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듈형 코딩 교구 모디 개발한 럭스로보 오상훈 대표
로봇 제조 스타트업 럭스로보 오상훈 창업자(32)를 만나기 전, 인터넷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써봤다. 검색해서 처음 나온 게시물은 한 학부모가 쓴 글이었다.
영재 발굴 TV 프로그램 출연 이후 오상훈 창업자가 먼저 연락해 왔다고 한다. 아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며 멘토를 자처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수년을 이어져 아이는 카이스트 영재원에 입학했다.
그 역시 영재 출신이다. 나이 서른이 넘은 지금은 기업가치 2400억원을 인정받은 스타트업 럭스로보를 이끌고 있다. 그를 만나 ‘로봇’ 그리고 ‘교육’에 대한 진심을 들었다.
◇로봇 대회 우승 휩쓴 영재
럭스로보는 모듈형 코딩 교구 모디(MODI)를 개발했다. 아이들이 상상하는 것을 무엇이든 만들 수 있고, 직접 손으로 조립하는 방식이라 어렵지 않다. 모듈마다 한가지씩의 기능을 담고 있다. 가령 버튼, 조이스틱 같은 ‘입력’ 모듈이 있는가 하면 모터, 스피커, 디스플레이 등 ‘출력’ 모듈도 있다. 여기에 네트워크, 배터리 등 ‘설정’ 모듈까지 결합하면 스스로 움직이는 나만의 로봇이 만들어진다.
전용 코딩 소프트웨어 앱 ‘레츠 모디’를 함께 활용하면 블록으로 로봇을 만들면서 코딩까지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다.
초등학교 4학년, TV를 보다 무언가에 홀딱 빠졌다. 새까만 하늘과 흙먼지가 날리는 땅, 그 위에 우뚝 선 ‘로봇’이었다. “TV 뉴스에서 우주 탐사 로봇을 처음 봤습니다. 그 순간 ‘로봇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학교 선생님께 여쭤보니 ‘대학 가면 배울 수 있으니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대답이 돌아왔죠.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에서 대학교수님들의 메일주소를 찾아 연락해 봤습니다. 하지만 답장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수학, 태권도 학원은 있어도 로봇 학원은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수도권 일대를 뒤진 끝에 인천에 있는 한 로봇 연구소를 발견했어요. 일단 찾아갔습니다. 로봇을 만들고 싶다고 했더니박사님께서 흔쾌히 가르쳐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었어요. 일주일에 2번 이상 찾아올 것, 그리고 착한 사람이 될 것. 꼭 그렇게 하겠다고 새끼손가락을 걸었습니다.”
서울 동작구의 집에서 인천까지 일주일에 2번씩 꼬박꼬박 찾아갔다. “한 번 갈 때마다 최소 4시간 정도는 붙어있었어요. 그곳에서 로봇을 배우는 동안 로봇 대회도 출전했습니다. 대회 준비 기간엔 아침 9시 가서 저녁 10시에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어요. 덕분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초등학생 로봇대회에서 전국 1등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초·중·고 학창 시절에 받은 로봇 관련 상만 200여 개에 달한다. 대학을 진학할 때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로봇’이었다. “당시 광운대에 로봇학과가 신설됐습니다. 아버지께서 충남대 기계설비과 1기 입학생인데요. 1기로 입학하면 유리한 점이 많을 거라는 말씀을 듣고 광운대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정말 혜택이 많았어요. 학부생 20명이 1년 연구비로 4억원을 쓸 수 있었습니다. 청소로봇, 쿼드콥터 등 상상했던 로봇을 모두 직접 만들어 볼 수 있었죠.”
대학교 4학년, 로봇에 대한 꿈을 현실화하기로 결심했다. 방법은 ‘창업’이었다. “연구실에서 바쁜 삶을 살면서 ‘내가 왜 열심히 공부했는가’를 돌이켜보면서 길을 찾았어요. 어떤 회사나 누군가의 연구를 돕는 일도 좋지만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죠. 마침 당시 서울경제진흥원(SBA)에서 하는 청년 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청년창업 1000 프로젝트’를 발견했습니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창업에 뛰어들었습니다. SBA의 지원을 받아 강남청년창업센터에 첫 사무실을 마련했죠.”
◇10년 전의 날 위한 로봇
2013년 8월 로봇 전문 스타트업 럭스로보(luxrobo)를 출범했다. 빛의 단위(lux)와 로봇(robot)을 합쳐 만든 이름이다. “로봇에 대한 열정만 있을 뿐 경영은 쥐뿔도 몰랐습니다. 처음엔 10여 년 전 저를 위한 로봇 제작 키트를 만들었어요. 대회용 교육 로봇이었는데요. 수요가 거의 없더군요. 그 로봇 키트를 살 사람은 10년 전 저 하나였습니다.”
1년간 쉬지 않고 새로운 제품을 구상하고 만들었다. “공대생을 위한 스마트 책상, 실내 위치 솔루션, 색이 변하는 스마트 유리, 스마트 화분 등 6번의 실패를 겪었어요. 어떤 아이템은 경쟁자가 너무 많아 발전시킬 수 없었고, 또 어떤 아이템은 특허 출원에서 한발 늦었습니다. 생산하는 방법을 몰라 좌절하기도 했죠. ‘사업은 나랑 안 맞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첫 아이템 ‘교육용 로봇’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이번엔 제품을 개발하기 전 시장에 나와 있는 모든 제품에 대한 조사부터 했습니다. 각 제품이 어떤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지 분석하다 보니 소프트웨어 분야의 발전이 더딘 것 같더군요. 물리적으로 작동할 하드웨어와 이를 운용할 소프트웨어를 함께 개발하기로 했죠.”
초등학생도 쉽고 직관적으로 로봇을 만들고 코딩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키트 제작에 착수했다. 기존 교구와 달리 모듈형으로 제작했다. “로봇에 센서나 모터를 넣으려면 각각 회로를 구성하고 전압 등 스펙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각 기능을 모듈화했죠. 필요한 기능을 가진 모듈끼리 연결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이름도 모디(MODI)라고 지었어요.”
모디는 모듈형 코딩 교구다. 각 모듈은 모터·디스플레이·LED·블루투스 등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모듈 결합만으로 상상 속 로봇을 직접 만들 수 있다. “비슷한 다른 교구들은 메인 모듈이 있고 그 모듈에 센서와 모터를 꽂는 방식입니다. 모터는 4개까지, 센서는 8개까지만 꽂을 수 있죠. 모디는 센서 하나만 있어도 작동할 수 있습니다. 센서·모터는 수만개를 연결할 수도 있어요. 아이들의 뛰어난 상상력을 그대로 현실로 표현할 수 있죠.”
모디가 잘 작동하려면 소프트웨어 역시 중요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반도체마다 MCU(전자제품의 두뇌역할을 하는 핵심칩)라는 게 들어가는데요. MCU 제작사마다 개별 OS(Operating System, 운영체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로봇을 만드는 입장에선 A사의 OS와 B사의 OS를 각각 익혀야 하는 어려움이 있죠. 마치 스마트폰 앱을 만들 때 안드로이드 앱과 iOS용 앱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요.”
마이크로OS에서 답을 찾았다. “안드로이드가 윈도우의 하위 개념이라면, 마이크로OS는 안드로이드의 하위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초소형 반도체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로 모든 MCU에 적용할 수 있는 OS죠. 어떤 MCU에서도 연동이 되기 때문에 전문성이 없어도 쉽게 코딩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만든 로봇 교구가 영국 학교에
2016년 드디어 모디 개발이 끝났다. 이제 살 사람을 찾아야 하는 상황. “영국의 유통회사 30곳을 찾아 메일을 보냈어요. 모디를 소개하면서 만나고 싶다고 했더니 두 곳에서 답장이 왔죠. 비행기 티켓을 끊고 영국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남은 28곳에 다시 전화해서 ‘영국에 왔으니 만나달라’고 해서 결국 5개 회사와 미팅을 했습니다. 하지만 계약으로 이어지진 않았죠.”
영국에 뿌려둔 씨앗은 훗날 새로운 기회로 찾아왔다. “당시 영국에 소문이 났었대요. ‘한국에서 이상한 사람이 왔었다’면서요. 그러다 영국의 한 유통회사 관계자가 한국에 출장을 온 김에 저를 떠올리며 미팅을 제안해 왔습니다. 그날 저녁 9시 호텔 로비에서 처음 만났는데요. 모디를 들고 가서 설명했더니 당장이라도 계약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2016년 8월 영국의 TSL사와 납품 계약을 처음 맺었습니다.”
이듬해 1월 모디 모듈 13만개를 보내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양산 과정에서 버그 380개를 발견하고 고쳤는데도 여전히 안정성이 떨어졌어요. 이대로 제품을 보냈다간 다신 모디를 찾지 않을 것 같았죠. 납품 기일 3일 전 다시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갔습니다. 한 달 안에 고칠 테니 한 번만 더 믿어달라고 했더니 ‘I trust you(당신을 믿겠다)’라고 하더군요. 한 달간 버그를 모두 해결해 그해 3월 극적으로 납품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단 한 번의 계약으로 럭스로보는 글로벌 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영국 TSL사와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 만으로 중동, 미국 등 다른 국가로 수월하게 진출했습니다. 2017년 한 해에만 48개국에 수출했어요. 빠르게 사업을 확장하면서 2018년엔 글로벌 IT회사에서 인수합병 제안을 받기도 했습니다. 너무나 달콤했지만 거절했어요. 럭스로보를 특정 기술을 가진 회사로 가두고 싶지 않았거든요 이 기술로 만나고 싶은 아이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삼키면서 럭스로보의 성장세도 주춤해졌다. “해외 시장에 공교육 중심으로 납품하던 터라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팬데믹을 맞아 교문이 잠겼고 수업은 모두 비대면으로 전환됐습니다. 국내 사교육 시장도 경직되긴 마찬가지였어요. 연 매출이 2020년 46억원에서 2021년 37억원으로 떨어지면서 진짜 위기란 생각이 들었죠. 교육사업 외에 구상하고 있던 AIoT 사업을 서둘렀습니다.”
AIoT는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을 결합한 말이다. “마이크로OS를 이용해 기존 IoT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자율주행로봇, 스마트팜 관련 디바이스 등 반도체 MCU가 들어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활용할 수 있죠. 가령 운전자가 얼마나 안전하게 운전했는지를 측정하거나 온·습도에 따라 작물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2년엔 AIoT만으로 85억원의 매출을 냈습니다. 대기업 한 곳을 시작으로 올해는 7개의 고객사에 관련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어요.”
◇前 로봇 영재가 꿈꾸는 미래
2023년 1월부터 10월까지의 교육 사업 분야 매출은 44억원을 기록했다. 종전의 최고치에 근접한 숫자다. 2024년 IPO(기업공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원래 2022년 상장하려 했지만 코로나와 반도체 자잿값 인상 등의 이슈로 연기가 불가피했습니다. 올해 들어 매출·이익구조 등이 목표한 만큼 안정세를 찾으면서 다시 상장 관련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12월 중으로 기술 평가를 하고 내년 초엔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할 예정입니다.”
오상훈 창업자는 마치 수상소감을 하듯 감사한 사람을 한 명씩 소개했다. “처음 제게 로봇을 가르쳐주신 박사님, 학교 차원에서의 지원책을 알아봐 주셨던 교장 선생님, 로봇을 만들다 응급실에 간 절 위해 병원비를 내 주셨던 교수님, 함께 창업했던 동료들까지, 돌이켜보면 ‘사람’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엔 SBA의 서울테크밋업 협의체의 일원으로서 인공지능·블록체인·생명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테크 기업과 교류하고 있다. “SBA의 주도로 사회 가치 환원을 목표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죠. 前 로봇 영재, 現 로봇 전문가로서 아이들이 상상하는 모든 걸 직접 만들 수 있는 세상을 만들 겁니다. 모디가 그 첫걸음이 될 거예요.”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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