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지역 기반 영어조합법인
수산물 가공해 백화점, 홈쇼핑 납품
티백으로 육수 내는 딱새우 라면 출시
영어조합법인 올레바당의 김성후 대표
정든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자리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힘들게 정착했다가 모든 걸 버리고 귀향하는 건 더욱 어렵다. 현재의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성이 사람의 마음에도 작용하는 까닭이다.
긴 서울 생활을 마무리하고 고향인 제주도에서 인생 2막을 맞이한 이가 있다. 제주도 산지 수산물을 직접 가공하고 생산하는 영어조합법인 올레바당의 김성후 대표다. 서울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가정도 꾸렸지만 고향이 그리워 20년 만에 귀향했다. 지금은 제주 수산물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김 대표에게 ‘귀향인의 사업기’를 들었다.
◇사시 공부하러 상경했다가 나이 마흔에 귀향
김 대표와 올레바당 구성원들
지난해 10월 출시된 '제주 딱새우 라면'
올레바당은 제주 지역 기반의 영어조합법인이다. 올레바당이란 제주의 명물 올레길이 있는 바다(바당)라는 뜻이다. 갈치, 딱새우, 옥돔, 참가자미 등 제주산 수산물을 가공해 유통한다. 우수한 품질을 인정 받아 백화점과 홈쇼핑에 진출했다. 베트남, 홍콩, 미국 등 해외에도 수출하고 있다.
최근엔 제주 특산품인 딱새우로 만든 ‘제주 딱새우 라면’을 개발했다. 출시 5개월 만에 온라인몰에서만 12만개를 팔아치웠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김 대표는 20대 초반에 상경했다가 나이 마흔에 귀향했다.
김 대표는 제주에서 나고 자라 20대 초반에 고향을 떠났다. “1991년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싶었거든요. 상경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더 이상 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됐죠. 당장 생계 유지가 힘들어서 법무사 사무장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기업을 대상으로 법률 상담을 하는 업무였죠.”
이후 타지 생활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불혹이 가까워지자 제주가 그리워졌다. 서울에서 태어난 네 자녀에게 ‘고향’의 안락함을 알려주고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 팍팍한 도시 생활이 지치더군요. 돌이켜보니 서울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돌아갈 고향조차 없더라고요. 자녀들이 도시 생활에 지쳤을 때 언제든 들러서 쉴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제주도에서 터를 잡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약 20년간의 서울 생활을 접고 2010년 제주로 귀향했다. 무슨 일을 할지 고민하다가 수산물에 주목했다. “제주에도 나름 내륙과 바닷가가 있는데 저는 어릴 적에 바닷가에 살았어요. 동네 어른신 대부분이 수산업에 종사하셨죠. 하지만 그분들이 고생하는 만큼 큰 돈을 벌지는 못하셨습니다. 제주도 수산물이 그렇게 유명한데도요. 알고보니 온라인에서 경매가까지 확인할 수 있는 시대라, 이윤을 충분히 남기면서 장사할 수 없더군요. 수익성을 높여줄 묘수가 필요했습니다.”
◇전국 위판장 돌며 현장 공부…한올레 론칭 후 수출 성공
김 대표는 귀향 후 수산 산업에 뛰어들기 위해 약 1년 간 전국의 위판장을 돌아다녔다.
껍데기와 머리를 손질한 한올레 딱새우
수산물 시장 생태계를 심도 있게 공부하고 싶었지만 배울 길이 없었다. 관련 학교도 강의도 없었다. 발로 뛸 수밖에 없는 상황. 배낭 하나만 들고 전국의 수산시장을 탐방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의 새벽 경매를 기점으로 1년 넘게 전국의 위판장을 다 돌았습니다. 보령, 여수, 부산, 통영, 속초 등 지역의 위판장을 돌아다니며 현장 공부를 했죠. 유통구조부터 파악한 후, 이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다 돌아보고 나서 이미 판이 다 짜여진 시장이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수산업 종사자들이 인맥 중심으로 고정 거래처를 확보한 상태였어요. 이 카르텔을 깨고 사업을 시작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국내 유통보다 해외 수출을 공략하기로 결심했습니다.”
2011년 올레바당을 설립했다. 올레바당에서 파는 수산물은 ‘한올레’라는 브랜드로 팔았다. “처음엔 생선 염장 같은 단순 가공으로 출발해서 점차 가공 수준을 높였습니다. 고등어 살을 천혜향 과즙에 숙성시키거나 잔가시가 많은 은갈치 뼈를 양면으로 발라 포로 만드는 식으로요.”
홈쇼핑에서 판매 중인 한올레 브랜드 딱새우
한올레 제품들은 베트남, 홍콩, 미국 등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김 대표가 만든 제품들이 맛이 좋고 먹기에도 편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유통처가 늘었다. 사업 기회도 늘었다. “갈치포는 백화점에 납품하고 있어요. 껍데기를 손질한 딱새우는 홈쇼핑 판매를 4번 진행했는데 매 회 2000박스가 매진됐습니다. 해외 수출길도 열렸어요. 홍콩으로 가는 20피트 컨테이너를 저희가 가공한 옥돔, 갈치, 조기로 가득 채웠을 때의 뿌듯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사업이 6년차쯤 접어들었을 때 수산물을 이용한 식품 제조에 관심이 갔다. “새로운 방식으로 제주 수산물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수산물을 활용한 식품을 개발해야 향토기업과 제주의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다 판단한 거죠. 인스턴트나 레토르트 식품 하나만 잘 만들어도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잖아요. 보관. 유통 부담도 수산물보다 덜하고요. 새로운 아이디어가 절실했습니다. 요리사 20명과 제주 지역 대학 학생들을 초청해 제주 토산품을 활용한 요리개발대회까지 열었어요. 그런데 딱히 상용화 할 만한 아이디어를 발견하진 못했죠."
문득 수북이 쌓인 딱새우 머리와 껍데기가 눈에 들어왔다. 살만 발라내고 버리던 부산물이었다. 가공을 할 수 없을 만큼 작은 딱새우는 그냥 버리기 아까웠다. “제주도민들은 된장국에 딱새우를 넣어서 끓입니다. 별다른 재료나 양념을 넣지 않아도 육수 맛이 좋거든요. 딱새우를 활한 제품을 만들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딱새우 살로 죽도 끓여보고 파스타도 만들어봤죠. 2년 가까이 딱새우 맛을 살리는 요리법 연구에만 집중했죠.”
◇8개월 개발 끝에 딱새우 라면 출시…제주 특화 상품 목표
김 대표는 딱새우를 활용한 식품을 만들기 위해 딱새우를 다양한 메뉴에 접목했다.
2020년 초 '딱새우 라면'을 개발하는 데 주력했다. “너무 생소한 음식보단 친근한 음식으로 접근하는 게 안정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라면은 누구나 즐기는 국민 먹거리잖아요. 라면에 딱새우 한 마리만 넣어도 국물 맛이 시원해져요. 제주 사람들이 먹는 방식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개하고 싶었어요.”
딱새우의 깊은 맛을 살린 육수를 만드는 게 관건이었다. “개발 연구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딱새우의 잡내를 잡으면서 맛이 최대한 우러나오게 할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여러 시도 끝에 ‘로스팅 공법’을 찾아냈어요. 찐 딱새우를 말린 후 이를 분쇄해서 커피 원두처럼 볶는 방식이죠. 분쇄한 딱새우를 고온에 볶으면 잡내가 날아가고 향은 살아납니다. 이 로스팅 공법으로 특허도 출원했습니다.”
올레바당 구성원들과 라면을 연구하는 모습
공장에서 제조 중인 딱새우 라면
분쇄한 딱새우는 티백 형태의 주머니에 넣었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티백에서 육수가 우러나는 형태입니다. 딱새우 살을 갈아서 가루 스프로도 만들어보고 로스팅 후 분쇄해서 우려 봤는데, 맛의 차이가 컸습니다. 후자에서 압도적으로 깊고 진한 맛이 났죠.”
다른 재료는 최소화했다. “라면에 다른 해물을 섞으면 딱새우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저 그런 짬뽕 맛이 되는 거죠. 저희는 건고추, 건표고버섯, 건당근 등 국산 채소로만 건더기 스프를 만들었습니다. 분말 스프도 소고기 성분없이 제조했어요. 면은 감자로 만들어서 식감이 쫄깃하고 쉽게 불지 않습니다. 건강도 생각했어요. 라면은 고칼로리 음식이란 인식이 강한데요. 저희 제품은 한 그릇에 297칼로리에 불과합니다.”
제주 딱새우 라면
8개월 간의 제품 개발 끝에 2020년 10월 완제품이 탄생했다. 개운한 육수와 기름기 없는 깔끔한 맛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처음 판매를 했는데 3만개 넘게 팔렸어요. 12월에는 앵콜 펀딩까지 했어요. 그때도 1차 때와 마찬가지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이후 도내 관광용품점이나 관광지 근처 마트에 제품을 입점 시켰습니다. 초도 물량 200박스가 다 떨어져서 최근에 600박스 재주문이 들어왔어요. 온라인몰 에서도 구입할 수 있습니다.”
한국 대표 관광지인 제주도 특산품을 활용했다는 상징성 덕분인지 해외의 관심도 뜨겁다. “신기하게 바이어들이 딱새우 라면을 팔고 싶다고 먼저 찾아왔습니다. 지금까지 미국, 러시아, 중국, 대만 네 국가의 바이어와 수출 협의 중입니다. 제주 특산물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자부해요. 이토록 훌륭한 고향의 수산물을 널리 알릴 수 있어 뿌듯합니다.”
김 대표의 목표는 지역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인이 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지역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인이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딱새우 라면을 지역 특화 상품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매출이 떨어져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희 제품이 이분들의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관심이 많아요. 홈쇼핑 판매를 준비할 때 수산물을 손질할 일손이 많이 필요한데요. 그 때마다 주로 지역 어르신들을 고용했어요. 앞으로 회사가 더욱 성장해서 많은 주민분들을 채용하고 싶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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