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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인 15만6000명이 기증한 혈액 샘플, 곧 세계 구할 신약으로 태어납니다"

바스젠바이오 김호 대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유전체 코호트 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신약 타깃 발굴하는 바스젠바이오의 김호 대표. /더비비드

광산에서 금을 캐려면 세 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먼저 광물인 금이 있어야 한다. 다음으론 광물을 찾기 위해서 광산의 구조를 기록한 설계도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광부가 금을 캘 수 있는 기술을 갖춰야 한다.

신약 타깃 발굴 과정도 이와 같다. 인간의 몸 안에는 유전 정보가 담긴 유전체가 있다. 그 안에는 신약을 만들 때 필요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유전체 설계도가 있다. 최종적으로 설계도를 해석해 신약 타깃을 발굴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바스젠바이오는 15만6000명의 한국인 유전체 데이터와 다인종 데이터를 포함한 총 77만명의 유전체 설계도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신약 타깃을 발굴하는 바이오 스타트업이다. 바스젠바이오의 김호(49) 대표를 만나 김 대표를 만나 효과적이고 안전한 약물 개발을 위한 타깃 발굴 여정을 들었다.

◇대학원 냉장고에 있던 15만6000명의 혈액 데이터

15만6000명의 혈액 데이터를 활용해 혁신신약 타깃 발굴에 나섰다. /김호 대표 제공

김 대표는 임상연구분야 전문가다. 10년이 넘게 질병 연구·임상시험 등 신약 개발과 관련한 일을 했다. “2001년 첫 직장이었던 한 임상시험센터에서 7년간 질병을 연구하고 임상시험을 진행했어요. 환자를 추적 관찰하는 일도 맡았죠. 이후 2008년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로 이직해 신사업개발팀 팀장으로 7년간 근무하며 다양한 신약 개발 과정을 경험했죠.”

2022년 연세대 보건대학원 역학과 석사를 졸업했다. 재학 시절 전공 교수가 수집 중인 15만6000명의 한국인 유전체 코호트 데이터를 우연히 접했다. “유전체 코호트란 유전 정보에 건강검진기록과 의료기록 등을 연계해 장기 추적한 자료입니다. 이를 분석하면 질병과 생체 분자 간의 연관성을 밝힐 수 있죠. 코호트 데이터는 만성질환이나 희소질환 등의 원인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때부터 15만6000명의 사람들이 기부한 혈액을 활용할 방법을 고민했다. “실제로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지만 혈액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크게 감동했어요. 난치병 등 치료법 개발에 사용하라고 혈액을 기부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거든요. 15만명이 넘는 사람의 혈액을 냉동고에 보관하기엔 아깝단 생각이 들었어요. 이 소중한 혈액으로 환자들에게 효과적인 새로운 치료법을 찾아야겠다고 판단했죠. 그 길로 창업한 게 바스젠바이오입니다.”

◇유전체 코호트 데이터와 AI의 만남

대규모 유전체 코호트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신약 개발 플랫폼 딥시티를 개발했다. /김호 대표 제공

바스젠바이오는 대규모 유전체 코호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AI 신약 개발 플랫폼 딥시티(DEEPCT, DEEP learning-based Clinical Trials)를 개발한 기업이다. 딥시티를 이용하면 임상시험 단계에서 동물이나 사람이 실제로 약을 복용하지 않고 약물 효과 검증부터 타깃 발굴, 임상최적화 등을 수행할 수 있다.

인간 유전자에서 신약 발굴의 실마리를 찾았다. “몸은 질병이 생기면 자연적으로 치유하는 능력이 있어요. 이는 약을 만들 때 필요한 정보가 이미 몸 안에 있다는 뜻이에요. 인간 유전자 중 약 3000개 정도가 약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보를 가졌습니다. 쉽게 말해, 약을 만들 때 몸 안의 어떤 물질을 변화시키면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설계도를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700여개의 설계도가 세상에 나와 수 천개의 약물로 개발됐어요. 저희는 남은 2300여개의 유전자에서 최초의 약물인 ‘혁신신약(FIC, First in Class)’을 개발할 수 있는 신규 타깃을 발굴하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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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만6000명 규모의 유전체 코호트 데이터 독점 사용권을 확보했다. 여기에는 20년 이상 추적 관찰한 한국인의 건강검진기록과 의료기록이 포함됐다. “이 데이터가 중요한 이유는 추적 관찰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질병의 치료법을 찾기 위해선 인과관계가 명확해야 해요. 예컨대, 한 사람이 암에 걸렸을 때 중간에 방사능에 노출이 됐다면 그게 원인일 수 있잖아요. 하지만 해당 정보가 빠져 있으면 암에 걸린 핵심적인 이유를 놓칠 수 있죠. 저희의 15만 유전체 코호트 데이터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립암센터 등과 연계해 건강 정보를 축적하고 있기 때문에 데이터의 공백이 없어 명확한 인과관계 파악이 가능합니다.”

딥시티를 통해 타깃 발굴부터 약물 효과 검증까지 효율적으로 수행한다. /김호 대표 제공

AI 기술을 활용한 전통적인 신약 개발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약효를 예측해 신약 후보 물질 발굴 과정을 효율화하는 게 특징이다. “과거의 신약 개발 방식은 ‘우연’에 기대왔어요. 수천 번의 세포 실험 중에 우연히 효과가 있는 약을 발견해 개발하는 식이었죠. 이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비효율적입니다. 신약 타깃 발굴에 AI를 접목하면 수천 번의 시험 없이도 후보 물질의 임상시험 성공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딥시티는 AI를 기반으로 가상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는 기술이다. 임상시험의 위험성도 낮춰준다. “임상시험은 실제 환자에게 아직 검증되지 않은 약물을 투여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합니다. 이에 저희는 임상시험 이전에 가상의 환자에게 가상의 약물을 주는 임상 시험 시뮬레이션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독점적으로 보유한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약물을 가상의 환자에게 복용시켜 효과를 예측하고, 부작용이 있다면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다른 방식을 고안하는 식으로 탐색합니다.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을 효율적으로 찾는 기술인 거죠.”

기존의 AI 신약 개발 기업의 문제점을 보완했다. “기존 AI 신약 개발 기업의 경우, 논문 등의 오픈소스를 바탕으로 약물의 화학 구조를 변화시켜 약효를 개선하는 데 집중합니다. 오픈소스를 사용하면 출판 편향과 선택 편향이 생길 수 있어요. 출판된 논문 등의 자료를 기반으로 하다 보니 실험에 대한 긍정적인 결과를 선호하면서 부정적인 결과를 묵인할 수 있는 거죠. 저희는 멘델 무작위화 방법(MVMR, Multivariable Mendelian Randomization)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방식은 유전자 정보를 기반으로 가상의 약물을 개발하는 작업인데요. 출판 편향과 같은 정보 편향의 걱정 없이 유전자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정확히 분석할 수 있습니다. 양질의 데이터를 충분히 보유해야 할 수 있는 기술이라 기술 자체가 경쟁력입니다.”

최근 남성형 탈모에 효과적인 신약 타깃 후보 물질을 발굴했다. /김호 대표 제공

최근 글로벌 제약사 C사의 자가면역질환에 대한 신규 타깃 발굴 프로젝트를 마쳤다. 이 밖에도 자체적으로 남성형 탈모 신약 타깃 후보 물질을 발굴해 특허 출원을 진행 중이다. “남성형 탈모의 경우 기업의 요청 없이 타깃 발굴부터 검증까지 자체적으로 진행했어요. 저희가 개발한 딥시티 기술이 상업적 가치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10개의 타깃을 발굴해 실험한 결과 8개에서 효과가 입증됐어요. 이 과정으로 딥시티의 기술력뿐 아니라 새로운 신약 타깃까지 발굴하는 일거양득 효과를 냈습니다. 탈모 신약 타깃은 추후에 기술이전할 예정입니다.”

임상 전 단계에서 발굴한 신규 타깃을 기술이전하는 방식으로 이윤을 창출한다. “신약 후보 물질 발굴이 끝나면 전임상시험을 거쳐 임상시험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임상에 들어가는 돈은 스타트업이 감당하기에는 큰 액수입니다. AI 신약 개발 회사를 포함한 기존 신약 개발 기업은 직접 신약을 개발해 임상까지 진행하는 장기 사업모델을 채택하는데요. 성공 시 큰돈을 벌 수 있지만, 실패하면 위험성이 큽니다. 따라서 저희는 투자 위험이 높은 방식을 택하기보다는 신규 타깃까지 발굴하고 기술이전하는 걸 목표로 삼습니다.”

◇국내·외 제약사와 함께하는 신규 타깃 발굴 프로젝트

국내·외 제약사와 다양한 신규 타깃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김호 대표 제공

국내의 유수 기업이 바스젠바이오의 기술력에 주목하고 있다. 대웅제약, 영진약품 등 국내 제약사와 함께 항암 신약 타깃 발굴과 후보 물질을 검증 등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에서도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2022년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와 서울시가 주최하는 공모전 ‘제3회 헬스엑스 챌린지 서울’에서 1위에 선정됐습니다. 또 글로벌 제약사 암젠과 보건복지부가 주최하는 공모전 ‘피칭데이’에서 2위에 올랐습니다. 지난해 5월 셀트리온과 파트너십 계약과 지분투자 계약을 체결해 향후 5년간 10개의 공동연구와 개발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글로벌 기업과 신규 타깃 발굴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글로벌 바이오 기업과의 연결고리 된 서울바이오허브 입주

2022년 서울바이오허브에 입주해 여러 지원을 받았다. /김호 대표 제공

서울바이오허브의 지원도 받았다. 서울바이오허브는 서울시가 조성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고려대가 운영하는 바이오·의료 창업 혁신 플랫폼이다. “2022년 서울바이오허브에 입주했어요. 지난 6월에는 서울바이오허브의 지원으로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개최된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 2024(BIO International Convention 2024, BIO USA 2024)’에 참가하여 기업 발표와 글로벌 투자사와의 파트너링 기회를 얻었습니다. 서울바이오허브와 인베스트서울이 주최한 ‘서울바이오포럼’에서 글로벌 바이오산업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기업설명회 발표도 성공적으로 마쳤고요. BIO USA 역대 최대 규모의 한국관 오픈스테이지에서도 기업 발표를 통해 세계적인 시장에 바스젠바이오를 알릴 수 있었습니다. 투자사와 미팅 등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과 교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협력 파트너를 찾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치료제를 꿈꾸며

국내를 넘어 전 세계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게 꿈이다. /더비비드

투자업계에서도 바스젠바이오의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2021년 DS자산운용으로부터 60억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같은 해 연세의료원에서 25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고 지난해에는 셀트리온으로부터 1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어요. 올해 총 100억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진행 중이며 투자금은 신규 타깃 발굴의 기술이전을 위한 전임상시험에 활용할 계획입니다.”

올해 20억원 매출을 예상한다. “2022년 4억5000만원, 2023년 4억8000만원의 매출을 달성했어요. 올해 이미 매출 20억원에 해당하는 계약을 마무리했어요.”

국내를 넘어 전 세계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게 꿈이다. “매년 20개 이상의 새로운 타깃을 발굴할 계획입니다. 이중 최소 10개 이상을 기술이전하고 싶어요. 많은 질병의 원인을 찾고 약이 될 만한 다양한 타깃을 찾아내 국내·외 환자에게 다양한 치료 선택지를 제공하는 게 목표입니다. 최종적으로는 자가면역질환이나 난치병 등 아직 치료제가 없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환자의 생명을 구할 신약을 개발하고 싶어요.”

/진은혜 에디터, 주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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