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경제

한국 농업 이렇게 바뀌고 있다, 농민들이 외면받던 '당귀'로 만들어낸 이것

더 비비드 2025. 3. 28. 13:06
참당귀 유산균 제조, 진부농협 이주한 조합장 인터뷰

당귀를 든 진부농협의 이주한 조합장. /더비비드

한약방에 가면 달큰하고 오묘한 한약재의 향이 난다. 당귀(當歸) 향이다. 당귀의 유래를 두곤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은 당귀를 ‘남편이 집에 돌아온다’는 의미로 풀이한다. 시집가는 신부가 반드시 챙겨야 할 상비약이라는 뜻에서 기인했다는 설명이다. 

예부터 상비약으로 꼽힐 만큼 당귀는 풍부한 영양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잎은 쌈채소로, 뿌리는 한약재로 활용될 만큼 활용성도 좋다. 강원도 평창 진부면에 자리한 진부농협은 일반 소비자도 당귀를 쉽게 섭취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다가, 당귀 유산균을 출시했다. 진부농협의 이주한(56) 조합장을 만나 참당귀 유산균을 개발하게 된 배경을 들었다.

◇2선 조합장이 된 5선 조합장의 아들 

진부농협은 우수한약재 유통지원센터에서 당귀의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 /더비비드

이 조합장은 진부에서 나고 자랐다. 24년을 농협에 몸담은 농협인이다. 봉평농협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해 19년간 진부농협에서 근무했다. 고랭지 채소 농가에서 성장한 그는 농업인의 권익 향상에 누구보다 진심이다. 진부농협 5선 조합장 출신인 아버지의 길을 따라 2019년 진부농협 조합장으로 처음 당선됐다. 조합원의 신임을 얻어 2024년 재선했다.

- 조합장이 된 계기가 알고 싶습니다.

“농업인이자 농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싶었습니다. 진부면은 해발고도 600~900m의 고랭지인데요. 기후 변화로 농가 수익의 등락이 커지는 추세입니다. 농협의 존재 이유는 농업인의 경제적인 안정성을 도모하는 것인데요. 지난 24년간 농산물 유통, 기획, 총무, 지도 등의 업무를 두루 경험한 경력을 살려 이 지역 농가의 권익 증진에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우수한약재 유통센터에서 당귀를 가공하는 모습.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당귀를 기계로 선별하는 모습, 창고에 보관 중인 당귀, 당귀를 포장하는 모습, 당귀 절단 공정. /진부농협

- 진부농협의 역할이 궁금합니다.

“이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는 감자, 무, 배추, 대파, 당귀의 유통을 책임집니다. 한때는 농가와 산지 유통인 사이의 포전매매(밭떼기 거래)가 활발했는데요. 장점도 많지만 농민보다는 유통인이 이익을 더 많이 챙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농사하느라 바쁜 농민들이 유통 과정까지 신경 쓰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으니까요. 이런 고충에 착안해 공동선별회를 조직했습니다. 지역 대표 농산물을 계약 재배하고 생산과 판매, 유통 준비 등의 업무를 농협에서 대행해줍니다. 농가는 재배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일손을 덜고, 소득도 보전할 수 있습니다.”

- 요즘 맹점 두고 있는 사업은 무엇인가요. 

“진부 당귀의 경쟁력 강화와 수급 관리입니다. 당귀는 파종에서 수확까지 2년 가까이 걸리는데다, 건조 후 저장 과정을 포함하면 농민들이 소득을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급전이 필요한 농가가 헐값에 당귀를 판매하면서 당귀의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했죠. 농가의 안정적인 소득 보장을 위해 선급금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또한 평창군이 세운 우수 한약재 유통지원센터를 활용해 당귀의 품질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건조설비를 활용해 당귀를 위생적으로 가공해 품질을 끌어올렸고요. 1123㎡(340평) 규모의 저장고에 당귀를 보관해 출하량을 탄력적으로 조절해 가격을 유지하는 중이죠.”

◇ 미운 오리 새끼 같은 당귀 잔뿌리를 백조로 만드는 법

당귀는 미나리과에 속한 다년생 식물 승검초의 뿌리다. 참당귀밭 전경./진부농협

진부농협의 자랑거리인 진부 당귀는 미나리과에 속한 다년생 식물 승검초의 뿌리다. 승검초는 1∼2m 높이로 자라며 전체가 자줏빛에 뿌리는 굵고 향이 강하다. 그중에서도 진부 당귀는 지리적표시제 제38호로 등록된 지역 특산물로, 항산화 성분과 항염증 성분이 풍부하다. 

당귀는 강원도 평창과 정선, 충북 제천과 단양, 경북 봉화와 울진 등의 지역에서 주로 재배했다. 그런데 여름철 고온 현상의 지속으로 경북과 충북 지역에서 재배가 어려워지고, 강원도에서만 안정적으로 수급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2023년 전국 당귀 생산량 1292t중 61%인 788t이 강원도에서 생산됐다. 이런 구조에서 진부 당귀의 가치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진부농협은 당귀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당귀 원물 유통 뿐만 아니라 가공식품인 ‘진부 당귀 유산균’을 만들어서 판매 중이다.

(왼쪽부터) 참당귀 몸통과 잔뿌리. 잔뿌리는 영양소가 많지만 유통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더비비드

- 이 지역이 당귀 주산지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원래 당귀의 주산지는 경북 봉화였는데, 기후온난화 때문에 작황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당귀가 자라기 좋은 환경인 평창이 주요 산지로 자리잡기 시작했죠. 당귀는 7~8월 평균 기온이 20~22도인 서늘한 기후에 잘 자라거든요. 고랭지인 평창이 딱 그런 환경이죠. 또한, 당귀의 유효 성분은 과일의 당도처럼 일교차가 큰 환경에서 극대화됩니다. 기온이 서늘한 데다 일교차가 큰 평창은 당귀가 자라기 좋은 천혜의 환경입니다.” 

- 당귀의 효능이 궁금합니다.

“당귀의 주요 성분인 데크루신과 데크루시놀안젤레이트는 뇌 속 독성물질인 베타 아미로이드를 감소하거나 생성을 억제해 뇌세포를 보호합니다.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죠. 당귀의 효능은 동의보감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동의보감 내에서 당귀를 사용한 처방이 500가지 이상일 정도로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요. 혈액순환 개선에 좋으며 혈색 불량, 산전·산후 회복, 월경 불순, 자궁 발육 부진 등 여성 건강에 좋아 한약방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한약재입니다. 오래 복용하면 손발이 찬 증상도 개선할 수 있어요.”

진부농협에서 개발한 유산균 시리즈. /더비비드

- 당귀를 가공하기로 한 배경을 알고 싶습니다.

“한약재로 사용되는 당귀는 몸통, 큰 뿌리, 잔뿌리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유통 시장에서 잔뿌리가 외면 받고 있습니다. 땅의 기운이 응축된 부분이라 영양학적 가치가 높은데도 잔뿌리가 폐기 당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잔뿌리를 활용해 가공식품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창출하면 생산성을 높이면서 농가 수익을 증대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죠.”

- 왜 유산균인지 궁금합니다.

“처음엔 당귀차와 당귀 방향제를 만들었는데요. 판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너무 개성이 강한 향이 화근이었죠. 어르신들은 향을 풍미라고 좋아하지만, 젊은 층들은 거부감을 표했습니다. 그래서 헛개나무 차 같은 참당귀 수를 개발했는데요. 유통이 문제였어요. 액상형태라 유통 과정에서 품질이 떨어질 우려가 있었거든요. 시행착오 끝에 누구나 접할 수 있고, 당귀의 성분과 프로바이오틱스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말 형태의 유산균을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가공식품은 결국 접근성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이 과정에서 배웠죠.”

이주한 조합장이 참당귀 유산균 먹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더비비드


- 진부농협의 가공식품은 당귀 유산균이 유일한가요.

“2024년 출시한 감자 유산균과 쌀 유산균도 있습니다. 단품보다는 유산균 세트로 출시하는게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좋을 것 같아서 라인업을 확장했죠. 제품별 출시 배경은 다릅니다.  감자 유산균은 잔감자를 버리지 않고 활용할 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탄생했습니다. 잔감자는 가격이 매우 낮게 형성됩니다. 원물로 유통하기 어려운 잔감자를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이기로 한 것이죠. 쌀 유산균은 정부와 농협의 ‘쌀 소비 촉진 운동’의 일환으로 개발했습니다. 쌀 소비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가가 많은데요. 쌀 소비 증대에 도움이 되고자 강원도 영월 지역의 쌀을 구매해 유산균을 만듭니다. 농협과 정부의 목표 달성에 보탬이 되고 싶어서 개발한 측면이 크죠. 농협의 존재 이유가 바로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진부 당귀는 농민의 자부심입니다 

진부 당귀의 몸통과 큰 뿌리는 유명 건강기능식품 제조사에 납품된다. 잔뿌리 부분은 유산균으로 가공돼 하나로마트 등의 유통 채널에서 소비자와 만난다. 판로를 확장 차원에서 군납을 앞두고 있다. 

참당귀 유산균은 하나로마트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더비비드

2024년 진부농협 판매 사업 매출 1100억원 중 당귀 매출액은 55억원이다. 같은 해 당귀 유산균 판매 매출은 4000만원이다. 큰 비중은 아니지만 지리적표시제에 등록된 특산물로서의 상징성이 크다는 게 진부농협 측의 설명이다.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진부 당귀의 표준화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농가별로 품질의 차이가 크면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요. 당귀 재배에 적합한 환경, 재배 기술 등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제공해  모든 농가에서 고품질의 당귀를 생산할 수 있게 장려할 구상입니다. 이를 위해 서울대 그린바이오과학기술연구원(GBST)과 진부 당귀 표준화 기술 지원사업을 본격 시행할 예정이에요. 보성 녹차처럼 ‘진부 당귀’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자리매김했으면 해요.”

- 이 지역 농민에게 당귀는 어떤 의미인가요.

“이 지역 농가들은 배추, 무, 감자, 당근 같은 채소와 당귀를 함께 재배합니다. 사실 다른 농작물로 더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는데요. 당귀는 이 지역에서만 재배할 수 있는 유일한 작물이라는 의미가 큽니다. 우수한 진부 당귀를 자기 손으로 키웠다는 농민들의 자긍심이 대단하죠. 아쉬운 건 판로입니다. 물론 판로 개척은 저희 몫이에요. 소비자에게 양질의 농산물과 가공식품을 제공하면서, 농민은 프라이드를 가지며 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