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12. 18:55ㆍ카테고리 없음
“평생 양치 안 하기” VS “평생 샤워 안 하기”

술자리 단골 손님 ‘밸런스 게임’이 환경 교육 영역까지 진출했습니다. 보는 이를 한참 망설이게 하는 이 질문은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 설치된 휴지통에 부착되어 있는데요. 두 선택지 중 더 마음에 드는 쪽으로 쓰레기를 버리면 됩니다. 평범한 쓰레기 배출 과정이 놀이가 된 순간이죠.

이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고안한 곳은 바로 소셜벤처 ‘사라나지구’입니다. 사라나지구는 독특한 콘셉트의 자판기 ‘지구자판기’의 개발사입니다. 지구자판기는 주방 세제와 세탁세제, 섬유유연제 등을 100ml 단위로 토출하는 친환경 자판기인데요. 각종 세제를 구매하는 대신 리필하는 습관을 고안하는 과정에서 탄생했습니다.
사라나지구의 서사라 대표는 지구자판기를 끌고 다니며 각종 기관이나 기업의 문을 두드립니다. 환경 교육을 진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자판기라는 친근한 형태가 교육 콘텐츠로 제격이거든요. 물론 서사라 대표만의 필살기는 더 많습니다. 2023년에만 40번 이상 교육을 진행한 비결이죠. 사라나지구의 환경 교육법을 알아볼까요.
1. 친환경 활동은 지루하지 않아요.

사라나지구는 환경보호 실천의 접근성을 높이는 걸 최우선으로 합니다. 이론이나 환경보호의 당위를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활동에 재미요소를 넣어서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죠. 사라나지구가 개발한 재미요소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승부욕 자극: 사라나지구 담당자와 방문객이 가위바위보를 합니다. 방문객이 이기면 더 많은 양의 세제를 리필하고, 지면 적은 양을 리필해주는 식으로 승패에 비례해서 보상을 하죠.
넛지 효과: 강요없이 유연한 방법으로 선택을 유도하는 방법을 ‘넛지’(nudge)라고 하는데요. 서론에 소개한 밸런스 게임이 대표적인 넛지 장치입니다. ‘환경을 보호합시다’라는 교훈적인 메시지 대신 흥미 요소로 쓰레기 배출을 유도하죠.
낯설게 하기: 사라나지구는 플로깅(plogging. 조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행동) 행사도 여러 번 진행했는데요. ‘이상한 쓰레기 대회’같은 게임을 추가해 행사를 특별하고 이색적으로 느끼게 해줍니다. 가장 이상한(?) 쓰레기를 발굴한 팀에게는 친환경 선물을 제품으로 증정하죠. 해당 쓰레기의 올바른 처리법을 설명해 교육 효과까지 잡았습니다. 역대 최고의 이상한 쓰레기로 조류 사체, 내용물까지 통째로 버려진 고추장, 관장약 등이 있었다고 하네요.
2. 환경보호로 화합을 이루는 일의 가치

어떤 사람들이 사라나지구의 환경 교육에 참여할까요? 정답은 ‘모든 사람’입니다. 어린 아이부터 70~8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참가자들을 교육 현장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간혹 교육 대상이 특정 연령대로 국한된 경우도 있지만, 지역 단위 행사는 그야말로 동네 모임이 되죠.

사실 같은 동네에 살아도 접점이 없으면 내 이웃이 누구인지 알 기회가 없는데요. 플로깅 같은 활동은 내가 속한 공동체의 일원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좋은 자리가 됩니다. 평소 만날 일 없는 사람들이 하나의 팀이 되어 마을을 깨끗하게 청소를 하면서 화합의 장을 이루죠.
3.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진실 전달

지구자판기의 목적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는 것입니다. 쓰레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죠. 발생부터 처리 과정까지 전 과정을 설명해드립니다. 이때 빼놓을 수 없는 게 환경 이론입니다.
요즘 중점을 두고 설명하는 이론은 ‘지구 보일링’(boiling)입니다. 지구 온난화보다 더 심각한 개념으로 지구 열대화 또는 지구 가열화라고도 부르죠. 지구가 점점 따뜻해지는데 그치지 않고 팔팔 끓고 있습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지금이야 말로 모두가 환경보호를 실천해야 할 때죠. 이처럼 사라나지구는 과학적이고 이론적인 지식으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사라나지구 성장 비하인드 스토리

환경 교육의 일등공신인 지구 자판기는 현재 구리시 청소년수련관과 세종시의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에 설치돼 있습니다. 처음부터 디스플레이가 부착된 형태는 아니었습니다 여러 차례의 개선 작업을 거쳐 지금의 형태를 완성했죠.
이 여정에 힘을 보탠 건 LG소셜캠퍼스(이하 LG소캠)입니다. 사라나지구는 LG소셜펠로우 13기 출신인데요. 비즈니스 모델 다각화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시점에 LG소셜캠퍼스의 그로스해킹(growth hacking) 멘토링을 통해 비즈니스 고도화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사라나지구와 LG소캠은 어떤 인사이트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을까요.

Q. 멘토링을 받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이화여대에서 지구자판기와 무인 제로 웨이스트샵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의 소비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땅한 활용법이 없었습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데이터를 분류해야 할 지도 미지수였죠. 데이터 활용법에 대한 팁을 얻고자 그로스해킹 멘토링을 신청했습니다.”
Q. 멘토링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나요.
“LG소캠에서 소셜벤처 연구원과 그로스해킹 전문가를 멘토로 연결해줬습니다. 정기적으로 미팅을 했어요. 멘토님들이 숙제를 내주면 이를 실제 비즈니스에 적용하는 식으로 진행했죠.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단 한번의 멘토링도 허투루 진행되지 않았거든요.”

Q. 다른 교육 프로그램과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좋았나요.
“일단 교육 과정이 너무 좋았습니다. 사실 모든 멘토가 조언 대상을 잘 알고 멘토링을 하는 건 아닙니다. 사업계획서 정도만 본 상태에서 진행하는 경우도 많죠. 현실과 괴리되는 조언을 들으면 실질적으로 적용하기가 어렵습니다. LG소캠의 그로스해킹 멘토링을 할 땐 멘토가 저희에게 필요한 걸 먼저 물었습니다. 정해진 아젠다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강연의 방식이 아닌, 멘티의 수요에 맞춰서 조언하는 식으로 상호작용을 했죠. 사업 운영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Q. 멘토링으로 얻은 인사이트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다양한 데이터 활용법을 배웠습니다. 지구자판기 소비자들을 좀 더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었고요. 또한 기존의 지구 자판기 소비자와 환경 행사 참가자 사이에서 연관성을 발견했고, 이 둘을 엮어도 되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죠. 이전까지는 교육 참가자들의 데이터는 수집하지 않았는데요. 지금은 수집하고 있습니다. 자판기로 수집할 데이터를 넓히기 위한 보완 작업도 진행 중입니다. 예전에는 누가, 무엇을, 얼마나, 어느 빈도로 사갔는지 정도만 알 수 있었는데 지금은 요일이나 계절 관련 데이터도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어요.”

Q. LG소캠 같은 프로그램은 소셜벤처에게 어떤 이점을 주나요.
“스타트업 입장에서 대기업과 연이 닿는 건 어렵고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인데요. LG소캠을 통해 LG전자나 LG화학 담당자와 긴밀한 대화를 나누고, 대기업이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주 큰 이점이죠. LG그룹과 협업으로 이어진 동료 펠로우 기업도 있고요.
LG소캠의 주관사인 사단법인 PPL 담당자 분들에게도 감사해요. 항상 펠로우 기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저희가 직접 LG그룹에 연락을 취하기 어려울 때 다리 역할을 자처했거든요. 이런 노력 덕분에 타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보다 더 원활하게 진행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LG소캠은 진정으로 소셜벤처의 지속가능성을 응원해주는 지원사업인 것 같아요.”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