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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간 110조 손실 전세계 해운사 골칫거리, 한국 스타트업이 해결했다

‘미생물막’을 친환경적으로 제거하는 기술 개발 스토리

물기가 있는 조리도구에서 식중독균을 자라게 하는 물질, 배 바닥 면에 따개비가 달라붙게 만드는 끈적한 물질이 모두 미생물막의 일종이다. /프록시헬스케어 제공

지난 1월 대전에서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68명이 하이라이스 도시락을 먹고 집단 식중독에 걸렸다.

2021년 10월 전남 여수 선착장에선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던 현장 실습생 A군이 사망했다.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사건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미생물막’이라는 공통 키워드가 있다. 미생물막이란 습기가 있는 단단한 물질 표면에 붙어있는 유기물, 무기물, 박테리아, 세균 등이 군집 체계를 이룬 막을 말한다. 물기가 있는 조리도구에서 식중독균을 자라게 하는 물질, 배 바닥 면에 따개비가 달라붙게 만드는 끈적한 물질이 모두 미생물막의 일종이다.

해양생물의 내분비계를 교란해 불임을 유발하는 성분이 들어간 방오도료는 2001년 국제 협약에 따라 사용이 금지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렇게 각종 문제를 일으키는 미생물막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있긴 하지만 대개 환경과 인체에 좋지 않다. 가령 따개비를 제거하기 위해 쓰는 화학약품은 해양오염을 일으킨다. 해양생물의 내분비계를 교란해 불임을 유발하는 성분이 들어간 방오도료는 2001년 국제 협약에 따라 사용이 금지됐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친환경적으로 미생물막을 제거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스타트업이 등장했다. 미세 전류를 이용해 미생물막을 떨어뜨리는 원천 기술 ‘트로마츠’ 특허를 갖고 있는 프록시헬스케어다. 이 한국 기업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이다. 프록시헬스케어의 서세영 전무(60)는 “특허 기술인 트로마츠 미세 전류를 이용하면 그 어떤 곳에 붙은 미생물막이라도 모두 제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 전무를 만나 국내 기업이 처음 개발한 원천 기술에 대해 들었다.

◇미생물막이 왜 문제인가

프록시헬스케어는 미세전류를 이용해 미생물막을 제거하는 트로마츠 기술을 개발해 국내·외에서 50건 이상의 관련 특허를 등록했다. /프록시헬스케어 제공

프록시헬스케어는 의대 출신 공학박사 김영욱 대표가 2019년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미세전류를 이용해 미생물막을 제거하는 트로마츠 기술을 개발해 국내·외에서 50건 이상의 관련 특허를 등록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리서치에도 내용이 실렸다. 트로마츠 기술이 미생물막 제거에 효과가 있다는 점을 인정받아 2021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을 받았다.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처음 내놓은 제품이 트로마츠 칫솔이다.

- 거창한 기술로 처음 만든 제품이 칫솔이란 게 재밌습니다.

“칫솔은 남녀노소 국적 불문하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용하는 물건입니다. 트로마츠라는 어려운 기술을 일반 소비자가 처음 접하게 될 물건으로 제격이죠. 치아는 미생물막이 생기는 대표적인 신체 부위입니다. 치아 표면에 형성되는 미생물막인 치태(플라크)는 제거하기 힘든 치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죠. 치태와 치석에 있는 세균이 만들어낸 독소가 잇몸에 침투해 염증을 일으켜 치주염 등 잇몸 질환까지 유발합니다. 트로마츠 칫솔이 그 치태를 일상적으로 제거해 치아와 잇몸병을 예방합니다.”

치아는 미생물막이 생기는 대표적인 신체 부위다. 몸속에 생기는 미생물막에 대해 설명하는 서 전무. /더비비드

- 미생물막이란 정확히 뭘 말하는 건가요?

“어떤 물체에 습기가 있는 상태가 오래 지속하면 그 표면에 미끈미끈한 게 끼는데요. 그게 바로 미생물막입니다. 대부분의 미생물막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데, 그 존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때는 이미 문제가 발생한 이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생물막이 문제를 일으키는 분야는 식품, 조선, 자동차 등 매우 다양합니다.”

- 예를 들자면요?

“이끼, 입속 치태와 치석, 상처 부위에 생기는 고름, 주방 싱크대 물때, 몸속에서 일어나는 각종 염증 반응 등이요. 심장박동기, 인공 관절, 성형 보형물 등 의료장비를 심은 부위에 일어나는 각종 감염의 주원인도 미생물막입니다. 중증 감염 원인의 80% 이상을 차지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선박 표면에 생기는 미생물막은 생태계 교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미생물막을 먹이로 삼는 따개비, 굴, 갯지렁이 등 해양생물이 배에 부착해 서식지를 옮겨가기 때문이죠. 선체 부착생물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상당합니다. 배가 이동할 때 물과 마찰저항이 커져 같은 속도로 이동하려면 엔진을 더 세게 가동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손실되는 연비는 최대 40% 수준에 이르고, 해운 산업이 얻는 손해 규모는 매년 1000억 달러(약 110조원)에 달합니다.”

미생물막을 먹이로 삼는 따개비, 굴, 갯지렁이 등 해양생물이 배에 부착해 서식지를 옮기며 생태계 교란을 일으킨다. /프록시헬스케어 제공

- 그동안은 미생물막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나요?

“근본 원인인 미생물막보다는 그로 인해 일어난 현상에 더 치중했습니다. 크게 물리적 방법과 화학적 방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요. 미생물막으로 인해 몸에 염증이 생기면 염증 부위를 절제하거나 항생제를 쓰는 것이죠. 선체에 부착한 해양생물을 떼어내기 위해 잠수부가 물속으로 들어가 물리적으로 제거하거나 선박 표면에 독성이 강한 부착방지제를 도포하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 이런 방법이 왜 문제가 되나요?

“몸속 미생물막을 제거하려면 고농도의 항생제를 사용해야 하는데 주변 조직에 심각한 손상을 줄 뿐 아니라 내성균 출현 위험이 커집니다. 선체 부착 해양생물을 떼어내는 작업은 원칙상 잠수 자격증을 갖춘 전문 잠수사 2명과 수면 위에서 작업을 봐주는 감독관 1명 등 3명이 한 조를 이뤄 작업해야 하는데요. 이런 원칙이 무시되는 사례가 적지 않죠. 인명사고의 우려가 크고 제거 작업 후에도 시간이 지나면 해양생물이 다시 부착합니다. 화학약품인 부착방지제는 2001년부터 국제협약으로 사용이 금지됐습니다. 오염을 막기 위한 도료에 사용하는 유기주석화합물 트리부틸주석(TBT)이 해양생물 내분비계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유에서죠.”

◇칫솔로 기술 최초 구현

서 전무(오른쪽)와 프록시헬스케어를 창업한 김영욱 대표(왼쪽)는 삼성전기가 맺어준 인연이다. /서세영 전무 제공

최근 국내외에선 친환경적으로 미생물막을 제거하기 위한 기술 개발이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식품연구원은 친환경 효소를 활용해 식중독을 일으키는 미생물막을 분해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로버트 미첼 교수는 포식성 박테리아 벨로(BALO)가 미생물막을 영양분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해조류 표면에 착안해 바늘방석을 연상케 하는 필름을 개발한 연구진도 있다.

스타트업 프록시헬스케어는 미세전류로 미생물막을 제거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사람이 느낄 수 없는 정도로 미세한 전류가 미생물막을 둘러싼 보호막을 무력화해 미생물 군집을 해체한다. 이 기술을 상용화한 첫 제품으로 트로마츠 칫솔을 개발해 2020년 9월 출시했다.

팀원들과 회의하는 모습. 서 전무는 프록시헬스케어에 합류해 생산라인 전 과정을 책임지고 있다. /더비비드

서 전무와 프록시헬스케어를 창업한 김영욱 대표는 삼성전기가 맺어준 인연이다. 삼성전기 재직 시절 서 전무는 상품 기획, 김 대표는 개발 부서에 있으면서 협업을 위한 미팅을 할 일이 많았다. 김 대표가 삼성전기를 나와 프록시헬스케어 창업을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2021년 4월 서 전무는 프록시헬스케어에 합류해 생산라인 전 과정을 책임지고 있다. 26년간 삼성전자에서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 인적 네트워크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트로마츠 칫솔에 들어가는 40여 가지 원자재 공급처를 모두 직접 챙긴다.

미세전류로 미생물막을 제거하는 트로마츠 기술을 구현한 '트로마츠 칫솔'. /프록시헬스케어 제공

- 회사에서 갖고 있는 미생물막 제거 기술 원리를 설명해주세요.

“트로마츠 웨이브는 약 100㎂(마이크로암페어) 정도의 미세전류로 직류전기(DC)와 교류전기(AC)가 혼합돼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직류전기는 정전기가 당기는 힘을 이용해 미생물막을 크게 밀어내고 교류전기가 미생물막을 흔들어 주면서 투과성을 증가시키는 원리죠.

- 전류가 흐르는데 감전되지 않나요?

“우리 몸에도 근육과 근육 사이 신호를 전달할 때 전류가 흐르는데 이런 생체 전류의 세기가 40~80㎂ 정도입니다. 1000㎂ 이하의 전류는 인체에 무해하죠. 칫솔을 써보시면 아는데요. 아무런 느낌도, 진동도,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많은 소비자들이 '이거 고장난거 아니냐'고 물을 정도죠. 미세전류를 흘려보내기 위해선 전극 판이나 전도성 물질을 이용합니다. 칫솔모 사이 11자 모양으로 붙어있는 전극 판에서 미세전류가 흘러나와, 칫솔질하는 과정에서 입속 미생물막을 분해하게 됩니다. 기존 전동칫솔에 불편함을 느꼈던 소비자들이 특히 좋아하십니다.”

일반 필름(왼쪽)과 트로마츠 미세전류가 흐르게 한 필름(오른쪽)을 어항에 넣어 15분간 관찰한 결과, 트로마츠 필름에는 다슬기가 거의 붙지 않았다. /프록시 헬스케어 제공

- 다른 기술과 차별점이 뭐죠?

“트로마츠 기술은 미생물막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미생물막’ 자체에 초점을 맞춘 기술입니다. 사람이나 동물에게는 어떠한 자극도 주지 않으면서 미생물막만을 제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친환경적이죠. 다른 친환경 미생물막 제거 기술과 비교해 상용화 가능성이 높습니다. 칫솔 외에도 혀 클리너, 비염 증상 완화 기기, 자동차 공조기 등에도 적용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 트로마츠 이전에 지금까지 개발된 기술들이 상용화되지 않은 이유는 뭔가요?

“타 기술의 가장 큰 한계는 범용성의 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생물막은 우리 몸부터 주방, 자동차, 선박까지 다양한 곳에서 문제를 일으키는데요. 지금까지 개발된 기술은 특정 분야의 미생물막을 해결하는 데 그쳤습니다. 반면 트로마츠 기술은 전류를 흘려보낼 수만 있다면 어디에서든 활용할 수 있습니다. 범용성이 있는 기술은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모을 수 있고 그만큼 대중화로 가는 시간이 단축될 수 있죠.”

◇상용화 눈앞에 둔 신기술

프록시헬스케어는 이전 기술들과 달리 친환경 미생물막 제거 기술을 대중화, 상용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프록시헬스케어 제공

프록시헬스케어는 이전 기술들과 달리 친환경 미생물막 제거 기술을 대중화, 상용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21년 해양수산부의 ‘선체부착생물 처리기술 개발 지원사업’에 최종 선정돼 상용화를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선박 표면에 구멍을 뚫지 않고 전도성 잉크를 인쇄하는 방식으로 선박 운항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했다. 배를 만들 때 전도성 물질 처리를 한 번 해놓으면, 배가 운항 중일 때나 정박했을 때나 관계없이 미세전류를 정기적으로 흘려보낼 수 있다.

선체 표면에 생기는 미생물막 생성 속도는 계절이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프록시헬스케어 서 전무는 이에 대한 솔루션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선박 관리 최적화를 위해 운항하는 해역에 따라 미세전류 세기와 처리 빈도를 달리 조절하는 AI(인공지능) 솔루션 '바이오 파울링 관리 솔루션' 개발 계획도 밝혔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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