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류식 소주 개발 위해 손잡은 KFP와 마이클 콜린스
5월 서울 삼성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 바앤스피릿쇼. 내로라하는 주류 전문가가 모였는데, 그중에는 조니워커 블루라벨, 그린라벨 등을 만든 위스키 마스터 ‘마이클 콜린스(75)’도 있었다. 연사로 참석한 그는 한국의 술을 맛보기 위해 엑스포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 고운 연둣빛 막걸리가 들어왔다. 홀린 듯 연둣빛 막걸리를 마신 그는 그 자리에서 바로 ‘어떻게 이런 맛이!(Excellent taste!)’를 외쳤다.
연둣빛 막걸리의 정체는 ‘너드 바질 스파클링’이다. 한국에프앤비파트너스(KFP)가 만든 막걸리로 이 회사를 세운 이성호(36) 의장은 마이클을 알아보고 “저희는 한국의 디아지오를 꿈꾸는 회사입니다!”를 외쳤다. 이 의장은 KFP의 비전에 대해 마이클에게 이야기했고,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50여년 경력의 세계적 위스키 마스터 마이클 콜린스와 한국 스타트업 KFP가 협업의 첫발을 내딛게 된 순간이다.
마이클 콜린스는 KFP 고문으로서 이 의장과 함께 경북 안동소주를 재해석한 증류식 소주를 개발중이다. 한국의 전통주를 해외에 알리기 위한 새 판을 짠다는 구상이다. 콜린스 고문과 이 의장을 11월 16일 비담 북촌에서 만났다. 이날은 마이클 콜린스의 ‘위스키 마스터 클래스’가 열리는 날이었다. 콜린스 고문이 KFP와 손잡게 된 이유, 앞으로 그와 KFP가 만들 한국 소주는 무엇인지를 들었다.
◇위스키의 전설 마이클 콜린스의 다음 여정은 한국 술
마이클 콜린스는 위스키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조니워커 블루·그린 라벨, 클래식 몰트 시리즈, 디스틸러스 에디션에 이르기까지 애호가 사이에서 손꼽는 위스키를 개발하며 시장을 혁신했다. 1987년 디아지오(당시 DLC)로 이직한 그에게 내려진 첫 임무는 블랙 이상의 최고급 주류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했습니다.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6개 증류소를 이용했고, 병에 숙성연도를 새기지 않은 최초의 위스키를 만들었죠.” 선데이타임스는 당시 조니워커 블루로 표지를 장식하며 ‘몰트위스키의 혁신’이라고 표현했다.
2018년 은퇴하고 5주 만에 펄킨 위스키(firkin whiskey)를 창업해 아직도 현역이다. 22세 때 위스키와 와인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위스키 업계에서 일한 지 올해로 53년차다. 그가 만든 위스키 종류만 45개가 넘는데, 1~2년에 한번씩 신제품을 만든 셈이다. “아내는 이제 그만하라 하는데 내 열정 때문에 그럴 수가 없어요. 계속해서 새로운 풍미(New flavor profile)를 지닌 술을 만들고 싶거든요.”
한국에는 25년 전 처음 방문했다. 딤플 위스키 국내 론칭을 위해서다. 위스키 마스터로서 1년에 25주를 해외에서 보내던 그에게 당시 한국은 ‘폭탄주의 나라’였다. “너무 많이 마셔서 괴로웠지만, 상당히 재밌는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이후로도 종종 한국을 방문했는데, 한국 술을 만들기로 결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일생을 새로운 위스키를 만드는 데 바쳤습니다. 제게 좋은 술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아요. 너드 바질 스파클링 막걸리를 맛봤을 때 품질 좋은 술이란 걸 단번에 알아봤죠. 이성호 의장과 15분 간 이야기하면서, 그가 말하는 ‘한국의 디아지오’를 만들겠다는 포부와 에너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내가 도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한국 술 알리는 한국적인 공간
콜린스 고문과 이 의장은 첫만남 바로 다음날 KFP 회사에서 만났다. 논의 끝에 이 의장은 마이클 콜린스를 새로운 한국 증류주를 만들기 위한 정식 고문으로 모시기로 했다. 이 의장은 “한국의 조니워커를 만들겠다는 KFP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까요?”라며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콜린스 고문은 한달 만인 6월 한국을 다시 방문해 이 의장과 경북 안동으로 갔다. 500년 전 지어진 고서이자 안동문화체험관 이름인 ‘수운잡방’에서 안동소주와 다양한 음식을 먹은 마이클은 다시 한번 감탄했다.
“좋은 술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당연히 품질이에요. 삼성, 현대가 훌륭한 물건을 만들고 있죠. 마찬가지로 안동소주의 우수함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어요. 둘째는 술과 같이 먹는 음식이 중요합니다. 한국의 다양한 음식이 한국 술을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셋째는 ‘콘텐츠’인데요. ‘한옥’과 같은 문화유산의 탁월함을 보세요. 한옥에서 안동소주와 음식을 곁들여 먹었을 때, 마치 천국에서 결혼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어요.”
올해만 벌써 세 번째 한국 방문이다. 북촌 비담에서 열린 위스키 전시이자 클래스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서울시가 선정한 8대 한옥 비담은 KFP가 올초 인수한 곳이다. 현재 카페이자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의장이 말했다. “마이클 고문님이 말씀하신 좋은 술의 세 가지 조건이 놀랍게도 한국 전통주를 세계에 알리려는 저희 의도이자 비전과 일치했어요. 우리 술을 해외에 알리기 위한 섬세한 마케팅이 필요한데요. 그중 ‘공간 마케팅’이 중요 역할을 할 겁니다.”
이 의장은 KFP가 세번째 창업이다. 카이스트 수학과학과·경영학과를 졸업한 공인회계사다. 과학영재고등학교 동창과 2011년 오픈서베이를, 2016년에는 한국신용데이터(캐시노트)를 공동창업했다. 식자재 공급회사 푸짐을 운영하던 KFP를 2023년 인수해 의장이 됐다. 경북 상주의 상주주조(너드 브루어리)를 인수해 주류 회사로 키웠다.
과거에도 우리 전통주 시장을 키우고, 세계에 알리려는 시도는 여럿 있었다. 하지만 이렇다 할만한 성과는 없었다. “‘맛있는 술’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주류 회사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디아지오가 영국 전역에서 운영하는 ‘익스피리언스 센터’는 한해 20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문화공간이에요. 스카치위스키가 생산되는 스코틀랜드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죠. 술과 함께 즐기는 음식, 문화, 유산 등이 함께 전달돼야 해요. ”
이 의장이 우리 술을 알리기 위해 내세우는 전략은 ‘한국적 즐거움 전달’이다. “우리 전통 소주도 위스키처럼 맛의 정체성이 확실하고 종류도 다양합니다. 음악과 영화로 시작했던 K문화 열풍이 먹고 마시는 단계로 진입했습니다. 시류가 만들어졌죠. 북촌 비담과 같은 문화 공간을 앞으로 계속해서 확대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일 겁니다.”
◇“조니워커 블루를 잇는 역작 만들겠다”
콜린스 고문과 이 의장은 오크 숙성 방식에 소주를 접목하는 기법을 연구 중이다. 한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한국 쌀과 전통, 문화 등을 파악했다. 새로운 한국 소주를 만들기 위한 공부는 끝냈다.
“조니워커 블랙·그린라벨, 펄킨 위스키를 만들 때처럼 내가 가진 재료를 파악하고 그것을 어떻게 접목해 개발할지 고민 중입니다. 기존과 다른 혁신적인 캐스크(술을 숙성하는 통)를 개발하려고 합니다. 누룽지를 구운 쌀의 고소함과 감칠맛, 단맛 등을 극대화하려는데요. 안동은 술 숙성을 위한 터와 기후에 적합합니다. 좋은 쌀, 맑은 물, 1000년 이상 이어져온 증류 기법이 혁신과 만나 품질이 극대화된 술이 될 겁니다.”
내년 첫선을 목표로 한다. 이 의장이 말했다. “상반기에 오크 에이징 소주를 먼저 출시할 계획입니다. 한국 증류소를 활용해 오크 에이징과 블렌드할 거고요. 하반기에 몰트위스키를 내놓을 거예요.”
한국 소주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도 마련되고 있다. 2023년 쌀 가공식품 수출액은 2억1700만달러(약 2838억원)로 2021년(1억6400만달러)보다 32% 증가했다. 이중 전통주가 차지하는 비율은 7.4%(1616만달러)로 미미하지만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8년까지 국내 쌀 가공산업 시장 규모를 2028년 17조원까지 성장시킨다는 계획이다. 국내에서 줄고 있는 쌀 소비를 가공식품산업 확장으로 타개하기 위해서다.
콜린스 고문은 한국 소주 개발을 조니워커 등에 이은 역작에 비유하고 있다. “한국의 자랑거리가 됐으면 합니다. 내 커리어에도 아주 중요한 유산으로 남을 것 같아요.”
이 의장은 세계인이 한국 전통주를 즐길 날이 머지않았다고 본다. “우리 전통 소주 시장에 해마다 새롭게 진입하는 업체 수가 20%씩 늘고 있다는 통계도 있어요. 최근 오비맥주 모회사 AB인베브가 제주소주를 인수했어요. 증류주 사업을 안 하는 회사였거든요. 이 시장에 훌륭한 인재와 자본이 모이고 있는 게 자명합니다. 저희는 여기서 1등을 하기 위해 더 달려야겠죠.”
/이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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