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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인과 이별 충격에 심리 상담만 200만원, 끝내 한 선택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더휴담 전윤한 대표. /더비비드

마음의 짐은 쌓일수록 덜어내기 어렵다. 실연의 아픔, 진로 고민, 직장 동료와의 갈등. 각종 고민이 들 때마다 비슷한 경험을 했던 ‘인생 선배’를 만나 속내를 털어놓고 싶은 이유다.

스타트업 '더휴담'이 서비스하는 ‘윌슨’은 전문 상담사가 아닌 경험자에게서 고민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앱이다. 앞서 비슷한 고민을 했던 사람에게서 생생한 조언을 듣는 것이다.

이용자가 고민거리를 적어 상담을 신청하면, 경험자와 익명채팅으로 대화할 수 있다. 상담사가 돼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것도 가능하다. 1년도 안 된 신생 앱이지만 5000명이 고민을 털어놨다. 더휴담 전윤한(29) 대표를 만났다.

◇100번의 심리상담 후에도 고민 해결 못 한 대학생

투병으로 마른 체구였던 전 대표의 모습. /본인 제공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메카트로닉스공학부 11학번이다. ‘스타트업 대표’라는 명패를 갖고 있지만 아직 대학생 신분이다. 마지막 학기를 다니던 2018년, 창업에 뛰어들어 졸업을 유예했다.

-고민상담 아이디어를 떠올린 계기가 있나요.

“23살이었던 2015년, 난치성 질환에 걸려 2년간 투병을 했어요. 몸무게가 40kg까지 빠졌죠. 학교도 쉬어야 했어요. 몸과 마음이 지쳐, 심리 상담을 100회 정도 받았습니다. 도움이 됐지만,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경험자의 공감이 필요했어요. 완치 후 학교로 복귀하니, 취업이란 관문이 저를 또 억누르더군요. 누군가의 조언이 절실했습니다.”

창업 동아리 참여 시절 전 대표(맨 왼쪽). /본인 제공

-창업을 결심한 이유는 뭔가요.

“2018년 가을, 대학 마지막 학기를 다니며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어요. 졸업을 앞둔 대학생, 사회초년생 등 우리 또래가 하는 공통된 고민이 진로와 연애잖아요. 비싼 돈을 들여 전문 상담을 받을 주머니 사정은 아니고요. 문득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갇힌 주인공이 배구공에 얼굴을 그려 ‘윌슨’이라 부르면서 의지하는 장면이 떠올랐어요. 대화가 필요할 때 즉시 찾을 수 있는 창구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온라인 상담 창구는 이미 많지 않나요.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익명으로 전할 수 있는 커뮤니티와 전문 심리 상담 사이의 틈새가 있어요. 익명 커뮤니티는 이용자가 너무 광범위해서 제대로 된 대화를 기대할 수 없고, 전문 상담은 높은 비용 때문에 접근이 어렵죠. 그 중간의 서비스를 개발하면 고민을 털어놓고 싶은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으리라 봤습니다.”

◇시범 운영 두 달 만에 300건 상담

첫 공모전 수상을 발판 삼아 창업을 진행했다. /본인 제공

창업을 결심하고 주변을 수소문했다. 창업 동아리의 문도 두드렸다. 뜻이 맞는 친구 두 명과 팀을 꾸려 창업 아이디어 공모전에 '일대일 고민상담 플랫폼'에 관한 기획서를 제출했다. 2018년 10월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개최한 ‘스타트업 스쿨’에서 우수상을 받고 3개월 동안 창업 관련 교육을 받았다.

-교육 이수 후 어떻게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나요.

“창업 교육 때 들은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는 없으니 쉽게 접근해보라’는 말을 새겼어요. 앱 개발자가 없는 상태라 소개 글과 고민을 신청할 수 있는 창이 전부인 웹페이지부터 만들었죠. 대학생 커뮤니티에서 고민 상담을 '받고' 싶은 사람을 모으고,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고민을 '들어주고' 싶은 사람을 모았어요. 신청자의 고민에 부합한 조언자를 찾아서 짝짓고, 메신저 익명 채팅방을 만들어준 후 저희는 퇴장했죠.”

-그때 반응이 어땠나요.

“베타 서비스로 두 달 만에 300건의 상담을 성사시켰어요. 운영 과정에서 상담을 해주는 사람을 위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도움을 줬다는 뿌듯함만으로 일을 지속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 후부터는 1시간에 5000원 정도의 상담료를 중개했어요. 무통장 입금으로 저희가 일단 돈을 받아서, 고민을 들어준 사람에게 다시 계좌이체를 해주는 식으로 수작업을 했죠. 돈을 지불하면서도 이걸 이용할까 걱정이 앞섰는데 열 달 동안 700명이 이용했습니다.”

◇우여곡절 끝 1년 만에 윌슨 개발

창업 초기 멤버들과 함께한 창업경진대회 시상식. /본인 제공

시범운영을 하며 창업경진대회에 도전했다. 2019년 6월, 정부의 예비창업패키지 지원사업에 선정돼 5000만원을 지원받고, 두 달 뒤에는 하나금융 소셜벤처 아카데미에서 우수상을 거머줬다. 성과에 힘입어 8월 법인을 설립했다. 앱 개발이라는 마지막 험난한 길이 남아 있었다.

-앱 개발은 어떻게 진행했나요.

“앱 개발자 세 명을 충원해, 2019년 10월부터 또래 대학생 6명이 모여 앱 개발에 본격 돌입했어요. 그런데 개발 방식 선택부터 발걸음을 잘못 뗐습니다. 더 빠르고 안정화된 앱을 만들겠다는 욕심에 iOS(애플사의 스마트폰에 탑재된 시스템)와 안드로이드(애플사 이외 스마트폰에서 이용하는 시스템)용을 각각 만들어야 하는 네이티브(Native) 방식을 택했거든요. 하나만 만들어서 출시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hybrid) 방식이 있는데, 일을 두 배로 늘려서 한 셈이죠.”

-팀원들은 잘 버텼나요.

“앱 개발이 4개월 내에 끝날 줄 알았는데 1년이 걸렸어요. 뚜렷한 성과도 없고 일정이 많이 늦춰져 팀원들이 모두 지친 상태가 됐죠. 결국 절반은 각자의 길을 떠나고 3명만 남았습니다.”

◇누구나 상담받을 수 있지만 아무나 조언할 순 없어

윌슨 서비스 화면. /더휴담 제공
윌스너의 프로필에는 성별과 나이 같은 기본 정보와 보유 경험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더휴담 제공

온갖 파도를 넘은 끝에 지난 1월 앱을 출시했다. 연애 상담에 포커스를 맞췄다. 이용자의 고민을 듣고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나눌 이들은 ‘윌스너’로 이름 지었다. 이별, 갈등, 짝사랑 등의 카테고리 중 자신의 고민에 맞는 걸 선택하고 고민 내용을 적으면 그 분야 윌스너의 목록이 나온다.

이용자가 원하는 윌스너에게 상담 신청을 하고, 윌스너가 요청을 수락하면 상담이 진행된다.

-연애 상담을 중점으로 하는 이유는 뭔가요.

“2030세대를 타깃으로 시범운영을 했을 때 연애와 진로 고민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진로 상담은 지자체와 학교 등에서 할 수 있잖아요. 반면 연애 상담은 마땅치 않아요. 빠르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주제인데도요. 연애로 시작해 진로, 취업 상담으로 영역을 확장할 계획입니다.”

-상담가의 자질은 어떻게 입증하나요.

“초기 윌스너 확보를 위해 글 연재 플랫폼에 연애 경험을 쓴 작가들을 섭외했어요. 몇백 분에게 요청 메일을 보낸 끝에 100명 넘게 모았습니다. 앱에서 별도로 신청도 받고 있는데, 아무나 윌스너로 활동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나눌 수 있는 경험을 보고 이야기에 진실성이 있는지, 내용이 충분한지를 판단해 선정합니다. 일주일에 30~40명 정도 신청하는데, 적게는 한두 명, 많게는 10명 정도 승인하죠. 지금은 200명 넘는 윌스너가 활동 중입니다.”

앱 화면을 보이며 웃고 있는 전 대표와 윌슨 실제 이용 후기. /더비비드, 더휴담

-이용자들의 후기가 궁금합니다.

“연인과의 이별로 너무 힘들어서 심리상담에 200만원을 썼다는 분도 있었어요. 우연히 저희 앱을 발견하고 반신반의했는데 좋은 윌스너를 만나 얘기를 나누며 마음의 짐을 덜었다 하더군요. 대부분 이제야 발 뻗고 잘 것 같다는 반응이에요. 경험자와 고민을 나누니 공감대가 잘 형성된다고 합니다. 윌스너도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게 뿌듯하다며 만족감을 얻죠.”

-운영 체계는 어떻게 되나요.

“첫 80분은 무료로 이용 가능하고 그 후부터는 50분에 1만원 정도의 비용을 내야 합니다. 윌스너에게는 10분에 1000원씩 상담비가 지급돼요. 한 달에 50만원을 받은 분도 있었죠. 저희는 중간에서 중개 수수료로 이윤을 얻습니다.”

◇진로 등 종합 상담 서비스 목표

올해 8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에서 주최한 데모데이(스타트업 사업 발표 대회)에서도 윌슨을 알렸다. /유튜브 'D.CAMP' 캡처
전윤한 대표 /더비비드

내년 초 윌슨 2.0 버전을 출시하는 걸 목표하고 있다. 전 대표는 아직 아쉬운 점이 많지만, 앞으로 청년들이 고민을 공유하고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자부했다.

-요즘 화두는 무엇인가요.

“어떻게 하면 이용자들이 자신과 맞는 윌스너와 지속해서 교류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에요. 지금은 저녁 9시부터 새벽 2시 중에 활동하고 있는 윌스너에게만 상담 요청이 가능해요. 예약 신청 기능을 추가하고 윌스너들의 성향을 세분화해서 윌스너와 이용자의 유대감을 높일 예정입니다.

추후 자신의 사례를 공유하는 장도 만들 생각이에요. 청년들이 고민이 있을 때 곧바로 윌슨을 떠올리고 부담 없이 얘기를 나눴으면 해요. 마음의 짐을 덜고 용기를 얻어갔으면 합니다."

-창업, 후회는 없나요.

“힘든 순간도 물론 많았지만,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기쁨이 더 커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저희 앱을 통해서 용기를 얻는 분들이 늘어난다는 게 뿌듯하죠. 지금 창업을 생각하고 있다면 욕심을 내려놓고 작은 것부터 성취해 나가길 바랍니다.”

/장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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