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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행시 접고 만든 연 매출 514억원 회사, 스스로 나와 또 벌인 일

한국 디자인 브랜드 해외 진출 돕는 커머스 개발기

누리하우스 백아람 대표. /더비비드

“‘빨리 빨리’ 만 한국 대표 수식어가 된 게 늘 아쉬웠어요. 북유럽의 ‘휘게’처럼 우리나라만의 다른 좋은 생활 양식 철학도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저는 우리말 ‘누리다’에 주목했어요. 국내 소비재를 통해 해외 소비자들이 한국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하고 싶어요.”

스타트업 ‘누리하우스’는 백아람 대표(35)가 한국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해 만들었다. 한국 소비재 해외 직판 사이트 ‘누리하우스 닷컴’과 인플루언서 협업 플랫폼 ‘누리라운지’, 국내 사업자 해외진출 전략 컨설팅 사업부 ‘누리공방’ 등 총 세 개의 사업부를 운영한다. 현재 누리하우스 닷컴에서는 15개 한국 브랜드의 2000여개의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백 대표에게 한국 브랜드의 해외 진출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 들었다.

◇행시도 취업도 아닌 창업 택한 이유

백 대표. /더비비드

서울시립대에서 국제관계학과 경영학을 복수전공 했다. 군 복무 중 써본 아이폰이 창업의 불씨를 지폈다. “진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2년 간 행정고시를 준비했고 외국계 은행에서 인턴도 해봤죠. 공직자가 되거나 취업을 한다고 제 삶이 달라질 것 같지 않았어요. 그러다 당시 처음 나온 스마트폰을 접했어요. 휴대폰 하나로 사회관계망서비스, 소셜커머스 같은 것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게 충격적이었죠. 미국 온라인 쇼핑몰 재포스 닷컴을 매출 1조 2000억원으로 규모로 키운 기업가 ‘토니 셰이’가 쓴 책에서도 큰 감명을 받았어요. 세상이 달라지고 있는 만큼, 남들이 택하지 않은 방법으로 살고 싶어 창업을 꿈꾸게 됐습니다.”

대학교 3학년이었던 2010년, 트위터로 친해진 지인과 위시드드림(WeseeDream)이라는 사회 공헌 활동을 시작했다. ”온라인 커머스 판매 수익으로 누군가가 꿈을 이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사람들이 이루고 싶은 꿈을 듣고, 솔루션을 내린 다음 소셜커머스와 손을 잡고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왔죠. 가슴이 뛰는 일을 할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성공적이었던 첫 창업

누리하우스 창업 1주년 행사 당시의 사진. /누리하우스

프로젝트가 아닌 비즈니스로 남을 돕고 싶었다. 같은 해 11월 한국 브랜드의 해외 마케팅과 홍보를 돕는 회사 ‘위시컴퍼니’를 창업했다. “트위터에서 만난 박성호 대표가 수장으로, 저는 CSO(최고전략책임자)로 법인을 세웠습니다. 처음 1, 2년은 패션, 뷰티, 엔터테인먼트 등 클라이언트의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해외진출을 도왔어요. 그 시기부터 K 뷰티가 세계 화장품 시장의 큰 축이 되는 걸 보고 2012년부터는 아예 뷰티 사업에 집중했습니다.”

이후 10여년 간 위시컴퍼니는 한국 대표 뷰티 브랜드 콘텐츠 커머스 회사로 성장했다. “코로나19로 소비 심리가 얼어버린 지난해만해도 연 매출 514억원을 기록했어요. 자사 유튜브 채널 ‘위시트렌드TV’의 구독자는 170만명에 달하죠. 업계에서는 ‘한국 제품을 구매하려는 해외 MD라면 모두 이 채널의 구독자’라는 말이 돌 정도로 큰 글로벌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백 대표(오른쪽)와 누리라운지에서 활동 중인 인플루언서. /누리하우스
누리하우스 구성원들과 함께한 모습. /누리하우스

젊은 나이에 큰 성과를 이뤘지만 도전 욕구는 사그라 들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한국의 국가 경쟁력이 높아졌지만, 아직도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한국의 소비재 브랜드가 부족하다는 점이 계속 아쉬웠어요. 10년간 회사를 운영하며 쌓은 노하우와 경험을 화장품 아닌 다른 소비재 영역에 적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졌죠. 위시컴퍼니에 남는 게 더 쉬운 선택일 수 있는데, 아직 젊으니 계속 도전하고 싶었어요. 위시컴퍼니 사람들도 제 결정을 응원해줬습니다."

반년 동안 퇴사 준비를 한 후 지난해 6월 말, 정든 회사를 떠났다. 열흘 후인 7월 7일 누리하우스를 세웠다. 한국어로 ‘세계’를 뜻하는 누리와 우리말 ‘누리다’를 동시에 담은 이름이다.

◇하이엔드 소비재의 가능성에 주목

누리하우스 닷컴에서 판매되고 있는 디자인 소품들. /누리하우스

국내 브랜드의 무대로 ‘크로스보더 커머스’(국가 간 상거래)에 주목했다. “요즘 소비자들은 아마존, 알리익스프레스, 아이허브 등 글로벌 쇼핑몰에서 필요한 물품을 직접 구매합니다. 크로스보더 커머스 시장의 규모는 약 1000조원 규모로, 전체 커머스 시장의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죠. 한국 브랜드의 해외 직접 판매 규모는 연간 5조원 미만으로 전세계 시장에서 아직은 미미합니다. 하지만 성장세는 가파릅니다. K브랜드의 수출은 매년 15% 성장하고 있죠. 국내 소비재 브랜드의 해외 직판을 도우면, 저희와 클라이언트 모두 성장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백 대표가 주목한 건 ‘하이엔드’(고급) 소비재다. “한국 소비재는 대체로 중저가로 포지셔닝 돼 있어요. 중저가형 시장에서 인기가 많은데, 더 저렴한 가격대의 중국산이 맹추격하고 있는 상황이죠. 그렇다고 일본, 유럽 브랜드 제품에 지불하는 돈을 한국 브랜드에 지불하지는 않고요. 이 점이 늘 아쉬웠어요. 프랑스 명품 브랜드가 오랜 기간 사랑받으며 꾸준히 성장하듯 하이엔드를 지향해야 사업의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죠. 다양한 소비재 중에서 좋은 제품을 찾으면 승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개의 사업부를 유기적으로 연결

제품 판매 정보와 관련 콘텐츠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누리하우스 닷컴. /누리하우스 닷컴

1년 동안 준비해 지난 7월 B2C 커머스 서비스 ‘누리하우스 닷컴’을 론칭했다. 국내 15개 브랜드의 제품을 사입해서 판매한다. ‘작고 아름다운 것들이 가득한 문방구’ 컨셉으로 출발했다.

“어머니가 ‘누리문구’라는 문구점을 운영 하셨어요. 어려서부터 신기하고 재밌는 물건을 만지고 들여다보면서 취향을 만들었죠. 이때의 기억을 살려 오 롤리데이, 웜그레이테일 등 국내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브랜드의 소품을 팝니다. 입점 브랜드를 소개하는 영문 콘텐츠도 제작해요. 2시간 동안 창업자들을 인터뷰해서 어떤 철학을 만들고 이 물건들을 만들었는지를 콘텐츠에 담죠. 이 외에 재고 관리부터 제품 포장, 통관서류 작성, 고객 배송 등의 업무도 저희가 대행합니다.”

누리하우스에서 활동 중인 인플루언서들. /누리하우스
인플루언서 스토어 예시. /누리하우스

9월 말에 론칭할 예정인 앱 서비스 ‘누리라운지’는 일종의 외국인 인플루언서 커뮤니티다.

“누리라운지는 ‘입주 브랜드에게 매출 외에 어떤 혜택을 주는 게 좋을까’란 고민에서 출발한 결과에요. 외국인 인플루언서들은 누리라운지를 통해 협찬 브랜드나 콘텐츠에 함께 출연할 인플루언서를 찾을 수 있어요. 핵심 기능은 ‘인플루언서 스토어’에요. 인플루언서가 누리라운지 입점 브랜드 중 팔고 싶은 상품을 골라 자신의 스토어에서 판매하는 기능이죠. 인플루언서가 패션 소품을 작용하거나 이용한 사진으로 판매를 하니 신뢰도를 높일 수 있죠. 판매자(인플루언서)는 수수료를 받고 제조사는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구조에요. 현재 200여명의 인플루언서를 확보했습니다.”

컨설팅 서비스인 누리공방을 포함한 세 서비스는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업체의 특징에 따라서 다른 제안을 해요. 예컨대, 누리하우스 닷컴은 아기자기한 브랜드 중심의 사이트라 중장년 대상 소비재 브랜드와 어울리지 않아요. 이 경우 입점은 진행하지 않고, 누리공방을 통해 해외 판매 사이트를 제작하는 식으로 별개의 진행을 해요. 누리하우스 닷컴과 어울리는 브랜드라면 입점과 동시에 인플루언서 협업 방안을 제시합니다.”

◇한국 브랜드 엑셀러레이터 되는 게 목표

디데이 입상 당시 사진. /누리하우스

등장하자마자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9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에서 입상한 데 이어 창업 1년 만에 해시드, 더벤처스, SJ투자파트너스, 디캠프 등 4곳으로부터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지금까지 약 8만여명의 방문자가 누리하우스 닷컴을 방문했습니다. 회사 인스타그램은 운영 세 달 만에 1만 4000여명의 팔로워를 확보했어요. 7월부터 운영한 회사 유튜브의 구독자 수도 3000명을 돌파했고요. 반응이 빠릅니다.”

누구보다 국내 창작자들이 누리하우스의 존재를 반긴다. “막막했던 해외 진출을 손에 잡히는 일로 도와주니 국내 브랜드들이 너무 좋아하세요. 해외 MD들에게는 ‘온라인 박람회’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홈페이지에서 입점한 브랜드 제품 뿐만 아니라 브랜드 소개까지 볼 수 있으니까요.”

누리하우스 구성원들과 함께한 사진. /누리하우스

30대에 11년 차 창업가가 된 그는 창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그린 세계관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0년대부터 창업 생태계에서 함께 고생했던 분들과 아직도 만나요. 소주 한 병도 비싸다며 툴툴대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저마다 결실을 거두고 있어요. 이제는 저를 비롯한 창업가들의 여정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올까, 이 여정이 끝났을 때 얼마나 신나는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기대됩니다. 지금의 제 삶이 무척 만족스러워요”

누리하우스를 한국 브랜드의 엑셀러레이터로 키우는 게 목표다. “단기적으로는 서비스를 안정화시켜서 자생하는 구조를 만드는데 주력할 계획합니다. 이게 가능 하려면 해외 활성 고객 1만명을 유치해야 합니다. 누리공방을 통한 컨설팅 사업도 확대할 예정이에요. 누리하우스를 통해서 글로벌하게 성공을 거둔 기업을 많이 배출하고 싶어요.”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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