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 반환보증보험 한도 축소
서울 영등포구에 전세 2억원짜리 빌라를 구한 직장인 최모(33)씨는 보증금 1억7000만원에 월세 15만원 조건으로 재계약했다. 굳이 월세 조건을 부가한 것은 국토교통부가 지난 5월부터 전세 보증보험 가입 요건을 ‘공시가격의 1.5배’에서 ‘공시가격의 1.26배’로 낮추면서 전세 보증 한도가 1억7000만원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씨는 보증금 차액 3000만원에 대해 월세로 돌려 재계약했다.
정부가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이 전세 사기에 악용되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보증기관의 전세 보증 가입 요건을 강화하면서 전셋집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가 낮춘 보증한도에 들지 못하는 전셋집이 늘었기 때문이다.
◇세입자도 집주인도 울상
‘전세 보증보험’은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때, HUG가 대신 임차인에게 돈을 돌려 주는 것이다 임차인 또는 임대인이 가입할 수 있다. 시세가 불분명한 빌라나 오피스텔은 전세 보증보험 한도가 ‘전세금의 기준선’ 역할을 한다. 혹시 보증금을 떼일 것을 염려해, 임차인은 전세 보증 한도 내에서 전세 계약을 하기 때문이다.
전세 사기와 역전세(전셋값이 하락해 보증금을 제때 못 돌려받는 것) 우려가 커지면서 세입자들 사이에선 보증보험이 필수가 됐지만 전세 매물 가운데 보증금이 가입 요건보다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성동구 A빌라(29㎡)의 2021년 공시가는 2억4900만원으로 보증한도는 3억7350만원이었다. 하지만 2023년엔 보증한도가 2억9358만원으로 줄었다. 강화된 전세 보증 가입 요건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올해 전국 공동주택(아파트·연립·다세대) 공시가격이 18% 하락한 것까지 감안하면, 보증 한도 축소 폭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세입자는 보증한도 내에 드는 전셋집을 구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보증보험 없이 전세 계약을 하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반전세 또는 월세를 선택하고 있다.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내놓은 정책이 도리어 세입자를 궁지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세입자뿐 아니라 집주인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공시가격이 내린 데다, 보증 한도까지 강화되면서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은 ‘보험 가입이 가능한 한도까지 보증금을 내려야 계약하겠다’며 돌아서고 있다. 집주인은 나가는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마냥 전셋값을 내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전세보증보험 가입자 절반이 갱신 탈락 위기
내년에 혼란은 더 커질 수도 있다. 정부가 올해까지는 신규 전세 계약에만 강화된 규정을 적용했지만, 내년 1월부터는 기존 계약 갱신이나 재계약 때에도 보증 한도가 줄어든다. 현재 보증보험에 가입된 주택의 절반가량은 해당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9일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전세금 반환보증에 가입한 15만3391가구 중 7만1155가구(46%)가 향후 현 수준의 보증금으로 계약을 체결하면 보증 가입 심사에서 탈락하게 된다. 특히 탈락 위험 가구 중 90% 이상이 공시가 3억원 이하 저가 주택이고, 60%는 전세 사기에 취약한 다세대 빌라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정부는 임대사업자가 가입하는 ‘임대보증금 반환 보증보험’의 가입 요건도 일반 전셋집과 똑같이 ‘공시가의 1.5배’에서 ‘공시가의 1.26배’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임대사업자는 보증보험 가입이 의무이므로, 주택 여러 채를 임대하는 사업자는 제도가 바뀌면서 단기간에 큰돈을 마련해야 할 처지가 된다. 보증보험 가입 의무를 어기면 임대사업자에게 최대 3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세입자는 보증금을 떼일 수도 있는 위험에 노출된다.
전세 사기에 대한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범정부 전세사기 특별단속 기간을 올해 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전세 사기 의심사, 공인중개사가 가장 많아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7월부터 약 1년간 범정부전세사기 특별단속을 하고 있다. 특별단속 대상은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거래신고가 된 빌라, 오피스텔, 저가 아파트 거래 중 전세사기 의심거래 2091건을 추출한 자료와 전세피해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상담사례 등이었다.
이에 따라 적발된 전세사기 의심거래 건수는 1538건, 피해 보증금은 총 2753억원 규모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서울 강서구가 365건(보증금 합계 887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기 화성시(176건, 239억원), 인천 부평구(132건, 219억원), 인천 미추홀구(158건, 202억원) 등이었다.
전세사기 수사의뢰 대상자 1034명 중에선 공인중개사 및 보조원이 427명으로 전체의 41%를 차지했다. 임대인은 266명(25.7%), 건축주 161명(16.6%), 분양·컨설팅 업자는 120명(11.6%) 등이었다. 수사 의뢰된 분양·컨설팅업자 중에는 전세사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신축 빌라 불법 표시·광고 5966건을 게재한 48명이 포함됐다.
국토부는 올 연말까지 연장된 전세사기 특별단속 부동산 거래신고 조사 대상을 대폭 확대해 전세사기 의심 거래를 걸러낼 계획이다.
/이연주 에디터
'밀레니얼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해 미친듯 질주하던 넷플릭스의 근황 (0) | 2024.07.19 |
---|---|
“내가 3억원 짜리 집 한 채로 노후를 보내고 있는 방법” (0) | 2024.07.19 |
월가 황제 “시장에 순풍이 불고 있다, 투자자라면 앞으로..” (0) | 2024.07.19 |
"그렇게 다들 돈, 돈, 돈 하더니 도서관 풍경마저 이렇게 바뀌었네요" (1) | 2024.07.19 |
은퇴자가 주식으로 한 달 200만원 배당 받으면 벌어지는 일 (0) | 2024.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