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진균감염 치료제 개발사
에스겔바이오 윤철원 대표 인터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많은 이들이 교통 사고보다 비행기 사고를 더 큰 위협으로 느낀다. 비일상적인 위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로 주의해야 하는 것은 일상의 위험이다. 비행기 사고 사망자보다 교통 사고로 사망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게 현실이다.
질병도 마찬가지다. 다른 질병과 비교했을 때 진균(곰팡이균)성 질환의 위협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암환자 같은 면역 저하자들의 진균감염 및 항진균제에 대한 내성으로 인한 사망률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런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낀 고려대 생명과학대학의 윤철원 교수(60)는 바이오벤처 에스겔바이오를 설립했다. 윤 교수를 만나 차세대 진균감염 치료제 개발기를 들었다.
◇30년간 진균을 연구한 고려대 교수
198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 ‘유전공학’ 붐이 일었다. 언론에서는 온갖 질병을 극복하는 열쇠가 유전공학에 있다고 보도했다. 고려대는 이런 흐름을 타 선제적으로 유전공학과를 설립했다. 정원은 적은데 인기가 많아 의대 다음으로 입학 커트라인이 높았다.
윤 교수는 우리나라 1세대 유전공학도다. 고려대 유전공학과 1기로, 동대학 대학원에 진학해 세균을 연구했다. 일본의 교토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았다. 지금까지 총 64편의 SCI 논문을 게재했다. 그 중 36편 이상이 진균감염 관련 논문이다.
- 유전공학이라는 개념이 생소한 시절에 이를 전공으로 택하셨네요.
“막연히 좋은 분야이겠거니라는 생각으로 선택했는데요. 힘들었어요. 불모지였기 때문이죠. 동기 중 절반 이상이 유전공학과 관련 없는 길을 택했습니다. 남은 절반은 저처럼 학자가 됐죠. 사실 유전공학이라는 용어가 학문적으로 적절한지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유전공학은 하나의 기술이거든요. 이 학문의 본질은 결국 생명과학입니다. 식물, 동물, 미생물, 공학 등 다방면을 두루 공부해야 했죠.”
- 교수님의 경력이 궁금합니다.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 생활을 했습니다. 약 3년간 신약 개발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했죠. 2004년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교수로 임용돼 미생물학을 지도했습니다. 교단에 선 지 벌써 20년이 넘었어요. 고려대에서 정말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산학협력단 부단장, 기숙사 사감장, 방사선동위원소 센터장, 학부장, 학장 등을 두루 역임했죠. 2011년부터 3년 간은 고려대 기술지주회사의 대표로 근무했습니다. 창업가들을 도우면서 3곳의 자회사를 탄생시키는 것을 도왔습니다.”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한 이유
학생과 캠퍼스 내의 창업가를 도우며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정작 본인은 창업할 마음이 없었다. 창업의 문을 열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2017년 정부 과제수행 중 식용버섯에서 우울증 치료 효과가 있는 유용 물질을 발견한 일이 발단이었다. 주변에서 더 ‘이걸 왜 묵히냐, 사업화 해라’ 성화였다. 하지만 기능성식품분야로 창업을 하는 게 옳은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창업을 할 거면 오랜 기간 전문성을 쌓은 진균, 곰팡이 분야를 다루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 식품과 치료제는 너무 다른데요. 후자가 훨씬 험난한 길 같아요
“저는 진균과 곰팡이를 30년 연구한 사람입니다. 이왕이면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로 창업하고 싶었어요. 제가 발견한 틈새시장은 진균감염 치료제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자체 개발한 진균감염 치료제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화이자 등 다국적 거대기업이 생산한 제품의 라이선스를 사서 합성하는 것이 최선이었죠.”
- 진균성 질병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질병으로는 손발톱 무좀과 칸디다증이 있습니다. 크립토코쿠스는 폐렴및 뇌수막염을 유발하고요. 또한 아스페르길루스는 아스페루길루스증이라는 호흡기질환을 유발합니다. 몸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발현하는 기회성 병원균도 무시무시한 존재입니다. 암환자처럼 면역력이 떨어진 분들이 진균에 감염되면 치명타를 입거든요. 상당수의 말기 암환자의 사인은 폐렴입니다. 폐렴에 크게 일조하는 게 진균이고요. 신체능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진균에 감염되면 치료가 까다로워지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 시중의 치료제를 쓰면 되지 않나요.
“기존의 진균감염 치료제는 한계점이 뚜렷합니다. 우선 독성이 많아요. 진균은 사람과 같은 진핵세포인데요. 곰팡이만 특정해서 죽이는 게 쉽지 않아요. 독성이 강해서 일반 건강한 세포까지 죽이죠. 또한 A라는 진균에는 잘 듣지만 B 진균에는 통하지 않는, 종에 대한 특이점도 컸어요. 독성이 적으면서 병원성 진균을 광범위하게 치료할 수 있는 신규 항진균제가 필요한 실정입니다. 누구보다 진균에 자신 있었어요. 경력과 노하우를 토대로 차세대 항진균제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실험 통해 광범위한 치료 효과 입증
한국화학연구원의 화합물 라이브러리 분석으로 출발했다. 화합물 은행에서 1만종에 가까운 화합물을 대여한 다음 병원성 진균의 성장을 저해하는 물질을 찾아 나섰다. 검사에 검사를 거듭한 끝에 약 50종의 후보 물질을 찾았다. 이들을 선택적으로 연구하면서 활성 물질을 2종으로 추렸다. 그 중 활성이 가장 뛰어난 물질 1종을 최종 확인했다.
- 치료제 개발 시 무엇에 주안점을 뒀나요.
“내성을 잡는 게 급선무였어요. 과거 1의 강도면 죽일 수 있는 진균이 10을 가해도 죽지 않는 수준으로 내성이 생겼거든요. 진균의 진핵세포에만 작용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동시에 모든 병원성 진균에 치료 효과를 내야 했죠. 진균은행에서 항진균제에 내성이 있는 진균을 분양 받아 저희가 개발한 약물 NE-F07의 치료효과를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크립토코쿠스균과 아스페르길루스균 등 여러 진균감염에 치료 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다른 약물과 비교했을 때 진균의 진핵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한다는 점도 입증했죠.”
- 치료제의 효능은 어떻게 입증했나요.
“세포실험 및 쥐를 대상으로 하는 동물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기관지를 통해 진균에 감염 시킨 후 저희 치료제를 적용할 그룹, 시중의 약물을 적용할 그룹, 아무런 처치를 하지 않는 그룹으로 나눈 후 차도를 관찰했어요. 아무런 처치를 하지 않은 그룹은 2주쯤 시간이 흐른 뒤부터 죽기 시작했어요. 약물을 처리한 두 집단은 사망 속도가 늦춰졌는데요. 저희 약물을 적용한 그룹에서 더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같은 실험을 두 번 반복했는데 동일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치료제의 안정성을 입증하기 위해 간이 독성 실험과 약물 분해 실험도 진행했습니다. 적용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 이런 노력도 시장 규모가 뒷받침해야 빛을 발하지 않나요.
“전세계 항진균제 시장은 2021년 기준으로 약 18조원 규모인데요. 2026년에는 20조원이 넘을 전망입니다. 항진균제 시장이 성장세다 보니 화이자, GSK 같은 유명 제약사도 저마다의 방법으로 항진균제를 확보하고 있어요. 전망이 좋은 이유 중 하나로 코로나 팬데믹을 꼽을 수 있어요. 코로나가 세계를 덮친 3년 동안 기회성 병원균에 노출될 확률이 높은 면역 저하자가 많이 발생했거든요. 두번째는 평균 수명 증가입니다. 상대적으로 면역력이 약한 노인인구가 많아지면 그에 대한 대응책이 필요하겠죠. 혹자는 ‘항진균제라는 너무 마이너한 시장에 뛰어든 거 아니냐’ 묻는데요. 선입견입니다. 1년에 20조원이면 전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20위 안에 드는 규모입니다. 고혈압 치료제와 유사한 스케일이죠.”
◇교수 출신 CEO의 단점이자 장점은요
남들은 일단 피하고 보는 곰팡이를 30년간 끼고 관찰한 학자의 진심은 통했다. 전북기술지주회사와 JH투자조합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했고 예비창업패키지, 초기창업패키지, 창업도약패키지 등 중소벤처기업부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에 모두 선정됐다. 든든한 지원을 발판으로 지난 3년간 국내 특허 4건과 PCT 4건을 출원했다.
올해 초에는 서울바이오허브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서울바이오허브는 서울시가 조성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 고려대가 운영하는 바이오, 의료 창업 혁신 플랫폼이다.
- 여러 지원이 큰 힘이 됐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고려대 산학협력단과 서울바이오허브가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덕에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어요. 서울바이오허브의 경우 경쟁률이 높았는데요. 운이 좋게 지원을 받게 돼 올해 4월 입주했습니다. 임대료가 합리적인 편이라 저희 같은 스타트업 입장에선 경제적인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공간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좋은 기회도 제공받았습니다. 언론홍보 지원을 통해 회사를 알릴 창구를 마련고요. 투자사와 여러 차례 미팅을 진행했어요. 투자자나 다른 창업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됐죠. 여러모로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요.
“전임상시험에 들어가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내년 상반기에 전임상 시험에 진입하는 게 목표입니다. 목표한 바가 이뤄지면 1, 2년 내에 임상 1상까지 들어갈 수 있겠죠. 1상까지 순탄하게 이뤄진다면 국내외 기업과 협업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교수에서 CEO가 된 소회가 궁금합니다.
“고려대 기술지주에서 여러 자회사의 창업을 도왔지만, 직접 창업하는 건 다른 이야기였어요.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겠더군요. 어린 아이처럼 하나하나 배워 나가야 했어요. 스스로 갈 길을 찾아야 했던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어요. 다만 학자이자 연구자로서 쌓은 기술력과 전문지식이 덕분에 어디를 가나 인정받습니다. 교수라는 타이틀은 강점이자 약점이에요. 보수적이거든요. 꾸미지 못하고 진실만 말하죠. 포장할 줄 모르는 성정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걸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교수 창업을 장려하는 분위기예요. 연구실에 갇힐 뻔한 아이디어들이 세상의 빛을 볼 기회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죠. 평생 연구한 분야로 창업할 수 있어서 큰 보람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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