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의 '연결되지 않을 권리'
“김 대리, 퇴근 시간에 미안한데 이 자료 한 번만 확인해 줘” 직장인이라면 받아본 적 있을 퇴근 후 업무 연락이다.
그러나 업무 시간 이후 오는 연락을 받지 않아도 되는 법률이 통과된 나라가 있다. 지난 26일(현지시각)부터 호주는 근로자의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을 시행했다. 이른바 ‘연락 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이 법률은 직원이 근무 시간 외에 고용주나 고객의 연락에 답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받을 수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만약 이를 위반할 경우, 연락한 직원은 최대 1만9000호주달러(약 1700만원), 기업은 최대 9만4000호주달러(약 8439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이 법률은 근로자가 직장에서 받는 이메일이나 전화 등으로 개인 생활이 침해받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집과 직장의 경계가 무너지는 사례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호주연구소 미래연구센터(The Centre for Future Work at the Australia Institute)의 지난해 조사 결과를 보면 호주 근로자는 2023년 평균 281시간의 무급 초과근무를 했다. 추가 근무를 임금으로 환산하면 1300억호주달러(약 116조7452억원)로 추산된다.
현지 노조와 인권단체 등은 법안을 환영하고 있으나, 고용주 단체인 호주산업그룹 등은 “생산성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업무 시간 외 연락을 금지해 사생활을 보호하는 법안을 도입한 국가는 호주가 처음은 아니다. 비슷한 법률이 프랑스와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와 라틴 아메리카 등 20여개국에서 시행 중이다. 지난 2018년 프랑스에선 해충관리 기업 렌토킬이니셜이 해당 법을 위반했다가 법원으로부터 6만유로(약 8900만원)의 벌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국내에서도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이른바 ‘카톡 금지법’이 지난 19대와 20대 국회 등에서 여러 차례 발의됐으나, 법률제정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다만 관련 논의는 계속되는 중이다. 지난달 29일,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근무 시간 외에 전화나 메시지 등을 통해 업무 지시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정부 역시 지난달 13일, ‘새로운 디지털 질서 정립 추진계획’의 8대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 보호’를 지정해 논의에 들어갔다.
근로자의 휴식과 사생활 보호 등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변화는 긍정적이지만 일각에선 근무 시간과 비근무 시간으로 기준을 이분법화했다가 부작용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업종·직급마다 업무 양상이 다른데 해당 법을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호주의 소식을 접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한국에도 도입 시급”, “퇴근 후엔 집에서 쉴 권리가 있다”라는 호의적 반응을 보였다. “나도 직장인이지만 어쩔 수 없이 연락해야 하는 일도 많다”, “업종별 특징을 고려하지 않아 현실성이 없다”며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 이도 있었다.
/주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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