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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잘나가던 직장 그만두고 영화판 간 삼성맨, 현실 흥행 결과

제 별명이 ‘영화계의 유엔군’입니다. 개성이 강한 감독이나 배우 사이에서 조율을 잘 하거든요. 영화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서로 다른 이들을 중개하는 과정에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20년 경력의 베테랑 영화인 남지웅 아센디오 영화사업부문 대표. /더비비드

K 콘텐츠의 저력이 무섭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의 쾌거를 이룬데 이어, 배우 윤여정씨가 영화 <미나리>로 한국 배우로서는 최초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넷플릭스 같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급성장에 힘입어 <킹덤>과 <스위트홈>은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콘텐츠로 등극했다.

한류 콘텐츠는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걸까. 주요 제작사 중 한 곳인 아센디오를 찾았다. 아센디오의 전신은 키위미디어그룹이다. 2019년 경영난으로 회생절차를 신청했다가 사업 구조조정 및 포트폴리오 재편 후 아센디오로 재탄생했다. 아센디오란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 주문의 한 구절로 ‘높이 솟아 올라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아센디오는 영화 투자, 제작 배급, 드라마, 매니지먼트, 공연, 영상솔루션 사업 등을 영위하며 지난해 1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까지 3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영화 <친구2>, <기술자들>, <보통사람> 등을 제작한 20년 경력의 베테랑 영화인 남지웅 아센디오 영화사업부문 대표를 만났다.

◇스타워즈 사랑했던 소년, 삼성에서 CJ로 옮긴 사연

영화 제작 현장을 둘러보는 남지웅 대표 /아센디오

영화를 사랑했던 7080 헐리우드 키즈다. “아버지 덕분에 어릴 적부터 영화관을 들락날락 했어요. 친구들이 로보트 태권브이에 열광하던 시절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가 스타워즈였어요. 이후 인디아나 존스 같은 스케일 큰 헐리우드 외화를 즐겨봤어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공채 40기로 삼성에 입사했다. 1등 코스만 밟다가 운명처럼 충무로에 입성했다. “삼성 근무 시절 영화 펀드 투자에 관한 논의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영화 <놈놈놈>의 제작자 최재원씨와 연이 닿았습니다. 워낙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말이 잘 통했죠. 최 씨를 처음 알게 된 2000년대 초반은 <공동경비구역 JSA>, <글래디에이터>, <슈렉> 등의 흥행으로 영화판이 산업화되는 시기였습니다. CJ 엔터테인먼트(현 CJ E&M)도 외화를 본격적으로 가져오기 시작했죠. 엔터 산업이 유망해질 것이라고 판단하고 2002년 CJ 엔터테인먼트로 이직했습니다.”

CJ 영화사업부로 들어가 밑바닥부터 영화일을 배웠다. “영화관 CGV와 엔터테인먼트 TV 채널 엠넷의 성과를 관리하고, 미국 드림웍스 사와 공동사업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쉴 새 없이 바쁜 나날이었죠. 2005년 CJ에서 장동건, 이정재 주연의 <태풍>이라는 작품을 진행하면서 곽경택 감독을 알게 됐어요. 금융 노하우를 바탕으로 제작비 조달, 투자자 관계 등을 도와드렸는데 곽 감독이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더라고요. 2006년 곽 감독님의 제작사 직원으로 합류했습니다.”

◇영화 제작자로 데뷔, 김우빈과 특별한 인연 맺기도

친구2 촬영 당시 배우 유오성 씨와 함께 한 사진. /본인제공
배우 박성웅 씨와 함께 한 남 대표 /아센디오

곽 감독과 호흡을 맞추다 2011년 영화 제작사 ‘트리니티 엔터테인먼트’를 세웠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다. “영화 제작자는 자금 조달, 시나리오 채택, 배우 섭외 등 영화 제작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한 업무 전반을 아우르는 일입니다. 제작자가 판을 짜면 감독과 배우는 그 판 위에서 재능을 펼치는 거죠.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3만개의 영화 제작사 중 실질적인 제작 능력을 갖춘 제작사는 10~15곳에 불과합니다. 척박한 현실에서 매년 개봉하는 것을 목표로 이후 10년 간 김홍선 감독의 <기술자들>, 김봉한 감독의 <보통사람> 등을 비롯한 7~8편의 영화를 제작했어요.”

신인 배우가 톱스타로 성장하는 걸 보는 게 좋았다. “제가 제작한 첫 상업 영화가 곽 감독의 <친구2>입니다. 우여곡절이 참 많은 작품이죠. 영화 제작을 위해 전작에서 전설적인 연기를 보여준 배우 유오성씨를 어렵게 섭외했습니다. 그런데 함께 호흡 맞출 젊은 배우가 마땅치 않은 거예요. 그때 한 드라마에 출연 중인 배우 김우빈 씨의 아우라에 반해서 무작정 드라마 세트장에 찾아갔습니다. 당시 동행한 곽 감독이 김씨의 매력에 빠져서 오디션과 카메라 테스트도 없이 영입 제안을 하더군요. 신인 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하는 파격을 감행했는데요.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같은 해 김씨가 드라마 <상속자들>을 계기로 대스타가 됐거든요. 영화도 잘됐습니다. 별도의 마케팅 없이 300만 관객을 동원하고 VOD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김우빈이 출연한다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투자가 들어와서, 두 작품 정도는 편하게 제작했습니다.”

◇종합 콘텐츠사 아센디오에서 코로나 위기 극복

영화 촬영 현장에의 남 대표. /아센디오.

지인이었던 전혜준 드라마사업부문 대표의 제안으로 지난해 5월 아센디오 영화사업부문의 지휘봉을 잡았다. “키위미디어그룹은 지난해 4월 퍼시픽산업에 인수됐고, 재도약을 한다는 의미에서 아센디오로 사명을 변경했습니다. 영화 산업을 회사의 신성장동력으로 설정했고요. 키위는 앞서 <범죄도시>, <악인전> 등을 투자, 배급하며 굵직한 포트폴리오를 쌓은 바 있습니다.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잠깐 주춤했을 뿐이죠. 콘텐츠 분야에서의 제 전문성을 보태면 시너지가 날 것 같아 제안받고 일주일만에 아센디오에 합류했습니다.”

아센디오가 제작해 2020년 개봉한 영화들. /아센디오

그가 아센디오 영화사업부문 수장이 됐을 땐 코로나 팬데믹으로 극장가가 쑥대밭이 되고 있는 중이었다. 대대적인 전략 수정이 필요했다. “영화계가 몸 사리던 시점이라 영화관에 어울리는 블록버스터 영화에 공격적으로 투자할 수 없게 됐습니다. 반면 집에서 가볍게 볼 수 있는 장르의 인기가 커지게 됐죠. 대형작은 외부 투자로 리스크를 분산하고 소형 VOD 시장을 공략했습니다. 덕분에 코로나 2.5단계 시기에 개봉했던 영화 <검객>이 영화 VOD에서 1위를 기록하고, 지난해 3분기와 4분기 연속으로 흑자를 냈습니다.”

코로나 위기에 적극 대처했던 경험을 밑거름삼아 포스트 코로나 시대 영화 생태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구상이다. “영화 산업은 극장용 영화와 VOD용 영화로 극명히 갈릴 것입니다. <분노의 질주>가 코로나 시국에도 개봉 6일차만에 120만명 관객을 동원한 것처럼 영화관 수요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극장 방문은 영화 관람보다는 ‘레저’ 행위의 일환이니까요. 반면 마니아틱한 영화들은 VOD, OTT 서비스를 통해 보는 풍토가 더욱 고착화되겠죠. 앞으로는 영화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극장용과 가정용으로 나눠서 접근할 계획입니다.”

◇베테랑 영화 제작자가 말하는 한국형 장르 영화 전망

남 대표는 웹툰 <하이브>의 영화화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했다. /더비비드

남 대표는 요즘 ‘한국형 장르 영화’에 주목하고 있다. “2016년 좀비 영화 <부산행>에서만100억원을 벌어들였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자부심을 느끼면서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고민하는 계기가 됐죠. <부산행>과 <신과함께> 같은 해외에서 흥행몰이한 영화들의 공통점은 국적에 관계없이 받아들이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란 데 있습니다. 자막 없이 봐도 이해할 수 있죠. 여기서 착안해 네이버 웹툰 <하이브>의 영화화를 진행 중입니다. 미국에서도 대박이 난 K 웹툰이죠. 개인적으로도 재미있게 본 작품이라 기대가 큽니다.”

좋은 원작의 소설과 웹툰을 바탕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할 계획이다. “올해 두 편의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유오성, 장혁, 곽도원 등 유명 배우들의 멋진 연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승리호>가 포문을 연 한국형 SF 영화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는데요, 내년에 <늑대사냥>이라는 SF 액션 영화 개봉이 예정돼 있습니다. 차별화된 콘텐츠로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고,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통해 주주의 이익도 극대화하는 게 목표입니다. 한국 영화의 매력을 전세계적으로 어필하면서 유명 배급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회사로 성장하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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