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독박육아' 갈등하던 부부, 인생을 바꾼 부동산 계약

더 비비드 2024. 7. 12. 09:22

옷 쇼핑몰 와이엠스토어와 스튜디오 드길 함께 운영하는 부부
포토그래퍼 겸 모델 출신 아내가 경력 살려 의류 디자인 및 촬영
남편은 사업 운영과 마케팅 담당...동업 후 갈등 거의 없어

출처: 본인제공

김유미, 구영모 부부

출산은 축복이지만 불화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경력단절에 따른 여성의 좌절감, 육아방식을 둘러싼 갈등이 기폭제가 돼 가족 구성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일과 육아로 얽힌 복잡한 방정식을 슬기롭게 풀어나간 부부가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두 개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김유미씨와 그의 남편 구영모 씨를 사진 스튜디오 드길에서 만났다.

스튜디오와 의류 쇼핑몰 공동 운영하는 재주 많은 부부

출처: 본인제공

와이엠스토어에서 판매하는 의류들

만난 지 10년 차, 결혼 7주년을 맞이한 두 사람은 의류 브랜드 와이엠(YM)스토어와 사진 스튜디오 드길을 공동 운영한다. 와이엠이라는 명칭은 유미, 영모 이름의 영문 이니셜에서 따온 부부의 브랜드다.

와이엠스토어에서는 편안한 실루엣에 고급 원단을 적용한 옷을 판다. “항상 곁에 있지만 당연하지 않고 소중한 친구같은 디자인을 지향합니다. 불필요한 디테일을 줄이는 대신 실루엣으로 멋을 살리는데 중점을 두죠.”

출처: 본인 제공

스튜디오 드길의 전경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스튜디오 드길은 자연광 스튜디오다. “빛과 어둠이 조화로운 계조가 풍부한 사진을 선호합니다. 화려하게 리터칭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가장 나다운 모습을 포착하죠. 오래 두고 봐도 촌스럽지 않은 사진을 찍습니다.”

두 비즈니스는 부부의 협동 하에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스토어에서 판매하는 의상의 디자인과 룩북(Lookbook)에 들어갈 사진 촬영 및 작업 모두 아내 김씨가 담당한다. 촬영이 스튜디오 드길에서 이뤄질 때도 있다. 구씨는 의류 배송과 CS(고객관리), 마케팅, 거래처 관리 등을 담당한다.

출처: 와이엠스토어

와이엠스토어의 옷은 모두 김유미 대표가 디자인했다.

와이엠스토어와 드길은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하는 젊은 소비자 사이에서 마니아 층을 형성했다. 와이엠스토어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멋스러운 색상에 편안한 스타일’이라는 피드백이 가득하다. 드길은 본연의 매력을 담고 싶어하는 배우지망생이나 모델지망생들이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얼마 전 둘째를 맞이하며 사적으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포토그래퍼겸 모델과 바리스타의 만남

출처: 본인제공

김 씨는 모델로 활동했다.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시즌3의 모델로 참가해 담당 디자이너가 옷을 만드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아내 김유미 씨는 어릴 적부터 카메라와 친했다. 예술 고등학교와 예술 대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발판으로 모델활동까지 했다. “대학생 때 서울 컬렉션의 백스테이지와 캣워크 현장을 촬영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때 연을 맺은 모델 친구들이 ‘너도 키가 크고 매력 있으니 모델을 해보는게 어떻겠냐’ 권해서 22살부터 모델로 활동했어요. 포토그래퍼 겸 모델로서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남편 구영모씨 와는 동기 모델을 통해 연을 맺었다. “처음 만났을 때 남편은 바리스타였지만 그 전에는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에 종사했었어요. 한복 디자이너인 시어머니 덕에 옷과 패션에 대한 이해도도 뛰어났고요. 패션과 디자인이라는 공통분모를 발판으로 급속도로 가까워졌습니다.”  

출처: 본인제공

남편 구 씨는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에 다니다가 바리스타로 전직했다. 한복 디자이너 어머니를 둔 덕에 옷과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

애정이 커질수록 함께 하고 싶은 마음도 부풀었지만 현실의 벽이 가로막았다. 각자 꿈을 위해 정진하느라 만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 결국 공동의 목표를 세우는 결단을 내렸다.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카페를 차리기로 했습니다. 스튜디오도 선택지에 있었지만 암실 생활에 우울감을 느꼈던 시절이라 접었어요. 2012년 서촌에서 카페 YM을 열고 꿈 같은 시간을 보냈어요. 손님이 일찍 빠지면 빔 프로젝터로 영화도 보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죠.”

좋아서 한 일이 밥벌이가 되자 닥친 위기

출처: 본인제공

두 사람이 서촌에서 운영했던 카페 YM의 모습

카페 개업 1년 후 결혼을 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카페가 잘 되기 시작하면서 확장이전을 했는데, 그때제가 첫째를 임신해서 일을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결국 남편 혼자서 직원을 고용해 카페를 운영했습니다. 남편은 즐기던 일이 돈벌이로 바뀌어 스트레스를 받았고 저도 육아를 전담하면서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일하던 제 모습이 그리웠어요.”

설상가상 남편 구씨에게 병이 찾아왔다. “남편이 2년이나 투병 생활을 했어요. 카페를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죠. 사업 전환을 고민하던 중 매물로 나온 드길을 우연히 발견했어요. 고즈넉하고 볕이 잘드는 자리에 반해 바로 계약을 하고 카페는 다른 사람에게 넘겼습니다. 앞으로는 사진에 집중하자고 약속하고 2018년 3월 스튜디오 드길을 세웠습니다.”

출처: 본인제공

카메라를 만지고 있는 김 씨와 스튜디오 드길 내부 모습

다시 카메라를 잡은 아내 김씨는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모델 시절 촬영 현장에서 조명 세팅, 촬영장비 등을 유심히 봐둔 게 다 자산이 됐어요. 카메라 앞에서 굳은 고객분들의 포징을 잡아줄 수 있는 것도 모델 경력 덕분이죠. 처음 오신 분들도 편안하게 사진을 찍고 갈 수 있는 게 드길만의 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카페에서 스튜디오로 업종을 바꾸면서 무엇이 가장 많이 달라졌나요?

“삶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카페는 오픈과 마감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계속 손님을 기다리고 대비해야 하는데 스튜디오는 100% 예약제로 운영하니까 탄력적으로 일할 수 있거든요. 정해진 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 육아와 집안일도 공동으로 할 수 있습니다. 카페를 관두자 마자 남편도 건강을 회복했어요.”

스튜디오 개업 후 자체 제작 의류 쇼핑몰에 도전장

출처: 본인제공

김 대표는 스튜디오를 차리면서 숙원이었던 의류 디자인에도 뛰어들었다.

일터에 복귀하며 자신감을 되찾자, 아내는 숙원이었던 의류 디자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쇼핑몰을 오래전부터 운영했지만 지금과 많이 달랐어요. 옷을 사입해서 파는 식이었죠. 디자인이 좋아도 원단이나 퀄리티가 떨어져서 성에 차지 않은 옷이 대부분이었어요. 좋은 옷을 찾기 위해 7~8시간을 돌아도 옷 10개를 고르기 어려웠어요. 차라리 내가 직접 만들어야 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성균관대 궁중복식연구원이자 한복 디자이너인 시어머니는 든든한 지원군이 돼 줬다. “어머님께서 저희를 찾아와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날 밤새 손바느질로 치마를 만들었어요. 어머님이 어렵게만 생각했던 일을 나도 할 수 있는 일로 바꿔 주신 거에요. 지금도 새 옷이 나올 때마다 피드백해 주시고 직접 구매도 해주세요.”

출처: 본인제공

김 씨가 새로운 옷을 구성한 흔적들

실전 디자인에 들어가자 모델로서 경험한 백스테이지와 무대가 살아있는 패션 교과서가 됐다. “모델 시절 피팅을 하면서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특히 가봉 단계에서 컬렉션에 세워질 때 원단이 교체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원단 하나로 완전 다른 옷이 되는게 너무 신기했습니다. 원단과 퀄리티에 중점을 두기로 했습니다.”

외계어 같던 봉제용어…파이(FAAI)로 생산에 탄력

관건은 생산. 머리로 구상한 것을 말과 글로 표현해서 생산을 맡겨야 하는데, 패턴용어와 봉제용어가 외계어 같았다. 의류 지식이 부족하다고 은근히 하대하는 거래처도 있었다. “사입에서 직접 디자인으로 전환하며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습니다. 발품 팔아서 패턴사를 알아내고 손짓 발짓으로 설명해서 옷을 맡겼는데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죠. 샘플 6~7개를 들고가서 이렇게 저렇게 봉제해달라 부탁해 겨우 첫번째 시즌을 완성했습니다.”

출처: 와이엠스토어

와이엠스토어는 기교없이 핏과 원단에 충실한 옷을 만든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의류 생산 플랫폼 파이(FAAI)는 좋은 디딤돌이었다. 파이는 생산 의뢰자가 어플리케이션에 희망하는 디자인, 수량, 납기 등을 등록하면, 해당 주문을 소화할 수 있는 봉제공장을 연결하는 시스템이다. “올해 S/S시즌부터 파이를 통해서 생산했는데, 공정 시간이 단축됐습니다. 의류 기획부터 생산까지 책임져주니 안정감을 느낍니다. 파이는 열정이나 패기는 있지만 무엇부터 해야 할 지 몰라 막막한 창작자들에게 페이스메이커 같은 존재입니다. 저희 부부 역시 파이를 통해 의류 생산 공정을 많이 배웠습니다.”

옷장에 가장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옷을 지향한다. “’다른 쇼핑몰에서 옷을 사면 실밥 제거부터 해야 하는데 와이엠스토어의 옷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고객평에 희열을 느꼈습니다. 저희가 주안점을 두는 부분을 인정받는 느낌이었거든요. 요즘 재구매율이 올라가며 단골층도 형성되는 추세입니다. 앞으로도 기교없이 핏과 원단에 충실한 옷을 만들겠습니다.”

출처: 본인제공

두 사람은 함께 일하면 좋은 점이 더 많다고 강조했다.

-부부가 함께 일하면 자주 부딪히지 않나요.

“카페일과 육아를 각자 전담했을 때 힘듦을 느끼는 지점이 달라 갈등이 잦았습니다. 지금은 전혀 싸울 일이 없어요. 서로의 고충과 스트레스 요소를 옆에서 지켜보니까 알아서 배려합니다. 분업도 자연스레 이뤄집니다. 눈썰미 좋은 남편이 스타일 제안을 적극적으로 해주는 덕에 옷 디자인도 즐겁게 합니다.

함께 일하면 좋은 점이 더 많습니다. 우선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의류 디자인과 룩북 제작 모두 저희 안에서 이뤄지니 저희 브랜드로 담아내고자 하는 느낌을 제대로 살릴 수 있습니다. 사공이 둘인 배니까요.”

-앞으로의 목표는요.

“스튜디오 드길과 와이엠스토어를 저희와 닮은 사람들이 모이는 크루처럼 만드는 것입니다. 카페를 거쳐 쇼핑몰과 스튜디오를 해보니 결국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앞으로도 저희의 가치와 비전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위해 촬영을 하고 옷을 만들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족의 행복입니다. 아이 둘 낳고 살아보니 지금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는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좋은 반려자를 만나 여기까지 온 것에 늘 감사합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