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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金) 사과 값, 어떻게든 잡아아죠. 눈코 뜰 새 없습니다"

더 비비드 2024. 6. 20. 15:34
1년에 사과만 1만톤 출고하는 문경거점산지유통센터 취재기

문경거점산지유통센터 전경. 세차게 내리던 눈이 몇 시간만에 그쳤다. /더비비드

23일 오후 도착한 경북 문경시 거점산지유통센터(이하 문경 APC).  도착하자마자 눈발이 쏟아졌다. 추위를 피하려 서둘러 달려 들어갔지만 바람을 막아줄 뿐 차가운 온도는 여전했다. 사과 상자가 성인 키를 훨씬 웃돌 정도의 높이까지 쌓여 있던 현장.

문경 APC는 설 명절을 앞두고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게차는 삐용삐용 소리를 내며 움직였고,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선 작업자도 손을 바삐 움직였다. 그곳엔 모두 사과가 있었다. 강승규 센터장(44)과 함께 명절을 앞둔 문경 APC의 현장을 둘러봤다.

◇사과 10개 중 6개는 대구경북이 고향

대구경북능금농협 서병진 조합장이 지역별 사과 재배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더비비드

사과는 일교차가 클수록 단맛이 강해진다. 대구경북 지역은 높은 일교차와 일조량으로 예부터 사과의 주산지로 꼽혔다. 청송·문경·영주 등 대구경북 지역의 사과 생산량은 2022년 기준 33만톤이다. 전국 전체 생산량 56만6000톤의 58.4%에 달하는 비율이다.

대구경북능금농협은 과수를 전문으로 하는 품목 농협으로 대구경북 지역의 사과, 포도, 복숭아 등을 취급하고 있다. 주요 사업은 단연 ‘사과’다. 과실의 품질을 결정하는 동계 전정(가지치기) 교육과 육묘사업 등을 주도하고 있다. 생산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도입했던 꼭지무절단(꼭지를 절단하지 않는 수확 방법)은 인건비 절감뿐만 아니라 과수의 수분이 덜 날아간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

사과 배 선물 상자를 포장한 모습. /더비비드

2024년 설 명절을 앞두고 대구경북능금농협은 다양한 과일 선물 세트를 구성했다. 사과와 배로 구성된 선물 상자는 물론, 사과·배·샤인머스캣·한라봉·레드향 등으로 구성된 제품도 있다. 1인 가구가 늘면서 한 세트로 다양한 과일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도록 했다. 이날은 사과·배 선물 세트 포장이 한창이었다. 작업자들은 사과 담당과 배 담당으로 나눠져 과일을 하나씩 포장해 상자에 담았다.

이날 문경거점APC 건물 입구에 들어섰을 때부터 상큼한 사과 향을 맡을 수 있다. 맛있는 사과를 고를 때 가장 먼저 발견하는 힌트는 향기다. 덜 익은 사과는 향이 거의 없고, 충분히 익은 사과는 은은하고 달달한 향기가 난다. 또 사과 표면을 살필 때는 옆면보다는 꼭지 반대 부위를 봐야 정확하다. 아랫부분까지 녹색 없이 붉은 빛이 도는 것을 먼저 택하고, 그 다음 과피의 붉은 빛이 전반적으로 고르게 퍼진 사과를 고르면 된다.

선물 상자 밖으로 풍기는 향에 이끌려 사과를 하나 들어 봤다. 굳이 사과에 코를 가져다 대지 않아도 달큰한 향이 퍼졌다. 한 손에 꽉 차고도 남을 정도로 크고 묵직했다. 바지춤에 쓱쓱 문질러 한입 베어 물자 입가 양옆으로 과즙이 흘러나왔다. 이미 바닥까지 과즙이 몇 방울이나 흘렀다.

◇딱 얼지 않을 정도로만 차갑게 보관

좌측으로 길게 늘어선 저온저장고(왼쪽). 저장고에 들어가 보면 수미터 높이로 사과 상가 쌓여 있다. 모두 지난 가을에 수확한 사과다. /더비비드

대구경북 지역에서 재배한 사과는 각 지역에 흩어진 산지유통센터 14곳에서 선별·보관한다. 그중에서도 경북 문경에 위치한 거점산지유통센터(이하 문경거점APC)는 매년 약 1만톤의 사과를 취급한다. 하루 최대 선별량은 약 50톤이다. 상근 직원 57명, 명절 등 극성수기엔 200여 명이 일할 정도의 규모다.

문경거점APC 건물의 대부분은 저온 저장고로 이뤄져 있다. 지난 가을에 수확한 사과를 이듬해 초여름까지 보관하기 위해서다. 사과는 온도와 습도만 잘 맞춰도 수개월 이상 보관할 수 있기 때문에 입고 직후부터 저온저장시설에서 보관한다. 강 센터장은 “옛날엔 동굴 같은 곳에 사과를 보관했다고 한다”며 “이젠 365일 균일하게 관리하는 저온저장창고가 사과의 맛을 책임진다”고 설명했다.

11월 농가에서 노란색 PVC상자에 담아서 들어온 사과는 곧장 저온 저장고로 들어간다. 0~영하 0.5℃로 맞춰진 곳이다. 강 센터장은 “사과는 당도가 있기 때문에 0℃에도 얼지 않는다”며 “사과가 쪼글쪼글해지지 않도록 습도는 95%로 설정한다”고 설명했다.

컨베이어 벨트에 하나씩 올리기만 하면 당도 검사, 크기 선별은 자동으로 이뤄진다. /더비비드

중앙에 위치한 사과 선별장에서는 ‘삐걱’, ‘철컥’, ‘퉁’ 하는 기계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사람이 사과를 하나씩 컨베이어벨트에 올리면 무게·당도 측정과 분류는 모두 기계가 담당한다. 컨베이어벨트는 다시 30여 갈래로 나눠진다. 사과를 크기와 품질에 따라 분류한 것이다. 그 끝에 선 작업자들은 사과를 상자에 담아 포장했다. 현재 온라인몰에서 한정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명절 대목 앞둔 사과 선별장

설 명절 연휴를 앞두고 사과 포장이 한창인 문경거점APC 작업자들의 모습. /더비비드

세척 사과 작업실은 비교적 썰렁했다. 빈 상자만 가득 쌓여 있었다. 세척 사과는 편의점 등에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하나씩 개별 포장한 사과다. 강 센터장은 “세척 사과는 오전 작업으로 오늘치 분량을 모두 끝냈다”며 출하장으로 안내했다. 이어 “명절을 앞두고 선물 상자 포장 작업이 가장 바쁘다”고 설명했다. ​

명절 선물 상자 작업장에서 본 사과는 크기부터 달랐다. 한 손에 쥐기에 힘들었다. 강 센터장은 “전 세계적으로 큰 사과를 선호하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지만 최근 1인 가구가 늘면서 중소과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명절만 되면 어김없이 대과를 찾는 이들이 많다”면서 큼지막한 사과를 들어 보였다.

사과, 배 선물 상자 속 사과. 옆면이 잘 보이도록 눕혀서 포장한다. /더비비드
대구경북능금농협 서병진 조합장은 한국사과연합회 회장을 겸하고 있다. /더비비드

상자 안엔 사과만 있는 게 아니었다. 문경 거점APC에서는 사과 단일 박스보다 다양한 과일을 섞은 혼합 박스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3㎏ 박스 하나에 사과·배·샤인머스캣·한라봉·레드향 등 5색 과일을 담았다. 대구경북능금농협 전체로 따지면 약 25만 세트가 출하를 앞두고 있다.

대구경북능금농협 서병진 조합장(79)은 “사과 값이 올라 소비자 부담이 클 것을 우려해 혼합 과일 세트에 공을 들였다”며 “단점을 장점으로 보완해 한 상자로 다양한 과일을 맛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