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5. 11:01ㆍ인터뷰
우주의학 스타트업 스페이스린텍 윤학순 대표 인터뷰

광활한 우주가 인류의 질병을 정복하는 거대한 ‘무중력 실험실’로 변모하고 있다. 우주의 미세중력 환경은 지상에서 불가능했던 정밀 약물 합성과 세포 성장이 가능하다.
2021년 설립된 ‘스페이스린텍’은 우주 공간을 활용해 신약 개발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는 데 도전하고 있다. 스페이스린텍의 윤학순(59) 대표를 만났다.
◇ 우주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의 첫발, 스페이스린텍

스페이스린텍은 우주의 미세중력 환경을 활용한 신약 개발 플랫폼을 구축한 우주의학 스타트업이다. 우주 공간에서 단백질 결정을 성장시키거나 인공 장기인 오가노이드를 제작해 중력 영향권인 지상에서는 확보하기 어려운 고정밀 데이터를 수집한다. 제약사나 연구 기관은 이를 통해 신약 개발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신생 스타트업이지만 굵직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25년 실험 모듈 ‘BEE-PC1’을 스페이스X의 팰컨 9 로켓에 실어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발사했다. 이 실험에서 수집한 데이터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함께 분석해 차세대 폐암치료제 개발에 활용될 예정이다. 같은 해 겨울, 누리호 4차 발사에도 참여해 제약 연구개발 위성 BEE-1000을 누리호 위성에 탑재했다. 최근에는 미국의 항공우주 및 방위업체 보이저 테크놀로지스(Voyager Technologies)와 계약을 맺었다. ISS로 신약 개발용 물품을 발송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 학문의 경계를 넘어 우주에 닿다

스페이스린텍을 이끄는 윤학순 대표는 미국 버지니아 노퍽주립대 신경공학과 교수다. 물리학, 뇌공학, 에너지, 우주과학 등. 그의 학문적 스펙트럼엔 경계가 없다. “연세대 물리학과에서 학부와 석사 과정을 밟은 후 SK하이닉스에서 6년간 반도체 개발자로 일했습니다. 요즘 화두인 HBM 제조의 핵심 공정인 TSV(실리콘 관통 전극) 기술을 주로 다뤘죠. 이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우주 통신에 사용되는 소자 개발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배움의 범위를 넓히고 싶어 박사 후 과정 때 바이오메디컬(Biomedical) 엔지니어링으로 분야를 틀었다. “뇌공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뇌에 탐침을 넣어 신경을 읽는 기술을 연구했죠. 다양한 분야를 두루 접한 덕분일까요. 흥미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미국 국립보건원(NIH) 등 굵직한 기관의 연구 과제를 수행했습니다. 특히 2015년부터 나사 존슨 스페이스센터 우주인 관리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시야를 우주 공간으로 확장했습니다.”
◇ 제약 R&D의 다음 무대 ‘우주’

항공우주 산업이 고도화되고, 단위당 우주 화물 비용이 떨어지자 머크(Merck)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우주실험을 시작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중력이라는 강력한 통제요인이 없는 우주는 깨끗한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는 무중력 실험장이기 때문이다.
우주산업의 발달은 신약 개발의 길을 터줬다. “지상에서 신약 개발 시 중력이라는 물리적 제약에 부딪힙니다. 약물 합성 과정에서 분자들이 결합해 질량이 생기면 중력에 의해 가라앉거나 대류 현상이 발생해 정확한 반응 제어가 어렵거든요. 반면 우주의 미세중력 환경에서는 이런 요인이 사라져 훨씬 순수하고 정밀한 단백질 결정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맥킨지 리포트에서는 우주기술과 융합했을 때 가장 폭발력이 있는 분야로 제약, 바이오 산업을 꼽았습니다.”

문제는 우주를 실험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글로벌 빅파마(Big Phama)에만 열려 있다는 사실이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의 비용이 소요되는데요. 우주 실험을 활용하면 개발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덩치 작은 제약사에겐 그림의 떡 같은 상황이었어요. 우주 실험에 접근할 방법이 사실상 없으니까요. 한국에도 실력이 뛰어난 연구진과 제약회사가 많은데요. 이들이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 기술이전에 그치지 않고, 블록버스터 신약 출시로 이어지려면 이들에게도 우주 실험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우주에서 설계하고, 지상에 적용하다

2021년 스페이스린텍을 설립하고, 우주 실험의 문턱을 낮춘 플랫폼 개발에 착수했다. 그렇게 무인 우주 의학 시험 모듈 BEE-PC1이 탄생했다. “과거에는 우주인이 수동으로 실험을 수행해서 번거롭고, 인적 오류 가능성이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BEE-PC1을 무인 자동화 모듈로 개발했습니다. 우주인이 장치를 받아서 우주 정거장에 두기만 하면 지상에서 원격으로 실험을 제어하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습니다. 인적 오류 가능성을 제거해 실험의 정밀도를 획기적으로 높였죠.”
2025년 8월, ISS에 BEE-PC1을 보내 세계 최초로 단백질 결정화 및 모니터링 공정을 우주인 도움 없이 진행했다. “우주의약 연구 모듈을 ISS에 탑재해 완전 자동으로 실험을 마친 뜻깊은 사례였습니다. 실험의 목적은 폐암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 구조 분석인데요. 이런 연구를 통해 질병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 구조를 파악하게 되면, 신약개발 속도가 극적으로 빨라집니다. 연구 데이터를 요즘 활발하게 활용되는 인공지능(AI) 신약 시뮬레이션 기술에 접목하면, 문제 단백질 구조에 걸맞은 타겟 약물을 빠르게 찾을 수 있죠.”

현재는 단백질 결정성장 플랫폼만 운영 중이지만 추후 면역항암세포치료제, 오가노이드 의약 실험 등으로 범위를 넓힐 구상이다. “우주에서는 단백질뿐만 아니라 세포, 조직 단위로도 정밀한 실험이 가능합니다. 우주는 동물실험의 대안인 인공장기 오가노이드 활용에 적합한 무대이기도 합니다. 지상에서는 중력 때문에 조직이 찌그러질 우려가 있는데, 중력이 없는 환경에서는 다양한 복합구조를 만들 수 있거든요.”
우주의약 실험 플랫폼에서 더 나아가, 생산 시스템으로 확장하는 게 목표다. “유명 제약사를 포함한 모든 제약사의 공통적인 과제는 환자 친화적인 제형 개발입니다. 현재의 항암 투여 방식은 환자와 병원 모두에게 최선이 아닙니다. 긴 투약시간은 환자에게는 고통을 주고, 병원에는 행정적 부담이 되죠. 하지만 지상에서는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 약제가 균질하지 않거나 걸쭉해 질 수밖에 없는데요. 우주 환경에서는 피하주사 한방으로 투약할 수 있는 가벼운 제형으로 항암제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상용화 된다면 파급력이 어마어마하겠죠.”
◇ 인류를 질병에서 자유롭게

우주의약이라는 어려운 길을 택한 결정은 달콤한 결실로 돌아왔다. 스페이스린텍은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K-헬스미래추진단의 의료 난제 극복 우주의학 혁신의료기술개발 과제 주관기업으로 선정돼 90억원 규모의 연구를 수행 중이며, 우주항공청이 출자한 컴퍼니케이 뉴스페이스펀드 투자를 받았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배치 4기에도 선정돼 전문가 멘토링, 네트워킹 등 다양한 지원을 받고 있다. 해외 벤처캐피털의 러브콜도 쏟아진다.
국내외 네트워크 확장도 활발하다. 민간 우주정거장 개발사인 보이저 테크놀로지스와 본격적인 협업을 앞두고 있으며 나사와는 화성 유인 탐사에 필요한 우주 의학 기술 연구 과제를 준비 중이다. 국내 3대 메이저 병원 중 한 곳과 공동 실험 추진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반도체 시장의 TSMC처럼 우주 제약 생산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기업이 되고 싶습니다. 전 세계 제약사들이 저희의 무인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우주에서 신약을 개발하고 약물을 생산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윤 대표는 반도체가 AI시대를 열었듯, 우주제약 기술이 인류를 새시대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약 개발 비용이 1조원 이하로 떨어지면 국내 제약사들도 감당 가능한 수준이 됩니다. 또한 수익성 문제로 외면 받던 희귀질환도 상업적 파이프라인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희귀 질환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기회가 열리는 것이죠. 우주가 탐사의 영역을 넘어 실질적인 산업과 생존의 공간으로 다가왔습니다. 저희 기술이 인류를 질병에서 자유롭게 하는데 이바지했으면 합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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