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타깃 K-브랜드 해외 유통 컨설팅 스타트업 ‘시그니처레이블’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해외에서 인기인 한국 제품에 붙는 ‘K’ 수식어는 이제 반짝 유행이 아닌 ‘품질보증 표식’으로 통한다. 품질이 좋아지는 만큼 유통 방식도 전문적으로 변했다. 마구잡이로 제품을 선정해 ‘K’를 붙여 수출하지 않는다. 철저한 현지 시장 조사와 전략을 바탕으로 진출한다.
김윤진(39), 이정민(40) 공동 대표가 창업한 시그니처레이블은 화장품 수출 전문 컨설팅 업체다. 화장품 수출을 하기 전 현지 시장을 조사해 시장 진입 전략을 짠다. 온·오프라인 유통부터 물류 관리, 배송, 마케팅까지 도맡는다. 해외 유통을 하고 싶지만 사내에 전문 인력을 꾸리는 건 부담스러운 국내 중소 화장품 브랜드가 잠재 소비자다. 이 대표와 김 대표를 만나 국산 화장품의 해외 진출 전략에 대해 들었다.
◇공동 창업으로 시너지 내는 법
서로 모르던 두 사람이 함께 창업했다. 살아온 배경과 전공까지 달라 공통점을 찾기 힘든 두 사람이 창업까지 하게된 과정을 들었다.
-각자 창업 전 이력이 궁금하다.
(김윤진 대표, 이하 김) “고려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지난해까지 창업 육성 기관에서 근무했습니다. 2011년 소셜 앱 개발 스타트업에서 초기 멤버로 근무했던 것을 시작으로 줄곧 스타트업 업계에 있었어요. 주로 홍보나 운영 지원 업무를 맡았습니다. 스타트업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운영팀에서 근무했죠. 여러 스타트업 관계자와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다 보니 창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정민 대표, 이하 이) “어릴 때부터 여행을 좋아했습니다. 스위스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고, 2011년 한국에 돌아왔죠. 구글 결제·정산 담당 부서에서 1년 동안 근무한 뒤 티몬, 트립닷컴에서 여행상품 MD로 활동했어요.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국내 숙소를 판매하는 업무였죠. 중국 소비자 특성과 중국의 전자상거래 유통구조를 터득했어요. 2017년 비투링크라는 화장품 해외 유통 기업으로 이직해 뷰티업계에 입문했습니다. 중국과 베트남 수출에 적합한 국내 화장품 브랜드를 발굴하는 업무를 했죠.”
-창업 아이템을 발견한 계기가 궁금하다.
(김) “2022년 4월, 퇴사 후 휴식을 위해 2개월 동안 싱가포르에서 지냈습니다. 이곳에서도 한류의 위력이 대단했는데요. 의외라고 느낀 건 국내에선 인지도가 낮은 한국 화장품 브랜드가 싱가포르에서 인기였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잘 팔려야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걸 보니 관심이 생겼어요. 한국무역협회가 동남아시아의 K뷰티 시장 규모를 1조원, 글로벌 K뷰티 시장을 11조원 규모로 추산한 것에 비해 해외 유통 대행업체가 대부분 영세하고 기능이 흩어져 있었어요. 중소 브랜드를 대상으로 수출 시 유통, 물류, 배송, 마케팅을 한 번에 대행해주는 서비스가 있다면 사업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화장품 수출을 해봤다면 당연히 이해되는 현상이죠. 각 국가의 생활 방식, 기후에 따라 사랑받는 제품이 모두 달라요. 파운데이션이나 쿠션 제품을 예로 들어볼까요. 우리나라는 겨울철에 건조한 기후이고 자연스러운 화장법이 유행이라 촉촉한 제품들이 유행입니다. 반면 동남아시아는 1년 내내 덥고 습한 기후라 화장이 번지지 않는 건조한 제품을 선호하죠.”
싱가포르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김 대표는 동남아시아 화장품 유통 전문가를 수소문 했고, 이 대표를 만났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 사이에도 함께 하기 힘든 게 창업이라는데, 어떻게 공동 창업을 결심했나.
(김) “친구 사이보다 오히려 창업하기 더 쉬웠다고 생각해요. 서로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요. 퍼즐 맞추듯 서로의 장점은 극대화하고, 약점을 보완할 수 있죠. 전 초기 단계의 기업을 운영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어요. 이 대표는 ‘해외에 유통할만한 제품인지’ 판단하는 눈을 갖고 있었고요. 각자 거쳐온 경험을 모으면 분명 단시간에 성과를 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이) “폐쇄적인 유통 구조과 각종 규제, 오프라인 채널 확보 등 해외 진출을 희망하는 국내 브랜드 관계자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었어요. 제가 알고 있는 해외 유통 전략과 네트워크를 이용해 사업은 하고 싶었지만 기업 운영에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제가 잘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사업을 더 빠르게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두 사람은 2022년 11월부터 사업 준비를 했다. 김 대표가 전반적인 기업 운영과 자금 확보를 맡고, 이 대표는 현지 시장 조사와 해외 유통 실무를 담당하기로 했다.
-무형의 서비스인데, 사업 모델 수립 과정이 궁금하다.
(김) “우선 할 수 있는 업무를 3가지로 정리했습니다. 해외 유통 사업, 브랜드 육성 그리고 수출용 PB(Private Brand: 독자상표) 상품 개발입니다. 철저한 현지 시장 조사와 현지화 전략 수립이 밑바탕이 되면 할 수 있는 일이죠.
(이) “우선 판로 확보가 돼 있는 국가부터 도전했습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이요. 대부분 오프라인 매장에서 화장품이 유통되고 있어요. 인터넷 요금이 비싸고 온라인 구매창의 긴 상세 페이지를 읽을 정도의 인터넷 속도도 아니거든요. 수년 전부터 현지 담당자와 거래한 경험을 바탕으로 베트남의 ‘새미샵’, ‘뷰티가든’, 인도네시아의 ‘소시올라’, ‘뷰티하울’ 등 주요 오프라인 유통망을 확보했습니다.”
◇유통 기업 한계 타파하는 비즈니스 모델
국내 중소 화장품 브랜드 해외 유통 사업을 맡기면 시그니처레이블은 국가별 시장에 맞는 제품을 선별해 유통 전략을 짠다. 규제 확인, 유통망 확보, 물류 관리, 현지 마케팅 등의 업무도 시그니처레이블이 직접 한다.
-해외 유통 사업이 새롭게 들리진 않는다. 시그니처레이블만의 차별점이 있나.
(이) “저희가 이미 확보해둔 해외 네트워크를 이용해 기업 내부 인력 없이 해외 유통 사업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차별점이죠. 현지 총판사와 협력 관계를 구축해뒀기 때문에 해외 시장 트렌드를 빠르게 읽을 수 있다는 점도 강점입니다. 고객사의 제품 중 해외에서 잘 팔릴 수 있는 제품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요.”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으로 수출했을 때 잘 팔릴만한 화장품은 어떤 건가.
(이) “베트남은 워낙 덥고 습한 기후라 피부 트러블 개선에 대한 수요가 높습니다. 강한 세정력의 클렌징폼이나 산뜻한 제형의 스킨·로션이 잘 팔리죠. 태국은 밝은 피부를 좋아하는 문화가 있어 미백 효과가 강한 제품을 선호해요. 시그니처레이블이 개발하고 있는 제품도 미백 기능이 있는 비타민C 앰플입니다.”
-제품 개발까지 직접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김) “유통 수수료에 의존하는 수익 구조는 사업 운영 측면에서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요즘처럼 투자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선 수익을 낼 방법을 다각화해야 하죠. 시장 조사를 하며 동남아시아 화장품 시장의 특징을 알았으니, 현지 맞춤형 제품을 개발해 성과를 내면 수익 확보와 동시에 고객사에 보일 포트폴리오도 되죠. 올해 상반기에 제품을 출시할 예정입니다.”
◇동업자끼리 R&R(역할과 책임) 확실히 나눠라
시그니처레이블은 2023년 2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가 개최한 창업경진대회 ‘디데이 글로벌 리그’에서 1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본선 진출팀으로 선정됐다. 법인 등록이 2023년 3월에 완료됐을 정도로 초기 단계이지만 엔젤 투자 유치에 성공해 사업을 빠르게 전개하고 있다.
-디캠프에서 본선 진출팀으로 선정된 이유를 내부적으로 어떻게 분석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빠른 실행력’을 좋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고 빠르게 검증 단계를 거치고 있다는 점이 주효했죠.”
-창업 극초기 단계인데, 올해 계획이 궁금하다.
(김) "올해 9월까지 무리한 투자 유치 없이 수익을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현재 국내 6개 화장품 브랜드와 수출 전략을 협의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과 러시아 시장의 현지 판로도 확보했죠.”
-오랜 직장 생활 후 창업하면 어떤 장점이 있나.
(김) “이전의 스타트업 경험이 없었다면 시행착오가 훨씬 많았을 겁니다. 시작 단계라 함부로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내 사업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은 있는 것 같아요.”
(이) “회사 생활 경력을 인정받아 좋은 동업자를 찾았다는 게 장점이죠. 회사에서 R&R(Role&Responsibility: 역할과 책임. 기업에서 업무 분장 시 사용하는 용어)을 정립하듯, 동업자끼리도 책임질 업무를 나눠두면 시너지가 더 크게 납니다.”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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