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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그 사업 안된다' 말리러 갔다가 건져 온 40억원 아이디어

3D 스캐너·프린터로 세상에 하나 뿐인 맞춤 안경 만드는 브리즘

(왼쪽부터) 브리즘이 최정유, 조규형 디자이너와 함께 콜라보해 만든 안경 시리즈 중 하나인 'spring', 독특한 모양의 안경을 착용하고 코믹하게 웃고 있는 박형진 대표. 3D 프린터로 만들기 때문에 어떤 모양이든 가능하다. /콥틱, 더비비드

큰 성공을 맛봤다가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기 더 어렵다. 안경 사업에 뛰어들어 연 100억원 매출을 달성했다가, 실패 후 3D 스캐닝과 프린팅 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안경으로 재기한 콥틱의 박형진 대표를 만났다.

◇3D프린터와 스캐닝 장비로 맞춤형 안경 제작

얼굴 측정부터 안경테 완성까지 약 10일이 걸린다. 가격은 20만원 대 초반이다. “고객의 코와 귀 높이는 물론 얼굴의 미세한 불균형까지 계산해서 안경을 만듭니다. 세상에 하나 뿐인 나만의 안경이 되는 거죠.”

브리즘 판교점 매장에서 만난 박형진 콥틱 대표. /더비비드

박형진 대표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졸업 후 생활용품제조업체 P&G 코리아에 들어가 마케터로 일했어요. 마케팅 중에서도 플랜, 집행, 영업, 물류, 광고 등을 총괄하는 브랜드 마케팅을 맡았습니다. 마케팅의 모든 부분을 관할해야 해서 업무량이 너무 많았어요. 밤 10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없었을 정도니까요. 정말 바쁠 때는 3일 동안 퇴근을 못한 적도 있습니다. 과로로 건강이 안 좋아지고 일에 지쳐 결국 2년만에 회사를 나왔습니다.”

디즈니랜드 코리아로 이직했다. “서울시와 협업해서 디즈니 리조트를 설립 기획하는 프로젝트를 담당했습니다. 리조트의 전반적인 시장성 평가와 건물 설계, 기획을 1년 반 정도 진행했어요. 하지만 경쟁 상대였던 중국 상하이에 지고 말았어요. 열심히 진행했는데 무산되니 허무하더라고요. 회사를 더 다녀야 할지 굉장히 고민이 됐죠.”

◇일본에서 아이디어 얻어 안경 프랜차이즈 창업

(왼쪽부터)P&G 코리아 재직 시절, 밥 아이거 전 월트 디즈니 회장과 함께 있는 박형진 대표. /박형진 대표 제공

머리를 식히기 위해 휴가를 내 일본 여행을 갔다. “2주의 휴가를 내고 일본 규슈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일본 안경 유통 체인점 조프(ZOFF)를 봤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와 달리 안경이 선반대 ‘위’에 진열되어 있더군요. 가격이 투명하게 공개돼 있고, 얼마든지 착용해 볼 수 있죠. 한국도 안경을 옷처럼 쇼핑할 수 있는 매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참을 수 없었다. 바로 사표를 내고 창업에 뛰어들었다. “경기도 안양에 ‘알로(ALO)’란 브랜드로 첫 매장을 냈어요. 빈티지풍의 인테리어와 정찰제 가격을 콘셉트로 했습니다. 20~30대 고객을 타깃층으로 잡아 컬러풀하고 다양한 디자인의 안경을 진열했죠. 입소문이 나면서 8년 동안 서울 신촌, 명동, 가로수길 등에 15개까지 매장을 냈습니다. 연 매출은 100억원을 넘어섰습니다.”

◇1년 동안 제품 연구해 개발

(왼쪽부터) 알로 매장과 과거 신촌점 직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 /박형진 대표 제공

경쟁 매장이 나타나면서 위기가 왔다. “한 유통 대기업에서 우리와 비슷한 분위기의 매장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우리 매장 바로 옆에도 차리더군요. 이후부터 매출이 크게 감소했습니다. 경영 관리에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투자자들과 갈등이 생겨 결국 경영권을 넘기고 나왔습니다.”

좌절하고 있을 때 3D프린터 전문가 성우석 씨를 알게 됐다. “대학교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뭘 해보자는 게 아니라 3D프린팅으로 안경을 만들겠다는 지인을 ‘말려 달라’는 부탁이었죠. 그래서 만나 봤더니 안경 퀄리티가 너무 좋은 거에요.”

파우더를 안경 형태로 깔고 레이저로 지지는 과정을 수 만 번을 거친다. /박형진 대표 제공
3D 프린터를 이용해 모양이 잡혀 나오면 염색 과정을 거친다. /박형진 대표 제공

사업을 말리러 갔다가 반대로 공동창업을 결심했다. 사업성이 있다는 판단이 단박에 들어서다. “안경은 새로 디자인을 해서 주문 제작을 맡기면 완성되기까지 6개월이 걸립니다. 대부분 중국 OEM을 통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당시 3D프린팅으로 제작하니 3주면 가능하더라고요. 3D 프린터 기술이 발달하면서 제작 기간은 더욱 줄고 있었습니다.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해 재고 부담을 줄일 수 있죠.”

-제품 개발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이 뭔가요.

“3D프린터로 만들어진 안경테는 표면이 거칠어요. 표면을 다듬고 좋은 염료로 색칠을 해야 하죠. 그에 따라 디자인의 완성도가 결정됩니다. 최적의 연마제와 염료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다양하게 연마를 해보고 염료 조합도 해보고. 실험을 수천번은 했습니다. 결국 1년 만에 연마제와 염색 기계를 자체 개발해서, 최적의 안경테를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3D 스캐너로 얼굴을 측정하는 모습. /박형진 대표 제공

세밀하게 얼굴을 분석하기 위해 ‘페이스룰러’라는 어플리케이션(앱)을 자체 개발했다. “3D스캐닝으로 얼굴을 스캔한 후, 얼굴의 형태를 정확하게 수치화 합니다. 안경 다리를 걸치는 양쪽 귀 끝 부분이 수평한지, 안경 코받침이나 귀의 높낮이 그리고 안경 부터 귀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등을 분석하죠. 이를 통해 고객의 얼굴 형태에 딱 맞는 안경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소재도 차별화했다. “의료용으로 쓰이는 고품질 폴리아미드로 중심테를 만듭니다. 가볍고 견고합니다. 안경 다리는 베타 티타늄 소재로 했습니다. 튼튼하고 복원력이 뛰어나죠.”

◇2021년 매출 40억원 전망

색깔별로 전시돼있는 브리즘 안경. 대표 디자인을 전시했을 뿐 3D 프린터로 만들 수 있는 안경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더비비드

소비자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시장 조사에 나섰다. “한 공유오피스와 협력해 팝업스토어를 10회 열었어요. 크거나 비대칭이 심한 얼굴을 가진 분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죠. 팝업 스토어를 통해 수집한 고객들의 얼굴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15가지 색깔, 20가지 디자인 샘플을 만들어 서울 역삼역에 첫 매장을 오픈했습니다.”

직장인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고 있다. 이후 서울 여의도, 시청역 인근 등 직장인이 많은 곳에 매장을 더 냈다. 최근에 판교에 새로 매장이 생겼다. 매달 전월 대비 평균 15%의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이런 추세대로 라면 올해 연매출 40억원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시장을 안경 신대륙으로 보고 있는 박형진 대표. /더비비드

-앞으로 계획은요.

“내년 미국 시장에 진출할 예정입니다. 아이폰 내장 카메라를 이용해 생김새를 측정해 3D 프린터로 맞춤 안경을 제작하는 서비스에요. 미국은 다양한 인종이 살기 때문에 맞춤형 제작이 가장 필요한 나라입니다. 안경 업계 선두 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이 있다면요.

“본인이 하고 있는 일에 인정부터 받아야 합니다. 회사 업무를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대충하는 사람이 본인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창업을 하면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또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다른 사람과 협동을 잘하기 위해 유연한 사고 구조와 함께 남을 존경하는 태도를 꼭 가져야 합니다.”

/박유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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