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 요지경
지난 14일 한 부동산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작성자는 7월 말 진행된 서울 서초구 ‘래미안 원펜타스’ 청약에 당첨됐는데 잔금이 부족해 걱정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 단지는 전용면적 84㎡ 분양가가 최고 23억3000만원에 달했지만, 시세보다 20억원정도 저렴해 로또 청약으로 꼽혔다. 1순위 청약 경쟁률이 527대 1을 기록할 정도였다.
그런데 래미안 원펜타스 당첨이 취소되거나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쏟아지고 있다. 23일 삼성물산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난 21일 계약을 마감한 이 단지에서 50가구(특별공급 29가구, 일반공급 21가구)가 계약이 안 됐다. 조합원 물량 제외 일반에 공급된 292가구 중 17%가 계약이 안 된 것이다. 6명 중 1명꼴로 부적격자였거나 스스로 계약을 포기했다. 남은 50가구는 예비 당첨자에게 돌아갈 예정이다.

당첨자 발표 당시 청약 가점 만점자가 3명이나 나왔고, 당첨 커트라인도 대부분 70점을 넘겼다. 이에 위장전입이나 가구원 편입 등 ‘청약 가점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정부는 당첨자 전원에 대해 부정 청약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부정 청약이 확인되면 계약 취소는 물론 3년 이하 징역이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또 10년간 아파트 청약을 할 수 없다.
단기간에 거액의 잔금을 마련하기 어려워 계약을 포기한 경우도 많다. 후분양 단지라 당첨자는 10월 20일까지 잔금을 내야 한다.
◇로또 청약 광풍에 무순위 청약 손질한다

한편 미분양 해소를 위해 자격 요건을 없앴던 무순위 청약이 로또 청약으로 변질되자 정부가 제도 개편에 나서기로 했다. 이른바 ‘줍줍’으로 불리는 무순위 청약은 1·2차 청약에서 미달했거나, 계약 포기 등으로 생기는 잔여 물량에 대해 다시 청약을 받는 제도다.
집값 폭등기에 무순위 청약이 과열 양상을 보이자 2021년 5월 정부는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무주택자’로 청약 자격을 제한했다. 그러나 2022년 하반기부터 급격한 금리 인상에 시장이 얼어붙고, 미분양 물량이 급증하자 지난해 2월 28일부터 사는 지역과 주택 수와 관계없이 누구나 청약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다 올해 서울·수도권 분양 경기가 회복되자 무순위 청약 열기가 되살아났다. 지난 2월 진행한 서울 강남구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 전용 34~132㎡ 3가구 무순위 청약에는 101만3456명이 신청했고, 지난 4월 경기 하남시 ‘감일 푸르지오 마크베르’ 전용 84㎡ 2가구 청약에 57만7500명이 몰렸다.
특히 지난달 전용 84㎡, 단 1가구 청약을 진행한 경기 화성시 ‘동탄역 롯데캐슬’에는 역대 최다인 294만4780명이 청약했다. 10억원 넘는 시세 차익이 기대되면서 묻지 마 청약에 나선 것이다. 이날 신청이 몰리면서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이 마비되고, 청약 접수 기간을 하루 더 연장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이에 정부가 ‘무주택자의 주거 안정’이라는 청약 제도의 취지에 맞게 거주지나 주택 수 요건을 다시 강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무주택 서민에게 내 집 마련 기회를 준다는 청약 제도의 본질적인 목적을 고려하면 해당 지역 무주택자로 요건을 제한하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