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를 위한 청년의 아이디어
통계청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65세 인구 비율은 16.5%. 추세대로라면 2025년 초고령사회'(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인구의 20% 상회)에 접어든다. 고령 인구가 늘면 여러 경제·사회적 문제가 생긴다. 대한민국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명 당 58만 6000명으로 OECD국 중 1위다.
스타트업 '로쉬코리아'는 시니어가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 '시소'를 서비스한다. '시니어는 소중하니까’를 줄인 말이다.
현준엽(40) 대표는 노인자살률의 주요 이유를 외로움과 고립감이라 봤다. 가구 옮기기 같은 생활도움 서비스부터 취미 강의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현 대표를 만나 창업기를 들었다.
◇우울 증세 있던 어머니 돌보며 얻은 사업 아이디어
한성대에서 무역학을 전공했다. 여의도의 한 증권사에서 2007년부터 7년 간 일한 후, 공유주방 위쿡을 운영하는 심플프로젝트에서 CSO로 일했다. 전략기획을 담당하며 사업성을 검증하고 제안하는 일을 맡았다.
2020년 1월 홀로 남은 어머니를 보고 노년 문제를 가까이서 인식하게 됐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부쩍 외로움을 느끼셨어요. 제가 24시간 돌봐드릴 수 없어서 친척 누나에게 돌봐달라고 부탁했죠. 그러고 한 달 뒤에 만났는데 컨디션이 많이 회복되셨더라고요.”
어머니의 외로움을 마주한 것이 사업의 발판이 됐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단 어머니만의 일이 아니었어요. 민간 영역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업 구상을 시작했습니다.”
사업을 구체화하기 위해 시장조사부터 했다. 시니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 그들의 요구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서비스는 없는 것 같았다. “바로 옆에서 보조해주는 친구같은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본이나 미국 등 해외에서도 성공의 힌트를 얻었다. “미국은 활동적이고 자주적 마인드를 갖고 있는 시니어를 지원하는 스타트업들에 투자가 몰리고 있더라고요. 그런 관점에서 한국에서 해도 사업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을 했어요.” 2020년 7월 퇴사하고 본격적인 창업에 뛰어들었다.
◇첫 번째 서비스 실패, 어르신 눈높이에서 재설계
2020년 10월 ‘버킷리스트 함께하기’라는 서비스를 처음으로 내놨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함께 해주는 서비스였다. 하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다. "시니어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니었던 거예요."
홍보도 문제였다. “부모를 맡기는 자녀를 타깃으로 홍보했어요. SNS로 저희 서비스를 접한 자녀들이 신청을 했죠. 그런데 정작 부모들이 원하는 서비스가 아니었으니 취소율이 90%가 넘는 거예요. 자녀가 아니라 저희 서비스를 이용할 부모를 타깃으로 서비스를 알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서비스 개편부터 했다. 시니어들이 서로 만나는 기회를 만드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단순 ‘모임’이 아닌 소규모 강의로 접근했다. 시니어가 취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취미 강의였다. “기존에도 취미 강의는 많아요. 동사무소나 문화센터 등에서 하죠. 그런데 인원이 10~20명에 이릅니다. 저희는 정원이 최대 6명입니다. 수강생끼리 더 친밀하게 어울릴 수 있고, 강사도 밀착해서 가르칠 수 있어요.”
2~3개월에 한번씩 새 서비스를 내고 있다. 2월에 시작한 ‘디지털 교육’은 시소 직원이 1대1로 어르신에게 휴대폰이나 컴퓨터 사용법을 알려주는 서비스다. 5월 생활 도움 서비스에 이어 7월 구매대행 서비스도 시작했다.
홍보는 서비스 대상의 눈높이에 철저히 맞추기로 했다. 원초적이지만 시니어들에게 익숙한 ‘전단지’ 홍보를 택했다. “명색이 스타트업인데, 전단지로 홍보를 하다니 의아해 하시는 분이 많았어요. 하지만 저희 서비스는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잖아요. 어르신이 가장 친근하게 볼 수 있는 홍보를 선택했습니다.”
고령 비율이 높은 은평구 내 아파트 단지, 경로당, 동사무소 등 노인이 있을 법한 곳은 가리지 않고 돌아다녔다. “전단지 보고 연락주신 어르신들이 많았어요. 그 덕에 새로운 서비스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시소의 현재 주력 상품은 ‘생활 도움 서비스’다. 어르신이 1만~2만원을 내면 직원이 찾아가 가구 옮기기, 전구 교체, 커튼 달기 같은 노동을 대신해준다. 단순 서비스에는 돈을 쓰지 않을 것이라는 통념을 깬 것이다.
“처음 서비스를 출시할 때 누가 돈을 내고 생활도움 서비스를 쓰겠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반응이 가장 뜨거운 서비스가 됐어요.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어르신들은 일상생활 보조가 가장 필요했던 겁니다.”
시소의 가장 큰 강점은 직원과 시니어가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집 베란다에 버티컬 블라인드를 설치해달라는 어르신이 계셨는데요. 버티컬을 달아 드리면서 이야기를 나눠 보니 요리에 관심이 많으시더라고요. 바로 요리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유튜브 채널을 알려드리고, 프라이팬도 추천해드렸죠. 이후 단골 고객이 되셨습니다.”
◇'어르신을 위한 슈퍼맨' 기업이 목표
서비스 가능성을 인정 받고 있다. 8월 열린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데이(창업경진대회) 입상에 성공했다.
서울 은평구를 시작으로 서비스 지역을 계속 확대해 갈 계획이다. “어르신이 불편한 게 있으면 자녀나 손자보다 먼저 찾는 서비스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어르신들을 위한 슈퍼맨이 되고 싶어요.”
‘사명감’ 하나로 왔다고 했다. “고객이 모든 서비스에 호응하지는 않아요. 사업을 접어야 하나 절망감이 들 때도 있죠. 그럴 때마다 어르신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서비스 하나 만들어보자는 사명감 하나로 버텼어요. 창업을 꿈꾸는 분이 있다면 자신이 정말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되새기고 또 되새기길 바랍니다.”
/윤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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