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TV홈쇼핑에서 완판된 한국 화장품
창업 기업은 한 번 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동물원료를 쓰지 않고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비건화장품이 뜨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 리서치에 따르면 2020년 세계 비건화장품 시장 규모는 153억 달러(약 17조 원)에 달했다. 2025년에는 208억 달러(약 25조 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화장품 회사 에프지뷰티는 한국 토종 선인장인 ‘천년초’로 토너, 크림 등 기초 화장품을 만든다. 특허기술을 활용해 천년초에서 원료를 추출했다. 국내 온라인몰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가 좋다. 러시아 홈쇼핑에서 ‘완판’ 기록을 내기도 했다. 유병성 에프지뷰티 대표를 만났다.
◇딸 위해 천년초 이용한 화장품 만들어
천년초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선인장으로 생명력이 강해 ‘신비의 약초’라 불린다. 흔히 화장품 원료로 쓰이는 알로에보다 비타민C가 84배 많아 보습에 좋다. 에프지뷰티는 천년초를 활용해서 여름철 번들거리지 않으면서도 보습효과가 좋아서 외출 전에 바르면 좋은 켁터스크림, 여름철 야외 활동 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진정시키는 데 좋은 수딩젤을 개발했다. 남성을 위한 올인원 제품도 있다. 서울산업진흥원(SBA)이 주관하는 국내 대표 브랜드 시상식 서울어워드에서 우수상품으로 선정됐다.
유 대표는 원래 유기농 식품 마트를 운영했다. 화장품에 관심을 가진 건 딸 때문이었다. “딸이 사춘기가 되면서 피부에 트러블이 나기 시작했어요. 트러블을 가리기 위해 자꾸 얼굴에 뭘 바르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트러블을 더 심화시켰죠. 저는 바르지 말라고 잔소리하니 딸과 자주 다투게 됐습니다. 그러다 딸이 쓰는 화장품 성분을 찾아 보니, 피부에 좋지 않은 성분 투성이더라고요. 어차피 유기농 마트도 운영하고 있겠다, 차라리 제가 유기농 화장품을 만들어주겠다고 했어요.”
피부 트러블에 효과적인 화장품 원료를 찾다 ‘천년초’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햇볕에 타거나 불에 데면 어머니가 천년초를 붙여 주셨어요. 그게 떠올라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각종 자료를 찾아봤어요. 옛 식물도감을 보니 천년초가 천식, 기침, 폐질환, 장염, 신장염, 고혈압, 당뇨 등 각종 질병에 좋고 소염·진통제 효과도 있다고 나오더라고요. 현대 논문에서도 천년초를 두고 ‘알레르기 및 아토피에 의한 피부질환 등에 사용된 약용식물’이라고 표현했고요. 이런 효능을 지닌 식물이라면 포화상태인 화장품 시장에서도 충분히 승산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한국 토종 선인장으로 특허 기술 개발
2015년 9월 창업과 동시에 전남 고흥에 크기 6612㎥(2000평) 천년초 농장을 구했다. 천년초를 직접 재배해 화장품 제작에 사용하기 위해서다. “고흥이 천년초를 재배하기 적합한 지역이에요. 저희 농장이 고흥 해안가 바로 앞에 있어요. 청정 해안지대로 굉장히 깨끗한 곳이죠. 해풍이 세서 식물을 재배하기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오히려 천년초에겐 거친 환경이 좋아요. 험난한 환경에서 자랄수록 보습력 등의 효능이 강해지죠.”
화장품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서울벤처대학원 미용학과에도 입학했다. “화장품 개발을 위한 이론은 물론이고 여러 실험도 했어요. 이 과정에서 무작정 유기농만 고집하는 게 능사가 아니란 점을 깨달았죠. 유기농 원료 찾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아무리 유기농이라도 피부에 효과가 없으면 재구매가 일어나지 않아요.”
천년초를 활용한 화장품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찰나 중소벤처기업부 산학연 과제 연구개발(R&D) 사업의 지원을 받게 됐어요. 그때 동덕여대 화장품학과 진병석 교수님을 만나게 됐죠. 2년간의 연구 끝에 2017년 에프지뷰티만의 특허 기술을 개발하게 됐어요.”
에프지뷰티는 ‘천년초 추출물을 유효성분으로 포함하는 보습용 화장료 조성물에 관한 것’으로 특허를 등록했다. 천년초에서 원료를 추출할 때 영양성분 손실을 최소화하는 기술이다. “천년초는 표면장력이 있어서 흡수가 잘 안돼요. 저희 기술로 이런 표면장력을 낮춰 원료를 추출하는 것이 핵심이죠.”
특허기술을 통해 얻은 천년초 원료로 보습력을 유지하면서 끈적임 없는 화장품을 개발했다. 끈적임이 없어 여름철 특히 인기가 좋다. 번들거리지 않으면서도 보습효과가 좋아서 외출 전에 바르면 좋은 켁터스크림, 여름철 야외 활동 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진정시키는 데 좋은 수딩젤, 남성을 위한 올인원 제품이 대표 제품이다.
“토너, 세럼, 수분크림, 마스크팩, 클렌징밤, 수딩젤, 에센스까지 대분의 기초 제품을 개발했어요. 파운데이션이나 색조로 피부를 가리거나 덮지 않고, 피부 자체의 자생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면세점 입점, 해외수출 성공
자부심을 갖고 화장품을 개발했지만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었다. “신생 기업 특성상 자금, 인력, 정보력이 부족했어요. 해외 바이어들에게 홍보를 하려 해도 인지도가 없어 매번 계약이 성사되지 못했죠.”
중소벤처기업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지원 공모사업’을 계기로 유명 백화점 면세점에 입점하는 기회를 얻었다. “바이어들은 면세점에 입점한 제품을 굉장히 신뢰해요. 이전에는 바이어에게 회사와 브랜드에 대해 설명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썼는데, 면세점에 입점한 덕분에 이 과정을 건너뛸 수 있었죠. 거래 성사율도 올랐어요.”
2019년에는 해외에 이름을 알릴 기회도 얻었다. 중소기업유통센터와 아리랑TV가 만드는 소상공인 수출업체 대상 홍보영상에 출연한 덕분이다. “이후 오스트리아, 호주, 이탈리아, 멕시코, 일본, 러시아 등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거래하고 싶다’는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마케팅이 얼마나 중요한지 거듭 깨달았죠.”
◇미용학 박사 과정 도전 중
에프지뷰티를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기업으로 키우는 게 꿈이다. “작은 기업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에프지뷰티가 앞으로 더 성장해서 다른 신생기업들에 귀감이 됐으면 좋겠어요.”
화장품 공부는 끝이 없다. 유 대표는 서울벤처대학원에서 미용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서 창업을 한다는 건 말이 안됩니다. 창업 과정에서 공부한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고요.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점을 저 역시 되새기고 있습니다.”
/장유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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