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입는 옷 팔아 드려요' 55억원 번 28살의 아이디어

더 비비드 2024. 7. 3. 16:11
패션 중고거래 플랫폼 스타트업 창업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크레이빙콜렉터 이은비 대표. /더비비드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제작되는 옷은 약 1000억벌이다. 그러느라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전체 세계 배출량의 10%에 이른다. 뒤집어 말하면 새 옷 대신 서로 입던 옷을 교환하는 행위는 환경에 큰 도움이 된다.

패션 중고거래 플랫폼 ‘콜렉티브’를 개발한 스타트업 ‘크레이빙콜렉터’의 이은비 대표(28)를 만나 패션 중고거래 시장 이야기를 들었다.

◇좋아하는 분야에서 발견한 허점

패션 전문 중고거래 앱 '콜렉티브'. /크레이빙콜렉터

크레이빙콜렉터는 패션 중고거래 플랫폼 콜렉티브의 운영사다. 콜렉티브는 의류나 가방, 액세서리 등 중고 패션잡화를 사고팔 수 있는 앱이다. 중고거래 플랫폼일 뿐 여느 쇼핑 앱과 크게 다르지 않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처럼 특정 판매자를 팔로우해서 그의 상품을 모아 볼 수 있고 이용자 취향에 맞는 상품도 추천해준다.

미국에서 패션 브랜드 인턴생활을 했던 이 대표. /이은비 대표 제공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뒀다. 어렸을 때부터 옷이 좋았다. 관심사를 살려 연세대 의류환경학과에 진학했다. “2018년 대학 졸업 후 내 브랜드를 론칭하겠다는 꿈을 품고 미국 뉴욕으로 떠났어요. 브랜드 론칭 전 사회 경험을 쌓기 위해 유명 패션 브랜드 ‘톰브라운’에서 인턴십을 했죠. 1년 동안 의류 샘플 관리, 상품 기획, 판매 계획 구상 등의 업무를 하며 명품 브랜드의 전반적인 운영 과정을 배웠습니다.”

한국과는 다른 뉴욕만의 패션 소비 방식에 흥미를 느꼈다. “새 옷을 선호하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중고의류(빈티지) 시장이 활성화됐어요. 새 상품보다 저렴한데다 나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긍정적인 인식이 강했죠. 중고의류 매장의 옷들은 새 옷처럼 깔끔하게 진열돼 있고,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제품을 구매했어요. 중고의류 거래 앱도 많이들 이용하더군요. 중고의류 시장이 온⋅오프라인으로 잘 발달해 있었습니다.”

위탁 제품으로 들어온 중고 의류를 직접 검수하는 이은비 대표. /더비비드

2019년 말 귀국하고 보니, 한국에서 낭비되는 중고 의류들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저만 봐도 몇 번 입지도 않은 옷을 자주 버렸어요. 아버지 회사 일을 도우면서는 더 심각한 상황을 알게 됐어요. 국내 패션 브랜드 대부분이 잉여 생산을 너무 많이 하더라고요. 없어서 못 팔 일은 없도록 예상 수요보다 많은 재고를 준비하는 거죠. 결국 트렌드가 업계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경우가 다반사고, 해마다 기후도 달라서 한 시즌이 지나고 나면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이게 돼요”

패션 중고거래를 활성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패션을 사랑하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브랜드를 만들면, 또 다른 낭비를 만드는 것이란 죄책감이 들 정도였죠. 고민 끝에 ‘중고 패션 의류, 잡화 거래 앱’을 만들기로 결심했어요. 마침 지역 기반의 중고거래 플랫폼 이용이 활발해지고 있었어요. 한시라도 빨리 서비스를 출시하기로 했습니다.”

◇시행착오 연속이었던 창업 초기

제9회 정주영창업경진대회에서 본상을 수상한 크레이빙콜렉터. /이은비 대표 제공

2020년 5월, 그의 아이디어에 관심을 보인 친구 2명과 크레이빙콜렉터 법인을 설립했다. 사업 초기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창업경진대회를 활용했다.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서비스 목업(Mock-up. 모형) 버전으로 제9회 정주영창업경진대회에 참가해 본상을 받았습니다. 자본이 필요해 도전한 대회였는데, 사무실을 지원받게 됐죠. 덕분에 프로그램 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야심 차게 출발했건만, 초반은 헛다리를 짚었다. “사업 초기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비즈니스를 구상했어요. 유명 온⋅오프라인 빈티지 샵을 한 데 모은 방식이죠. 그렇게 개발을 진행하다 보니 개인 소비자의 중고 거래까지 유도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옷장에서 노는 옷을 편하게 사고팔 수 있는 플랫폼을 꿈꾼 건데, 그냥 중고 의류 판매자를 한 데 모은 오픈 마켓이 돼 버렸어요.”

사업 구조를 완전히 바꿨다. “C2C(개인 간 거래) 플랫폼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개인이 직접 제품을 올려 판매하는 방식이죠. 기업이나 업체를 모으는 것보다 개인 소비자를 유치하는 게 더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선 이 방향이 맞다고 판단했어요. 개인이 자신의 중고 상품을 사고파는 데 거리낌이 없어야 하니까요. 그래야 양질의 제품이 콜렉티브 앱 안에서 유통되는 선순환을 창출할 수 있겠죠.”

◇중고가 아닌 패션에 방점을 찍은 중고 패션 플랫폼

크레이빙콜렉터의 직원들과 이은비 대표. /이은비 대표 제공

2021년 3월, 콜렉티브 모바일 앱의 베타 버전을 공개했다. 예상대로 ‘중고 의류’에 대한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벽이 높았다. “처음에는 판매자 1000명만 모아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SNS 광고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 3개월 만에 목표치를 달성했습니다.”

더 어려운 건 유입된 소비자를 붙잡는 것이었다. “ 호기심에 한 번 들어오게 하는 것과 꾸준히 이용하게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더군요. 이때부터는 소비자 이탈을 막는 데 주력했어요. 우선 거래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에스크로(물건이 구매자의 손에 들어올 때까지 판매대금을 업체가 보관하는 거래 방식)’ 기능을 도입했어요.”

크레이빙콜렉터 본사에서 만난 이은비 대표. /더비비드

중고 거래도 세련되게 할 수 있단 걸 보여주기 위해 ‘중고’가 아닌 ‘패션’에 방점을 찍었다. “사용자를 ‘콜렉터’라고 지칭하고 각 콜렉터가 판매하는 옷을 모아서 볼 수 있게 했어요.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보는 것처럼요. 콜렉터를 구독해 그가 등록한 제품을 둘러볼 수 있고, 룩북도 구경할 수 있어요. 메시지 기능으로 대화도 나눌 수 있죠. 백화점 앱이나 대형 패션 플랫폼처럼 신상품이나 인기 상품을 상단에 노출하는 ‘큐레이션’ 기능도 도입했어요. 제품을 살 때뿐만 아니라 패션과 관련된 영감을 얻거나 취향에 맞는 제품을 찾을 때도 커뮤니티처럼 콜렉티브를 사용할 수 있게끔 신경 썼죠.”

중고 거래 시장만의 특성을 서비스에 반영했다. “베타 기간 동안의 이용자 행태를 분석해보니 특정한 소비 현상이 포착됐어요. 제품이 신상품보다 저렴할 때, 혹은 한정판일 때 구매가 활발히 이뤄지더라고요. 이런 거래 방식에 주안점을 두고 추천 알고리즘을 고도화했어요. 이용자가 선호하는 브랜드나 카테고리 중 신상품보다 싸거나 희소성이 있는 제품을 추천해주는 식이죠.”

◇55억원 규모 투자 유치, 해외 진출 계획

콜렉티브 앱 실행화면. /콜렉티브

2021년 7월, 콜렉티브 앱의 정식 버전을 출시했다. 옷, 가방, 신발 등 다양한 중고 패션 아이템을 개인이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모바일 앱으로, 현재 2만개가 넘는 제품이 콜렉티브에 등록돼 있다. 별도의 거래 수수료는 없다.

출시 후 15세에서 35세 사이의 MZ세대 여성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출시 4개월 만에 월 거래액 1억원을 돌파했다. 지난 4월까지 콜렉티브 앱을 통한 누적 거래액은 16억원에 달한다. 성과와 더불어 투자 제안도 들어왔다. 얼마 전 네이버 리셀 플랫폼 '크림'으로부터 55억원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유저와 거래액의 빠른 성장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크레이빙콜렉터 본사에서 만난 이은비 대표. /더비비드

빠르게 몸집을 키우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올 연말까지 누적 거래액 80억, 사용자 40만명을 목표로 두고 있어요. 회원 수를 늘려 광고나 기업 협업 등으로 수익모델을 만들고자 합니다. 해외 진출도 모색하고 있어요. 가장 먼저 바라보고 있는 국가는 일본입니다. 일본은 빈티지 제품에 대한 수요는 높지만, 아직 온라인 거래가 활발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성 있는 시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관심 있는 산업 분야를 파고들다 보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보인다고 강조했다. “모든 산업에는 고질적인 문제들이 있어요. 어딜 가나 관습적으로 운영하던 방식이 꼭 있죠. 스쳐 지나가기 쉽지만 진짜 문제는 이 ‘익숙한 것’에 있다고 생각해요. 창업 아이템을 찾는 게 어려울 때는 내가 관심가지는 영역을 면밀히 관찰하세요. 제가 버려지는 옷들을 보고 패션 중고거래를 떠올린 것처럼요.”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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