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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저게 가능해요?' 요즘 한국 농부들이 쌀 농사를 짓는 방법

담양 RPC 탐방기

담양군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이하 담양RPC)의 이종혁 대표. /더비비드

전라남도 담양군에 들어서자 녹색 평원이 펼쳐졌다. 여름의 더위를 버티며 더욱 푸르게 자란 벼가 연출한 장관이었다. 논에 가까이 다가서자 질서정연하게 식재된 벼 사이로 동글동글한 조약돌 같은 게 눈에 들어왔다. 제초제를 대체하기 위해 입식한 우렁이였다. 잡초를 먹고 무럭무럭 자란 우렁이는 남다른 덩치를 자랑했다.

담양군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이하 담양RPC)의 이종혁 대표는 손에 커다란 우렁이를 올려놓고 이 지역의 명물 친환경인증쌀을 소개했다. 올해 ‘전남 10대 고품질 브랜드쌀 대상’을 받은 고품질 쌀을 자랑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대숲맑은 담양쌀’ 이름으로 유통되는 담양RPC의 쌀은 특유의 깊은 맛과 풍미로 인기몰이 중이다. 수년째 여러 상을 휩쓸 만큼 품질과 평판도 좋다. 담양RPC를 방문해 없던 입맛도 돌아오게 만드는 맛있는 쌀의 탄생 비결을 들었다.

◇담양관내 쌀 생산량의 60%를 책임지는 곳

담양RPC의 전경. 이곳은 정부의 고품질유통활성화사업의 일환으로 관내 7개 농협이 출자해 설립했다. /더비비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인 전라남도 담양은 쌀이 자라기 좋은 환경을 갖췄다. 영산강 상류에 위치해 토지가 비옥한데다 담양 댐을 중심으로 농업 용수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담양군 자체적으로 폐기물이 발생하는 시설을 규제해서 오염원도 적다. 게다가 공기 정화능력이 뛰어난 대나무가 많아 전국에서 가장 밤하늘이 맑은 고장으로 꼽힌다. 땅 좋고 물 맑은 곳에서 자란 덕에 담양 쌀은 품질과 풍미가 뛰어나다.

담양RPC는 정부의 고품질유통활성화사업의 일환으로 관내 7개 농협이 출자해 설립했다. 본공장과 위성공장 2곳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 공장을 합산한 부지면적은 약 1만1645평(3만8495㎡), 건축면적은 약 3129평(1만344㎡)에 달한다. 연간 계약재배 물량은 2500ha(헥타르)로, 그중 친환경 물량은 1000ha다. 담양RPC는 담양관내 생산량(2만7000t)의 60%인 1만8000t을 수매한다. 이와 같은 RPC는 전국 131개가 있는데, 신선한 쌀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전국 1000개 학교가 찾는 쌀의 비결

담양RPC의 대표 상품은 ‘대숲맑은 담양쌀'을 들고 포즈를 취한 이 대표. /더비비드

담양RPC의 대표 상품은 ‘대숲맑은 담양쌀’이다. 유기농, 무농약 농법으로 재배한 ‘친환경’ 라인과 단일품종으로만 이루어진 특등급의 ‘고품질’ 두 종류로 이루어져 있다. 친환경 쌀의 경우 2011년 무상급식 실시와 함께 재배를 시작했다. 현재는 수도권과 제주도 6개 지자체의 1000개 학교에 친환경 쌀을 납품하고 있다.

고품질 쌀은 담양PRC의 효자 품목이다. 2013년, 2014년 전국 12대 브랜드쌀에서 최우수상과 대상을 받았고 2016년에는 대한민국 명품쌀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2011년부터 올해까지 전남 고품질 10대 브랜드쌀 대회에서 14년 연속으로 최우수상과 대상을 받았다. 생산부터 소비까지 다양한 측면의 평가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야만 이룰 수 있는 성과다.

담양RPC의 내부.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석발기 및 색채선별기로 가득한 내부, RPC 내에서 포즈를 취하는 이 대표, 곡물 분석기에 쌀을 투입하는 모습, 분석 결과를 확인 중인 이 대표. /더비비드

- 큰 성과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계약재배 농가와 꾸준히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품질을 높인 노력이 주효했습니다. 매년 영농 교육이나 마을별 모종 교육을 실시해 품질 좋은 쌀을 키울 수 있도록 장려합니다. 쌀 재배의 시작 단계부터 책임집니다. 쌀의 품질은 품종 순도와 비례하는데요. 여러 품종이 섞이면 순도가 떨어집니다. 단일품종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육묘를 생산하고, 수확 시 타 품종이 혼입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합니다. 상품성 좋은 쌀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 어떤 품종을 재배하나요.
“친환경 쌀의 품종은 강대찬, 고품질 쌀의 품종은 새청무입니다. 그중에서도 새청무는 담양의 핵심 품종입니다. 청무 품종과 새누리 품종의 장점을 결합하고 단점은 보완해서 탄생했는데요. 밥맛이 뛰어나면서도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력이 뒷받침되는,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두루 우수한 품종입니다. 전라남도의 토질에 가장 어울리는 품종이기도 하고요. 새청무는 쌀알이 단단합니다. 식감이 탱글탱글하고 찰기가 오래갑니다. 식어도 찰기가 유지될 정도죠.”

친환경쌀은 말 그대로 무농약 유기농 농법으로 재배한 제품이다. 제초제 대신 우렁이를 넣는다. /더비비드

- 친환경쌀과 고품질쌀의 차이가 궁금합니다.
“친환경쌀은 말 그대로 무농약 유기농 농법으로 재배한 제품입니다. 화학비료 대신 발효퇴비를 사용하고요. 꽃의 일종인 자운영을 심습니다. 자운영이 공기 중의 질소를 흡입해 땅심을 높이는 역할을 하죠. 그리고 제초제 대신 우렁이를 논에 둡니다. 300평당 1.5kg의 새끼 우렁이를 입식하는데요. 이 우렁이들이 밤새 잡초를 먹어 치웁니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친환경농법 초창기에 오리 농법을 도입한 적이 있었는데요. 모두 도망가버린 바람에 실패한 적도 있었죠.”

- 수매한 쌀의 상품화 과정을 알고 싶어요.
“농가에서 막 벤 벼를 탈곡해서 가지고 오면 수분율 15.5~16% 사이로 건조해서 생산자별로 톤백에 보관합니다. 이렇게 보관해야 이력을 추적할 수 있거든요. 주문이 들어오면 왕겨를 벗겨내 현미를 만듭니다. 그 다음엔 쌀눈과 겨층을 벗겨내 백미를 만들어요. 그 이후엔 석발기 및 색채선별기 등으로 곡물에 혼입된 이물질을 제거합니다. 최종 포장 전에는 금속선별기로 한번 더 이물질을 거르는 작업을 해요. 그 다음 최소 500g부터 20kg까지 여러 단위로 포장합니다. 이 모든 절차는 자동으로 진행됩니다. 하루 생산량이 최소 40t~60t에 달하지만 근무인원이 10명에 불과하죠. 모두 기계로 처리하니까요.”

대숲맑은 담양쌀은 농협 하나로마트, 도매, 학교급식, 쿠팡 같은 온라인 플랫폼 등 다양한 유통처에 납품된다. /담양RPC

- 이렇게 생산한 쌀은 어디로 유통하나요.
“농협 하나로마트, 도매, 학교급식, 쿠팡 같은 온라인 플랫폼 등 다양한 유통처에 납품합니다. 하나의 유통처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유통처별 납품 비율을 일정하게 조율하고 있습니다. 완급조절을 해서 매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중이죠. 체코, 네덜란드, 프랑스, 미국 등 해외로 수출도 합니다. 2023년 기준으로 매출 326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이토록 쌀에 진심인데, 쌀 소비량이 줄고 있어 걱정이 크겠어요.
“쌀밥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 할 것 같아요. 쌀 공포심 마케팅을 접할 때 마다 안타까워요. 요즘 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쌀 가공식품을 만드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쌀 소비에 탄력을 줄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주식으로서의 쌀의 역할이 회복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담양 RPC가 할 수 있는 일이 여기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처럼 장려금 지급, 교육 등 지원을 확대해서 농가에 동기부여할 구상입니다.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고품질 쌀을 생산하는데 주력을 다하겠습니다.”

◇쌀의 가능성, 이토록 무궁무진합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프랑스 파리 인근 퐁텐블로에 위치한 국가대표 사전훈련캠프를 찾아 농협 농식품을 전달했다. /농협

이종혁 대표의 말처럼 먹거리가 다양해지고 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형성되면서, 쌀 소비 촉진이 농촌과 농협의 새로운 과제로 부상했다. 이에 농협은 쌀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다양한 홍보,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지난 13일 프랑스 파리 인근 퐁텐블로에 위치한 국가대표 사전훈련캠프를 찾아 농협 농식품을 전달했다. 전달한 농식품에는 국내산 쌀을 포함한 잡곡류 7종이 포함돼 있다. 올림픽 기간 동안 한국 쌀의 매력을 직관적으로 알려줄 이벤트도 준비했다. 농립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이 선정한 파리 시내의 우수 한식당들이 농협 쌀로 만든 쌀밥을 선보일 예정이다. 강호동 회장은 “한국쌀 고품질화와 판촉 강화를 통해 교민 시장을 시작으로 외국 소비자에게 쌀을 알릴 것”이라고 전했다.

요리 체험 프로그램 ‘쌀벤져스 요리교실’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농협

그동안 몰랐던 쌀의 또다른 용도를 알려주는 행사도 기획했다. 7~9월 동안 밥과 쌀을 활용한 요리 체험 프로그램 ‘쌀벤져스 요리교실’이 운영된다. 참가자는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쌀로 과자나 케이크 같은 디저트를 만들거나 리조또, 파에야, 인도 카레 같은 외국 음식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농협 관계자는 “쌀이 체중 증가의 주범이라는 인식을 겨냥해 ‘살 빠지는 한식, 다이어트 김밥’같은 프로그램도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청원생명조공법인이 개발한 가루쌀 스낵 제품. /청원생명조공법인

쌀의 수요를 견인하기 위한 사업 다각화 전략도 펼치는 중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쌀 가공품 생산이다. 청원생명조공법인은 농협식품R&D 연구소와 농협식품 등과 협약을 맺고 가루쌀 그래놀라 2종과 가루쌀 스트로베리 팝 1종을 개발했다. 태국 수출을 염두에 두고 개발한 가루쌀 과자 4종도 있다. 쌀의 소비를 진작하면서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제품 개발이 목적이다. 

해당제품은 글로텐프리 인증과 비건 인증 등을 받았다. 국내 시장에서는 학교 급식과 방과 후 교실 등 학교를 중심으로 제공될 예정이다. 청원생명조공법인 관계자는 “건강에 대한 요즘 소비자들의 수요와 글로벌 소비자를 겨냥해 인공첨가물과 알러지 유발 물질을 사용하지 않은 건강한 쌀과자를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강호동 회장은 “농협의 다양한 쌀 가공식품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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