000평으로 시작해 현재 2만5000평(약 8만2644㎡)의 밭에서 감자를 재배하고 있다. 이중 3000평은 하우스 재배다. 온도를 관리해 겨울에도 출하하기 위해서다. 다른 농산물과 비교해 감자는 품종이 자주 바뀌지 않는 편이다. 녹말이 많은 ‘수미’, 조직이 치밀하고 단단한 ‘추백’ 등이 주로 재배된다. 감자 농민들 사이에서는 가정에서 찐 감자로 먹는 감자를 식당에서 대량으로 쓰는 감자와 구분해 ‘식용 감자’라고 부른다. 회천 감자는 동글동글하고 단단해 식용 감자로 많이 유통된다.
- 감자 재배 과정이 궁금합니다.
“12월 무렵 강원특별자치도 감자종자진흥원에서 감자 종자를 받아옵니다. 1월 중순에 감자를 절단해 밭에 심으면 3월 중순쯤엔 싹이 트죠. 싹이 충분히 자라면 흙을 덮어 두툼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 작업을 ‘북주기’라고 해요. 큰비가 올 때면 약을 한 번씩 쳐 줍니다. 감자는 습도에 취약한 작물이기 때문이죠. 회천 감자는 5월 중순이면 수확을 시작합니다. 흙 위에 있던 비닐이나 감자순들을 모두 걷어낸 뒤 수확기를 이용해 감자를 캡니다.”
- 감자는 어떻게 선별하나요.
“선별기가 없는 사람들은 밭에서 직접 크기별로 선별해 박스에 담는데요. 선별기가 있으면 빠르게 감자를 담아 온 다음 선별기에 감자를 쏟아붓고 크기별로 나눕니다. 보통 320g 이상은 ‘왕왕, 240~320g은 ‘왕특’, 180~240g은 ‘특’, 120~180g은 ‘대’, 80~120g은 ‘중’, 그 이하는 조림용으로 분류합니다. 가장 인기 있는 크기는 ‘특’이나 ‘왕특’이에요. 너무 큰 감자는 먹기 힘들어 식당에서 주로 쓰고, 너무 작으면 ‘고물이 덜 찬’ 감자가 되죠. 농부들 말로 ‘덜 단단하다는 뜻입니다.”
-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나요.
“자연이 주는 위기가 가장 극복하기 어렵죠. 폭우나 태풍으로 인해 한 해 농사를 망친 적도 있어요. 반대로 사람의 욕심이 재앙이 될 때도 있습니다. 감자는 전체 면적의 3~5%만 더 심으면 과잉 생산으로 가격이 폭락합니다. 2000년도 초반에 가격 폭락을 겪고 빚을 지기도 했었죠. 농사도 일종의 경영이라고 느꼈어요. 여러 위기를 잘 극복하기 위해서는 순간순간의 선택이 중요한 사업이라고 할 수 있죠.”
- 병충해는 어떤가요.
“매년 병충해와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감자의 양분을 빨아먹는 진딧물 피해를 보거나 감자가 물렁물렁해지고 결국 썩어버리는 ‘무름병’이 돌 때도 있죠. 올해는 역병 피해가 컸습니다. 사람의 감염병처럼 한 군데에서 발생하면 공기를 타고 다니면서 여러 밭으로 번지는 병입니다. 땅속 감자에 큰 영향을 주진 않지만, 이파리를 다 죽여버려서 감자가 크지 못하게 하죠.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잘 자라준 감자를 보면 얼마나 예쁜지요.”
◇회천 감자, 우리 딸만큼 예뻐
보성회천감자농산물산지유통센터(이하 회천 APC)는 연간 1만6000여t의 감자를 취급한다. 보성군의 감자 재배 면적은 약 650만㎡에 달한다. 농가 수로 따지면 약 400 농가다. 수확 철인 이맘때 회천 APC에는 27명의 작업자가 감자 선별·포장 작업에 투입된다. 감자를 크기별로 선별하는 기계의 ‘퉁퉁’ 소리와 ‘덜컹덜컹’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 수확 철인 지금이 가장 바쁘겠네요.
“그렇죠. 매년 5월 말부터 6월 초순까지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작업이 이어집니다. 아침 5시 30분부터 감자 수확기로 감자를 캐면 인부들 7~10명이 크기에 맞게 선별하거나 톤백에 담아서 실내 작업장으로 옮깁니다. 선별기 하나에 5~6명의 인력이 투입돼 선별과 포장을 하면 퇴근 시간이 5~6시쯤 되죠. 이렇게 만들어진 감자는 이튿날 전국 도매시장과 대형마트에 깔립니다.”
- 올해 감자 가격은 어느 정도로 예상되나요.
“20㎏ 박스를 기준으로 왕특의 도매가가 약 2만원 후반대입니다. 대, 중 사이즈의 경우 5000원, 1만원으로 떨어지기도 하죠. 감자 가격은 해마다 낙폭이 크지 않은 편입니다. 다만 인건비와 농자재비가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수입은 줄었다고 볼 수 있죠. 농부들 사이에서는 1평에 8~10㎏ 정도 생산한다고 보고 한 해 수익을 짐작하곤 합니다.”
- 맛있는 감자 고르는 법이 있다면요.
“길쭉한 타원형보다는 둥근 원형인 감자를 고르는 게 좋습니다. 껍질이 벗겨지지 않고 손으로 만졌을 때 딱딱한 감자가 싱싱한 감자죠. 생산지에 ‘보성 회천’이라고 적혀 있다면 일단 믿어도 좋습니다. 특별한 조리 없이 물에 삶기만 해도 겉은 포슬포슬하고 안은 쫀득한 감자를 맛볼 수 있습니다.”
- 감자를 오래 보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습도 관리가 중요합니다. 바람이 잘 통하는 선선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4인 가정이라고 해도 10㎏ 이상으로 양이 많다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도록 일정량은 따로 빼서 냉장고에 보관하면 됩니다. 밭에서 바로 수확한 감자는 수분 함량이 많아 빨리 상할 수 있으니 신문지에 감싸거나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서 보관하는 것이 좋죠.”
- 감자 농사는 언제까지 지을 계획인가요.
“매년 자꾸 갱신되는 것 같아요. ‘5년만 더’, ‘10년만 더’하며 자꾸 늘어나네요. 지금 생각 같아서는 62~63세까지만 농사를 짓고 싶습니다. 그땐 은퇴하고 건강을 돌봐야죠. 아직까진 감자가 너무 예뻐요. 마치 자식같이 소중하죠. 잘 키우고 싶고, 남들이 봤을 때 예쁘고 멋있게 봐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입니다. 제겐 두 딸이 있는데요. 회천 감자는 정말 우리 딸만큼 예뻐요.”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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