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소셜펠로우 13기 티이·11기 리그넘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골칫덩어리였던 산업 부산물이 제조업의 기초 소재가 될 수도 있다. 금속 재활용 기업 티이는 철강 공장에서 나오는 여러 불순물이 섞인 금속 폐기물에서 양질의 금속만 모아 모합금 덩어리를 생성한다. 목재 가공 기업 리그넘은 제재소에서 나무를 자르다 생긴 나무 톱밥으로 차량용 플라스틱 부품에 들어가는 충전제를 만든다.
한낱 쓰레기에 그칠 뻔했던 산업 부산물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두 기업은 모두 LG소셜펠로우 선정 기업이다. LG전자·LG화학이 운영하는 LG소셜캠퍼스는 기후환경 분야 사회적경제기업 지원 프로그램 ‘LG소셜펠로우’를 13년째 운영하고 있다. 비즈니스를 통해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스타트업을 다방면으로 돕는다. 티이의 김배균 대표(56)와 리그넘의 이상현 대표(48)를 만나 쓰레기 더미 속에서 미래를 찾은 방법에 대해 들었다.
◇땅에 묻으려던 금속 폐기물 분석해 보니
티이는 고속도강(HSS, High Speed Steel) 폐기물에서 고속도강 소재의 원료인 ‘HSS모합금’을 회수하는 스타트업이다. 고속도강이란, 500~600도의 온도에도 연화되지 않고 경도를 유지하는 철합금을 말한다. 철에 텅스텐, 크롬, 코발트 등의 금속을 넣어 만든다.
고속도강은 뛰어난 내열성 덕분에 다른 금속을 절삭하거나, 조각하는 데 사용한다. 항공 부품, 금형 제작에도 쓰이는 특수 제강 소재다. 가격도 같은 질량의 철보다 15배 이상 비싸다. 한국은 현재 고속도강 소재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500도에도 안 녹는 소재 특성상, 가공이 매우 까다롭다. 다른 금속으로는 절삭하거나 깎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실리카나 세라믹이 들어간 연마석을 이용해 고속도강을 가공하고 가공 과정에서 돌가루와 고속도강 금속 가루가 섞인 폐기물이 발생한다. 우리나라에서만 매년 6000톤의 고속도강 폐기물이 나오는데, 재활용이 어려워 통째로 매립해 왔다.
티이는 이 금속 폐기물에서 고속도강의 재료가 되는 금속 가루만 분리하는 8건의 특허 기술을 갖고 있다. 제련과 용융 과정이 모두 필요하다. 폐기물에 티이가 개발한 용매를 넣어서 섞고, 1200도 이상으로 가열하면 불순물은 녹고 상대적으로 무거운 고속도강 소재는 가라앉는 원리다.
여기서 금속 소재만 모아 고체로 만들면, 철·텅스텐·코발트·크롬이 섞인 HSS모합금이 만들어진다. 티이가 개발한 재활용 HSS모합금의 원소 조성비율은 공장에서 새롭게 만든 고속도강 소재와 99% 이상 일치한다. 연마석 가루가 포함된 불순물은 별도로 회수해서 건축 자재로도 판매한다.
티이의 김배균 대표는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보험사에서 손해사정 업무를 하다 2008년, 도시광산업을 영위하는 금속 재활용 기업으로 이직했다. “2020 도쿄올림픽의 메달이 폐가전을 회수해서 만든 금속이라는 이야기는 들어보셨을 겁니다. 휴대폰, 컴퓨터 등 폐가전이나 산업 폐기물을 수집하고 선별해 산업 원료를 재생산하는 사업을 도시광산업이라고 하는데요. 두번째 회사에서 해외 영업, 연구개발 지원, 투자 유치 등 사업 전반을 담당했습니다. 다니던 회사가 주력으로 생산하는 금속의 가격이 떨어지면서, 회사가 어려워졌어요. 하지만 전 창업을 해서라도 이 분야에서 계속 일하고 싶었어요. 아직 다른 기업이 도전하지 않은 금속 폐기물을 찾다 고속도강 소재를 발견해, 2020년 티이를 설립했습니다.”
티이는 우리나라 고속도강 제품 제조 기업을 통해 폐기물 원료를 조달하고, 이를 이용해 HSS모합금을 만든다. 이후 고속도강 소재를 제조하는 해외 기업에 원료를 납품한다. “금속 제품 제조 기업은 폐기물을 매립할 때 환경 처리 비용을 내야 합니다. 이들 기업 입장에선 비용을 내고 매립하는 것보다 저희에게 폐기물을 납품하는 쪽이 경제적이죠. 고속도강 소재 제조 기업도 철, 텅스텐 등 각각의 원료를 사들이는 것보다 20~30%의 생산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이미 배합이 돼있는 HSS모합금을 사용해 공정 단계를 줄일 수 있으니까요.”
2022년 10억원의 매출을 냈다. 일본의 미쓰비시 제강에 5톤의 HSS모합금을 수출했고, 샘플을 의뢰한 국내 기업에 제품을 납품했다. 친환경적 가치도 크다. “HSS모합금을 4800톤 생산했을 때 저감할 수 있는 탄소의 양은 약 9000톤입니다. 금속 폐기물의 일부만 추출했을 뿐인데, 96만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거죠.”
기술의 혁신성을 인정받아 지난 5월 LG소셜펠로우 13기 기업으로 선정됐다. 지난 7월에는 60개 스타트업이 참여하는 기술보증기금 벤처캠프에서 스타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고속도강 금속 폐기물을 업사이클링하는 기업은 저희가 유일합니다. 스타트업 대표 입장에서 일시적인 금전적 지원보다 더 좋은 건 대기업과의 협력 기회입니다. 금속 폐기물의 전처리 공정의 효율을 높일 방법을 내부적으로 연구하고 있는데, LG의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 공정 연구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LG화학 연구원, 고려대 연구 교수 관두고 창업
플라스틱의 주원료는 석유지만 그 외에도 구성요소가 많다. 플라스틱 소재의 제품을 만들 때 플라스틱의 원료인 수지, 수지 사이의 공간을 채워 강성을 높이는 충전제(充塡劑: 수지 가공을 할 때 제품 강도를 높이고 원료 소비량을 줄이기 위해 넣는 화학 물질) 그리고 제품에 색상 등의 기능을 부여하는 보조 원료가 필요하다. 이른바 플라스틱 제품의 ‘3요소’다.
리그넘의 이상현 대표는 3요소 중 ‘충전제’에 주목했다. 기존의 플라스틱 충전제는 탈크와 같은 천연 광물을 원료로 한다. 탈크는 암석에서 채취하는 돌가루다. 석면 같은 인체에 해로운 물질을 채취하는 공간에서 동시에 생산되므로, 안전성에 대한 지적을 받아왔다.
이 대표는 안전성 문제도 잠식시키면서 환경까지 생각하는 충전제를 개발했다. ‘SSEIF’라고 부르는 식물 기반 플라스틱 충전제다. SSEIF의 주요 재료는 톱밥이나 폐목재다. 파쇄, 가열, 가수분해 등 특허 공정을 거쳐 나무 부산물에서 리그닌과 셀룰로스를 추출해 탈크와 같은 분말 형태로 생산한다.
이상현 대표는 고려대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LG화학에서 10년, GS칼텍스에서 6년 동안 연구원 생활을 했다. 2016년에는 고려대 생명공학과 소속 식품생의학안전연구소에서 1년간 연구교수로 지냈다. “제 연구 경력을 살린 제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더라고요. 1년 만에 교수 자리를 내려놓고 2017년 11월에 리그넘을 창업했습니다.”
이 대표가 회사에서 연구했던 분야는 미생물 대사공학이었다. “업계에선 미생물의 먹이로 주로 설탕을 사용해요. 설탕은 인간도 이용하는 식량 자원이니, 비식량 자원으로 미생물의 먹이를 만드는 연구를 했죠. 이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 된 것이 목재에서 리그닌과 셀룰로스를 추출하는 방법이었어요.”
SSEIF는 100% 식물성 소재로 만들어져 환경에 부담이 덜하다. 품질이 좋아 상품성도 뛰어나다. “탈크보다 더 가볍고, 강성이 높아 내구성이 뛰어납니다. 자외선·산화 안정성도 뛰어나 변색이나 부식 걱정이 없죠.”
이 대표가 SSEIF를 처음으로 적용한 분야는 자동차용 플라스틱 부품이다. 2020년 생산된 소형 SUV ‘티볼리’의 도어트림과 테일게이트에 SSEIF가 일부 사용됐다. “자동차 부품은 플라스틱 제품 중에서도 품질이 가장 뛰어난 축에 속합니다. 내구성, 내부식성 등 모든 측면에서 우수해야 하죠. SSEIF 기반 플라스틱은 기존 탈크 기반 제품보다 가벼워요.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부품 중 10kg만 SSEIF 제품으로 대체해도 연비가 0.5% 좋아지는 효과가 있죠. 자동차 부품에 적용한 사례가 생기면서, 플라스틱 시장 전반에 문을 두드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2021년에는 LG소셜펠로우 11기에 선정되면서 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LG소셜펠로우에서 진행하는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이 리그넘의 미션과 비전을 다시금 확립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과거에는 제품 연구에만 치중해 기업을 운영했는데 LG소셜펠로우 합류 이후에는 목재 기반 플라스틱 시장의 규모, SSEIF가 실질적으로 감소시키는 이산화탄소의 양 등을 더욱 면밀하게 분석하게 됐어요. 저희가 보유한 기술의 파급효과를 객관적으로 증명하려고 노력한 거죠.”
증명의 힘은 컸다. 회사와 SSEIF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 소속 지속 가능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업링크’의 혁신 기업으로 선정됐습니다. 전 세계의 친환경 스타트업 중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12개 기업만 선정하는 프로그램이죠. 선정 이후 해외 자동차 제조사로부터 샘플 의뢰 요청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2022년 리그넘은 경기도 화성시에 1000평 규모의 SSEIF 공장을 구축했다. 지금까지 누적 30억원의 투자금을 확보했다. “유명 해외 자동차 기업, 화장품 제조 기업, 고무 제조 기업 등과 함께 제품 양산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생산량은 약 300톤인데, 3만톤 이상 생산해야 생산 단가를 낮출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고객사 확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LG소셜펠로우에 선정된 기업은 5000만원 이상의 금융지원, 기업별 맞춤형 컨설팅, 오픈 이노베이션 협업 연계 등을 지원받는다.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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