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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다이소 점원하다 3년 만에 LG생활건강 매장 디자인

대기업 화장품 매장 디자이너 취업기

코로나 사태로 실물 경제가 큰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 어느 해보다 힘든 고용상황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어려움 속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취업난을 극복하고 있는 청년들을 통해 희망을 전하는 ‘2030 취업 분투기’를 연재합니다.

특성화고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이정훈(31)씨. 제품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결심한 뒤부터 현실적인 고민에 빠졌다. 배웠던 시각 디자인은 평면을 다루는 것인데 반해, 제품 디자인은 입체를 다뤄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꿈 앞에서 망설였던 이씨는 현재 LG생활건강 등 유명 화장품 브랜드의 외주를 받아 오프라인 매장 매대 연출을 전담하는 4년 차 제품 디자이너가 됐다. 이씨를 만나 취업 성공 노하우를 들었다.

◇대학 자퇴 후 찾은 새로운 길

/본인 제공

서울 대동정보산업고등학교(현 대동세무고등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2008년 졸업 후 서울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무대디자인과를 다녔다. 현실과 이상은 달랐다. 무대디자인은 몸 쓰는 일이 많았는데, 높은 노동강도를 견딜 만큼 열정이 없다고 판단해 군대 전역 후 자퇴했다. 무엇을 할지 몰라 고민에 빠진 그는 자퇴 후 편의점 아르바이트, 식당 서빙, 완충재 공장 생산직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다이소에서는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매장직으로 일했다. 그러던 중 새로운 꿈이 생겼다.

-어떤 꿈인가요.
“다이소에서 평소처럼 제품을 진열하다,  몇몇 제품을 유심히 살펴보니 생산지가 일본을 포함한 해외가 대부분이었어요. 국내 제품보다 한발 빠르게 개발되고 훨씬 더 많이 팔리는 것 같더라고요. 유행을 선도하고 소비자에게 널리 선택받는 국내 제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제품 디자이너의 꿈을 꾸게 됐습니다.”

-꿈을 위해 어떤 결정을 했나요.
“기술을 최대한 빨리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품 디자인은 기존에 배웠던 평면 디자인 기술과는 전혀 다른 영역이거든요. 이때 나이가 28살이라 수능에 도전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2년제 전문대 중 실무 위주의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를 찾아봤어요. 폴리텍대학이 있더군요.”

◇늦은 만큼 성실했던 학교생활

'라이노심화' 수업 건담로봇 제작 팀 프로젝트 과제 사진. /본인 제공

2016년 3월 한국폴리텍대학 서울정수캠퍼스 산업디자인과 2년제 학위과정에 입학했다. 2학년 때 세부전공으로 제품개발디자인을 선택했다. 꿈꿨던 제품 기획과 개발 과정을 열심히 공부했다.

-늦은 대학 생활이 어땠나요.
“동기 대부분이 저보다 어렸어요. 뒤늦게 이 길에 뛰어들었다는 생각에 성실함을 최우선으로 두고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평면 작업만 하다가 입체 작업을 하려니까 낯설었지만, 같은 분야에서 일할 사람들과 함께 공부한다는 게 자극이 됐습니다. 첫 대학 때 전공에 애정을 가지지 못하고 자퇴했던 상황이라, 그 모든 감정이 새로웠어요.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수업 과제 말고도 개인적으로 공부를 많이 했어요. 휴대폰, 게임기 가릴 것 없이, 손에 잡히는 물건이란 물건은 모두 제 렌더링(2D스케치를 3D화하는 과정) 연습의 대상이 됐습니다. 남들보다 많은 연습량이 자신감을 올려주는 데 큰 역할을 했죠.”

'프로젝트실습' 수업의 멀티탭 제작 팀 프로젝트 과제 사진. /본인 제공

-어떤 공부를 중점적으로 했나요.
“모델링(견본 제작) 공부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제품 하나를 3D 입체로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죠. 실무 위주 커리큘럼이 아니면 이런 공부를 할 수가 없어요. 라이노, CAD, 3D MAX 등 도면을 3D 입체로 설계하는 프로그램들을 집중적으로 배웠습니다. 제품 디자이너로 입사해 보니 가장 많이 쓰는 기술들이더라고요.”

-어떤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았나요.
“2학년 1학기 했던 팀 프로젝트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한 학기 동안 같이 만들 제품을 선정해야 했는데 다른 팀원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제안했고요. 저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멀티탭을 하고 싶었어요.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블루투스 스피커와 멀티탭 디자인 계획을 간단하게라도 짜와서 비교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결과물을 취합했더니 멀티탭과 관련한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더 많이 나왔고, 모든 팀원들의 동의로 멀티탭이 채택됐어요. 막연하게 의견을 주장하기보다 빠르게 시도해 보고 확인하는 게 낫다는 걸 배운 계기가 됐습니다. 지금도 팀 작업을 굉장히 많이 하는데, 팀원 간의 의견차가 있을 때마다 이때 경험을 떠올립니다.”

뉴메이커스코리아2016에서 VIP심사위원 활동 후 받은 공로증. /본인 제공

-공모전이나 대외활동도 부지런히 했나요.
“1학년 겨울방학에 디자인 행사 기획 기업 디노마드에서 주최한 ‘뉴메이커스코리아 2016’의 VIP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어요. 신생 브랜드의 아이디어 상품을 심사위원 자격으로 평가하고 투표하는 자리였죠. 새로 개발된 제품들을 최대한 많이 접하고 싶어서 참여했는데요.

다른 사람들의 제품을 평가한 경험이 취업할 때 큰 도움이 됐어요. 제 포트폴리오를 객관적으로 보는 눈을 키울 수 있었거든요. 제품 디자이너의 꿈에 더 몰입할 수 있는 계기도 됐고요. ‘한국에서도 신생 스타트업들의 기발하고 멋진 제품들이 개발될 수 있구나’라는 희망이 생겼고 그게 큰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습니다.”

◇조기 취업과 더 넓은 세상으로의 발걸음

졸업전시회 선후배 교류행사 당시 사진. /본인 제공

졸업 전시를 준비하던 2017년 10월, 조기 취업을 했다. 실습실 근로장학생이었던 이정훈씨의 꼼꼼함을 눈 여겨보던 지도 교수가 담배 매대를 연출하는 회사의 VMD(비주얼 머천다이저, 브랜드 콘셉트에 맞춰 제품 전시를 기획하는 직업)로 이씨를 추천한 것이다.

첫 직장에서 1년 반 동안 담배 진열장과 진열에 쓰이는 소도구를 디자인했다. 다만 전 직원 3명인 소규모 회사라 업무들을 빠르게 처리하다 보니 디자인 감각을 익힐 겨를이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제품 디자이너로서 도약하기 위해 이직을 결심했다. 채용 공고를 찾아보다가, 지금 다니는 ㈜제이웍스를 발견했다.

-어떤 회사인가요.
“화장품 판매대를 연출하는 회사입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화장품 업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2019년 6월 지원했습니다. 백화점 등 오프라인 화장품 매장의 매대 전반을 디자인하거나, 매대에 올리는 아크릴 용구 등을 만드는 제품 디자이너를 찾고 있더군요.”

/본인 제공

-서류와 면접에서 무엇을 가장 강조했나요.
“보유 기술과 경력을 드러내는 포트폴리오 정리에 가장 힘을 썼습니다. 첫 직장에서의 경험도 좋게 작용했지만, 포트폴리오의 대부분은 학교 수업에서 한 3D 과제들이었어요. 폴리텍대 재학 중 취득했던 제품 디자인산업기사 자격증도 함께 강조했습니다.”

-낯선 화장품 업계에 어떻게 적응했나요.
“디자인할 때 쓰는 기술은 동일해요. 화장품과 친해지기 위해 무작정 백화점에 자주 갔어요. 화장품이 진열되고 판매되는 모습을 계속 보면서 구매자, 판매자의 시각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제품 개발도 하는 디자이너 목표

직접 디자인한 제품의 현대백화점 팝업스토어에서 근무할 당시의 이정훈씨. /본인 제공

LG생활건강 등 내로라하는 화장품 브랜드가 회사의 고객이다. 각종 가구·소품 디자인을 맡고 있다. "행복하게 일하며 제품 제작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어요. 회사에서 운영하는 '앱톤'이라는 브랜드가 있는데 여기 제품도 제가 디자인하고 있어요. 디자인을 넘어 제품 제작 기술도 배우면서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어떤 목표인가요.
“제품 기획 이후의 개발 공정을 주로 담당하다 보니 금형(규격이 동일한 제품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만드는 틀, 주로 시제품 제작에 필요)에 대해 깊게 알아야 해요. 관련 전문가가 되기 위해 폴리텍대 서울정수캠퍼스 전공심화과정 기계설계공학과 야간 학기에 다니고 있습니다. 일과 병행하느라 힘들기는 하지만, 시제품의 틀을 직접 만들어보는 금형설계실습과 기계설계 수업들이 기술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예비 제품 디자이너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세요.
“다양한 분야의 전시회에 다닐 것을 추천해요. 저는 아예 모르는 분야인 농업 제품 전시회 같은 데까지 찾아다녀요. 낯선 분야의 제품을 많이 접하다 보면 다양한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회의할 때 보면 기본 형태를 잘 벗어나지 않는 디자이너가 많아요. 저는 예상 밖의 형태로 디자인하고, 기능도 재치 있게 추가하려고 노력합니다. 박스 하나를 제작해도 ‘접합 부분을 추가해 레고처럼 다양한 조합을 만들 수 있는 박스’같은 확장된 아이디어를 내놓기 위해 노력하는 식이죠.

디자인은 단순 반복 업무가 아니에요. 만드는 제품에 따라 신경 써야 할 부분이 굉장히 많고 돌발 상황도 많아요. 취업을 준비하면서부터 순발력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디자인 사례를 스크랩 해왔어요. 작업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때 참고할 수 있거든요. 디자인 경험치를 최대한 많이 모으고, 깊이 연구하는 태도를 키우면 좋겠습니다.”

/정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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