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가 안정적인 전문직 버리고 창업한 이유요?"

더 비비드 2024. 6. 24. 09:17
AI 기반 특허 전략 분석 솔루션 개발사 타날리시스 최인경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타날리시스의 최인경 대표. /더비비드

“부동산 공시 도입 이전엔 부동산 거래가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습니다. 기술도 비슷합니다. 현재는 보유한 기술이 얼마인지, 지금까지 어떻게 거래됐는지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어 있지 않은데요. 기술거래가 활발해지려면 가치와 잠재력부터 정확히 측정해야 합니다.” 

기업의 기술역량을 잘 나타내는 지표가 바로 특허다. 특허는 확보하는 것만큼이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변리사 출신의 최인경(36) 대표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되는 특허가 많은 현실이 안타까웠다. 간단한 업무를 볼 때도 수십만개의 특허 관련 문헌을 검토해야 하는 변리사들의 열악한 근로 환경도 바꾸고 싶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지능(AI) 기반 유사 특허 검색 서비스’와 ‘특허 분석 솔루션’을 개발했다. 그를 만나 ‘특허 마인드’가 기업의 성장에 필요한 이유를 들었다.​

◇시급으로 따지면 너무나도 값싼 변리사의 노동가치

최 대표는 변리사 출신 창업가다. /최인경 대표 본인 제공

최 대표는 12년 차 변리사다. 이화여대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하고 2011년 변리사 시험에 합격해 특허 법인과 바이오벤처 기업에서 경력을 쌓았다.

- 창업 이전의 경력이 궁금합니다. 

“특허 법인에서는 고객사의 특허 전략을 세우는 일을 했어요. 기업, 연구기관이 신기술을 개발했을 때 제품을 잘 커버하면서도 타사에서 회피하지 못할 특허를 만들거나, 특허로 자금을 조달하는 전략을 컨설팅했죠. 고객사가 출시를 앞둔 제품이 타사의 특허를 침해할 여지가 있는지 진단한 후 법적 리스크 없이 출시할 수 있도록 전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바이오벤처에서는 제가 주축이 되어서 회사의 연구원들과 함께 특허 관련된 내용을 검토했습니다. 특허를 150건 정도 보유한 곳이라 해야 할 일이 많았어요. 많은 걸 배웠죠.”

- 좋은 직업을 두고 창업을 택한 이유를 알고 싶어요. 

“변리사는 노동집약적인 직업이라고 느꼈어요. 업무의 80% 이상을 문서 읽는데 할애하거든요. 한 기술의 특허 전략을 짜기 위해 10만건 이상의 유사 특허를 검토해야 합니다. 늘 '누군가 이 특허를 100건 안팎으로 추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어요. 종일 일해도 법률적인 판단을 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변리사의 열악한 근로 환경은 고객사에게도 달가운 일이 아닙니다. 기업 입장에선 최대한 빨리 검토 내용을 받는 게 유리한데 특허 법인에서는 수개월이 기다린다고 하니 속이 터질 노릇이죠. 검토가 끝난 시점엔 이슈의 시의성이 떨어질 수도 있고요. 시의성을 놓치면 시간과 용역비 모두 날려버리는 셈이죠. 이 문제를 늘 고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최 대표는 변리사로 근무하며 발견한 고충을 기반으로 창업을 했다. /더비비드

- 변리사들을 위한 업무 보조 도구 같은 건 없나요.

“구글처럼 특정 키워드를 입력하면 관련 특허 내용을 살펴볼 수 있는 검색 엔진이 있었지만 실효성이 떨어졌습니다. 키워드 기반이라 입력한 단어가 꼭 들어간 항목만 결괏값으로 보여줬는데요. 기술 용어가 통일되어 있지 않아 휴대폰과 모바일, 전지와 배터리 같은 용어가 혼재되어 있었습니다. 고의로 생소한 용어를 써서 검색 엔진에 안 잡히도록 세팅한 기업도 많았죠. 검색 시 모든 연관 단어를 검색해야 해서 번거로웠습니다. 비슷한 의미라도 포괄적인 키워드를 입력하면 200만건의 특허가 결괏값으로 나오고, 구체적인 용어를 입력하면 200건이 검색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변리사들은 업무 보조 툴이 있었음에도 200만개와 200개 사이에서 씨름을 해야 했죠.” 

- 발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요.

“기존 검색 엔진의 단점을 해결하기로 했어요. 학습능력이 있는 AI를 활용하면 사용자가 아는 수준의 용어만 입력해도 유사 특허를 높은 정확도를 기반으로 찾아줄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AI가 특정 단어 대신 문장의 의미를 판단해서, 입력한 단어가 들어가지 않아도 관련된 내용을 찾아주는 이치죠. 예를 들어 사용자가 '초전도체'를 검색했을 때 초전도체라는 단어를 포함하지 않아도 '특정 온도 이하가 되면 전기저항이 0이 되는 물질'이라고 쓰여있는 특허 문서를 찾아주는 거죠. AI 기반 검색 엔진을 활용하면 신기술 관련 특허 내용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검색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죠.” 
 - 변리사 숫자가 많지 않으니 대안을 만들어도 얻을 게 없는 것 아닌가요.

“시장성을 확인했습니다. 미국 변호사들은 특허 검색 서비스를 자주 이용하는데요. 1년 구독료가 2000만원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이런 서비스를 이용해도 결국 전문가는 수많은 특허를 직접 읽어야 합니다. 특허 소송이 잦은 미국 시장의 특성상 비효율적인 서비스에도 큰돈을 쓰는데 보다 효율적이고 나은 대안을 제시하면 국내외에서 호응을 얻을 수 있겠다 판단했습니다.”

◇특허권과 부동산의 공통점에서 발견한 아이디어

개발 중인 솔루션을 설명 중인 최 대표. /더비비드

2021년, ‘AI 기반 특허 검색 플랫폼’ 아이디어로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돼 법인을 설립했다. 공동 창업자와 함께 코딩 공부를 해서 초기 형태의 AI 기반 유사 특허 검색 엔진을 개발, 시장성을 검증했다. 이후 엔지니어를 채용해 서비스를 고도화했다. 타날리시스의 검색 엔진을 이용하면 한국, 미국, 유럽, 일본 4개 국가의 특허를 검색할 수 있다. 10월 중 베타 서비스 출시 예정이다. 

검색 엔진을 개발하면서 다양한 기업과 기관을 만났는데 그 과정에서 신규 수요를 발견했다. '기술 개발 방향을 바꿀 때마다 빠르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고객사가 직접 특허 이슈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추적 및 관리할 수 있는 특허 전략 솔루션을 개발하기로 결심한 계기다. 

- 특허 이슈를 직접 추적하고 관리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일까요.

“결국은 수익입니다. 많은 대학과 연구기관이 좋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수익 창출을 못하고 있습니다. 기초연구 결과물의 활용도가 턱없이 낮아요. 우리나라 대학과 연구기관이 1년 간 기술 이전으로 거두는 로열티 수익이 3300억원 수준인데요. 미국과 비교하면 걸음마 단계입니다. 미국 1개 대학의 1년 치 기술이전 수익이 우리나라 주요 대학을 다 합친 것보다 커요. 게다가 특허를 활용하지 않고 보유만 할 경우 기회비용이 발생합니다. 특허권 보유 시 일종의 유지 비용인 연차료를 내야 하거든요. 안 팔리는 부동산을 가지고 있으면서 재산세만 내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보면 됩니다. 애써 만든 특허가 낭비되고 있는 셈이죠.”

- 그럼 기술이전을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누가 우리 기술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내는 것 자체가 큰 관문입니다.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쪽도 잠재 수요자를 모르고, 특정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업도 해당 기술을 보유한 기관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거든요. 특허 중개인들도 연구자와 기업을 연결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명 대학이나 연구소에서는 매년 미국에서 기술설명회를 여는데요. 기술설명회를 통한 연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설명회의 존재를 모르는 기업과의 접점은 아예 모색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보유한 기술의 잠재 수요자를 찾아줘 수익 창출의 기회까지 알려주는 방향으로 솔루션을 개발 중입니다.”

◇내 특허의 잠재력과 침해 리스크 1분 만에 분석하는 솔루션 개발

타날리시스가 개발 중인 특허 분석 솔루션 예시 화면. /타날리시스

특허 검색 엔진에 이어 특허 전략 분석 솔루션 개발에 들어갔다. 자사의 기술을 솔루션에 입력하면 해당 기술이 침해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특허를 자동으로 선별해 주고, 이에 따른 대응 전략을 함께 제안한다. 반대로 자사의 특허를 침해하거나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업체도 순위별로 보여준다. 이 모든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1분 안에 받아볼 수 있다.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해당 솔루션을 출시할 계획이다.”

 - 개발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요.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제하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AI에 특허 심사 내용과 소송에서의 전문가 판단 패턴을 학습시켜야 하는데요, 문헌이 방대합니다. 데이터베이스에 손글씨로 된 1700년대 데이터까지도 포함하고 있거든요. 전문가 수준으로 판단하는 AI를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에 준하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기밀이 들어가면 안되기 때문에 위험성이 없는 데이터만 추려서 데이터 품질을 균일화하는데 만만치 않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NHN AI 연구소 출신, KAIST 박사, 스탠퍼드 컴퓨터공학 전공의 NLP(자연어 처리) 전문가 등 업계 전문가들을 영입해 이 과정을 고쳤죠. 힘들었지만 이 어려움이 진입장벽이 돼 주고 있습니다.”

타날리시스가 개발 중인 솔루션은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도움이 된다. /타날리시스

- 이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효율적인 의사결정에 도움이 됩니다. 솔루션을 통해 보유한 특허를 필요로 하는 업체를 높은 확률로 찾을 수 있습니다. 내 특허의 잠재력을 쉽게 확인할 수 있죠. 자사와 타사의 특허 침해 위험을 사전에 파악해 특허 관련 분쟁 리스크도 줄일 수 있습니다. 상당수의 특허가 소송 과정에서 무효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기술 수익화 과정에서 특허를 무기로 내세웠다가 다른 기업과의 소송전으로 번져서 해당 특허가 무효가 되면 권리 주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저희 솔루션을 사용하면 이런 리스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기업은 특허 리스크를 검토하는데 드는 시간을 연구 개발과 경영에 쏟을 수 있죠”

◇특허 마인드 유무가 사업 성패를 좌우합니다

서비스 출시 전 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AI 분야 전문가 중심의 팀 구성이 호평에 한 몫 했다. /최인경 대표 제공

매년 전 세계적으로 380만건의 특허가 출원된다. 380만 건의 위협이 누적된다는 소리다. 글로벌 기업 꿈나무들은 그만큼 골치가 아프다. 미국에서는 수출품이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단할 경우 수출길을 막아버린다. 미국처럼 강력한 자국 기업 보호 수단을 보유한 국가에서 비즈니스를 할 경우 모니터링해야 할 특허가 너무 많다. 그만큼 타날리시스가 설 자리가 넓다는 소리다.  

- 지금까지의 성과가 궁금합니다. 

“감사하게도 서비스 정식 출시 전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 AI바우처 지원사업 공급기업, 한국특허정보원의 IP서비스 성장지원사업, 신용보증기금 스타트업NEST 프로그램, 아산나눔재단 마루 입주기업 등 다양한 지원 사업에 선정됐습니다. 지난 3월에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IP 비즈니스를 주제로 개최한 창업경진대회(디데이)의 본선에 진출했어요. 변리사들의 업무 부담을 줄이는데 일조하고, 기업들이 효율적으로 특허 대응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평가를 받은 덕이죠. AI 분야 전문가 중심의 팀 구성도 플러스 요소였습니다.”

최 대표는 특허 마인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더비비드

-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당면한 과제는 서비스 출시입니다. 대학 연구소, 기업의 특허 담당자 등 기다리고 있는 분들이 많거든요. 빠른 시일 내에 서비스를 출시해서 성과를 확인하고 싶어요. 기술 개발 속도에 맞춰 특허수도 늘어날 전망입니다. 그러면 특허의 가치와 잠재력을 명확히 아는 게 더 중요해지겠죠. 결국 기술 개발이 미래입니다. 연구자 입장에선 개발한 기술의 가치가 가장 큰 동기부여입니다. 기술을 매출과 연결시키고, 경쟁사끼리 서로 베끼지 않는 풍토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 변리사로서 동료 창업가들을 위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스타트업 대표들은 개발하고 있는 기술이 다른 기업에서 이미 개발한 것인지, 기술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지 따로 확인할 시간과 재정적 여유가 없습니다. 보유 기술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돈이 될만한 기술이 아니라고 단정할지도 모르죠. 타사와의 분쟁 가능성을 과소평가할 우려도 있고요. 특허의 활용도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를 빚어냅니다. 스타트업 지원 사업 중에 특허 관련 사업들이 많아요. 특허 컨설팅이나 멘토링을 꼭 받아보세요. 특허 마인드를 갖추고 사업에 임하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