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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튜브 보기 위해 손가락 쓰는 게 귀찮았던 삼성 출신이 떠올린 기발한 방법

원격으로 스마트폰·태블릿PC 조작하는 '릿제로 리모컨' 개발사 블루티움 김완중 대표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김완중 블루티움 대표. 신인류를 위한 만능 리모컨 ‘릿제로’를 개발했다. /더비비드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도 성가신 ‘귀차니스트’. 집 안에서 온갖 즐거움을 찾는 데 통달한 ‘집순이’와 ‘집돌이’. 스마트 기기의 발전은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켰다. 부지런 떨지 않아도 다양한 콘텐츠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이다.

스마트 기기의 부속품도 신인류의 행동 양식에 맞게 진화하고 있다. 제조 스타트업 블루티움은 신인류를 위한 만능 리모컨 ‘릿제로’를 개발했다. 블루티움 김완중(48) 대표의 릿제로 개발노트를 엿봤다.

◇장갑 벗고 이어폰 조작하는 게 귀찮았던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

블루투스 리모컨 겸 마우스 겸 터치 패드 '릿제로'를 이용해 태블릿PC를 조작하는 모습. /블루티움

‘릿제로’는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과 같은 스마트 기기와 블루투스를 통해 호환하는 리모컨이다. 스마트 기기와 떨어져 있어도 간단한 터치와 제스처로 기기를 컨트롤 할 수 있다. 등록을 마친 특허만 8개다.

다양한 모드로 활용 가능하다. 마우스 모드에선, 릿제로를 노트북 터치 패드처럼 사용할 수 있다. 손의 이동 경로에 따라 화면 속 커서가 움직인다. 제스처 모드에서는 손짓으로 음악 재생·멈춤과 곡 넘김, 전자책 페이지 넘김 등을 할 수 있다. 누워서 웹툰, 웹소설을 정주행 하는 것은 물론 먼 거리에서 스마트폰 카메라를 조작할 수 있다.

전용 앱을 이용하면 더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릿제로를 잃어버렸을 경우 기기 찾기 기능을 통해 15m 반경 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릿제로 하나로 최대 8대의 기기에 연결할 수 있다. 안드로이드, 윈도우, iOS, macOS 등 주요 운영체제 모두 지원한다.

다양한 디자인으로 커스터마이징 한 릿제로를 전시해놓고 웃어보이는 김완중 대표. /더비비드

김완중 대표는 광운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20년간 삼성전기, 포스콘(포스코ICT) 등에서 시스템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대학생때부터 줄곧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만 바라봤어요. 와이브로 모뎀, UWB 모뎀 등 무선 통신기 칩셋을 주로 설계했죠. 꽤 인정받는 엔지니어였어요. 칩셋을 직접 설계하면서 통신 기술이나 센서와 관련한 지식을 차곡차곡 쌓았죠.”

2017년 블루티움을 창업했다. “처음엔 터치스크린 부품회사로 출발했어요. 스마트 기기에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부품이라 시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뛰어들었죠. 칩셋을 개발하고 양산하는 단계까지 갔었습니다.”

주력 제품을 바꾸게 만드는 사건은 갑자기 벌어졌다. “아주 추운 겨울날의 일이었어요. 버스를 기다리면서 음악을 듣고 있는데,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는 데다 장갑까지 끼고 있어서 이어폰에 달려있는 버튼으로 조작하는 게 불편하더라고요. 문득 터치나 제스처로 볼륨이나 재생 상태를 조절할 수 있는 패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의류 브랜드의 로고 모양으로 만들어 옷 위에 부착하면 일석이조일 것 같았죠.”

◇블루티움 릿제로 창업노트

1. 참신한 아이디어가 브랜드의 외면 받았던 이유

릿제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부품을 조립하는 모습. /김완중 대표 제공

세상이 이 아이디어에 호응할까, 검증에 나섰다. “2018년 ‘터치가 되는 패치형 로고’로 전국 스마트 디바이스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지역우수상을 받았어요. 홍콩에서 개최되는 사업 아이템 경진대회에서 톱10으로도 선정됐죠.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시제품을 개발해 국내외 전시회에 참가했다. 다양한 패션 브랜드와 미팅도 했다. “아웃도어 브랜드뿐만 아니라 럭셔리 브랜드와도 만났어요. 비즈니스 모델을 두고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몇몇 문제점이 발견됐습니다. 우선 단가가 걸렸어요. 패치가 적용되면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두번째는 브랜드 이미지였어요. 저희 제품을 브랜드 상품에 적용했을 때 발생할 수도 있는 잠재적 위험에 대한 우려가 나왔어요. 블루티움은 막 시작한 새내기 회사에 불과하니까요. 브랜드 입장도 충분히 납득이 갔죠.”

2. 패치 대신 활용도 높은 브로치 모양으로 변경

IR 피칭을 하고 있는 김완중 대표. /김완중 대표 제공

보다 넓은 시장을 공략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틀기로 했다. “패치보다 범용성이 좋은 브로치로 형태를 변경했어요. 제품에 기업이나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야 하니 예쁘면서도 단순하게 디자인했죠. 딱 봤을 때 너무 값이 안나가 보이면 안되니까 매트한 색감을 썼습니다. 휴대성을 고려해 손바닥보다 작은 사이즈로 만들었어요. 두께는 6mm로 잡았을 때 손에 무리가 없어요”.

작지만 리모컨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갖췄다. “스마트폰 터치스크린에 적용된 기술과 동일한 정전식 터치스크린 기술과 스크린 센싱 기술을 적용했어요. 감지한 움직임을 신호로 처리하는 기술이죠. 손의 제스처를 인식해 브로치와 연결된 기기를 조작할 수 있어요.”

2019년 1월 ‘일레트로브로치’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크라우드 펀딩에 출시했다. 제스처로 스마트 기기의 카메라, 음악 재생 프로그램, 웹툰, 전자책 등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기기로 홍보했다. “홍보, 마케팅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였어요. 휴대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활용해 상세페이지를 괴발개발 직접 만들었죠. 결국 크게 자랑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어요.”

3. 이용자의 사용 패턴을 겨냥한 마케팅이 성공한다

플라스틱이 아닌 고급 가죽을 사용한 릿제로X. /김완중 대표 제공

일반 소비자 대상으로 판매하는 과정에서 마케팅 상 부족한 점이 더 드러났다. “회사 구성원들이 모두 엔지니어라 제품 개발 능력 하난 자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어요. 애써 만든 걸 어떻게 팔아야 할 지 도저히 감히 안 잡히더라고요. 마케팅 전략을 새로 짜야 했죠. 리브랜딩부터 단행했어요. 기존의 이름보다 추상적이면서 호기심을 자아내는 명칭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죠. 아주 놀랍다는 뜻의 영어 ‘lit’과 이전에 없는 제품이라는 의미로 ‘zero’를 합성해 ‘릿제로’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케팅 힌트를 얻었다. “’일단 질러 질렐루야’라는 다음 웹툰에 저희 제품이 소개됐어요. 우연히 저희 제품을 접한 작가님이 릿제로를 만화 소재로까지 활용했더라고요. 극 중 다쳐서 병원에 입원한 주인공이 릿제로를 활용해 태블릿 PC로 전자책을 봤는데 너무 편하고 좋았다는 내용이었어요. 이날 하루에만 40개 가까이 나갔어요. 큰 수치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전까지는 어쩌다 하나씩 팔리는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저 놀라웠죠. 이후 100개가량의 추가 주문이 더 들어왔어요. 콘텐츠와 결합한 마케팅의 폭발력을 실감한 순간이었죠.”

2020년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참여한 블루티움 부스. 왼쪽에 서있는 사람이 김완중 대표다. /김완중 대표 제공

2020년 12월, 작가를 수소문해서 질렐루야 캐릭터를 적용한 콜라보 제품을 출시했다. “짧은 기간 동안 2000만원에 가까운 매출이 발생했어요. 이후 네이버 웹툰 문을 두드렸죠. 라이선스 담당자를 만나 릿제로와 콘셉트가 맞는 작품을 찾아 나섰어요. 1020대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독립일기’를 추천받았습니다. 귀엽고 게으른 주인공 캐릭터가 애용할 법한 물건이니까요. 크라우드 펀딩으로 독립일기 에디션을 출시했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오픈 첫날부터 2000개 주문이 들어오더니 한 달 동안만 1억6500만원의 매출을 올렸어요. 저희 제품은 콘텐츠와 결합했을 때 빛을 발한다고 확신했죠.”

4. 생산 환경에 변수 많은 제조업,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법

릿제로를 이용해 스마트폰을 조작해서 웹툰을 보는 모습. /김완중 대표 제공

입소문이 나 판매량이 늘기 시작했을 때 위기가 찾아왔다.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로 릿제로에 들어가는 칩셋이 단종됐어요. 주문량이 늘어도 생산을 못하는 상황이 닥친 거죠. 제품을 받기 위해 대기하는 고객이 4000명 가까이로 늘었어요. 답답했죠.”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발만 동동 굴릴 순 없었다. 주어진 시간 동안 제품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이용자들의 후기를 토대로 사용감을 높였어요. 우선 화면에 마우스 커서를 띄워서 조작하는 ‘마우스 모드’를 추가했어요. 충전 포트도 범용성이 큰 USB C 타입으로 교체했죠. 제품 표면에는 점자로 방향을 표시했어요. 한 시각장애인분이 방향을 파악할 수가 없어 불편하다는 의견을 제시했거든요.”

2021년 4월, 패션 브랜드 ‘엑스페리먼트’와 합작한 릿제로X를 필두로 2세대를 출시했다. “콘텐츠나 소비자 취향별로 여러 라인을 출시했어요. 독립일기, 유미의 세포들처럼 웹툰과 결합한 버전과 디즈니 에디션 같은 인기 캐릭터를 적용한 버전 그리고 파스텔톤의 색감으로 제작한 마카롱 버전 등을 선보였죠.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콘텐츠를 소비하는 모든 디바이스에 적용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고자 했습니다.”

◇귀차니스트 노렸더니 수험생, 장애인도 열광

'귀차니스트'를 노렸지만 수험생이나 시각장애인 등 많은 분야 사람들에게 릿제로가 유용한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낀다는 김완중 대표. /더비비드

2만개 판매를 넘어섰다. 일본에서 진행한 크라우드 펀딩에서 1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한 수험생분이 후기를 남겨준 적이 있어요. 태블릿PC로 인터넷 강의를 듣는 분이었는데 화면을 터치할 필요 없이 조작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하더라고요. 필기하기가 편해서 공부 효율이 올랐다며 ‘인강의 혁명 같은 제품’이라고 극찬하셨어요. 뿌듯했죠. 예상치 못한 용도도 확인했어요. 시각장애인이나 지체장애인도 많이 찾아요. 릿제로가 있으면 일상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연락해온 분들에게 무료로 보내준 적이 있습니다.”

현재 당면한 과제는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B2B 시장에 본격 진출하고 싶습니다. 관건은 단가를 낮추는 것입니다. 성능을 유지한 채 가격 경쟁력을 높이려면 연구, 개발은 필수에요. 그동안 자기 자본, 국책 사업 지원비 등으로 개발비를 조달했는데 이제는 투자를 유치할 때 인 것 같아요. 탄력 받으면 1년 내에 크게 성장하리라 확신합니다. 지금도 행사 답례품으로 제작해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와요. 팬덤 과의 협업도 구상 중이죠. 릿제로는 도화지 같은 기기예요.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하죠.”

제조업 창업은 난도가 높은 만큼 보람도 크다고 했다. “선택지가 있다면 제조업 창업을 말리고 싶어요. 너무 힘들거든요. 제품 기획, 개발부터 마케팅, 소비자 응대, 사후관리까지 손이 안가는 영역이 없어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디자인 등 어느 요소 하나라도 부족하면 쉽게 외면 받죠. 하지만 이 모든 고난을 딛고 제품이 일정 궤도에 오르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게 제조업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결국 큰 애착이 생기고, 그만큼 중독적인 영역이 되는 것 같습니다.”

[블루티움 김완중 대표 이력]
2002년 광운대 전자공학과 졸업
2005년 삼성전기 입사
2006년 포스콘 입사
2017년 블루티움 창업
- 제품 개발기간: 1년
- 제품 개발비용: 5억원
- 직원수: 4명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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