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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있는 과자 포장만 해서 20억원 매출 올린 아빠가 특별했던 점

건강 간식 큐레이션 사업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출산을 하면 선물 상자가 하나둘 도착한다. 다만 경이로운 탄생에 너무 집중했는지 대부분 아이를 위할 뿐, 부모는 뒷전이다.

잇더컴퍼니 김봉근 대표와 맘마레시피 간식박스. /더비비드, 잇더컴퍼니

건강식 큐레이션 스타트업 잇더컴퍼니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브랜드 ‘맘마레시피’를 통해 임산부나 육아에 지친 부모를 위한 간식박스를 배송한다. 메신저 쇼핑 플랫폼 임신/출산 카테고리 1위를 달리며 올해 연 매출 2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잇더컴퍼니 김봉근(44) 대표를 만나 창업 스토리를 들었다.

◇’태교 밥상’ 차리던 두 아이의 아빠

두 아들의 아빠다. /본인 제공

미스터피자, 매일유업 등 식품 업계에서 일해 온 마케팅 전문가다. 개인적으로 각종 요리 대회 출전, 음식평론가협회 활동 등을 하며 음식에 대한 지식을 넓혔다. 2014년 첫째 아이를 갖는 기쁨이 찾아왔다. 임신한 아내를 위해 당근 강정(당근에 달콤하게 꿀을 발라 요리) 등을 만들며 갈고 닦은 요리 실력을 발휘했다.

-요리에 대한 관심에서 창업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가요.

“임산부와 태아에게 좋은 음식을 지극정성 만들었어요. 3년 뒤 2017년, 둘째가 태어나고부터는 신경이 온통 아이들에게 가 있다 보니 정작 저희 몸은 돌보지 못했죠. 아이에게 줄 음식은 이것저것 따지면서 저희는 패스트푸드로 대충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거든요. 주변 엄마 아빠들의 상황도 비슷했어요.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건강식을 묶음으로 구성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아이디어를 실행하게 된 계기는요.

“첫째가 태어난 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경영 및 홍보 전략 컨설턴트로 활동했어요. 스타트업, 중소기업이 주요 클라이언트였죠. 4년째 일하던 2018년, 이렇게 다른 기업을 위해 힘쓸 시간에 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이디어도 있고 마케팅 전략도 잘 아니까 한 번 부딪혀보기로 했습니다. 그 해 6월 창업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해 투자자 확보, 사업 계획 세우기 등 실무 과정에 대해 배웠어요. 정부의 초기창업패키지에도 선정돼 기초 자금을 확보하며 발판을 다졌습니다.”

◇야심찼지만 성과 미미했던 시작

창업경진대회에서 발표 중인 김 대표와 협소했던 첫 사무실. /본인 제공

기반을 다진 후 2018년 11월 잇더컴퍼니 법인을 설립했다. 먹인다는 뜻의 ‘잇(Eat)’과 식구란 뜻도 있는 ‘컴퍼니(Company)’를 합성해, 식구의 먹거리를 책임진다는 의미를 담았다. 회사 설립 5개월 후, ‘육아 생존간식박스’를 출시하며 맘마레시피 온라인몰을 열었다. 야심 찬 출발이었지만 첫술에 배부를 순 없었다.

-자체 식품 제작이 아닌 큐레이션 서비스를 택한 이유가 뭔가요.

“음식을 직접 만들어 판매할 만큼의 자본이 없었어요. 최소 판매치도 달성하지 못해 상품을 폐기하는 불상사가 걱정되기도 했고요. 큐레이션 서비스는 주문량에 맞춰 각 업체에서 제품을 구입해 상자에 담아 출고하면 되니 비교적 접근하기 쉽죠. 이윤을 많이 남기지 못하는 단점은 있지만, 우선은 육아에 지친 이들을 위한 건강 간식이 있다는 걸 알리는 게 급선무였어요.”

갈색 상자에 각종 간식을 담은 첫 제품. /잇더컴퍼니

-첫 제품인 ‘육아 생존간식박스’, 어떤 형태였나요.

“밋밋한 종이 상자에 간식 4~5종을 7개 정도 담았어요. 육아 관련 커뮤니티를 살펴 인기 건강식이 뭔지 파악해 느타리버섯 스낵, 쌀 과자, 단호박즙 등의 제품을 선정했죠. 제품 목록을 만들고, 각 판매처 사이트에서 성분과 재료가 뭔지 확인했어요. 의사, 영양사, 식재료 전문가 등에게 자문도 구했죠. 주변 지인을 수소문해서 섭외한 분들인데, 전문가 자문은 지금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어요. 건강과 맛을 모두 잡기 위해 지인들과 모여 시식도 했습니다.”

-초기 반응이 부진한 이유가 뭐였나요.

“마케팅 전문가로서의 경력이 무색할 정도로 제품 출시 후 1년 동안 매출이 부진했어요. 소비자와 지인들에게 피드백을 구했습니다. ‘아이디어는 좋지만, 아이를 위한 음식을 준비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자신을 위해 선뜻 지갑을 열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브랜딩을 잘못 한 거죠. 영유아를 키우는 소비자를 위한 것이라는 정체성은 유지하되, 선물해주고 싶은 상품으로 이미지 변신을 결심했습니다.”

◇’선물하고 싶은 간식박스’로 피봇

발랄한 디자인과 공감 가는 글귀를 쓴 메시지 카드. /잇더컴퍼니

2019년 말부터 화사한 선물 상자로 제품 디자인을 바꿨다. 2020년 2월, 홈페이지를 새단장하고 임산부를 위한 ‘생기채움박스’, 수유에 지친 엄마를 위한 ‘에너지채움박스’, 아이를 재운 후 즐기는 ‘육퇴간식박스’ 등으로 상품군을 확대했다.

-어떤 변화를 줬나요.

“제품 디자이너와 웹페이지 디자이너가 힘쓴 덕에 기분 좋게 주고받을 수 있는 선물 느낌의 디자인이 탄생했습니다. 상자를 여는 순간 감동 받을 수 있도록 메시지 카드도 넣었어요. 예를 들어 육퇴간식박스에는 ‘수고했어 오늘도, 지금부터 엄마만의 시간’이란 문구와 함께 무알콜 맥주와 해초스낵 같은 가벼운 건강식을 담았죠.

무알콜 맥주와 건강식을 담은 '육퇴간식박스'. /잇더컴퍼니

박스도 다양하게 꾸렸어요. 육아 중 마주했던 고충들을 떠올리며 임신, 출산, 영유아 육아 등 주기별로 맞춤형 간식을 선정했습니다. ‘입덧쏙 박스’에는 입덧 방지에 좋은 밤과 오미자로 만든 제품을 넣는 식이죠. 식품이 건강한지 판단해줄 전문가도 식품영양학 교수, 요리사 등을 구해 17명으로 늘렸어요."

-외관만 선물처럼 바꾼 건 아니죠?

“유통 전략도 바꿨습니다. 요즘에는 모바일 메시지와 함께 선물을 보내는 경우가 많잖아요. 메신저 쇼핑 플랫폼에 입점해 간식 박스 3종 판매를 시작했어요. 처음엔 매출이 미미했다가 추석이 다가오는 9월 중순부터 판매량이 급격히 늘더니 한 달 만에 9000개가 팔렸어요. 그 후로 매달 8000~9000개씩 꾸준히 판매됩니다. 이 플랫폼에서만 월평균 3억원 정도 매출이 나와요.”

메신저 쇼핑 플랫폼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 캡처

-소비자 반응이 궁금한데요.

“메신저 플랫폼의 후기만 2500건이 넘어요. 대부분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메시지에 공감한다는 반응이죠. 부모가 건강해야 자녀와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있으니까요. 메시지 카드를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분의 후기를 접했을 땐 마음이 뭉클했어요. 메신저로 선물 받은 후, 제품이 맘에 들어서 저희 온라인몰을 찾는 소비자가 전체의 20% 정도 됩니다.”

-대박 낸 이후는요.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우리 간식박스에 제품을 넣어달라는 요청도 많이 들어와, 선택의 폭이 넓어졌어요. 제품이 정말 좋은데 자본이 부족해 유통처를 찾지 못한 소규모 업체도 많거든요. 현재 협력사는 40여군데, 박스에 넣을 수 있는 제품은 1000여개 정도 확보돼있어요. 수면을 위한 ‘꿀잠박스’,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하는 이들을 위한 ‘워킹맘 박스’등 9종도 새로 출시했죠. 소비자에겐 좋은 제품을 소개하고, 제조사와는 동반 성장할 수 있어서 기뻐요."

◇모두의 건강한 삶을 위해

자체 제작 상품인 쫀득이 시리즈. /더비비드, 잇더컴퍼니

간식 박스의 성공에 힘입어 자체 제작 상품도 선보였다. 지난 2월 찰보리와 현미, 곤약으로 만든 ‘맘편한 쫀득이’에 이어 최근 ‘쑥 쫀득이’를 출시했다. 영국의 저명한 비건(vegan) 협회 ‘비건 소사이어티’에서 공인받은 식물성 식품이다. 맘편한 쫀득이는 한 달 2000~3000개 씩 팔리며 효자 상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김 대표는 맘마레시피가 육아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자부했다.

-발전 가능성을 자신하는 이유가 뭔가요.

“창업 초기, 이미 육아 관련 시장이 포화상태인데 과연 성공하겠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컸어요. 하지만 이미 넘쳐나는 아이들을 위한 제품 대신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엄마 아빠에게 초점을 맞춰 큰 호응을 얻었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본 덕에 지금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육아 관련 영상 제작, 간식박스 크리스마스 에디션 출시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유튜브 '기미아빠' 캡처, 잇더컴퍼니

-앞으로 계획이 뭔가요.

“자녀 계획을 세우는 중인 부부를 겨냥해 임신에 도움이 되는 간식박스를 구상 중이에요. 간식 뿐 아니라 ‘끼니 키트’라는 밀키트도 만들 계획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가정을 위해 맘마레시피를 만든 것처럼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정, 환자가 있는 가정 등 다양한 유형의 가족들의 먹거리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기업을 꿈꾸며 달려가려 해요.”

-창업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조언이 있다면요.

“창업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하더군요. 아이디어가 있다면 미련이 남지 않게 우선 실행으로 옮겨보세요. 중간에 길이 막혀도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답이 나올 거예요. 조금 돌아가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목표를 이루길 바랍니다.”

/장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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