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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가 캠브리지대 나와 쓰레기 줍고 다니는 이유"

비대면 생활 폐기물 수거 서비스 ‘오늘수거’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어글리랩의 서호성 대표. /더비비드

코로나 팬데믹이 창궐했던 카투사 부대 안. 외출을 할 수 없었던 군인들은 배달음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국인들은 문제가 없었지만 미군들은 곤란했다. 한국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사용할 줄 몰랐던 탓이다. 한 한국 군인이 미군 대신 배달을 시켜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환율 시세 차액과 팁으로 쏠쏠하게 용돈을 벌었다.

그 군인은 현재 쓰레기 분리배출 서비스 ‘오늘수거’를 개발했다. 어글리랩 서호성 대표(29)의 얘기다. 그를 만나 창업기를 들었다.

◇배달 사각지대에 놓인 미군에게 주목한 영국 유학생

서 대표는 영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녔다. /더비비드

서 대표는 영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녔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수학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실생활과 밀접한 영역에 끌렸어요. 2018년 학부를 졸업하고 공학이나 적정기술, 사회적 기업을 가졌습니다. 자연이 스타트업 생태계에 눈이 갔어요. 사회에 순영향을 미치면서 수익을 창출할 방법을 탐구했어요. 돈을 벌거나 의사결정을 하면서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다고 믿었거든요.”

군 복무 때문에 귀국했다. 입대 전 6개월 동안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탐구했다.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만나 창업 이야기를 들었어요. 해외여행 상품 플랫폼 트립스토어의 운영사 엑스트라이버에서 잠시 근무도 했었죠. 반년 만에 직원이 20명에서 50명으로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아직 창업할 준비가 안 됐구나’ 생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2019년 카투사에 입대하자마자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외출도 못 하며 복무했다. “밖에 나가질 못하니 모두가 배달음식을 시켜먹었어요. 하지만 한글 배달 앱을 사용할 줄 모르는 미군들은 곤란스러워했죠. 그 모습을 보고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미군들에게 배달음식을 대신 주문해주고 환율 시세 차액과 팁으로 용돈을 벌었어요. 문제를 방치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고안한 것이죠.”

◇쓰레기 분리 배출 대신하는 서비스 구상

서 대표는 군 복무 중 창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어글리랩

군대에서 발견한 아이디어는 이게 끝이 아니다. 두번째 아이디어는 쓰레기 배출 과정에서 탄생했다. “복무한 곳이 미군 땅이라 쓰레기를 분리 배출할 필요가 없었어요. 봉투 안에 모든 쓰레기를 한 번에 넣고 버렸죠. 그렇게 지내다 바깥 세상에 나오니 쓰레기 분리 배출하는 일이 아주 불편하게 느껴졌어요. ‘이를 대신해주는 서비스가 없을까’ 고민하던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오늘수거’의 시초가 됐어요.”

분리 배출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이 출발점이었지만, 보다 큰 그림을 그렸다. 바로 쓰레기를 자원 순환 구조에 편입하는 것이다. “생활 쓰레기 중 제대로 재활용되는 게 거의 없습니다. 종량제 봉투를 까보면 일반 쓰레기만 있는 게 아니에요. 막 섞어서 버리는 경우가 대다수죠. 이런 쓰레기들은 결국 소각됩니다. 마음먹고 재활용한다면 할 수 있겠지만, 쓰레기를 고품질의 원료로 만드는 덴 비용이 많이 듭니다. 그러니 결국 소각장으로 향할 수 밖에요. 버리는 게 싸니까요.”

오늘수거로 수거한 분리수거한 쓰레기들. /어글리랩

2020년 11월, 전역하자마자 강남역 인근의 오피스텔에 입주해 창업 준비를 시작했다. 첫 걸음은 전단지 뿌리기였다. “‘쓰레기를 한달 동안 무료로 대신 버려준다’는 내용을 담은 전단지를 쓰레기 봉투에 넣어 같은 오피스텔 전 가구에 부착했어요. 70가구에 붙였는데 신청한 가구는 단 한 곳에 불과했죠. 문제점을 알기 찾기 위해 주변에 피드백을 요청했습니다. 전단지가 허술해 신뢰가 안 가고, 무료라는 게 마음에 걸려 신청하기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어요. 전단지를 다시 만들고 웹사이트를 구축했어요. 일정의 금액을 받기로 한 후 2주 뒤에 다시 전단지를 돌렸습니다. 70가구 중 11가구가 신청했어요.”

이용자가 생기니 본격적인 실험이 가능했다. “이런 저런 테스트를 해보니 한 번 이용한 분들이 계속 결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재구매율이 높고 수요가 꾸준히 발생하겠다는 판단이 섰죠. 옆 오피스텔에도 전단지를 붙였는데 그곳에 입주한 다른 스타트업 대표님이 페이스북에 전단지를 게시해줬어요. 그 게시물을 계기로 투자자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고, 팀원도 생겼습니다.”.

◇분리 수거의 종착역은 업사이클링

어글리랩의 리사이클링 허브 전경. /어글리

2021년 8월 어글리랩 법인을 설립하고 2022년 4월 공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오늘수거는 단순히 쓰레기를 대신 버려주는 서비스가 아닙니다. 이용자가 수거 봉투에 모든 쓰레기를 한데 담에 집 앞에 내놓으면 밤사이 수거팀이 쓰레기를 수거해요. 그렇게 수거한 쓰레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저온 재활용 시설인 어글리랩 리사이클링 허브로 갑니다. 리사이클링 허브는 일종의 냉장 창고입니다. 악취 유발 박테리아가 증식할 수 없는 온도로 맞춰놓고 일을 하기 때문에 선별장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아요. 인체에 유해한 가스 발생도 줄여주죠.”

리사이클링 허브에 간 쓰레기는 파봉, 선별, 분리, 세척 단계를 거친다. “보통 종량제 봉투에 버리는 쓰레기들은 오염이 됐을 때 소각해버리지만 오늘수거에서는 선별 및 세척 과정을 통해 쓰레기를 새로운 자원으로 재탄생 시킵니다. 이 과정이 종착역은 업사이클링 제품이에요. 기업 고객과 협업해 쓰레기로 만든 티트레이와 명함꽂이를 제작했어요. 아직 테스트 단계지만 잘 마무리하면 일반 소비자도 자신이 버린 쓰레기로 만든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날 수 있어요. 저희가 가장 앞세우는 가치인 ‘자원순환’의 결과물인 셈이죠.”

리사이클링 허브에서 쓰레기를 처리하는 모습. /어글리랩

지구 환경을 생각하는 만큼 어글리랩 소속 근로자가 처한 환경 역시 중요하게 여긴다. “리사이클링 허브는 악취를 유발하는 박테리아가 증식할 수 없는 온도를 유지합니다. 사람이 일하기 훨씬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죠. 이곳에 10명의 정규직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데요. 모두 책임감을 가지고 일에 임하고 있습니다.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자원의 선순환 창출 목표

내가 버린 쓰레기가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활용됐는지 등의든 과정을 공유하는 게 계획이다. /더비비드

물론 어려운 날도 있었다. 적자의 시기도 겪었다. 하지만 점차 이용자가 늘면서 작년 말부터 흑자 전환했다. 개별 소비자 외에 토스, 패스트파이브 등의 기업 고객도 확보했다. 2023년 8억5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누적 투자금액은 40억원이다. 지난 4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 본선에 진출했다.

이전엔 내가 버린 쓰레기가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활용됐는지 알 길이 없었다. 어글리랩은 그 모든 과정을 공유해 쓰레기에 숨은 가치를 보여줄 계획이다. “재활용률을 확인하는 인공지능(AI) 도입을 추진 중입니다. 공정과정 세분화와 비용 절감을 위한 자동화도 당면한 과제죠.”

수거한 쓰레기를 새활용하는 모습. /어글리랩

궁극적인 목표는 원재료 거래 기업이 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쓰레기 수거 서비스로 브랜드 인지도를 쌓는 중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버린 쓰레기가 좋은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해요. 우리나라 폐기물 시장엔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요. 자원순환의 경험을 직접 제공해 환경을 생각하는 이용자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김지은 객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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