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하드웨어 통합 전기차 충전 솔루션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판사, 변호사, 의사. 많은 사람에게 ‘사짜’ 간판은 평생의 꿈이다. 체인라이트닝컴퍼니 장성수(38) 대표는 변호사 출신이다. 하지만 평생의 꿈은 스타트업 창업이었다. 로펌 대신 미래가 불투명하고 가시밭길의 연속인 창업길을 택했다. 전기차 충전 플랫폼과 충전 기기를 개발 중이다. 장 대표를 만나 법정 대신 주차장을 활동 무대로 선택한 이유를 들었다.
◇스타트업을 사랑한 변호사
체인라이트닝컴퍼니는 전기차 충전 솔루션 ‘충전했오’를 개발하고 있다. 충전했오를 이루는 두 축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다.
직접 개발한 콘센트형 충전기 ‘그리드 콘센트’는 전용 충전 공간 없이 주차장에 설치할 수 있고, 원가는 타사 제품의 1/6 수준으로 저렴하다. 블루투스로 전력 부하를 관리하기 때문에 전력 과소비에 따른 셧다운도 막을 수 있다.
하드웨어는 앱과 연동된다. 이용자는 앱을 통해 QR코드로 손쉽게 충전 상태를 조작할 수 있다. 앱 예약을 통해 '충전했오' 뿐 아니라 전국에 분포된 서로 다른 충전사업자의 충전기를 이용하고 결제까지도 할 수 있다. 추후 충전 이용 내역은 한눈에 확인 가능하다.
뉴욕주립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철학을 부전공 했다. “조직 관리에 매력을 느껴서 경영학을 택했습니다. 학문에 대한 욕심이 있었어요. 학부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 과정까지 할지 실무 경험을 쌓을 지 고민에 빠졌죠. 2012년 숨 돌릴 겸 귀국했다가 삼일 PwC에 인턴으로 취업했습니다. 최초의 직장생활이었죠. IT 전략 수립 관련 일에 참여했는데요. 쉽진 않지만 재미있었습니다. 인턴으로 들어왔다가 그곳에서 2년 가까이 일했습니다.”
2016년 성균관대 로스쿨에 진학했다. “법조인이 돼야겠다는 목표보다는 특정 분야에서 전문지식을 갖춰야겠다는 목적이 더 컸어요. 법은 학술적이면서도 현실과 밀접하게 관련된 학문이라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몸 담은 경영, 컨설팅 영역과 무관하지도 않고요. 열심히 공부해서 2019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죠.”
변호사 타이틀을 취득한 후 첫 행선지는 로펌이 아니라 법률 스타트업이었다. “법률상담 플랫폼 ‘로톡’으로 유명한 로앤컴퍼니의 대표님과 아는 사이입니다. 로스쿨 졸업 후 대표님과 생일 축하 메시지를 주고받은 걸 계기로 합류하게 됐어요. 신사업개발 팀장과 법무팀장 두 직책을 거쳤는데요. 처음에는 B2B 플랫폼 전략 수립 등 서비스 구축과 관련한 일을 하다가 회사가 법적 논란에 휘말리면서 법무팀장 일을 도맡게 됐어요.”
◇자동차 에너지 전환이 그에게 절호의 기회로 보였던 이유
2년 반쯤 지나자 슬슬 ‘내 일’을 할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컨설팅 회사에 다닐 때부터 스타트업 창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어요. 로앤컴퍼니 대표님이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고 ‘안쓰럽다’ 대신 ‘멋있다’는 생각이 들 때 확신이 들었죠.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위해 단계별로 어떤 과정을 밟아야 하는지 알게 돼서 자신감도 있었어요. 2021년 8월, 체인라이트닝컴퍼니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전기차 충전 시장이다. “전기차 시대의 도래는 단순히 자동차 동력의 교체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휴대폰 시장이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전환된 것처럼, 자동차가 ‘이동 수단’에서 ‘바퀴가 달린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것을 시사하죠. 이제 자동차 업계는 기존의 기기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테슬라가 그 출발점이고요. 엄청난 변화를 보면서 이 분야로 창업을 하지 않으면 후회들 것 같았어요. 모빌리티 영역에서 창업하겠다 결심했죠.”
전기차의 전기차 사용 패턴을 분석했다. 충전에 어려움을 겪는 걸 발견했다. “우선 충전기의 절대 숫자가 부족합니다. 국내에 등록된 전기차 대수가 30만대인데, 충전기 총량은 10만대 안팎에 불과하죠. 더 심각한 건 충전기 설치 현황이 이용자의 이용 패턴에 전혀 부합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전기차 차주의 60%가 거주지에서 전기차를 충전합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51%는 아파트에 거주하죠. 하지만 주차장에 충전기가 설치된 아파트는 전체의 30%에 불과합니다. 소수의 충전 가능한 주차면수를 여러 명의 이용자가 짧은 시간 돌아가면서 이용해야 하는 구조죠. 그 과정에서 입주민 간 마찰과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요.”
업체들이 전기차 충전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는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전기차 충전 비즈니스는 사업자가 입찰을 통해 아파트에 설치 계약을 맺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계약 체결 후 사업자는 충전기를 설치해서 충전비로 수익을 창출하죠. 문제는 충전기가 비싸다는 사실입니다. 아주 대량으로 공급받아야 대당 20만원대로 구매할 수 있고 보통 40만원 가까이합니다. 이건 완속 충전기 기준이고요, 급속 충전기는 대당 2000만원에 육박해요. 이처럼 인프라 비용이 비싼 편인데 운영, 관리비를 내고 나면 마진이 너무 적어요. 충전 인프라 설치에 지급되는 정부 보조금을 받으면 부담이 줄지만, 수령 요건을 충족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이용자의 최대 골칫덩이인 ‘전기차 충전’에 초점 맞춰 솔루션 개발
처음에는 이용자들의 불편함에 초점을 맞춰 사업 구조를 설계했다. “현재 46곳 이상의 충전 사업자가 존재하는데요. 각각의 이용 방식과 결제방식이 달라 이용자에게 혼란을 줍니다. 사업자 별로 시스템이 통합돼 있지 않아 충전카드를 여러 개 소지하고 다녀야 하죠. 처음엔 결제방식을 통합하는 플랫폼을 구상했어요. 플랫폼 구축 준비에 들어갔는데 문득 ‘결제방식을 통합한다고 이용자들의 충전 경험이 개선될까’ 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충전 사업자의 고충, 주차면수를 둘러싼 입주민 간의 갈등 등 전기차 충전기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사업이 지속가능 할 것이라고 판단했죠.”
충전기 개발과 플랫폼을 연계하는 식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충전기 단가를 5만원 대로 대폭 낮추는 게 관건이었어요. 보조금에 의존하지 않으려면 원가가 낮아야 했거든요. 충전기의 양적 확대에도 도움이 되고요. 설치와 회수가 쉬운 ‘콘센트형’ 완속 충전기를 구상했어요. 전기차 전용 충전 공간을 따로 설정할 필요 없이 충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요. 기능으로만 따지면 급속 충전기를 따라갈 수는 없지만, 완속 충전기가 이용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더 걸맞아요. 퇴근할 때 충전시켜 놓고 집에 올라가면 되거든요. 그래서 급속 충전기를 양적으로 늘려달라는 요구가 꾸준히 제기돼 왔어요.”
하드웨어를 개발하면서 부지런히 잠재 소비자를 만나고 다녔다. 한 달에 많게는 70개 넘는 단지의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방문했다. “충전소 설치를 결정하는 주체가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입주자 대표회의다 보니 이들을 부지런히 만나고 다녔어요. 올 초에는 전기차 등록대수가 높은 서초구, 강남구, 영등포구(여의도), 송파구의 아파트 위주로 영업 활동을 했습니다. 요즘은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경기도권의 3000세대 미만 아파트 단지를 공략하고 있어요.”
◇국산 전기차 충전 인프라, 유럽에 수출할게요
업력도 짧고, 솔루션을 시판하지 않았는데도 많은 성과를 냈다. “예비창업패키지(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최우수 기업에 선정되면서 초창기부터 사업성과 기술력을 인정받았어요. 지난 7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디데이)에서 본선 진출한데 이어 서울대기술지주, 신용보증기금, 환경부의 스타트업 육성사업에 연이어 선정됐습니다. 저희가 특별히 뛰어난 것이라기보단 ESG 트렌드에 맞춰 시의적절하게 창업에 뛰어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누구보다 이 시장의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많이 고민하고 반영했다고 자신합니다. 저희의 차별점은 바로 그 지점에 있어요.”
내년 1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연계한 충전 솔루션 ‘충전했오’를 출시할 계획이다. “저희가 설치한 충전 솔루션으로 충전 서비스를 제공해서, 충전 요금으로 수익을 낼 구상입니다. 사업자를 대상으로 하드웨어와 앱 판매도 할 생각이에요. 해외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어요. 지금 개발 중인 하드웨어는 블루투스로 앱과 연동하기 때문에 서버 의존도가 낮아요. 와이파이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도 구동할 수 있어서 오래된 건물이 많은 유럽 시장에 진출하고자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생산과 공급을 모두 관할하는 종합 모빌리티 에너지 기업을 꿈꾼다. “테슬라 전기차에 공급할 전력을 생산하는 가정용 태양광 패널이 개발 중이라고 합니다. 태양광 발전도 전기차 산업의 중요 축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본 것이죠. 저 역시 그의 구상에 동의합니다. 태양광 패널 업체와 협업해서 아파트 옥상에 패널을 설치하고, 그곳에서 발생한 에너지 전기차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녹색 순환고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종국적으로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물론 그전에 거쳐야 할 역경이 많겠지만, 이런 불확실성조차 스타트업의 매력이 아닐까요.”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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