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크 기반 지식 큐레이션 플랫폼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놓치는 정보가 많다. ‘나중에 봐야지’ 저장했다가 잊어버린 웹페이지 주소로 섬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피큐레잇의 송석규(40) 대표는 애써 찾은 정보가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도록, 발굴한 정보를 저장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연쇄 창업가 송 대표의 4번째 창업이다. 송 대표를 만났다.
◇남들이 뜯어말릴 때 창업해 구글과 파트너십 체결
피큐레잇은 지식 큐레이션 플랫폼이다. 일반적인 메모, 북마크 서비스와 다르게 체계적인 저장 구조를 가지고 있다. 특정 주제를 설정한 후 관심 정보를 포함한 웹페이지의 링크를 추가하면 링크 꾸러미가 생성된다.
링크 꾸러미는 이용자의 지식 큐레이션 콘텐츠가 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처럼 이용자들끼리 링크 꾸러미를 공유할 수 있고 특정 이용자의 계정을 구독할 수도 있다.
1차 벤처붐 이후 ‘벤처 창업은 돈을 쉽게 벌려는 이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만연했다. 그때 창업에 뛰어들었다. “경희대에서 언론정보학을 전공하고 경영학을 복수전공했습니다. 대학생이었던 2004년 선배와 첫 창업을 했습니다. 한국 최초로 툴바(자주 사용하는 기능을 막대 모양의 아이콘에 나란히 모아둔 메뉴) 비즈니스를 했는데요. 사업은 그럭저럭 잘 됐지만 지속가능한 수익모델을 발굴하지 못해 2007년 관뒀습니다.”
이후 IT 분야에서 굵직한 경력을 쌓았다. “첫 창업 후 검색 엔진 분야에서 1위였던 IT 기업으로부터 입사 제안을 받았습니다. 26살에 대리로 취업했죠. 1년도 되기 전에 청년 스타트업 모임에서 만난 지인이 함께 창업하자고 하더라고요. 고민 끝에 마케팅 이사로 합류했습니다. 도메인을 팔거나 뉴스 입력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인터넷 비즈니스 기업이었죠. 구글과 파트너십을 맺을 정도로 탄탄하게 성장했습니다.”
회사 인수합병 등의 변수로 홀로서기를 해야 했다. 2010년 3월, 디지털 광고대행사를 창업했다. “인터넷 검색 광고 영역에서 전문성을 쌓은 덕에 야후의 자회사 오버추어와 파트너십을 체결할 수 있었어요. 창업 2년 차에 40억원 수준의 매출을 달성했죠. 회사는 잘 됐는데 이상하게 공허했어요. 검색 광고는 광고 노출로 수익을 창출하는데, 광고가 많이 노출될수록 사람들이 피로도도 높아지거든요. 세상을 이롭게 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제 가치관과 충돌하는 비즈니스였죠. 그때 오버추어의 모기업인 야후가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습니다. 주요 매출처가 사라진 거죠. 2013년 투자자들과 자산을 나눠 가지고 흑자 폐업했습니다.”
◇조산한 쌍둥이 자녀 데리고 유학 중 발견한 것
2015년, 창업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로 꼽히는 미국 보스턴의 뱁슨(Babson) 칼리지의 MBA에 진학했다. “이번엔 가치 있는 아이템으로 창업하고 싶었어요. 국내 대기업에게 지거나 흡수되지 않기 위해 해외를 무대로 삼기로 했죠. 전세계 아이디어의 정점에 있는 집단에 가야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기업가정신 분야의 톱 MBA를 선택했어요. 아내와 580g으로 조산한 쌍둥이 자녀, 그리고 현지 창업이라는 야무진 꿈까지 데리고 떠났죠.”
해외 생활은 매 순간이 고난이었다. 특히, 정보를 찾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필요로 하는 정보가 대체로 복잡했어요. ‘미숙아 건강 관리’, ‘창업 비자 얻는 법’, ‘현지에서 외국인 고용하는 법’ 같은 내용이었죠. 같은 학년에 한국인은 저뿐이라 수업 내용과 MBA 과정에 대한 정보 습득 과정도 만만치 않았어요. 하나하나 고통스럽게 발굴했죠. 힘들게 찾은 걸 다음 학기에 입학한 한국인 후배에게 공유하려 했더니 모두 휘발됐더군요. 처음부터 다시 찾아야 했습니다. 답답하고 화가 났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정보 습득 과정을 관찰했다. “마음에 드는 웹페이지를 찾았을 때 메모장, 메신저 대화창, 즐겨찾기 기능 등에 저장해요. 그러다 어디 저장했는지 까먹어서 다시 검색하는 일이 다반사였죠. 원하는 정보에 도달하기까지 숱한 노이즈(noise. 소음, 방해물)를 거치며 아까운 시간을 낭비해야 했고요. 정보를 찾고, 찾은 정보를 지식화하고 이를 공유하는 과정이 분절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순간 기회한 생각이 들었어요. 보편적인 문제인데 이를 겨냥한 서비스가 없었거든요. 큰 기회로 보였죠.”
◇3번의 팀 해체 후 외주 개발자 잠적
동영상, 블로그, 홈페이지 등 누군가 선별한 정보를 모아서 논리적으로 정리해 주는 플랫폼을 만들기로 했다. 2017년 미국에 피큐레잇 법인을 설립하고 서비스 개발에 나섰다. “논리적 링크의 집합을 생성하고, 이를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기술로 특허 등록 작업부터 들어갔습니다. 미국에서는 약식 사전 특허를 신청할 수 있거든요.”
이후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참고할 유사 서비스가 없었던 탓일까요. 개발 과정을 요약하자면 ‘실패 모음집’이었습니다. 팀 빌딩 과정에서 팀이 3번이나 깨졌어요. 결국 외주 개발로 방향을 틀었는데 개발사가 폐업하거나 소개받은 개발자가 잠적하는 등의 사건을 겪었어요. 이후 우크라이나 개발팀, 베트남 개발팀을 거쳐 현재 피큐레잇 내부 개발 팀원 5명이 개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술 기반이 없는 CEO가 겪을 수 있는 실패란 실패는 다 겪어본 셈이죠.”
한 번 실패할 때마다 시간과 자금이 훅훅 빠져나갔다.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보스턴 지역의 잠재 투자자들을 30분 단위로 만났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결국 자금이 고갈돼 2019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결정을 했을 때 남은 게 빚밖에 없었어요. 비행기 표 살 돈도 없어서 부모님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죠. 어머니에게 ‘나이 마흔에 세상에서 제일 나쁜 자식이 부모에게 돈 빌리는 자식이다’는 아픈 말까지 들어가면서요. 정말 서러웠습니다.”
◇귀국 후 재출발, 베타 서비스 출시
2019년 한국 법인을 설립했다. 국내 알고리즘 최고 전문가와 UX•UI(사용자 경험•사용자 인터페이스) 전문가를 영입해 재정비에 나섰다.
2021년 9월 피큐레잇 베타서비스를 출시했다. “기존의 북마크 툴과는 달리 웹페이지에 도달하게 된 검색 경로, 저장하고 싶은 지점 등을 AI가 인식하고 능동적으로 저장해 줍니다. AI가 제목과 카테고리도 알아서 만들어줘요. 물론 이용자가 설정할 수도 있어요. 링크를 저장할 때 메모를 남기면 정보를 쉽게 관리할 수 있습니다. ‘광화문 맛집’을 제목으로 선정해서 가고 싶은 식당을 포스팅한 블로그나 관련 홈페이지의 링크를 저장했다고 가정합시다. 개별 링크에 ‘비건’, ‘수제 피자 맛집’ 등의 메모를 추가할 수 있는 거죠. 링크에 위계와 맥락만 더해도 지식 콘텐츠가 됩니다.”
소셜미디어의 속성을 더했다. 지금까지 5000여명의 사용자가 50만개의 선별된 링크를 창출했다. “다른 사람이 어떤 정보를 찾았는지 쉽게 엿볼 수 있습니다. 내가 관심 가질 만한 링크 꾸러미를 추천도 해줘요. 내가 모은 링크 꾸러미를 토대로 내 취향을 유추할 수 있거든요. 만약 내가 찾은 광화문 맛집의 대부분 칼로리가 낮고, 매운 음식을 제공하는 곳이라면 ‘저칼로리’, ‘매운맛’을 토대로 링크 꾸러미를 추천해 주는 식이죠. 이렇게 정보 찾는 시간은 줄이고, 습득한 정보의 질은 올릴 수 있습니다.”
◇창업가에게 ‘청개구리 정신’이 필요한 이유
많은 기관으로부터 아이디어의 참신함을 인정받았다. 백슨 출신들이 경연하는 창업 경진대회에서 준결승에 진출했고, 다수의 액셀러레이터와 서울대 기술지주, 스마트스터디벤처스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 3월에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디데이) 본선에 진출했다. “큰 실패를 딛고도 여기까지 온 건 비효율적인 정보 습득 과정을 개선하겠다는 집념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용자로부터 ‘내가 평생 기다려온 최고의 서비스’라는 말을 들었을 땐 걸어온 길이 헛되진 않았단 생각이 들어 가슴이 벅찼습니다.”
내년 초 정식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이다. 당초에 목표했던 해외 진출도 할 구상이다. “이용자의 정보 습득 패턴을 분석해서, 의미 있게 머물렀던 사이트를 알아서 모아주고 카테고리 분류까지 해주는 기능을 준비 중입니다. 링크 꾸러미로 수익활동을 펼칠 수 있는 마켓 플레이스 기능도 개발 중이에요. 하반기에 실리콘밸리 출장이 예정돼 있는데요. 출장을 기점으로 올해 말 영어 앱 서비스를 론칭할 계획입니다. 누군가의 리서치(research. 조사)의 끝이 다른 이의 리서치의 시작이 되는 서비스를 만들겠습니다.”
주류 의견에 따르면 실패 확률을 낮출 순 있지만, 그것이 꼭 혁신을 담보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세상을 바꾸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은 발현 시점에 주변의 공감을 못 받았어요. 구글의 검색 엔진이 처음 나왔을 땐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 않았죠. 반대로 공감을 많이 받는 아이디어는 실패 확률은 적지만, 세상을 뒤집을 만큼 혁신할 확률도 적어요. 다들 미쳤다고 하지만 제게 세상을 혁신할 인사이트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저 사람들의 선택을 받는 서비스가 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사람들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모르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계속 던져주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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