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5. 11:08ㆍ인터뷰
기업의 탄소중립 이행 전 과정을 지원, 기후테크 스타트업 엔츠

기후변화 대응 능력이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히면서 ‘탄소중립’이 기업의 핵심 지향점으로 급부상했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공시기준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이 탄소중립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있으며, 수입품 생산 과정의 탄소배출량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등 규제 칼날이 매서워지고 있다. 이제 기업들에게 탄소중립은 선의가 아닌 데이터로 증명해야 하는 생존 과제다.
스타트업 엔츠(AENTS)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업의 탄소중립 이행 돕기에 나섰다. 복잡한 탄소배출량 산정부터 감축 전략 수립, 기후공시 대응까지 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한 배경이다. 엔츠의 박광빈(33) 대표를 만나 기업의 탄소중립 이행을 돕는 법에 대해서 들었다.
◇탄소 측정부터 감축까지, 탄소관리 올인원 플랫폼

2021년 설립된 엔츠는 기업이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모든 업무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처리할 수 있는 탄소중립 설루션 ‘엔스코프’의 개발사다. 엔스코프는 배출량 산정 자동화, 탄소감축 로드맵 설정, 기후공시 리포트 생성까지 탄소중립 이행의 전 과정을 아우른다.
엔츠는 엔스코프를 필두로 개별 제품의 탄소배출량(PCF)을 측정하는 ‘엔스코프 PCF’, ESG 공시 자료 취합에 특화된 ‘엔스코프 for ESG’, CDP 공시 대응을 지원하는 ‘엔스코프 CDP’ 등 기업 상황에 따라 활용 가능한 세부 기능을 갖추고 있다. 기업 실무자가 작업장, 에너지 사용량, 구매 데이터 등을 플랫폼에 연동하면 탄소배출량을 산정하고, 이를 보고 가능한 리포트 형태로 만들어 준다.
◇속도를 높이는 기술보다, 시대의 숙제를 택한 이유

박광빈 대표는 카이스트(KAIST)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전산학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창업 전 의료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뷰노’에서 AI연구원으로 재직한 것을 포함해 AI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6년간 경력을 쌓았다.
항상 소비보다 생산에 관심을 뒀다. “학부 전공은 물리학이었지만, 연구자로서 지식생산자의 삶을 사는 제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생산하며 시간을 보내야 가치가 있을까 고민했는데요. 회사를 만들어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게 의미 있겠다 판단했습니다. 창업을 목표로 대학원에서 AI를 공부하고, AI 스타트업에서 경험치를 쌓았죠.”
스타트업 붐이 거세던 당시, 수많은 아이템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는 자신만의 엄격한 선정 기준을 세웠다. “기술이 세상의 속도를 높이거나, 극적인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에 의문을 느꼈습니다. 세상은 이미 충분히 빠르고 편리한데, 저까지 거기 뛰어들어야 할까 자문했죠. ‘하면 좋은 일’이 아니라 ‘이 시대에 안 하면 안 될 일’을 창업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그의 시선이 탄소중립에 닿은 것은 AI 연구원으로서의 일상 덕분이었다. “연구를 위해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는 GPU(그래픽 처리 장치)를 쉼 없이 돌리다, 에너지를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탄소중립’ 키워드를 처음 접했죠. 머지않은 미래에 모든 개인과 기업이 탄소배출량을 측정하는 시스템을 반드시 갖추게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탄소중립은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숙제이자, 시대가 필연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업이라는 판단이 저를 기후테크라는 길로 이끌었죠.”
처음엔 제로 에너지 빌딩 관리 시스템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건물 전력 사용 패턴과 탄소배출량을 AI가 분석해 불필요한 부분을 감소해주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제품을 개발한 후 잠재 고객인 건물주들을 만나고 다녔어요. 현실은 가설과 다르더군요. 건물주들은 탄소배출이나 전기요금 절감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태양광 같은 관련 인프라도 충분히 보급되지 않은 상태였어요. 시장성이 부족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기후공시 의무화 앞두고 드러난 ‘도구의 부재’

건물이 아닌 ‘기업’의 탄소 측정 및 저감으로 방향성을 틀었다. 탄소중립의 당위성은 규제와 시장의 요구에 있다. 한국에서는 자산 규모 2조원 이상의 대형 상장사부터 단계적으로 기후공시 의무화가 적용될 예정이다. 규제 대상이 아닌 덩치 작은 기업도 탄소 회계 도입을 서두르는 추세다. 글로벌 대기업들이 자신들의 공급망에 포함된 협력사에 탄소배출량 정보를 요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탄소중립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과제로 부상했지만, 기업의 탄소배출량 산정, 감축 전략 수립, 기후공시로 이어지는 업무 흐름을 모두 아우르는 도구가 없었다. 그렇게 엔스코프 개발에 착수했다. “이번엔 ‘제품을 만들기 전에 고객을 먼저 찾고, 그들을 개발 과정에 참여시키자’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시장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제품을 만들겠다고 다짐했거든요. 개발 초기부터 대기업 ESG 담당자들을 직접 만나 현장의 문제를 듣고 다녔습니다.”

기존의 업무 방식은 여러모로 비효율적이었다. “실무자들의 고충은 업무량 이상의 문제였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기후공시 관련 데이터를 툴 없이 엑셀로 취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요. 매년 비슷한 작업을 반복하면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니 인적 오류 발생 우려가 컸습니다. 만약 기후공시가 의무화되면 해외 사업장과 하위 법인까지 공시 범위에 포함해야 합니다. 이 경우 다뤄야 데이터의 양과 범위가 급격히 확대돼 고충이 더 커지겠죠.”
현재로선 기후 공시 관련 모든 업무를 내재화할 수 없다는 한계점도 있었다. “기후 시나리오 리스크 분석이나 제품 탄소발자국 산정 같은 영역은 의무 공시 항목이지만, 내부 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전문 인력이 꼭 필요하죠. 결국 실무자들이 데이터 취합과 수식 검증, 외부 인력 관리에 매몰돼 정작 중요한 ‘탄소감축 전략 수립’이라는 본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죠.”

실무자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담아 엔스코프를 개발했다. “전기나 물 사용량, 차량 사용 내역, 출장 내역 등 탄소배출량 측정에 필요한 자료를 투입하면 자동으로 배출량을 계산해줍니다. 에너지의 경우 국가별, 지역별, 상황별로 산정법이 다른데요. 이 모든 과정을 자동화했습니다. 단순히 배출량 계산에 그치지 않고 기후공시 기준에 맞춰 규제 대응 리포트까지 생성해줍니다. 관련 지식이나 실무 경험이 없어도 엔스코프로 손쉽게 탄소배출량 측정 및 관리가 가능합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탄소감축 방법론을 컨설팅하는 ‘턴키’(Turnkey) 방식으로 서비스를 설계했다. “엔츠 내부에 온실가스검증심사원 자격증 보유자, 대기업 ESG팀 실무 경험자, 메이저 회계법인 시니어 컨설턴트 출신 등 기후, 온실가스 분야 전문가 조직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들의 전문성을 토대로 탄소중립을 이행하기 위한 방법론을 기업 상황에 맞춰서 제안합니다. 태양광 에너지 전환, 신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REC) 구매 등 기업이 당장 실행 가능한 방안을 제시해 줍니다.“
◇탄소중립을 업무가 아닌 ‘시스템’으로

서비스의 필요성과 기술력을 모두 인정받았다. 2021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유수의 기관으로부터 시리즈A 투자까지 유치했다. 누적 투자금액만 62억원에 달한다. 2025년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 배치 5기에 선정돼 다양한 지원을 받기도 했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에서 더 나아가 탄소중립 이행 방안까지 제시한 점을 높게 평가 받은 것이다. 실제로 자산규모 2조원 이상 대기업을 비롯한 40여곳의 기업을 고객사로 두는 등 레퍼런스를 탄탄하게 쌓고 있다.
엔츠의 시선은 이제 글로벌 시장으로 향한다. “현재는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 공시 기준 같은 국내 제도에 맞춰 공시 대응 기능을 고도화 하는 중인데요. 해외 진출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입니다. 사실 고객사 대부분이 해외 사업장을 보유중이라, 이미 글로벌 서비스를 간접 운영 중인 상황인데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호주, 뉴질랜드 등 아시아, 오세아니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겁니다. 이를 위한 기술검증(PoC)도 진행 중입니다.”

박 대표는 엔스코프가 단순한 소프트웨어를 넘어 기업의 탄소 측정과 감축에 필요한 모든 가치를 연결하는 ‘탄소중립 인터페이스’라고 강조했다. “존재하지 않던 시장에 진입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희의 방향성과 가치가 업계의 표준이 될 테니 그만큼 부담도 컸어요. 유저와 꾸준히 소통하며 테스트를 거칠 수밖에 없었죠. 그만큼 기후공시 대응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갖췄다고 자신합니다. 기후공시 의무화는 시간 문제입니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기업의 필수 파트너가 되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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