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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출시 4일 동안 80명 찾아 온 커뮤니티의 현재 모습

IT 메이커들을 위한 플랫폼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디스콰이엇 박현솔 대표와 그가 디자인한 핏빗. /더비비드, 본인 제공

일할 때 딱 필요한 조언을 수시로 얻을 수 있거나, 참고할만한 다른 프로젝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디스콰이엇은 IT 개발자, 디자이너, PM(제품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책임지는 사람) 등 IT 종사자들이 내 프로젝트를 공유하고 다른 사람의 프로젝트를 참고할 수 있는 성과 공유 사이트다.

지난 3월 서비스를 출시해 누적 이용자 9000명을 확보했다. 실리콘밸리 출신인 박현솔(30) 대표를 만나 창업 스토리를 들었다.

◇피카소를 사랑한 청년이 실리콘밸리서 취업한 이유

디스콰이엇 박현솔 대표. /박현솔 대표 제공
디스콰이엇 홈페이지. /디스콰이엇

디스콰이엇은 IT 종사자들이 상호 교류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웹사이트다. 이곳에서 이용자들은 내가 만든 서비스나 제품을 공유하면서 피드백을 받거나, 타인의 것을 보며 평가를 남기기도 한다. IT라는 공통된 관심사 덕에 서로 절실히 필요한 의견을 주고 받는다.

초등학생 때부터 ‘위인전’ 속 인물을 동경했다. 남들과 다른 생각으로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피카소, 아인슈타인 같은 인물을 롤모델로 삼았다. ‘아이디어 노트’가 여러 권 있을 정도로 항상 떠오르는 것을 기록했다.

16살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2011년 미국 애리조나 대학교에 입학했다. 창업 꿈나무로서 창업의 토대가 돼 줄 개발과 디자인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경영학과 대신 산업디자인학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 2015년 실리콘밸리에서 산업 디자이너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박현솔 대표가 일했던 실리콘밸리 회사와 디자인 한 핏빗. /박현솔 대표 제공

-어떤 계기로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게 됐나요.

“2015년 5월부터 3개월 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IoT(사물인터넷) 전문 디자인 회사인 ‘뉴딜 디자인(newdeal design)’에서 인턴을 했어요. 전공을 살려서 제품 디자이너로 입사했죠. IT 기술과 디자인 역량을 접목한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이후 감사하게도 정직원 제의를 받아서 디자이너 일을 계속할 수 있었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나요.

“인텔, 구글, 소니 같은 대형 IT 기업이 회사의 주요 고객사였어요. 주로 핏빗(fitbit) 같은 IoT 제품을 디자인했죠. 여성용, 남성용, 고가, 저가 모델 등 제품의 용도가 다양하잖아요. 그에 맞춰 디자인하는 것이 제 역할이었어요. 반지름 길이부터 두께와 비율 등 디자인이 완벽하게 제 마음에 들 때까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죠. 제품들이 모두 숱한 노고 끝에 탄생한다는 것을 몸소 알게 됐어요.”

-실리콘밸리만의 특징이 있나요.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이상적인 아이디어가 튀어나오는 동네였어요. 회사는 그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었죠. 우리나라처럼 제조업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산업이 발달한 곳이라 실패해도 위험 부담이 적어요. 아이디어를 빠르게 실험하고 개선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이유죠.”

◇창업 위해 귀국

박현솔 대표가 일했던 실리콘밸리 회사. /박현솔 대표 제공

실리콘밸리의 강력한 실험 정신, 풍부한 고급 인재와 탄탄한 VC(투자자) 등이 어우러진 네트워크 효과가 미국을 IT 강국으로 이끈 힘이라고 여겼다. 경험을 바탕으로 나만의 일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개월 다닌 첫 회사를 관두고 2017년 1월 귀국했다.

-곧바로 창업한 건가요.

“귀국하고 두 달 뒤, IoT샤워기 제작 스타트업의 디자이너로 입사했습니다. 우선 IT 기반 스타트업에서 일해보고 싶었거든요. IoT 샤워기는 이용자의 패턴에 맞춰 물 온도를 조절해주는 등 자동 조절 기능이 있어 매력적인 아이템이었어요. 10개월 간 일하면서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한국의 스타트업 문화를 알게 됐습니다. 이후 창업을 위해 퇴사했어요”

-창업을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요.

“한국 스타트업 시장 동향부터 파악하기 위해 스타트업 캠프에 참가했어요. 각종 스타트업 관계자분들을 만나 정보를 주고받았죠. 이후 목표로 했던 IT 관련 아이템은 아니지만, 유통업으로 일단 창업했어요. 하지만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1년 만에 사업을 접었습니다."

◇5주간 배운 코딩이 사업의 발판

/박현솔 대표 제공

3개월간 방황하다 보니 울적한 마음이 커졌다. 우연히 5주간 진행하는 코딩 강의 광고를 접했다. 실리콘밸리에서 IT 기반 사업을 꿈꿨던 때가 생각났다. IT의 가장 기본이 되는 코딩을 배워보기로 결심했다.

-코딩이 어렵지 않았나요.

“5주 동안 매일 강의를 들으며 종일 코딩 공부만 했어요. 자바스크립트, 파이선 등을 배웠죠. 5주 지나니까 웹사이트를 하나 제작할 실력은 되더라고요.”

-IT 종사자 커뮤니티에 눈 뜬 계기는요.

“코딩 정보를 공유하는 페이스북이나 메신저 단체대화방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어떤 정보를 나누는지 지켜봤어요. 코딩에 대해 질문을 하기도 하고 자기가 만든 서비스를 공유하면서 피드백을 주고받기도 하더라고요. 공부하는 데 정말 유용했어요.

다만 워낙 정보 공유 채널이 많다 보니까 따로 정리하지 않으면 본 것도 잊게 되더라고요. 정보를 한곳에 다 모아 그곳에서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게 개발자 커뮤니티 디스콰이엇의 시작이었습니다.”

박현솔 대표의 아이디어 노트 일부. /박현솔 대표 제공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디스콰이엇을 만든 건가요.

"‘노코드 툴’로 만들었어요. 말 그대로 코딩 없이 만든다는 뜻인데요. 이미지를 사용해 컴퓨터와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 사용자가 그래픽을 통해 컴퓨터와 정보를 교환하는 작업 환경) 기반 도구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프로그래밍 방법을 말합니다. 각 노코드 툴마다 제공하는 양식들이 있는데요. 그중 하나를 선택해 마우스로 사진이나 구성요소를 끌어다 놓거나 텍스트를 입력하는 등의 간단한 조작만으로 앱과 웹을 쉽게 만들 수 있어요.”

-IT 종사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 메신저 오픈 채팅방, IT 종사자들이 모인 페이스북 그룹 등에 디스콰이엇 주소를 공유했어요. ‘이런 사이트가 필요했다’라는 반응과 함께 입소문이 나더니 4일 동안 700명이 사이트를 방문했고 가입자만 80명이 넘었어요. 이 커뮤니티를 키워야겠다 확신이 들었죠.”

◇기술에도 ‘스토리’가 있다는 생각

디스콰이엇 홈페이지. /디스콰이엇

작년 12월 개발자를 영입해 업그레이드된 사이트를 내놨다. 노코드 툴은 제작이 쉽지만 확장성이 부족해, 늘어난 방문자와 확장된 서비스 규모를 감당하기 위해 사이트를 개편한 것이다.

‘개발자들의 트위터’라고 생각하면 된다. 누군가가 떠올린 아이디어를 기록하면, 다른이가 이에 대한 피드백을 남긴다. 그러면 최초의 작성자는 피드백을 토대로 자기 아이템을 보완해 나갈 수 있다. 게시물을 누르면 상세한 정보와 그 밑에 달린 댓글도 볼 수 있다. 글쓴이가 마음에 들면 팔로우하면 된다.

-주로 어떤 정보들이 공유되나요.

“자신이 운영하는 프로덕트나 소개하고 싶은 프로덕트를 공유해요. 댓글로 해당 서비스에 대한 반응을 남길 수도 있고요. 예컨대, 누군가 물건 중개 플랫폼을 추천했더니 댓글에 고가 제품 거래 시 상품의 진품 확인 방법이나 판매자의 신뢰도 면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달렸어요. 서비스 질 향상에 도움 되는 코멘트였죠. 이런 이유로 개발자나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마케터, IT분야 입사 희망자도 많이 이용하고 있어요.”

-기존의 SNS(페이스북, 인스타그램)와 다른 점이 있나요.

“글을 올리고 의견을 공유한다는 기본 구조는 같아요. 다만 어떤 ‘문화’로 형성돼 있는지가 차이점을 만듭니다. SNS가 이용자를 연결하는 관점과 기준이 가장 다른 점이죠. 링크드인은 커리어에 대한 관심사를 연결하는 곳, 페이스북은 친구와 가족을 연결하는 곳이고, 디스콰이엇은 IT 메이커를 연결하는 곳인 셈이죠.”

박현솔 대표의 아이디어 노트 /본인 제공

-IT 종사자 고유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어떤 점에 가장 신경 썼나요.

“IT 관련 정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했어요. IT 정보와 관련없는 불필요한 카테고리는 과감히 없앴어요. 페이스북은 채용 정보란을 둘 정도로 여러 카테고리로 확장됐잖아요. 저는 이용 목적에 맞지 않는 카테고리는 방해만 된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카테고리에 금융, 미디어, 교육 등 산업 분류만 넣고 나머지는 과감히 제외했어요.

무엇보다 저희 사이트의 핵심 정체성은 개발기, 즉 IT 메이커의 ‘스토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매거진’ 탭을 마련했어요. 꾸준히 기록을 남겨준 IT 메이커의 개발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실은 거죠. ‘다른 개발자는 어떤 아이디어로 어떻게 사업을 확장해 나갔는지 참고할 수 있어 좋다’는 반응이 많아요.”

-사이트 이용이 무료인데, 수익 구조는요.

“현재는 수익을 내지 않고 있어요. 이용자들이 저희 사이트에 남긴 기록이 하나의 포트폴리오가 돼요. 이렇게 쌓인 데이터베이스(DB)를  투자자에게 파는 방식으로 수익을 낼 수도 있겠죠. 그러려면 이용자가 최소 100만 명 정도 돼야 해요. 그래서 당분간은 이용자를 늘리는 데 집중하려 합니다.”

◇모든 IT 종사자의 놀이터 목표

정보 공유에 목말랐던 IT 종사자들의 놀이터로 부상했다. 지난 3월 정식 출시한 이후 현재까지 누적 이용자가 9000명에 달한다. 사이트 가입률은 월 평균 10% 정도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데이(창업경진대회)에 본선에 올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앞으로 계획은요.

“너무 많은 것을 성취하는 것보다 2~3가지라도 제대로 잘하는 게 목표예요. 이용자가 저희 사이트에서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인지 계속 파악하는 게 중요하죠. 미국의 앱 서비스 종사자 커뮤니티인 프로덕트 헌트(producthunt)를 참고해서 국내 상황에 맞게 적용해 갈 예정입니다.”

-예비 창업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요.

“성공 가능성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인가가 더 중요해요. 디스콰이엇 전에 실패를 경험했던 이유는 제가 진정성을 담아 임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몰입’의 순간을 가질 정도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윤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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