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터뷰

90이 다 돼서도 지을 수 있는 복숭아 농사, 그렇게 찾은 두번째 인생

경북 경산시 자인농협 천도복숭아

경산시 자인농협의 손병한 조합장. /더비비드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에 위치한 자인농협 산지종합 유통센터(APC)에 들어서니 달콤한 복숭아 향이 코를 찔렀다. 매년 3500t에 달하는 복숭아가 오가는 공간다운 향이었다.

이곳의 수장인 손병한 조합장(68)의 청년 시절은 복숭아 향기와 거리가 멀었다. 스물아홉에 농협에 입사한 그는 자인농협의 핵심 품목 중 하나인 메주를 홍보하기 위해 전국의 마트와 백화점을 누볐다. 금이 간 장독에서 샌 된장 냄새를 맡고 손님이 몰려와 메주를 다 판 적도 있다. 메주향을 성실함의 증표 삼아 농협에 헌신한 결과는 조합장이라는 자리로 돌아왔다. 요즘은 천도복숭아 유통 준비로 바쁘다. 손 조합장을 만나 잘 익은 복숭아처럼 달콤한 향 가득한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경산시 복숭아 취급물량의 46% 차지하는 ‘복숭아 천국’

탐스럽게 맺힌 천도복숭아 열매. /더비비드

6월부터 9월까지가 제철인 천도복숭아는 여름철 더위로 지친 몸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천연 피로회복제다. 항산화 성분인 폴리페놀을 다량 함유하고 있고, 섬유질이 풍부하다. 100g당 34kcal로 열량이 낮지만 포만감을 오래 유지시켜 주기 때문에 여러모로 고마운 과일이다. 

경산북도 경산시는 우리나라 천도복숭아 주산지다. 토질이 비옥하고 일조량이 풍부해 당도 높은 복숭아, 포도, 대추가 잘 자란다. 자인면은 경산시 내에서도 과수 산업의 1번지로 불린다. 경산시 천도복숭아 취급물량의 46%를 차지할 정도다.

자인농협 산지종합 유통센터 전경. /자인농협

1972년 설립된 자인농협은 전통 메주 가공공장, 친환경학교급식지원센터, 영농자재센터, 산지종합 유통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유통센터의 주 취급 품목은 복숭아, 포도, 대추, 자두다. 2023년 유통센터에서만 450억원의 매출이 발생했다. 그 중 93억원이 여름철 복숭아 매출이다.

자인농협은 전국 천도복숭아 유통 센터 중에서도 가장 성능이 뛰어난 선별기계를 소유하고 있다. 하루 최대 120t의 물량을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다. 센터에 입고돼 선별작업을 거친 복숭아는 경산시 브랜드 ‘옹골찬’과 경북 광역 브랜드 ‘데일리’ 이름을 붙여서 유통된다.

◇장가가고 싶어서 농협에 입사한 청년

손 조합장은 스물아홉살에 농협에 입사했다. /더비비드

손 조합장은 경북 경산시 자인면 동부 2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엔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홀로 남은 어머니를 돕느라 공부보다는 농사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사과, 감, 딸기, 대추, 천도복숭아 등 안 키워본 작물이 없다. 영남대 경영학과에 진학했지만 학업을 관뒀다. 둘이서 할 일을 혼자 해야 할 만큼 바빴기 때문이다.

- 청년 시절엔 농부, 지금은 조합장. 그 사이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청년기에 정신없이 농사짓다 보니 혼기가 꽉 찼더라고요. 이대로면 장가를 못 가겠다 싶어서 공부해서 29살 농협에 공채로 입사했습니다. 1983년자인농협에 입사해 과장, 상무, 지점장, 상임이사로 재직했어요. 거의 모든 사업부를 두루 거쳤죠. 지나고 보니 자인농협의 역대 조합장을 모두 상사로 모셨더군요. 자인농협의 모든 일은 다 안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죠. 그렇게 보낸 시간 덕분에 2019년 조합장으로 선출되고, 2023년 재선돼,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습니다. 어려웠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함께 했으니 애틋합니다.”

유통센터에서 선별되고 있는 천도복숭아. /더비비드

- 천도복숭아 사업 진흥을 위해 어떤 점에 역점을 두고 있나요.

“유통 트렌드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요즘 수입 과일 수입이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의 수요도 변하고 있는데요. 소비자에 눈높이에 맞춰 천도복숭아의 일종인 신비 복숭아 같은 신품종 보급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인구 구조의 변화도 주목해야 할 문제입니다. 핵가족화를 넘어 1인 가구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소포장화 사업을 추진했어요. 신선도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게 개방형 포장을 도입했고요. 이렇게 하니 상품성이 좋아 보이나 봐요. 가격 방어 효과가 큽니다. 소비자 뿐만 아니라 농민분들도 좋아하세요.”

- 기후변화 같은 환경 변화로 농가가 어려움을 겪을 것 같아요.

“여름철 초고온 현과 잦은 비 때문에 병충해 위험이 나날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농민들의 근심도 깊어지고 있죠. 기후 변화에 걸맞은 생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경산시 농업기술센터와 적극 협의 중입니다. 현재 천도복숭아 농가를 대상으로 비가림 시설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자인농협에서 경산시에 건의해서 시작한 일입니다. 복숭아는 물에 취약합니다. 물에 많이 노출되면 당도가 떨어지고, 탄저병 위험이 커져요. 보통 복숭아는 노지에서 키우는데요. 비가림 시설을 도입하면 비 피해와 병충해 방지에 도움이 됩니다.”

◇자인면 농가들의 숨은 자식 복숭아

복숭아 공선출하회 안정욱 회장(왼쪽)의 손을 잡고 있는 손 조합장(오른쪽). /더비비드

천도복숭아는 자인면 복숭아 농가의 버팀목이다. 농민들은 복숭아를 키워서 생계를 유지하고, 자식들을 학비까지 댈 수 있었다. 손 조합장은 천도복숭아를 ‘자식’에 비유했다. 거름과 비료를 충분히 주고 정성껏 가꿔야 품질 좋은 복숭아를 수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저히 관리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생산량이 줄어든다. 따지고 보면 자식보다 손이 더 많이 간다.

농민들이 열과 성을 다해 키운 천도복숭아는 자인농협 유통센터로 입고된다. 매년 센터에서 취급하는 복숭아만 3500t에 달한다. 정점일 땐 하루 120t의 복숭아가 들어온다. 센터를 방문한 3일에는 50t이 입고됐다.

천도복숭아는 선별 후 소포장해서 다양한 유통처로 출고된다. /더비비드

- 천도복숭아 상품화 과정을 알고 싶습니다.

“입고 후 1차로 육안 선별을 거칩니다. 상하거나 물렁물렁해서 상품성이 떨어지거나 상처가 있는 흠과를 걸러내죠. 그 다음 선별기를 통해 10등급으로 크기 선별을 진행합니다. 선별 후 800g, 1kg, 1,2kg, 1.5kg, 3kg 등 다양한 단위로 소포장을 진행하죠. 물량의 30%는 시장에 출하하고 70%는 대형마트나 직거래 유통처로 보낼 준비를 합니다.”

- 천도복숭아 중량 단위가 궁금해요.

“천도복숭아의 종류는 수확 시기에 따라 조생종, 중생종, 만생종으로 나뉘는데요. 조생종은 일찍 성숙해서 수확 시기가 빠른 품종을 일컫습니다. 만생종은 늦게 성숙하고 수확시기도 그만큼 늦은 품종이고요. 중생종은 조생종과 만생종의 중간에 위치한 것이죠. 성장 기간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조생종, 중생종, 만생종으로 갈수록 표준 무게가 늘어납니다. 조생종이 80g, 중생종이 120g, 만생종이 140g 이상이에요. 사실 복숭아는 거거(巨巨)익선입니다. 크고 잘 익은 과실이 맛있고 인기도 많죠.”

자인농협은 천도복숭아 취급 농협 중 가장 많은 유통처를 보유하고 있다. /더비비드

- 센터를 거친 복숭아의 행보는요.

“하나로마트,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유명 대형마트와 쿠팡, 11번가 같은 온라인 채널에서 판매되고 있어요. 자인농협은 천도복숭아를 취급하는 농협 중 가장 많은 유통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군 부대나 학교 급식센터로도 납품하죠. 품질을 인정받아 CJ홈쇼핑, 롯데홈쇼핑, 현대홈쇼핑 등에서 홈쇼핑 판매를 여러 차례 진행했는데요. 올해만 홈쇼핑에서 6억7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좋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90세 앞둔 노인도 여전히 현역 농부인 비결

손 조합장은 2023년 경북농협 BEST 경제 CEO상을 수상했다. /더비비드

2010년 37명의 회원으로 출발한 유통센터는 2024년 현재 회원 260명의 큰 조직으로 성장했다. 2023년 복숭아 사업으로만 매출 93억원을 기록했다. 성과를 인정받아 2019년 농협중앙회 경북지역본부에서 복숭아 공선출하회 우수출하조직상을 받았다. 손 조합장은 2023년 경북농협 BEST 경제 CEO상을 수상했다.

- 큰 상을 받으셨네요.

“소포장 사업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가격 방어 효과가 있어서 조합원 사이에서 호평이 자자해요. 인근에서도 따라하는 추세입니다. 영농자재센터와 농기계무상수리센터 건립 등 농민 분들이 농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노력도 인정받은 것 같습니다. 저는 자인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로, 이 지역에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역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는 편이죠. 내년 상반기에 포도산지유통센터 공사가 마무리됩니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하는 사업인데요. 농민분들이 좋아할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그려져 기대가 큽니다.”

- 유통센터는 지역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나요.

“가장 먼저 고용창출 효과를 꼽을 수 있습니다. 복숭아 출하 시기인 6월부터 9월 말까지 약 6000명 상당의 복숭아 작업 인력을 고용합니다. 지역 사회의 일자리 창출에 큰 역할을 하고 있죠. 농민분들은 농사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선별이나 유통 같은 번거로운 작업을 저희가 대신하니까요. 저녁 있는 삶을 찾았다며 좋아하는 분도 있어요. 잔업이 줄어든만큼 농사 수명은 연장됐습니다. 조합원 중에 80세 이상의 고령자가 많아요. 90세를 앞둔 분도 있는데요. 아직 복숭아를 키우십니다. 할만하니까요.”

서로 마주보고 천도복숭아를 먹고 있는 안 회장과 손 조합장. /더비비드

-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가 궁금합니다.

“천도복숭아 주산지로서의 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생산 농가 대상의 지원 사업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갈수록 변화하는 소비자의 수요에 발맞추기 위해 신품종 육성에도 힘쓸 계획입니다. 요즘 천도복숭아의 한 종류인 신비 복숭아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신비 복숭아 식재 면적도 확대됐죠. 다만 물량이 늘어서 가격이 떨어질까봐 걱정입니다. 통상 물량이 10% 늘면 가격에 큰 영향이 가거든요.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제2, 제3의 신비 복숭아를 육성하는데 역량을 쏟을 것입니다.”

손 조합장은 너무 단단하지 않고 약간 부드러운 과실이 좋다고 추천했다. /더비비드

- 맛있는 천도복숭아 고르는 팁 알려주세요.

“만졌을 때 너무 단단하지 않고 약간 부드러운 과실이 좋습니다. 산도가 많이 빠진 상태라 신맛이 덜하고 단맛이 강하죠. 꼭지 부분을 봤을 때 노란색과 초록색이 보이는 것은 아직 덜 익은 복숭아입니다. 이런 과실은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 1~2일 보관한 후 드세요. 너무 녹색이거나 지나치게 붉은 색이 아닌 적당히 주황색을 가진 복숭아가 맛있습니다. 또한 향이 강하고 무게가 있는 복숭아가 신선합니다. 과즙이 가득하죠. 천도복숭아는 먹는 시기에 따라 맛이 달라집니다. 수확 후 바로 먹으면 새콤달콤한 맛과 아삭한 식감을 느낄 수 있어요. 후숙 과정을 거쳐서 먹으면 부드러운 과육과 달콤한 맛을 느낄 수 있죠. 매 시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천도복숭아만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