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의사 꿈을 포기한 한양대 의대생, 10개월만에 6만명 매료시킨 선택

더 비비드 2024. 7. 8. 16:10
원격진료 플랫폼 및 처방약 배달 플랫폼 개발기

닥터나우 장지호 대표. /더비비드

“저희 서비스는 여자 친구가 애인에게 소개해주는 앱으로 입소문이 났어요.”

비대면 진료 및 처방 약 배달 플랫폼 ‘닥터나우’의 장지호 대표는 자신의 서비스를 이렇게 소개했다. 2030 여성들이 비대면으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닥터나우 플랫폼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새로운 서비스에 민감하면서 자기 관리에 열중인 여성들이다. 유행에 민감하고 구전 효과가 뛰어난 여성 소비자의 반응은 성공의 바로미터 와도 같다.

코로나19 이후 닥터나우는 우리 사회에 ‘원격진료의 필요성’이라는 공을 쏘아 올렸다. 원격진료를 둘러싼 일부의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개시 10개월 만에 재방문 고객 6만명, 비대면 진료 및 앱 이용 건 30만 건을 돌파했다. 의대 출신 창업자 장지호 대표에게 원격진료에 뛰어든 이유와 그 필요성에 대해 들었다.

◇이 청년이 의대 택한 남다른 이유

장 대표가 고안한 '수액모자' 이미지. /본인 제공

어릴 적부터 ‘원격진료 창업’이 목표였다. 꿈을 이루기 위해 2016년 한양대 의대 문을 두드렸다. “어릴 적 제가 아플 때 마다 아버지가 의사 친구들에게 전화로 조언을 구하시곤 했어요. 저도 그분들처럼 멀리서도 진료를 봐주는 의사가 되고 싶었죠. 의대 면접장에서도 ‘원격 진료를 해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어요. 의대에 진학한 후 5년 간 노숙인, 장애인 봉사 센터에서 의료봉사를 했습니다. 이미 전화로 진료를 본 후 약을 배달해주는 식으로 원격의료를 시행하고 있더라고요. 환자와 의사의 거리를 좁혀주는 중요한 도구라고 생각했죠.”

학교 다니는 5년 동안 열심히 창업 준비를 했다. “전공도 아닌 코딩, 디자인 수업을 몰래 들으며 배경지식을 쌓았어요. 디자인 어워드에도 도전했습니다. 2019년에는 '수액 모자'로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로 꼽히는 IDEA 디자인 어워드와 2019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에서 입상했어요. 건강 검진 결과를 기반으로 맞춤형 영양제를 파는 사업도 해봤고요. 이 과정을 통해 평소에 만나기 힘든 개발자나 디자이너들과 인맥을 쌓았습니다.”

학창 시절 장 대표의 모습. /본인 제공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이웃나라 일본의 원격진료 시장이 급성장하는 것을 보며 빠른 창업을 결심했다. 2019년 지인 4명을 설득해서 닥터나우를 창업했다.

“우리나라에도 고혈압, 방광염, 질염처럼 정기적으로 처방을 받아야 하는 만성 질환자가 많습니다. 그런데 매번 병원에 가는 게 어렵죠. 반면 의료계 종사자는 편합니다. 저 역시 아프면 의대 선배들에게 전화로 상담을 받습니다. 이 좋은 걸 일반인은 누리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어요. 잘 자리 잡으면 환자, 의사, 약사 모두에게 좋은 사업 모델이잖아요. ‘졸업하고 창업하라’는 만류를 많이 들었지만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대기업 입사를 앞둔 개발자 친구에게 '같이 하자'고 설득해  함께 시작했죠.”

◇일일이 약국과 병원 다니며 설득

장 대표와 닥터나우 앱 내에서 볼 수 있는 처방전. /닥터나우

지난해 3월, 원격진료 업체와 제휴를 맺고 의약품 배송 서비스부터 시작했다. “의료기관에서 작성한 처방전을 환자가 선택한 약국으로 발송하면 약사가 이를 받은 후 구두 혹은 서면으로 복약지도를 하고 약을 보내주는 서비스였어요. 고객의 개인정보가 오가는 일인만큼, 처방전 전송 보안 서비스를 제대로 갖추는 데 주력했죠.”

창업과 동시에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사회적으로 ‘원격진료’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지난해 2월부터 정부가 감염병 전파를 차단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비대면 원격진료를 허용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대구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어요. 당장 자체 원격진료 플랫폼을 구축하지 못했지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어요. 대구 지역에서 원격진료가 되는 병원과 안되는 병원, 의약품 배송이 되는 약국과 안되는 등의 정보가 담긴 지도를 웹에 공유했죠. 당시 접속자만 100만명이 넘었습니다.”

닥터나우 서비스 화면. /닥터나우

한 발 더 나아가려면 원격진료에 대한 의료계 내부의 인식부터 바꿔야 했다. “사업 초기에 제가 백팩을 메고 직접 약국과 병원을 찾아다니며 함께 하자고 설득했어요. 대부분이 ‘원격진료가 가능하냐?’는 반응이었죠. 기업형 약국의 등장이나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우려하는 분들도 적지 않았고요. 다행히 원격진료가 확산되면서 반응이 달라졌어요. 누적 비대면 진료 사례가 250만건을 넘어섰고, 이 중 55%가 작은 의원급인 1차 의료기관에서 진행됐다는 데이터가 나왔거든요. 우려와는 달리 상급 종합병원은 12%에 불과했죠.”

관건은 원격진료를 둘러싼 법적 문턱을 넘는 것이었다. “2000년 원격 진료 시범 서비스가 도입됐지만 말 그대로 시범 사업에 그쳤고, 의약품 배송을 막는 약사법은 1964년에 생긴 법이라 이 시대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창업 전부터 규제 샌드박스(신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동안 기존 규제를 면제, 유예시켜주는 제도)를 준비를 했어요. 의약품 배송 규제 특례를 받는 게 골자였죠. 대한상공회의소와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같은 단체와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함께 움직였어요.”

닥터나우 서비스 화면. /닥터나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사회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의약품 배달 서비스를 본격 도입하기에는 환자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게 약사회측 입장이었다. 회사의 거취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서비스를 중단하고 보건복지부에 검토를 요청했다.

“지난해 11월 복지부로부터 ‘전화 상담·처방 및 대리처방 한시적 허용방안에 따라 제한된 범위 내에서 한시적으로 허용한다’는 서면 답변을 받았습니다. 복지부로부터 서면 답변을 받은 건 동종업계 최초였습니다. 고무적인 순간이었죠.”

◇집에 누워서 진료볼 수 있는 플랫폼 출시

디캠프 디데이 우승 당시 모습. /닥터나우

지난해 11월 복지부의 유권 해석을 기반으로 비대면 원격진료 플랫폼 ‘닥터나우’를 출시했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앱을 깔아서 진료 과목과 의사를 선택한 후 전화나 화상으로 진료를 보면 된다. 이후 휴대폰으로 전송받은 처방전을 약국에 전달하면 된다. 약은 배송 받거나 예약 수령(픽업)할 수 있다.

“진료부터 처방전 수령까지 5분이면 됩니다. 감기나 복통 같은 보험영역 뿐만 아니라 탈모, 여드름 같은 비보험 영역까지 진료를 볼 수 있어요. 지금까지 약 150여곳의 병원, 약국과 제휴를 맺었어요. 요즘은 보건소에서 자가 격리자들에게 저희 서비스를 추천한대요. 백신 접종 후 부작용을 걱정하는 분들 사이에서도 ‘집에 누워서 진료 볼 수 있는 서비스’라고 입소문이 났죠.”

안팎으로 발품 판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지난 5월 말, 닥터나우의 ‘재외국민 비대면 진료 서비스’가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했다. 지난 8월에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디데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회사 뿐만 아니라 협력사들도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협력 병원과 약국의 평균 매출이 300% 올랐어요. 코로나19 위기로 폐업 준비까지 했던 한 약국은 저희 서비스를 통해 500%에 가까운 매출 신장을 이루고 부활했대요. 협력사와 선순환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한국 넘어 세계적인 서비스로 성장하는 게 목표

장 대표는 아플때 119 다음으로 찾는 서비스로 도약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더비비드

무엇보다 ‘사명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직 생소한 산업군인 만큼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나라의 ‘표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일에 임합니다. 감사하게도 이용자분들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매월 공용 메일로 감동적인 감사 인사를 받는데요, 한번은 만성질환을 겪는 이용자분이 ‘닥터나우가 없었으면 일상이 힘들었을 것 같다고, 회사가 더 커져서 다른 사람들도 썼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써 주셨어요. 저희 서비스를 써보고 A4 4장 분량의 피드백을 남긴 분도 있었죠. 이런 분들을 마주할 때마다 강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우리나라 원격진료 1위 서비스를 넘어서서 해외 서비스와 경쟁하는 회사로 성장하는 게 목표다. “요즘은 높은 연봉과 스톡옵션을 제안해가며 인재 채용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좋은 인재가 훌륭한 서비스를 만드는 법이니까요. 의료 산업을 바꿔보고 싶은 의지가 있는 분들이 모였으면 좋겠어요. 의료산업에서 혁신을 일으킬 영역이 비대면 진료라고 생각해요. 아플 때 119 다음으로 찾는 서비스로 도약하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