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인베스트먼트 서비스 ‘머니스테이션’ 개발한 이정일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투자 전문가는 ‘도박’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직업이다. 펀드매니저, 기관투자자로 일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수백억원, 많게는 수조원의 돈이 오가는 모습을 본다. 웬만한 금액엔 반응도 하지 않을만큼 무뎌진다. 그래서 더욱 날을 세워야 한다. 한 번의 실수로 그 큰돈이 휴지 조각이 될 수도 있다.
그 돈이 내 돈이라면 어떨까. 차트의 불빛이 빨간 불, 파란 불로 바뀔 때마다 인생 그래프가 출렁이는 기분에 휩싸일 것이다. 이쯤 되면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이정일 머니스테이션 대표(40)는 그런 심리를 파고들었다. 머니스테이션은 소셜 인베스트먼트 서비스로 투자자들의 소통을 돕는다. 이 대표를 만나 인생에서 가장 리스크(risk)가 큰 투자인 ‘창업’에 뛰어든 이유를 들었다.
◇투자가 ‘과거’를 다루는 일인 이유
2009년 미국 인디애나주에 있는 퍼듀대를 졸업했다. “금융 공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당시만 해도 생소한 분야라 학부 과정엔 없더군요. 매일 새로운 데이터가 쏟아지는 금융시장을 사람의 눈으로 분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금융 공학 과정이 있던 대학원 석사과정을 염두에 두고 수학·전산학을 전공했습니다.”
병역 특례 제도를 활용해 핀테크(금융과 기술을 결합한 서비스) 스타트업 ‘웹케시’에서 첫 사회생활을 경험했다. “금융 재무 솔루션을 개발하는 일을 맡았어요. IT와 금융을 동시에 다루는 일이라는 점에서 딱 원하던 일이었죠. 신사업, 신규 트렌드에 대한 조사도 업무의 일환이었습니다.”
제대 이후 뉴욕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금융 공학 석사 과정을 밟기 위해서였다. “2013년 공부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곧장 직장을 잡았습니다. 미래에셋, KB증권 등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증권사에서 펀드매니저, 연구원 등으로 일했죠.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했습니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게 아니에요. 한국·미국 시장을 모두 놓치지 않고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혼을 갈아 넣었죠.”
경력이 쌓일수록 ‘미래’를 향한 갈증이 커졌다. “투자는 ‘미래’보다 과거를 다루는 일에 더 가깝습니다.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해, 돈을 어디에 둘 지 결정해야 하는 일이죠. 문득 유학 시절에 봤던 금융 IT서비스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미국의 온라인 투자 앱 로빈후드(Robinhood)는 2013년, 유럽 기반 주식 거래 플랫폼 이토로(eToro)는 2007년에 출범했죠. 우리나라는 한참 뒤처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창업, 인생을 건 투자
2017년 퇴사 후 창업에 뛰어들었다. 아이템은 분명했다. 소셜네트워크 방식의 금융 정보 공유 서비스다. “기존 한국 시장엔 금융 시장 데이터를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서비스만 존재했어요. 양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토로도 처음엔 커뮤니케이션 기반의 서비스에서 출발해 나중엔 투자를 직접 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어요. 일단 아고라 같은 광장을 만든 다음 데이터 분석 툴 개발 등을 이어나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듬해 핀테크 스타트업 머니스테이션을 설립했다. “최대한 돈은 적게 들이고 반응형 웹 형태로 가벼운 서비스를 만들기로 했어요. 개별 콘텐츠의 링크가 만들어지면 다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앱이나 포털사이트로 퍼져나가는 건 순식간일 테니까요.”
머니스테이션을 알리기 위해 기존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포털사이트 블로그를 개설해 양질의 콘텐츠를 거의 매일 발행했어요. 어딘가에서 복사·붙여넣기한 뻔한 글이 아니라, 학교에서 배우고 일하면서 익힌 금융 지식을 녹여 직접 만들었습니다. 시황·공시와 관련 뉴스를 함께 정리하거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요약해 자료를 축적했죠. 나중엔 그 아래에 머니스테이션의 링크를 넣어 클릭을 유도했어요.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심정으로 사용자를 모았습니다.”
2020년 머니스테이션 웹 서비스를 공식 출시했다. “텔레그램에서도 블로그와 유사한 형태로 콘텐츠를 계속 쌓았더니 1만1000명의 구독자가 생겼어요. 블로그 구독자 1만7000명에 텔레그램 구독자까지 흡수했습니다. 머니스테이션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정보의 양과 질이 모두 높아졌어요. 기존 금융 커뮤니티와 달리 링크, 사진, 영상을 쉽게 업로드할 수 있고 ‘좋아요’, ‘팔로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성격을 띤다는 점도 강점이죠.”
활성 사용자는 2020년 1만명에서 2024년 현재 5만명으로 늘었다. “2021년부터 금융투자사의 MTS(Mobile Trading System) 앱에 머니스테이션 콘텐츠를 노출한 것이 주효했어요. 하이투자증권, DB금융투자, 하나증권, 삼성증권 등 앱의 모바일 토론방에 머니스테이션의 콘텐츠를 링크하는 기능이 추가됐죠. 디즈니, 테슬라 등 유명한 종목 외에도 다양한 해외 주식 종목에 대한 콘텐츠가 수시로 공유되고, 시의성을 충분히 반영한다는 점에서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동시에 금융증권사를 위한 금융 시장 분석 솔루션 ‘시그널 엔진’을 개발, 출시했다. “사람의 눈으로 찾을 수 없는 시장의 흐름과 종목들 간의 관계를 찾아주는 서비스입니다. 기존 로보 어드바이저나 검색엔진은 단순히 검색량, 최근 상장한 코인 등을 보여줄 뿐이죠. 시그널엔진은 어떤 종목을 언제 사서 언제 팔면 좋을지까지 제시해 줍니다. 원금을 극단적으로 보전하고 싶을 때 외생적 리스크를 줄여주죠. 장기적으로는 이 기능을 머니스테이션 안에 탑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7년간 한 길만 판 투자자
B2B(기업 간 거래) 솔루션 ‘시그널 엔진’ 출시에 힘입어 머니스테이션은 2023년 매출 7억원을 기록했다. 2024년 2월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데이 본선에 진출해 가능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장기적인 목표는 머니스테이션 한곳에서 투자의 전 생애주기를 다루는 일입니다. 정보 취득, 분석, 투자, 사후 관리 등 투자는 여러 단계를 거칩니다. 이 모든 과정을 머니스테이션에서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창업 이후 단 한 번도 사업 내용이나 방향성을 바꾼 적이 없다. “그 사실은 저의 큰 자부심입니다. 7년간 지독히도 외로웠어요. 투자 시장에 있는 투자자들도 비슷한 마음일거로 생각해요. 내가 하는 게 맞나 의구심이 들 때도 있겠죠. 그럴 때마다 머니스테이션에서 투자자들이 서로 위로하더군요. 또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힘을 얻었습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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