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매출 150억원 회사 망하고 빚만 28억 남은 후, 처음 든 생각

더 비비드 2024. 7. 15. 08:58
울트라웨이브 최영준 대표의 파산 후 재기 이야기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휴일을 맞아 BEST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울트라웨이브의 최영준 대표. /더비비드

끔찍한 실패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스쳐 지나가는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울트라웨이브 최영준 대표(55)는 사업이 망한 후 남은 28억원의 빚을 인생의 교훈 삼았다. 좌절하지 않고 도전을 이어간 결과 빚을 모두 갚는데 성공했다. 그를 만나 사업 재기 스토리를 들었다.

◇세계 6개국으로 수출하는 신생 한국 기업

물에 씻을 수 있는 IPX7 등급의 방수 칫솔 살균기 SS-T2. /울트라웨이브

울트라웨이브는 특수 광원 파장대의 LED 제어기술을 바탕으로 개인 위생 제품, 펫 헬스케어 제품을 개발 및 유통하는 회사다. 다양한 기업과 협업해 주문자생산방식(OEM) 개발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4개의 광원제어 기술에 대한 특허를 등록했다.

음파 전동 칫솔과 보관 케이스가 한 구성인 LT-11. /울트라웨이브

울트라웨이브는 2023년 물에 씻을 수 있는 IPX7 등급의 방수 칫솔 살균기 SS-T2를 출시해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제품으로 서울경제진흥원이 주관하는 서울어워드에서 상을 받았다. 음파 전동 칫솔과 보관 케이스가 한 구성인 LT-11은 울트라웨이브의 효자 품목이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단체구매 용도로 자주 찾는다.

해외에서도 호응을 얻어 일본,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콜롬비아 등 6개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특히 일본 아마존과 라쿠텐에서 자체 브랜드몰을 운영할 정도로 인기다.

◇폐업 후 빚만 남은 건 아니었다

최 대표가 파산 전 운영했던 회사는 언론에 수차례 보도될 정도로 잘 됐다. /KBS2, 매일경제TV

최영준 대표는 상고 졸업 후 전자제품, 음향 기기 유통업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나중에는 아예 사업체를 차렸다. “MP3, 보이스레코더, 어학학습기 등 음향기기를 제조 및 판매하는 회사를 운영했습니다. 전성기 때 연 매출 150억원을 찍을 정도로 잘 됐습니다.”

순식간에 고꾸라졌다. 갑작스런 시장 변화에 긴밀히 대응하지 못한 탓이다. “2010년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음향기기 시장이 잠식됐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빨리 변하는데 저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어요. 설상가상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덮쳤습니다. 어쩔 수 없이 폐업해야 했어요. 남은 건 빚 28억원뿐이었습니다. 월셋집으로 이사를 떠났죠.”

LT-11을 들고 포즈를 취한 최 대표. /더비비드

주변에서는 혀를 끌끌 차며 ‘앞으로 어떻게 사냐’ 아우성이었다. 오히려 괜찮았다. 이 위기가 전화위복의 기회로 보였다. “나이가 많은 상태에서 망하면 다시 일어서기 어려울 것 같은데, 그땐 40대 초반이라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일찍 부도를 맞아서 천만다행이었죠. 저는 실패한 게 아니라 실수를 한 것이었어요. 실수는 만회할 수 있잖아요.”

부족한 것부터 채운 다음 재도전하기로 했다. “가전 기기 제조, 개발 전문 업체 임원으로 입사해 12년간 하드웨어 사업부를 총괄했습니다. 틈틈이 패인을 분석하면서 새 아이템을 고민했죠. MP3, 어학기 같은 음향기기는 제품군 교체 주기가 빨랐습니다. 보다 호흡이 긴 산업군을 찾아 나섰어요.”

NGO 단체를 통해 의사들과 오지로 의료봉사를 다니던 경험이 단서를 줬다. “위생이 삶의 질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마침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위생용품 수요가 폭증했어요. 시장변화를 보면서 헬스케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분야에 도전하기 위해서 대학에 진학해 보건행정을 전공했어요.”

◇물에 씻어도 고장 나지 않는 칫솔 살균기 개발

물로 씻을 수 있는 무선 칫솔 살균기 SS-T2. /울트라웨이브

2022년 모든 준비를 마치고 울트라웨이브(ultrawave)를 창업했다. 사명은 초극(ultra)과 파장(wave)의 합성어로 특수 파장대인 자외선과 적외선 관련 기술을 활용한 제품을 아우른다는 의미다. “창업 전 재직했던 회사에서 유명 대기업 개발 부서와 UVC LED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 경험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가장 먼저 물로 씻을 수 있는 무선 칫솔 살균기 SS-T2를 출시했다. “시중에 UVC LED를 적용한 휴대용 칫솔 살균기는 있었지만 습기 찬 욕실에서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었어요. 수분에 의한 불량률이 높았거든요. 이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서 1미터의 물속에서도 방수가 되는 IPX7 등급의 살균기를 개발했습니다. 물로 씻어도 고장이 나지 않습니다. 샤워실, 목욕탕, 수영장 등에 편하게 가지고 다닐 수 있죠.”

방수와 살균력을 동시에 구현하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더비비드

방수와 살균력을 동시에 구현하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살균이 되는 파장대인 UVC는 단파장으로, 일반 소재에서는 투과되지 않아 빛이 칫솔까지 도달하지 못합니다. 이 파장대가 투과되는 유일한 소재는 석영(quartz)입니다. 문제는 석영이 다른 소재와 잘 붙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방수 효과를 높이려면 빈 틈이 없어야 하는데 말이죠. 이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물로 씻어도 고장이 나지 않는다. /울트라웨이브

사용성을 높이는데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좋은 기능을 다 넣어도 사용성이 부족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시중의 살균기는 칫솔의 옆면을 살균하는 형태가 대부분입니다. 살균력이 떨어지죠. 저희 제품은 뚜껑 부분에 UVC LED를 적용해 칫솔의 앞면을 살균합니다. 뚜껑의 파손이나 분실 우려가 없게 회전식 뚜껑으로 설계했어요. 내구성을 검증하기 위해 뚜껑을 1만회 열고 닫는 테스트도 진행했죠.”

◇가정용 칫솔 살균기, 음파 전동 칫솔 세트 연이어 히트

잠수함 모양의 가정용 무선 칫솔 살균기를 들고 있는 최 대표. /더비비드

휴대용 칫솔 살균기 시장의 틈새를 파고든 전략은 통했다. 출시 1년 만에 2만개 이상 팔렸다. 자신감을 얻고 가정용 무선 칫솔 살균기(SS-T3)와 휴대용 무선 면도기 살균기(RS-02)를 연이어 출시했다.

“가정용 칫솔 살균기의 경우 출시하자마자 호응을 얻었어요. 한 판매 플랫폼에서 일주일만에 3000개가 팔렸어요. 방수 효과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잠수함 모양으로 디자인했는데요. 귀여운 모양 덕에 어린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면도기 살균기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했어요. 면도를 하다가 다쳤는데 상처에 독이 올라 3개월이나 고생했거든요. 매일 사용하는 물건을 위생적으로 사용했으면 하는 마음에 출시했는데 선물용으로 인기입니다.”

LT-11의 칫솔 부분은 방수가 돼 물로 세척할 수 있다. /울트라웨이브

음파 전동 칫솔과 보관 케이스가 한 구성인 LT-11도 스테디셀러다. “칫솔과 살균 건조 케이스가 세트인 올인원(all-in-one) 제품입니다. 전동 칫솔이 치아 곳곳의 치태와 이물질을 제거해주죠. 칫솔 보관 용기에 UVC LED와 팬이 달려있어 칫솔을 살균하고 건조합니다. 언제나 깨끗한 상태의 칫솔을 사용할 수 있죠. 보관통은 양치컵으로 활용 가능합니다. 디자인이 예쁘고 휴대성이 좋아 부모들이 자녀에게 많이 사줍니다.”

이어펫(earpet)으로 반려동물의 귀를 관리하는 모습. /울트라웨이브

사람뿐만 아니라 반려동물도 건강한 삶을 지향한다. 반려동물 헬스케어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반려동물 가구가 1000만명에 육박합니다. 반려동물 용품 수요도 증가했어요. 저 역시 반려인입니다. 오랜 시간 함께한 골든 리트리버를 떠나 보낸 적이 있고, 현재는 푸들 믹스견을 키우고 있어요. 반려동물이 동물 병원에서 가장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영역이 피부질환인데요. 집에서도 관리할 수 있도록 특수 광원으로 귀와 피부 질환을 관리할 수 있는 동물의료기기 이어펫(earpet)을 출시했어요. 해외에서 큰 관심을 보입니다. 얼마 전 독일의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인터뷰를 했고요. 인도네시아, 태국, 싱가포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수출했습니다.”

◇창업 1년 만에 매출 24억원, 빚 전액 청산

울트라웨이브 제품들은 네모네에 입점했다. /울트라웨이브

폐업 후 보낸 절치부심의 시간은 큰 성과로 돌아왔다. 2023년 창업 1년만에 매출 24억원을 기록했다. 10여년간 그를 따라다닌 빚도 모두 갚았다. 5년 안으로 매출 100억원을 달성하는 게 목표다.

재무적 성취만 이룬 게 아니다. 제조력도 인정받았다. 탄탄히 기술력을 쌓은 덕에 특허 4건, 디자인 특허 15건을 등록했다. 국내외 온라인 플랫폼 뿐만 아니라 면세점, 행복한 백화점, 스타필드의 네모네 편집샵, 알파문고, 오피 디포, 일렉트로마트, 국군복지단(PX) 등의 오프라인 매장에도 입점했다.

그는 28억원의 빚이 인생 수업료였다고 말했다. /더비비드

요즘 한국 제조사를 위협하는 중국 커머스 플랫폼의 약진에도 당당하다. “중국의 테무나 알리익스프레스가 저가 공세를 펼치는 중인데요. 가치가 부족한 저가 제품은 그만큼 많은 쓰레기를 양산합니다. 분리수거하는 날, 수북이 쌓인 전자제품 쓰레기를 보고 충격 받았어요. 싸게 많이 파는 것보단 한 번 산 제품을 최대한 오래 쓰는 방향으로 가고 싶어요. 그래서 울트라웨이브의 방수 제품은 2년간 무상 보증합니다. 소비를 위한 소비가 아니라 가치를 주는 소비가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28억원의 빚은 인생 수업료였다. “파산은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계기였어요. 남들보다 젊은 나이에 사업을 했던 탓일까요. 타인을 살피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폐업 후 40대에 직장인이 되면서 제게 부족한 점을 깨달았습니다. 직장인들의 애환도 알게 됐죠. 예전에는 독불장군 같은 경향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직원들과 함께 멀리 간다고 생각하고 회사를 운영합니다. 이익이 발생하면 30%는 직원에게, 20%는 주주에게 환원하고 50%는 회사의 성장에 쓰겠다는 규칙도 세웠어요. 누군가는 저의 파산을 실패라고 했지만 저는 실패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실수였고, 지금은 그 실수를 시정해서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