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현장에서 영감 얻는 이찬주 작가
코로나 사태로 실물 경제가 큰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 어느 해보다 힘든 고용상황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어려움 속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취업난을 극복하고 있는 청년들을 통해 희망을 전하는 ‘2030 취업 분투기’를 연재합니다.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에 있는 2층짜리 컨테이너 건물에 음악이 쩌렁쩌렁 울린다. 안쪽으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본드 냄새와 페인트 냄새가 조금씩 짙어졌다. ‘작업할 때 오디오가 비면 안 된다’는 이찬주 설치예술 작가(35)의 작업실이다. 이 작가는 인기척을 느끼곤 곧장 스피커를 끄고 인사를 건넸다.
천장엔 열기구가 색색이 매달려 있고 바닥엔 공사장에서 볼 법한 흙더미·타워크레인 모형이 놓여있었다. 열기구와 공사 현장은 이 작가가 영감을 얻는 주요 소재다. 이 작가가 직접 겪은 이야기가 양념처럼 더해진 작품들은 개인전·아트페어·SNS 등을 통해 대중들과 만난다. 이 작가를 만나 미술가의 세계에 대해 들었다.
◇공사장 일용직 노동자와 조소 예술가
대여섯 살 무렵 처음 그린 그림을 액자에 끼워 고이 간직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 속을 썩이고 말 잘 안 듣는 개구쟁이였다. 가장 얌전해지는 순간은 그림을 그릴 때였다. 미술학원을 겸하는 유치원을 다니며 그림에 흥미를 붙였다.
덕원예술고등학교, 가천대학교 조소과에 이어 2014년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가천대에서 주 1회 3시간 강의 경력도 있다. 현재까지 설치예술품과 드로잉 등의 작품으로 단체전·프로젝트 40여 회, 개인전은 12회 열었다. 오는 11월 서울 마포구에서 열리는 ‘청년미술축제 아트그라운드 2022′에서도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 미술로 진로를 정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춘기 시절에 ‘나는 어떤 사람일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같은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외고를 준비한다는 주변 친구들 대화를 들어보면 ‘하루에 영어 단어 몇 개 외웠는지’를 주제로 신나게 떠들더군요. 내가 신나게 떠들 수 있는 일은 뭘까 고민하다가 미술 학원에 등록하고 수채 정물화를 그리며 예고 입시를 준비하게 됐죠.”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서양화과에서 조소과로 전과를 했다. 예고 입시를 준비하는 내내 라면 봉지, 음료수병을 수십수백번 그려 사물을 안 보고도 그릴 수 있는 정도였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없어졌다.
- 그림을 그리다가 조소과로 방향을 조금 바꿨네요.
“그리면 그릴수록 다른 친구들에 비해 뒤처진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정물 수채화는 맑고 투명한 붓 터치가 관건인데 그게 참 힘들었어요. 반면에 바로 옆 조소과에선 매일 새로운 대상을 입체적인 작품으로 만들어낸다는 점이 흥미로워 보였습니다.”
- 미대·대학원까지 다녔으면 학비 부담이 만만찮았겠죠.
“군대 전역 이후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했습니다. 학비와 재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건설 현장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자주 다녔어요. 2010년 당시 최저시급이 4000원 정도였는데 공사장 하루 일당으로 10만원씩 받아 벌이가 쏠쏠했죠. 공사 현장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어요. 지금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니 그 경험의 가치는 값으로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합니다.”
- 건설 현장을 작품의 소재로 삼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건설 노동과 조소 작업은 비슷한 점이 많아요.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하고 위험한 공구를 다루죠. 하루는 공사장 아르바이트 작업복 차림으로 지하철을 탔더니 사람들이 흘깃흘깃 쳐다보고 피하더군요. 반발심이 들더라구요. 지금 돌이켜보면 자격지심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수 있겠다 싶은데요. 같은 노동인데도 다른 시선을 받는다는 생각에 역으로 건설·구조물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겠다고 결심했습니다.”
- 첫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요.
“제목은 ‘500/30′입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이라는 뜻이에요. 경기 성남의 어느 부동산에서 작업실을 알아볼 때 형편에 맞는 집을 찾는 게 참 힘들었습니다. 한 건물 옥상에 지어지고 있는 옥탑방을 가리키며 ‘저건 얼마냐’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 ‘500에 30′이었어요. 결국 그 집에도 못 들어갔죠. ‘500만원이 없어서 내 공간을 가질 수 없구나’라고 생각했던 때를 추억하면서 만든 작품입니다.”
◇작품에 이야기를 담는 법
작업할 때 오디오를 채워 주는 플레이리스트는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다큐멘터리·뉴스까지 아우른다. 책상 왼편에는 태블릿 고정석이 마련돼있다. 자주 들리는 키워드를 산업 현장이나 공사 현장의 풍경에 대입해 본다. 비슷한 점을 찾아 그리거나 조형물로 만든다. 가령 타워크레인에 ‘아버지’라는 의미를 담는 식이다.
- 어떻게 영감을 받고 작품에 녹여내나요.
“다양한 매체나 콘텐츠를 보며 영감을 받는데요. 아무래도 실제로 겪은 일이나 고민했던 이야기가 더 와닿고 기억에 남죠. 예를 들어 ‘내가 본 달’이란 작품에서는 어떤 인물이나 대상의 이면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달의 한 면만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뒷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죠. 밝아 보이는 사람도 뒤돌아서면 울적해질 때가 있는 것처럼요.”
- 예술을 업으로 한다고 하면 으레 ‘돈을 잘 벌기는 어렵겠거니’ 짐작하곤 하죠.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청년 작가로서 가장 힘든 점을 꼽으라면 단연 ‘경제적 어려움’이 제일 먼저 튀어나올 거예요. 최근까지도 무대미술 설치 제작 일자리가 있으면 단기로 일하고 일당을 받아오곤 했어요. 올봄 경기 파주의 한 호텔에서 목수 보조로 일을 한 적도 있죠. 그런데요. 몇 주 전에 똑같은 장소에 아트페어 초청 작가로 초대받았습니다. 아무도 신경 안 썼겠지만 혼자 내심 가슴이 벅차올랐죠.”
- 작품을 판매할 때 가격은 어떻게 책정하나요.
“아트페어 같은 자리에 출품하기 전에 각 작품마다 가격을 매기는데요. 가령 하루 일당을 5만원으로 잡는다고 하면 거기에 작업 일수를 곱합니다. 재료비와 작업실 월세 같은 비용을 일할로 계산한 다음 더해서 작품을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을 구하죠. 마지막이 가장 어려운 단계예요. 제 주관적인 가치만큼 추가로 더한 다음 값을 결정합니다. 10만원에 드로잉 작품을 판매한 적도 있고, 열기구 조형물을 450만원에 판매한 적도 있습니다.”
- 작품을 알리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하나요.
“개인 SNS에 꾸준히 작품 사진이나 작업 과정을 기록한 사진을 올리는 건 기본이에요. 모든 청년 작가들은 오프라인으로 작품을 선보이는 기회가 간절합니다. 주변 작가들과 ‘이구예나(이 구역의 예술가는 나야)’란 모임을 결성해 프로젝트성으로 전시를 하기도 했죠. 이번에 참가하는 ‘아트그라운드 2022′를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축제를 대하는 남다른 마음가짐
‘청년미술축제 아트그라운드 2022′ 참가 준비에 한창이다. 부피가 큰 조형물은 하나씩 상자에 담고, 출품할 드로잉 작품을 선별했다. 아트그라운드 2022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서봉갤러리빌딩에서 2부에 걸쳐 열리는 청년 작가 아트페어다. 이찬주 작가를 비롯해 진영, 이내, 다니엘 신, 슈니따, 이민재, 박한지, 김송리, 권혜현 한아름 등 국내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는 청년 작가 45명이 참여한다. 이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하고 구매도 할 수 있다.
- 이번 행사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아트그라운드를 주최하는 사단법인 청년미술협회의 방향성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청년 작가들의 자립과 작품활동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미술계에 건강한 움직임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죠. 개인적으로는 중학교 때 함께 입시 미술을 공부했던 동창과 작가 대 작가로 재회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릅니다. 1부에 참여하는 임소진 작가인데요. 전 2부에 참여하지만 1부에도 꼭 가보려고 합니다.”
- 아트페어에서 구매자와 직접 만난 적이 있나요.
“대개 만나지 못하고 지나치는데요. 3년 전에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드로잉 작품이었는데 ‘이걸 누가 샀을까?’ 너무 궁금해서 아트페어 현장에서 물어물어 찾아갔죠. 40대 중반의 남성분이셨고 다른 아트페어에서 제 작품을 본 뒤로 제 이름을 기억해두었다가 다시 찾아오셨다더군요.”
- 앞으로 계획은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동종업계에선 비관적이고 회의적인 의견이 대부분이지만 전 오히려 긍정적으로 봅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창작자가 단순 반복 작업을 AI에 맡기면 더 많은 작품을 만들 수 있죠. 작년부터 AI를 공부해 작업에 적용해보고 있는데 지금까지 수천 개의 드로잉을 만들어냈습니다. 혹시 모르죠. 피카소보다 더 많은 드로잉을 남기는 작가가 될지도요.”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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