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쌀국수 개발기
빵순이는 많아도 밥순이는 찾기 힘들다. 식생활 변화에 따라 쌀 소비량이 급감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연간 1인당 쌀 소비량은 1985년 이후 매년 줄고 있다. 문제는 감소세가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전망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식량용 쌀 소비량은 올해 273만t, 내년 269만t, 2030년 253만t, 2035년 233만t 등으로 매년 줄어들 전망이다. 2035년 전망치는 올해 소비량 예상치 대비 14.7%나 적다.

이에 농협은 쌀 소비 활성화를 위해 소매를 걷어올렸다. 농협은 현대이지웰 등 다양한 기업과로 '아침밥 먹기 운동'을 펼쳐 지친 직장인에게 아침밥의 활력을 나눠줬다. 11월 11일에는 가래떡데이 행사로 쌀을 즐기는 재미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우리쌀 나눔 행사를 열어 온정을 나누기도 했다. 작년에는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쌀 축제인 ‘2024 우리쌀·우리술 K-라이스페스타’를 열어 쌀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당시 쌀 가공식품 일반 제조사와 농협 부문, 우리술 발효주와 증류주 부문 등 4개 부문에 총 705개의 제품이 출품돼 눈길을 끌었다.
생활 속에서 쌀을 지속적으로 소비하는 방안도 놓치지 않았다. 농협은 소비자들의 달라진 식생활을 겨냥해 다양한 쌀 가공식품을 선보이는 중이다. 밥이 아닌 면과 스낵의 형태로도 쌀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죄책감 없는 컵라면의 탄생 배경

농협이 쌀 소비 촉진의 일환으로 출시한 제품 중 호응을 얻은 제품으로 우리쌀 쌀국수 2종을 꼽을 수 있다. 컵라면처럼 뜨거운 물 3분이면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간편식이다.
농민과 소비자 모두에게 이득인 아이디어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농협식품에서 즉섭밥, 누룽지, 떡 등 쌀 가공 제품의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양준영(30) 대리에게 개발 배경을 들었다.
- 우리쌀 쌀국수 2종 개발 취지가 궁금합니다.
“2020년 철원 오대쌀로 만든 원료특화형 쌀국수와 떡국을 출시했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농협 내부에서 이런 성공 사례를 더 만들자는 공통된 의견이 있었죠. 쌀 함량을 높이는 방향으로 신제품을 개발하기로 하고, 농협식품R&D연구소와 상품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쌀국수 면의 30%, 50%를 쌀로 대체하는 상품을 차례로 출시했는데요. 농협의 존재 이유를 살려 밀가루를 아예 쓰지 않고 쌀 사용량을 대폭 늘린 상품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 신제품 기획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쌀 소비량 증대가 첫번째 목적이다 보니 일상에서 편히 접할 수 있는 식사대용품을 구상했습니다. 면요리를 즐기는 분들이 먹은 후에도 속이 편한 국수를 목표로 삼았죠. 관건은 다양한 소비자의 수요를 수렴하는 것이었습니다. 농협식품의 주요 판매 채널은 하나로마트와 온라인인데요. 하나로마트의 주 이용층이 중장년층인데 반해 온라인 채널의 주이용자 층은 청년층입니다. 이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제품을 구상해야 했죠. 소구점을 찾는 게 마케터의 몫이니까요.”
◇쫄깃한 면발의 비밀

우리쌀 쌀국수 2종은 쌀 소비 촉진이라는 공적인 목표와 상품성이라는 상업적인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는 목적 하에 출발했다. 농협식품R&D연구소 식품연구원들은 쌀을 최대한 많이 사용하면서, 쫄깃하고 구미가 당기는 면의 식감을 구현하는데 중점을 뒀다.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면 중 쌀 함량이 97.7%에 달하며 밀가루를 넣지 않은 면을 만들었다. 스프의 경우 한국인의 입맛을 고려해 파곰탕 맛과 멸치 맛 2종을 개발했다. 제품 개발을 담당한 농협식품R&D연구소 상품개발팀 김형배(45) 팀장과 이인령(29) 계장을 만나 개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 우리쌀 쌀국수 2종 개발 시 가장 주안점을 둔 요소는 무엇일까요.
(김형배 팀장) “쌀 함량을 높이면서, 쫄깃하고 찰진 식감의 면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쌀에는 글루텐이 없어서 쌀만으로 국수의 성상을 유지하는게 쉽지 않습니다. 시중 쌀국수가 일정 비율의 밀가루를 사용하는 이유죠. 하지만 국산 밀가루를 사용하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수급이 불안정한데다, 가격도 수입밀보다 비싸거든요. 아예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방향성을 잡고 접근했어요. 적합한 가공 공장을 수소문한 끝에 여주의 한 공장을 찾았습니다. 공장과 수차례 테스트 끝에 쌀 함량 97.7%의 면을 구현했죠.”

- 밀가루 없이 면의 식감을 어떻게 구현했나요.
(이인령 계장) “쌀을 제외한 2.3%를 감자 전분과 소금 둥으로 채웠습니다. 쌀면은 기름에 튀기지 않고 바람으로 말리는 건면 공법을 사용했죠. 다만 쌀에는 글루텐이 없어서 면이 쉽게 딱딱해지고, 건조 과정에서 들러붙곤 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면 뽑는 기계의 압력과 건조 환경부터 체크해야 했습니다. 시행착오 끝에 저온에 건조하는 방식을 채택했죠. 고온에서 빠르게 말리면 면 내의 수분이 증발하거든요.”
- 맛을 결정한 과정도 궁금합니다.
(김형배 팀장) “맛 타입 설정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쌀면과 잘 어우러지면서 자극적이지 않고, 구미가 당기는 맛을 찾아야했죠. 식사대용품으로 적절해야 했고요. 발품 밖에 답이 없었습니다. 시중의 다른 쌀국수를 먹어보고, 팀원들과 국수 맛집을 다녔어요. 출장을 갈 때도 인근의 맛집을 찾아서 방문하고 왔습니다. 이후 최종 후보를 추린 다음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어요. 그 끝에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국산 멸치와 한우 사골 베이스를 한 국물 2종을 최종 선정했습니다.”

- 핵심 재료에 대한 설명도 부탁드립니다.
(이인령 계장) “쌀은 공장과 가까운 이천 쌀을 주로 사용합니다. 멸치 스프에는 국산 멸치가, 파곰탕에는 한우와 국내산 대파가 들어갑니다. 파곰탕에 들어가는 파의 풍미를 살리는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열풍, 드럼, 동결 등 다양한 건조법으로 파 블록을 제조한 다음 마케터와 공동으로 테스트했어요. 파의 깊은 향이 살아있는 동결 건조 방식으로 최종 결정했죠.”
- 제품 출시 성과는요.
(김형배 팀장) “현재 전국 하나로마트 200개 매장에 입점했습니다. 소비자 사이에서 반응이 좋아요. ‘파곰탕 국물이 뽀얗고 진하다’,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죠. 어르신들은 해장용으로 즐겨 찾는다고 합니다. 맛도 맛이지만, 건강한 식사대용품을 성공적으로 만들었다는 게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시중의 라면은 밀가루를 유탕처리 했기 때문에 소화에 어려움이 있는데요. 저희 제품은 국산 쌀을 튀기지 않고 만들었기 때문에 소화가 잘되고 알레르기 우려도 없습니다. 유탕면보다 칼로리도 낮은 편이죠. 정성이 많이 들어간 좋은 제품이라고 자신합니다.”

- 공적인 목표와 상업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인령 계장) “맞아요. 저희는 수입 원료를 배제하기 때문에 제약이 많습니다. 한편 국산 농산물 소비라는 소구점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어서 식품연구원으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국산 농산물을 최대한 많은 가공품에 적용할 수 있도록 건조하고, 원료끼리 혼합하고, 코팅하는 등의 시도를 통해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단가나 재료수급 측면에서 어려운 점도 많지만 우리쌀 쌀국수처럼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제품을 만들어서 국산 농산물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쌀의 변신은 이제 시작

소비자의 달라진 식생활에 맞춰 쌀 소비를 유도하는 농협의 시도는 이제 시작이다. 농협식품R&D연구소는 쌀 함량 97.7%의 면을 기반으로 쌀짜장, 쌀짬뽕, 쌀파스타 등의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짜장과 파스타는 비국물 면요리로 꾸준히 한국인의 사랑을 받는 메뉴다. 짬뽕은 군산 지역의 명물 군산짬뽕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전분 구조과 밀과 비슷해 가공이 용이한 ‘가루쌀’을 활용한 상품도 선보이고 있다. 2023년과 2024년 농림출산식품부와 함께 가루쌀을 활용한 스낵과 쌀부침가루, 쌀튀김가루 등 프리믹스 5종을 출시했다. 미숫가루, 곡물차, 라떼 등의 고부가가치 상품도 차기착으로 낙점됐다.

주류에 우리 쌀을 접목하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 1월 농협경제지주는 소주 브랜드 화요와 공동개발 업무협약을 맺었다. 고급 소주 브랜드인 화요와 손을 잡고 지역 쌀을 활용한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를 개발할 구상이다. 증류식 소주 1L(알코올 함량 25도 기준)를 생산하는데 쌀 약 700g이 사용되기 때문에 공동 개발로 쌀 소비 촉진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김형배 팀장은 우리 쌀의 맛있는 변화를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쌀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주식입니다. 정부 정책에 부응해 다양한 제품군에 쌀을 적용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쌀 소비 확대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농협이 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쌀 가공 활성화를 위해 쌀 분쇄공장을 확충하고, 농협식품R&D연구소 내부에 쌀 가공연구팀을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죠. 그 정도로 이 일에 진심입니다. 농민들이 땀흘려 재배한 쌀을 헛되게 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집마다 설치될 탄소포집기.. 미래 바꿀 한국의 스타트업 (1) | 2025.03.12 |
---|---|
"전세 사기 이렇게 하면 다 잡습니다" LG가 반한 변호사의 아이디어 (0) | 2025.03.12 |
어찌됐든 설은 또 왔다, 올해도 눈코뜰 새 없는 농협 물류센터 24시 (0) | 2025.03.12 |
지독한 비염으로 고생하던 대기업 직원, 사표까지 내고 개발한 것 (0) | 2025.03.10 |
꿈에 그리던 별장, 클릭 한 번으로 배달 왔다 (1) | 2025.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