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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치밥의 완성은 밥맛 아니겠습니까, 하하"

하림의 프리미엄 즉석밥 도전기


과거 즉석밥에는 ‘아이에게 줄 때 죄책감을 동반하는 음식’이란 인식이 따라붙었다. ‘끼니를 때우기 위해 불가피하게 고르는 선택지’라는 인식도 강했다. 유통기한을 늘리는 데 사용된 첨가물, 이취 등의 요소 때문에 자주 먹어선 안 되는 음식으로 꼽혔던 탓이다.

하지만 즉석밥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하이엔드’ 바람이다. 갓 지은 집밥 같은 풍미를 갖춘 프리미엄 즉석밥이 출시되면서 소비자 선택 폭도 넓어졌다. 그러면서 즉석밥 시장은 최근 식품업계 가장 핫한 격전장으로 변하고 있다.

특히 한국 즉석밥은 외국인도 많이 찾으며 한류 음식 중 하나로도 자리를 잡고 있다. 최근 공격적으로 신제품을 출시한 하림의 이정헌 품질관리팀장(39)을 만나 한국 즉석밥 업체들의 세계시장 공략기를 들었다.

◇즉석밥 대전 본격 개막

제품 개발을 주도한 품질관리팀의 이정헌(39) 팀장. /하림

하림은 지난 5월 ‘The미식(더미식) 밥’ 11종을 출시했다. 첨가물 없이 쌀과 물로만 뜸 들여 지은 제품이다. 같은 달 CJ제일제당은 버섯, 연근 등의 원물뿐만 아니라 전복과 고기까지 재료로 쓴 ‘햇반솥반’ 3종을 추가로 선보였다. 지난해 곤약 쌀을 넣은 브랜드를 신규 론칭한 오뚜기도 ‘곤라이스’ 3종을 판매 중이다.

- 업계 전반이 즉석밥 고급화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 같습니다.

“즉석밥의 프리미엄화는 HMR(가정간편식)이 밥상을 대체하는 현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1인당 쌀 소비량은 30년 전과 비교했을 때 반 토막이 났지만 즉석밥 시장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요.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즉석밥 시장은 2011년 1290억원에서, 2020년 4437억원 규모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즉석밥이 밥의 대체품을 넘어 현대인의 생활 필수품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죠.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급화 등의 전략을 취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 시장 변화 속에서 하림이 취한 전략은요.

“현재 즉석밥 시장은 CJ제일제당과 오뚜기 양강 구도로 형성돼 있는데요. 이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후발주자로서 ‘정공법’을 택했습니다. 지을 때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는 집밥처엄 ‘첨가물 제로(zero)’를 모토로 했습니다.”

- 이유는요.

“출발점은 즉석밥을 주제로 실시한 소비자 설문 조사 결과였어요. 설문에 따르면 즉석밥을 즐겨 먹지 않는 소비자의 60%가 ‘즉석밥 특유의 이상한 신냄새 즉, 이취 때문에 꺼리게 된다’고 응답했어요. 이들의 47%는 ‘즉석밥에 이취가 없다면 먹을 의향이 있다’고 답했죠. 여기에 착안해 갓 지은 집 밥처럼 이취가 없는 즉섭밥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즉석밥을 꺼리던 사람까지 즉석밥 시장으로 끌어들여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죠. 여기에 집에서 만들기 어려운 귀리쌀밥, 메밀쌀밥, 안남미밥 등의 선택지를 추가해 차별성을 더하기로 했습니다.”

◇쌀과 물로만 제품 만들기 위해 전 공정 무균화

하림 즉석밥 생산 공정. /하림

즉석밥 포장을 뜯을 때 나는 불쾌한 냄새의 원인은 보존료, 산소조절제 등의 화학 첨가물이다. 이취를 없애려면 오로지 쌀과 물로만 제품을 만들어야 했다.

- 쌀과 물로만 즉석밥을 만드는 게 가능한가요.

“가능합니다. 다만, 몇 가지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생산라인의 무균화’입니다. 첨가물 없이 밥을 짓기 위해 꼭 충족해야 하는 조건이죠. 무균화 검증을 위한 첫 단계는 ‘검증용 배지’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배지란 미생물, 세포 등의 배양을 위한 영양물인데요. 생산라인이 무균 상태인지 확인하려면 이 배지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국내에 적합한 배지가 없다는 것인데요. 해외에서 배지를 찾아 비행기로 들여야 했습니다. 이 과정이 마치 007 영화처럼 아슬아슬해서 걱정과 긴장을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하림 즉석밥 더미식 잡곡밥. 포장 겉면을 뜯은 모습이다. /하림

- 그 다음에는요.

“생산 담당자들이 생산라인에서 미생물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검증용 샘플 약 1만개를 일일이 열어 확인했습니다. 총 3일이 걸렸어요. 마지막 한 샘플까지 미생물이 없음을 확인했을 때는 심마니가 산삼을 찾은 순간처럼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쁨과 안도감이 몰려왔습니다. 모두의 땀으로 무균화 설비 ‘클린룸’을 구축했습니다. 이후 모든 즉석밥은 이 클린룸에서 만들어집니다. 무균 포장되기 때문에 별도의 첨가물이 없어도 상온에서 10개월 장기간 유통이 가능합니다.”

◇집 밥 풍미 그대로 담기 위해 천천히 식혀

'눌러보세요'라는 하림 즉석밥 더미식 마케팅 문구를 쓰고 있다. 표면을 눌러보면 밥알이 납작하게 눌리지 않고 한 알 한 알 고슬고슬하게 살아있는 걸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하림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다. 아무리 깨끗한 환경에서 좋은 재료를 만들었다 해도, 맛이 없으면 소비자의 외면을 받게 된다.

- 맛을 위해선 어떤 노력을 했나요.

“밥 본연의 풍미를 살리기 위해 고온 스팀 살균을 거친 쌀과 고온의 열수로 살균한 물만 사용했습니다. 쌀과 물로만 밥을 지었기 때문에 산성이나 알칼리성 정도를 나타내는 수소이온농도를 측정해 보면 집에서 지은 밥과 같은 중성(pH 7)이 나옵니다. pH의 숫자가 적을수록 산성을 띠는데, 1세대 즉석밥의 경우 4~6수준의 pH를 보이죠.”

- 밥을 지은 후의 공정이 궁금합니다.

“취반한 밥은 냉수로 냉각하지 않고 온수로 천천히 뜸들입니다. 이렇게 공정하면 용기 필름과 밥 사이에 공기층이 생겨, 밥알이 납작하게 눌리지 않고 한 알 한 알 고슬고슬하게 살아있는 채로 포장할 수 있어요. 실제로 더미식 밥의 용기 위를 누르면 볼록한 밥알의 모양이 느껴집니다. 1세대 즉석밥의 표면이 눌려져 있는 것과 대조적이죠.”

◇김홍국 회장의 경험에서 탄생한 제품

제품 개발을 주도한 품질관리팀의 이정헌 팀장과 하림 더미식 즉석밥. /하림

우수한 품질에 ‘고르는 재미’를 더했다. 하림은 백미밥, 귀리쌀밥, 메밀쌀밥, 고시히카리밥, 흑미밥, 잡곡밥, 현미밥, 현미쌀밥, 찰현미쌀밥, 안남미밥, 오곡밥 등 총 11종을 출시하며 라인업을 다양화했다.

- 무엇을 기준으로 라인업을 결정했나요.

“마케팅팀의 수요 조사와 시장 데이터 분석 결과를 토대로 맛을 결정했습니다. 메밀쌀밥의 경우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님의 실제 경험에서 나온 아이디어입니다. 한때 콜레스테롤 수치가 240까지 나왔던 회장님은 일주일에 메밀밥을 2~3회 먹으며 관리해서 수치를 180으로 낮췄다고 해요. 메밀의 위력을 체감한 덕에 메밀쌀밥의 개발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셨죠.”

- 11종을 동시에 개발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요.

“개발에 약 5년의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가장 바쁠 땐 한 번에 5가지 제품을 개발하느라 레시피와 공정을 달리해 하루에 20가지의 다른 조건을 적용해 밥을 지은 적도 있어요. 밤낮으로 밥을 먹어야 했죠. 밥의 맛에 몰입하느라, 아내가 지어준 밥 맛까지 평가했다가 아내에게 혼난 적도 있어요. 많은 노력을 쏟았는데 그만큼 보람이 큽니다. 4, 6살 자녀에게도 안심하고 먹일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고 맛있는 즉석밥을 만들든 것 같아 뿌듯합니다.”

◇가격경쟁력으로 후발주자 불리함 보완

하림은 즉석밥 더미식을 내놓으면서 기자간담회도 열었다. /하림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더미식 밥 11종을 시중에 내놓았다. 210g 1인분이 기본 포장 단위다. 종류에 따라 180g, 300g 제품도 있다. 들인 공에 비해 가격을 착하게 책정했다. 공식몰 기준으로 백미밥(210g) 2300원, 잡곡류(180g)는 2800원이다. 타사의 프리미엄 라인보다 400~500원 저렴한 수준이다.

- 용기가 사각형인 게 눈에 띕니다.

“아기 젖병에 사용되는 PP 재질의 사각형 용기에 밥을 담았습니다. 열을 골고루 분산하기 위해 기존 즉석밥의 원형 용기대신 넓고, 얇게 용기를 디자인한 것이죠. 용기 위에 카레, 짜장 등을 소스를 바로 부어도 넘치지 않도록 높이도 넉넉하게 설계했습니다. 제품 보관 관점에서 사각 용기는 공간 효율도 좋은 편이에요.”

- 타사 대비 가격이 저렴한 편인 것 같습니다.

“무조건 고가로 책정하는 것 보다는 제대로 된 제품에 제대로 된 값을 받는 것이 하림의 전략입니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배달 음식 수요가 많아지고, 외식도 많이들 하시는데요. 소비자분들이 더미식 밥을 통해 경제적 부담 없이 집밥 같은 밥을 먹으며 건강한 식생활을 영위하셨으면 합니다.”

- 하림의 목표와 비전이 궁금합니다.

“저희까지 즉석밥 2.0 대전에 참전하면서 보다 다양한 식습관과 취향을 충족하는 제품이 시장에 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전에 즉석밥을 꺼렸던 까다로운 소비자까지 이 시장에 유입 시켜 시장 자체를 확대하려는 게 하림의 구상입니다. 훌륭한 맛은 물론 밥 체험 등의 소통을 통해 소비자와의 접점을 빠르게 넓히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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