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쌀가루 말고 '가루쌀', 세계 과자 시장 잡겠다고 나온 한국 과자

더 비비드 2024. 6. 21. 15:47
가루쌀로 만든 농협 스낵 2종 개발기

우리쌀칩을 들고 포즈를 취한 농협식품연구소의 김형배 팀장. /더비비드

‘밥 대신 빵, 밥 대신 면’. 밥상 풍경이 달라지면서 우리나라 쌀 수급에 적색등이 켜졌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85년 이후 매년 줄고 있다. 감소폭은 나날이 커지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연간 1인당 쌀 소비량은 2022년 57㎏로 10년 전인 2012년(70㎏)보다 18% 가량 줄었다.

반면 2022년 쌀 생산량은 376만4000톤으로 400만6000톤이었던 10년 전보다 6% 감소하는 데 그쳤다. 소비 감소보다 생산 감소 속도가 더뎌 과잉생산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가루쌀’이 대표적이다. 가루쌀은 물에 불리지 않고 밀처럼 바로 빻아 쓸 수 있어 가공이 용이하다. 농협식품R&D연구소(이하 농협식품연구소)는 쌀 소비 촉진의 일환으로 가루쌀로 스낵을 만들었다. 스낵 개발을 주도한 농협식품연구소 상품개발팀의 김형배 팀장(44)을 만나 개발기를 들었다.

◇밀과 닮은 듯 다른 쌀

가루쌀을 제분한 결과물. 가루쌀은 쌀을 물에 불리지 않는 건식 제분이 가능해 가공 비용이 대폭 절감된다.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진흥청은 쌀 과잉 생산 문제를 해결하고, 밀을 대체하기 위해 가루쌀 ‘바로미2’를 개발했다. 일반 쌀과 영양 성분은 동일하지만 전분 구조가 밀과 비슷해 물에 불리지 않고 바로 제분할 수 있다. 공정 방식은 밀가루와 비슷한데 속은 다르다. 가루쌀에는 밀가루의 불용성 단백질 성분인 글루텐이 없어 밀가루에 과민반응 하는 소비자도 안심하고 섭취할 수 있다.

농협 우리쌀칩 2종. /농협식품

최근 농협식품연구소는 이 가루쌀을 활용해 우리쌀칩 2종과, 쌀로팝 2종을 개발했다. 지난 6월 출시된 농협식품 우리쌀칩은 넓고 얇은 칩의 형태로 현미맛과 양파맛 두 가지다. 튀기지 않고 열풍에 구운 오일프리(oil-free) 방식으로 제조해 바삭하고 담백하다. 한국쌀가공식품협회로부터 글루텐프리 인증을 받았다. 현미와 천일염으로만 만든 현미맛은 고소한 풍미가 강하다. 양파맛은 국산 양파와 간장으로 맛을 내 감칠맛이 난다. 현재 전용몰 '미스타팜'에서 특가 행사를 하고 있다.

쌀로팝 2종. /농협식품

출시를 앞두고 있는 쌀로팝은 보다 젊은 세대를 겨냥한 제품이다. 100명 이상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맛 테스트를 거쳐 대파크림맛과 매콤떡볶이맛 2종을 낙점했다. 치토스처럼 길쭉하고 둥근 형태로 국산 대파와 농협 벌꿀 고추장으로 맛을 냈다. 쌀로 만든 과자 고유의 담백한 바삭한 식감에 달콤 짭짤한 양념 맛이 조화롭다. 쌀로팝 2종은 농협과 오리온의 합작법인 ‘오리온농협’에서 생산한다.

◇식품 연구원이 농협을 택한 이유

농혁식품연구소의 전경. /더비비드

농협식품연구소는 전국 118개에 달하는 지역 농협 가공공장의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국산 농산물을 활용해 식품 원료나 상품을 개발하는 조직이다. 농협식품, 목우촌, 농협홍삼 등의 농협 계열사와도 활발히 협력하고 있다. 가공공장과 계열사를 연결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도모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농협식품연구소의 김형배 팀장은 요즘말로 ‘성공한 덕후’(가장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일컫는 유행어)다. 먹을 것이 좋아 오로지 식품 외길만 팠다. 아주대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한 후 동대학 대학원에 진학해 커피의 초임계 추출법을 연구했다. 커피 추출과 관련한 특허도 보유하고 있다. 석사 후 식품 대기업 연구개발 조직에서 소스, HMR(가정대용식) 등을 개발하며 경력을 쌓다가 2018년 농협식품R&D연구소에 입사했다. 현재는 아주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중이다.

김 팀장은 식품 연구개발 외길만 걸었다. /더비비드

- 식품 연구개발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먹는 걸 좋아합니다. 보유한 지식과 기술로 더 맛있고 몸에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제가 만든 제품을 다른 사람이 먹는 게 연구자의 꿈이니까요. 두 아이의 아버지라 평소 식품 첨가물 등에 관심이 많기도 합니다.”

- 농협이란 조직을 택한 이유는요.

“식품 연구자로서 국산 농산물에 대해 소구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조직은 농협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난 원료로만 제품을 개발한다는 취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입품을 쓰지 않으니 제약이 많아 쉽지 않을 테지만 그만큼 보람이 클 것 같았습니다.”

- 연구소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

“파, 마늘, 고추 등의 국산 농산물을 이용해서 부가가치 높은 제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농협 입사 후 가장 먼저 개발한 건 우리 쌀로 만든 부침가루와 튀김가루입니다. 시중에 쌀을 사용한 부침가루나 튀김가루는 많지만, 밀가루를 하나도 쓰지 않은 건 저희 제품밖에 없습니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라 출시 당시엔 우려했는데, 수출까지 될 정도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우리나라 쌀의 참 맛을 보여줄 비장의 무기

제분한 가루쌀을 들고 미소를 짓고 있는 김 팀장. /더비비드

요즘 농협식품연구소의 역점 사업은 가루쌀을 활용한 스낵 개발이다. 가루쌀 가공사업을 통해 쌀 소비를 촉진해 과잉생산분을 보전하려는 구상이다. 가루쌀 확산은 농가에게도 도움이 된다. 가루쌀은 이모작이 되기 때문에 농가는 추수 후 밀이나 보리를 심어서 농가소득을 증대할 수 있다.  스낵 한 봉지에 ‘큰 그림’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쌀칩과 쌀로팝이 탄생했다.

- 가루쌀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외국 쌀과 비교했을 때 우리 쌀은 찰지고 풍미가 진한 편입니다. 다만 밥쌀은 가공용으로 부적합한데요. 가루쌀은 밀가루랑 비슷한 특성 때문에 제과, 제빵에 활용되기 좋습니다. 우리 쌀 고유의 맛을 지니면서도 가공이 쉽죠. 쌀을 물에 물린 후 버리는 과정이 생략되니 가공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건 물론 환경오염 예방 효과까지 있습니다.

쌀로팝에 시즈닝을 뿌리는 실험을 하고 있는 김 팀장. /더비비드
연구를 진행 중인 흔적들. (왼쪽부터) 우리쌀칩 2종, 아직 시즈닝 처리를 하지 않은 쌀로팝. /더비비드

- 우리쌀칩과 쌀로팝 두 제품의 기획 취지를 알고 싶습니다.

“우리쌀칩의 콘셉트는 ‘쌀 본연의 건강한 맛을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간식’이었어요. 전 연령층을 아우르는 게 목표였죠. 건강한 간식에 초점 맞췄습니다. 기름을 사용하지 않은데다 밀가루가 아예 들어가지 않은 글루텐 프리 제품이에요. 쌀로팝은 젊은 세대가 우리 쌀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단으로 기획됐어요. ‘쌀로 만든 디저트는 맛이 없다’는 편견을 깰 무기였죠.”

- 주안점을 둔 부분은요.

“쌀칩의 경우 식감에 주력했습니다. 쌀가루 함량을 달리해가며 무수히 많은 실험을 진행하고, 식감 분석 기기를 활용해 최적의 식감을 구현했습니다. 먹어보면 압니다. 너무 딱딱하지도 않고 딱 기분 좋게 바삭해요. 쌀로팝은 젊은 세대를 입맛을 사로잡는데 집중했어요. 매력적인 시즈닝이 관건이었죠. 개발 단계에서 양파맛, 콩소메맛, 칠리맛도 후보에 있었는데요. 박람회 등에서 선보인 후 가장 좋은 반응을 얻었던 대파와 떡볶이 맛을 최종 선택했습니다. 재료끼리의 조화에도 많이 신경 썼습니다.”

완제품을 대상으로 미생물 실험을 진행 중인 모습. /더비비드

- 먹거리 유행에 빠삭해야겠네요.

“트렌드 조사는 필수입니다. 정기적으로 연구원들과 하나로마트와 시중의 대형마트를 방문해요. 국내에서 열린 식품 박람회에도 자주 참여하죠. 빅데이터도 참고합니다. 포털 사이트를 이용하면 성별, 연령대별 검색어와 검색 횟수를 확인할 수 있어요. 이런 데이터를 분석해서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음식, 좋아하는 맛을 파악합니다. 탐나는 수입산 원재료를 접했을 땐 이를 대체할 우리나라 농산물은 뭐가 있을까 연구하죠.”

- 모든 재료가 국산이면 가격이 비싸지 않나요.

“맞아요. 맛과 질을 보장하면서 가격까지 잡는 방법을 궁리하는 게 모든 농협 연구원들의 숙제입니다. 우선 국산 과잉 농산물을 활용해서 가격적인 부담을 줄입니다. 소재를 개발할 땐 맛과 향을 극대화하는데 초점 맞춰요. 동일한 원료를 투입해도 보다 강한 맛을 낼 수 있게끔 공정 조절을 합니다.”

◇우리나라 쌀의 변신은 이제 시작입니다

쌀 부침가루, 우리쌀칩 등 농협식품연구원에서 개발한 제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 팀장. /더비비드

지난 6월 출시된 우리쌀칩은 농협 하나로마트 뿐만 아니라 국내 대형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판매 중이며 몽골 진출을 앞두고 있다. 출시를 앞두고 있는 쌀로팝은 하나로마트를 시작으로 본격 유통될 예정이다. 쌀로팝 역시 북미에 수출할 예정이다.

- 두 스낵의 출시에 대한 기대효과가 궁금합니다.

“쌀 제품도 맛있다는 인식을 줘서 쌀 소비를 촉진하는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아울러 스낵이 우리나라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국산 농산물 가공 사업을 활성화하는 발판이 됐으면 합니다. 우리들의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공들여 키운 농산물의 가치를 전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 앞으로의 계획은요.

“가루쌀로 실험을 거듭할수록 스낵 제조에 최적화된 소재라고 느껴요. 향후 가루쌀로 더 많은 스낵을 출시하고 싶어요. 스낵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다른 분에야도 가루쌀을 적용할 구상이에요. 소스나 잼처럼 전분에 필요한 식품에 활용할 수 있거든요. 이미 개발을 진행 중인 제품도 있습니다. 기대해도 좋아요. 개인적인 목표도 있어요. 지금도 박사 과정을 통해 전문지식을 쌓고 있는데요. 배운 것들을 접목해 우리나라 농수산물의 부가가치를 향상하는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