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보령 무창영어조합법인 문성훈 대표
“이렇게 잡으면 안 물려요!”
배를 보인 꽃게를 건네받았다. 꿈틀대긴 했지만 집게발이 손을 공격하진 못했다. 등딱지는 얼마나 단단할까.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꽃게를 뒤집은 순간 아차. 왼쪽 검지 손가락을 물렸다. 옆에 있던 사람이 양 손가락으로 집게발을 벌려줘 간신히 손가락을 뺐다. 결국 피를 봤다.
조선시대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막 캐낸 꽃게는 호랑이와 싸울 만하다’고 했다. 선조의 말씀은 틀린 게 하나 없었다. 어릴 적부터 꽃게를 보고 자라온 무창영어조합법인 문성훈 대표도 맹렬하게 달려드는 꽃게를 볼 때마다 뒤로 주춤한다. 그래도 이미 수백 번 물려 봤기에 얼마나 아픈지 안다며 위로의 말도 건넸다. 문 대표를 만나 꽃게에 대한 모든 것을 들었다.
◇제철 맞은 서해안 꽃게
꽃게는 수심 20~30m의 바닷가 모래바닥에 서식한다. 야행성이다. 낮에는 보통 모래펄 속에 숨어 지내다가, 밤이 되면 활발하게 먹이를 잡아 먹는다. 바다 속의 모래나 진흙을 파고 들어가 눈과 촉각만 남겨놓고 숨어서 먹이를 기다리다가, 먹이가 다가오면 재빨리 집게발을 들어 작은 물고기 등을 잡는다.
무창영어조합법인은 충남 보령 무창포해수욕장에 위치한 수산물가공업체다. 대구, 가자미, 문어, 꼴뚜기, 참소라, 꼬막, 키조개, 광어 등 서해안 바다에서 잡아 올리는 수산물이라면 어종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 취급한다. 그중에서도 효자 품목은 단연 ‘꽃게’다. 작년 기준으로 꽃게는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했다.
올해는 꽃게에 거는 기대가 더 크다. 한국수산자원공단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8월 21일 가을 어기가 시작된 이후 지난 10월13일까지 서해 전체 꽃게 어획량은 6672톤으로 작년(5842톤)보다 14% 늘었다. 덕분에 ㎏당 평균 위판 가격은 5865원으로 예년(8365원)보다 30% 싸졌다. 그만큼 물량이 더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부산 아버지와 대전 아들
문 대표는 대전에서 나고 자랐다. 하지만 부산 사투리가 익숙하다. 아버지의 고향이 부산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부산대 공대를 다니다가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낙동강에서 배를 타셨대요. 그때 수산업에 발을 들이신 거죠. 이후에 지인을 따라 대전으로 이사하고 수산물 도소매업을 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기억 속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배경은 늘 떠들썩한 시장이다. “대전 농산물시장 앞에서 장사를 하셨어요. 저녁 8시에 나가셔서 다음 날 새벽이나 아침에 들어오시는 날이 잦았죠. 가을 운동회 같은 행사가 있으면 며칠 전부터 걱정돼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정장 입은 세련된 친구 부모님들과 비교될까 신경 쓰였거든요. 철이 없었죠. 그럼에도 부모님은 당시 연 매출 30억~40억원을 낼 정도로 성실하게 사업을 일궈내셨습니다.”
초등학교 3~4학년 무렵 아버지가 기러기 생활에 돌입했다. 많은 어종이 잡히는 충남 보령으로 가서 직원들과 숙소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1년에 아버지 얼굴을 10번도 못 봤어요. 성인이 되자 비로소 ‘아버지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써 덤덤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조차 안쓰러워 보였죠. 크건 작건 아버지의 일을 도와드리고 싶어졌습니다. 아버지는 경험부터 쌓아야 한다고 하셨죠.”
군대 제대 이틀 만에 첫 출근에 나섰다. 2017년 대형마트의 수산코너에서 칼을 잡았다. “입가에 마이크도 달았습니다. 마트에서 꼭 먹히는 멘트가 있어요. 문어, 전어, 새우, 꽃게 등 어종은 관계없이 ‘살아있다’고 하는 순간 사람들이 몰려들죠. 평소 그런 성격이 아닌데 그 자리에만 서면 능구렁이가 됐습니다. 마트를 찾은 아주머니들과 농담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3년이 흘렀죠. 친구랑 둘이 마트 정산 시스템에 따라 정산했을 때 월 4000만원을 받을 만큼 성과도 좋았습니다.”
2020년부터는 출근지가 보령의 공장으로 바뀌었다. “수협 위판장에서 경매로 사온 수산물을 선별·포장하는 곳입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대뜸 ‘대구 좀 사오라’며 경매장으로 보내셨어요. 경매를 볼 때는 손가락으로 가격을 제시해야 하는데 어떤 손가락을 펼쳐야 하는지조차 몰랐죠. 처음 보는 50~60대 어른들에게 ‘형님’ 하면서 물어물어 겨우 경매를 마쳤어요. 그렇게 벼랑에 몰린 아기새처럼 일을 배웠습니다.”
◇살아있는 꽃게가 우리 집까지 오는 길
2022년 대표 직함을 달았다. 무창영어조합, 신성마린 등 두 법인과 개인사업자 후니씨푸드까지 3개 사업체를 운영한다. 공장 인력 30명에 외부 파견직까지 포함하면 50명 가까운 직원을 두고 있다. 대구·참소라·오징어·문어·광어 등 서해안에서 나는 수산물 전반을 다룬다. 매년 가을마다 ‘꽃게’에 사실상 올인이다. 하루 최대 30톤의 물량을 소화한다. 가을·겨울 약 4개월 동안 꽃게 매출만 100억원에 달한다.
문 대표를 만난 이날은 충남 태안 신진항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공사 현장에서나 볼 법한 커다란 크레인이 삑삑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항구에 정박한 운반선에서 크레인에 꽃게 팔레트를 걸면 이를 육지로 옮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한 팔레트에 플라스틱 상자 10여 개가 실려 온다. 그 속에서 꽃게가 탈출을 꿈꾸며 집게발을 내밀고 있었다.
- 보령에서 차로 2시간 걸리는 태안까지 온 이유가 있나요.
“태안은 가까운 편이에요. 인천부터 남해안에 닿는 부분까지, 서해안에 있는 모든 어종을 취급하는 보물창고이기도 하죠. 보령에도 꽃게잡이 배가 있지만 배 크기가 작은 편이라 파도가 높은 날엔 출항하지 못합니다. 어젯밤이 딱 그런 날이어서 잴 것도 없이 신진항으로 달려왔습니다. 꽃게잡이 배와 항구 사이를 오가는 배를 ‘운반선’이라고 하는데요. 신진항엔 고정운반선이 17척이 있습니다. 한 번에 8~10톤에 달하는 꽃게를 가지고 오죠.”
- 올가을 꽃게가 풍년을 맞았다고요.
“최근 3~4년 중 올해가 가장 많이 잡힌 것 같아요. 물량이 많다 보니 소비자 가격은 상대적으로 낮아졌죠. 크기는 예년에 비해 좀 작은 편입니다. 작년엔 1㎏에 3마리 정도였다면 올해는 4마리 정도예요. 그래도 살은 꽉 찼습니다. 오히려 작아서 먹기 좋다는 분들이 많죠.”
- 암게와 수게 중 어떤 게가 더 많이 잡히나요.
“8월 21일 금어기가 풀리는데요. 9월 초중순까지는 수게가 많이 잡힙니다. 날이 조금씩 쌀쌀해지는 10월부터는 암게가 많이 나옵니다. 게를 먹을 때 무조건 암게를 찾는 분들이 많은데요. 수게와 암게는 순전히 취향 차이입니다. 살만 봤을 땐 수게가 더 야들야들하고 감칠맛이 납니다. 암게는 닭고기로 치면 닭가슴살처럼 조금 퍽퍽한 편이에요. 대신 내장에 밥을 비벼 먹으면 그 고소함이 일품이죠.”
- 잡아 온 꽃게는 어디로 가나요.
“패킹장에서 바로 선별·포장합니다. 신진항에서 사들인 꽃게는 최대한 신진항에 있는 패킹장에서 소화하려고 해요. 꽃게는 죽는 순간부터 빠르게 부패하기 때문이죠. 선별할 때도 꽃게의 생사여부가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죽은 꽃게는 미련 없이 폐기해야 해요. 상처가 있거나 활기가 떨어지는 꽃게는 ‘절단꽃게’라고 해서 게장용·찌개용으로 손질해 나갑니다. 그 외는 모두 산 상태로 유통합니다.”
- 살아있는 꽃게를 어떻게 포장하나요.
“톱밥이 꽃게를 살려줍니다. 꽃게는 펄에 들어가 살기 때문에 그런 서식 환경과 가장 유사한 상태로 만들어 주는 거죠. 열에 취약한 꽃게를 위해 톱밥은 하루 이상 냉장고에 넣어둔 것만 사용합니다. 상자에 먼저 톱밥을 깔고 꽃게를 넣은 다음 톱밥을 한 번 더 붓고 뚜껑을 닫으면 포장은 끝이죠. 대부분 3㎏ 단위라서 한 상자에 10~12마리 정도 들어갑니다.”
◇문 씨네 막내아들 ‘대표’되다
충남 보령 무창포해수욕장의 정 가운데에서 골목으로 300m 들어가면 무창영어조합법인 공장이 나온다. 아버지를 필두로 큰아버지·어머니·이모·누나까지 온 가족이 수산업에 종사한다. 어머니와 이모는 직원들의 식사를 책임진다. 첫째 누나는 디자인 전공으로 온라인 판매를 돕고, 둘째 누나는 회계·재무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 온라인 판매는 언제부터 했나요.
“2015년부터 온라인 판매를 위한 개인사업자 ‘후니씨푸드’를 냈습니다. 나름 여러 가지 시도를 했어요. 직접 라이브 커머스 방송을 켜고 꽃게 먹방을 했더니 1000~2000명 정도가 접속했죠. 2016년엔 포털사이트 쇼핑페이지에서 수산물 판매 순위 1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전체 매출의 10~15% 정도는 온라인에서 나옵니다. 산지 직송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특히 많이 찾는 것 같아요.”
- 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
“매일 새벽 4시 눈뜨자마자 여기저기 전화를 겁니다. 서해안 각 항구로 들어오는 물동량과 위판 단가가 얼마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죠. 납품처에서 요청한 발주량에 맞춰서 수산물을 빨리 사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오전, 오후 내내 선별·포장 작업을 하고 나면 유통사별 납품 시간에 맞춰서 트럭에 실어 보내죠. 전화를 하루에 200~300통, 많게는 1000통까지 하는 날도 있습니다.”
- 포장한 꽃게는 어디로 보내나요.
“전국의 백화점, 대형마트 등으로 유통합니다. 유통사마다 다르지만 보통은 밤 12시까지 평택·여주·경산·김해·대구 등에 있는 물류센터로 입고돼야 해요. 그래야만 오늘 잡아 올린 꽃게를 내일 아침 10시에 전국 마트 수산코너에서 볼 수 있죠.”
-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나요.
“살아있는 생물 상품이다 보니 재고 관리가 힘듭니다. 물때에 따라 조업량이 달라지는데 수요량과 늘 일치하지 않아요. 꽃게 100톤을 사 왔는데 납품하지 못하면 그대로 냉동실에 얼려둬야 합니다. 1억원어치를 냉동한다고 하면, 현금 1억원이 묶여있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라 자금을 굴리기가 정말 힘들어요. 작년에 70~80톤까지 재고가 쌓인 적이 있었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재고 관리 문제 때문에 유통 채널을 다양화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온라인 판매였고요.”
- 수산업자로서 제일 좋아하는 수산물이 있다면요.
“과일도 제철 과일 찾듯이 수산물도 똑같아요. 제철 맞은 수산물이 제일 맛있죠. 가을철엔 꽃게만 한 게 없습니다. 찬 바람 불 때 꽃게탕의 일종인 게국지 국물을 보면 누구든 달려들게 될 겁니다. 양념게장, 간장게장은 말할 것도 없죠. 알고 지내는 어민 분이 ‘소금게장’이라는 것도 만들어주신 적이 있어요. 바닷물로 담은 게장인데 생전 먹어본 적 없는 감칠맛이 납니다. 어떻게 만드는지 물어봐도 비법을 절대 안 알려주시더군요.”
- 맛있는 꽃게를 알아보는 법이 있나요.
“꽃게는 크기보다 무게가 중요합니다. 들었을 때 좀 더 무거운 게가 살이 잘 차올랐다고 볼 수 있죠. 꽃게의 배는 신선함을 확인할 수 있는 척도입니다. 배 껍질이 단단하면 신선한 꽃게예요. 이미 죽었거나 부패한 꽃게는 배를 살짝만 눌러도 검은 내장이 뿌직 튀어나오죠.”
◇어제보다 오늘 더 부지런하게
아버지를 따라 보령에 온 지도 3년이 넘었다. 매일 새벽부터 수백 통의 전화를 받다 보니 3년이 금세 흘렀다. 끼니를 해결할 시간도 부족해 점심은 편의점 핫바로 대신한 날이 부지기수다. 그렇게 바쁜 나날을 보냈는데도 체중은 빠르게 늘어만 갔다. 거래처 대표, 선주 등을 만날 때마다 술잔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호랑이 같은 어른들 앞에서도 기죽는 일이 없다. 갓 잡아 올린 꽃게처럼 할 말은 한다. 꽃게 무게를 달 때 바닷물 무게를 고려해야 한다거나, 먼저 대기하고 있던 우리 트럭이 먼저 나가야 한다면서 조목조목 따져 묻는다. 한번 밀면 한번 당기기도 한다. 아버지뻘인 선주에게 ‘형님!’ 하며 슬쩍 손을 잡는 식이다. 거친 바닷사람들 사이에서 그가 살아남은 방법이다.
- 또래 친구들처럼 도시에서 살고 싶진 않나요.
“운동 생각하면 그러고 싶어요. 이 일에 뛰어들기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을 때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나 늘 헬스장에 갔거든요. 여기선 저녁 9시면 헬스장 영업이 끝나서 맘껏 운동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밤새 문을 연다고 해도 운동할 시간을 내는 것부터 쉽지 않을 거예요.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들에 비해 자유롭게 일할 수 있고, 한 만큼 벌 수 있다는 부분은 큰 장점입니다. 물론 그만큼 책임도 뒤따르죠.”
- 요즘은 아버지와 어떤 대화를 나누나요.
“어릴 땐 아버지가 거인처럼 보였어요. 그랬던 분이 요즘은 술 한잔하실 때마다 제게 ‘미안하다’고 하십니다. 아버지가 이런 약한 모습을 보이실 때면 ‘나는 아버지의 강인함을 먹고 자랐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버지가 기반을 닦아주신 사업을 잘 키워나가는 게 곧 효도가 아닐까요. 그래서 온라인 판매 외에도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꽃게를 비롯한 모든 어종의 선별 과정을 자동화하는 공장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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