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헬스케어 스타트업
‘아워테리토리’ 노민혁 대표 인터뷰
“너 모든 걸 다 걸고 싸워. 한번 부딪쳐봐. 이제 세상을 가져봐”
노래 ‘백전무패’로 험난한 세상과 맞서 싸워 이기라며 용기를 줬던 7명의 소년 클릭비. 그들이 이 곡으로 가요계 정상에 오른 게 벌써 19년 전이다. 추억은 순간이지만 삶은 지속되는 법, 지지 않겠다고 다짐한 소년들은 정말 백전무패로 살고 있을까. 왕년의 ‘기타 신동, 아이돌’에서 반려동물 헬스케어 기업의 대표로 인생 2막을 맞이한 노민혁 대표를 만나 이후의 삶을 들었다.
◇환영문: 반려동물 헬스케어 스타트업 대표 된 아이돌
반려동물 헬스케어 스타트업 아워테리토리의 노민혁 대표
노민혁 대표는 고향인 부산에서 이름 꽤나 날렸던 기타 신동이었다. 1999년 데뷔한 7인조 보이 밴드 클릭비에서 기타리스트를 맡았다.
당시 SM 엔터테인먼트와 양대산맥을 이뤘던 대성기획(현 DSP 미디어) 소속으로, 수많은 소녀팬들을 몰고 다니며 큰 인기를 구가했다. 3집 수록곡 백전무패로 가요 프로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멤버끼리 염원했던 꿈을 이뤘는데, 노 대표는 그룹이 가장 사랑받던 2002년 돌연 하차를 선언했다.
2015년 7명이 모두 모여 진행한 콘서트
이후 간간히 근황을 알렸던 그가 3년 전 반려동물 헬스케어 기업 ‘주식회사 아워테리토리’의 대표로 돌아왔다. 가루형태의 반려동물 영양제 ‘펫 테리토리’를 개발해서 온라인몰(https://bit.ly/38sCOUo) 등에서 유통하고, 서울 연희동에서 반려동물 동반 카페 ‘미미에토’운영도 하고 있다.
기타리스트로 25년, 스타트업 대표로 3년. 종잡을 수 없는 항로 변경에 어떤 사연이 숨어있는 걸까.
◇백전무패&EXIT: 아버지가 계획한 천재, 박수칠 때 떠난 이유
어린 시절 ‘기타 신동’ 소리를 들을 정도로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던 노 대표.
모든 질곡의 시작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38살, 당시로는 늦은 나이에 절 낳으셨어요. 하루라도 저를 빨리 성공시키고 말겠다는 집착에 사로잡혀 계셨죠. 아버지는 부산 전역의 기타학원을 돈 끝에 9살짜리를 받아주는 곳을 겨우 만나 저를 맡겼어요. 아버지 열정 때문이었는지 기타를 곧잘 쳤어요. 부산 록의 성지 ‘메탈 라이브’에서 정기 공연을 할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는 이런 저를 알리기 위해 온갖 방송국, 언론사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10살엔 신문에 ‘부산의 최연소 로커’로 소개됐고, 12살엔 MBC ‘신(新)인간시대’에 기타 신동으로 출연했습니다.”
그의 삶에 ‘클릭비’라는 발자국이 새겨진 것도 아버지의 뜻이었다. “아버지께서 지인을 통해 SM 오디션, 대성기획 오디션을 한 날로 잡아오셨어요. 고민하다 먼저 연락 온 대성에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아버지는 고 이호연 대표에게 ‘내 아들이 메인 보컬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고 대표는 그걸 수락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 나이로 부산을 떠나 서울 생활을 시작했고, 고1때 데뷔했습니다.”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그룹 클릭비
그러나 그룹 메인 보컬로 세워주겠단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이끄는 길만 따랐던 소년은 치열한 자리 다툼 앞에서 주눅만 들었다. “멤버들이 노래 파트 하나 더 갖겠다고 싸울 때 저는 져주는 게 속 편했습니다. 결국 다른 멤버가 메인 보컬이 됐고 저는 거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어요. 기타 연주만 했죠. 제가 노래 안 하는 걸 알게 된 아버지는 난리가 났습니다. ‘너 걔네 뒤에서 기타나 치려고 죽어라 연습했느냐, 너는 자존심도 없냐, 당장 관둬라.’ 이호연 대표에게 대놓고 적대감을 표시하기도 하셨습니다.”
그 사이 3집 백전무패가 대박 나고, 연이어 3.5집이 성공을 거뒀다. 노 대표는 ‘박수 칠 때 떠날 기회’란 생각을 했다. “멤버들이 저렇게 노력하는데, 저 하나 때문에 수포로 돌아가는 게 싫었어요. 결국 2002년 스무 살 나이로 클릭비를 탈퇴했습니다. 회사에선 ‘1, 2집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나가면 어떻게 하느냐, 이제부터 돈 버는 거다’라며 잡았지만, 너무 지친 상태였어요. 3년 간 기획사와 아버지 사이에서 정말 괴로웠거든요.”
◇마지막 선물: 인디 음악가로 활동, 아버지 투병 소식에 경로 전환
밴드 애쉬그레이로 활동하던 시절
세상은 엄혹했다. 대형 기획사를 제 발로 나온 20살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고 아버지의 압박은 계속됐다. 새로운 차원의 괴로움이 시작됐다. “아버지는 빨리 다른 회사 들어가서 앨범 내라고 역정을 내시는데, 혼자 나와 상업적 가치가 부족했던 제게 누가 관심을 가졌겠어요. 이전엔 기획사가 짠 계획을 따르기만 해도 일이 굴러갔는데, 바깥 세상에선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제가 해야 해서 버겁더군요. 간혹 다른 아티스트의 세션에 참가하는 걸 제외하곤, 낮에 운동하고 밤엔 술 마시며 6년을 보냈습니다.”
‘잃어버린 6년’ 후 마음을 잡고 다시 음악 생활을 시작했다. “2008년 밴드 애쉬 그레이를 결성하고, 설 수 있는 무대를 찾아 나섰습니다. 메이저 기획사는 한물 간 아이돌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고 인디 쪽에서는 ‘아이돌 놀이하던 애가 이제야 예술을 한다’며 고깝게 보더군요. ‘노래는 괜찮은데, 보컬을 어리고 잘생긴 애로 바꾸자’는 기획사도 있었고요. 설 데가 없어서 거리 공연을 시작했어요. 홍대, 신촌, 강남역, 명동, 인사동 등에서 버스킹을 했습니다. 길바닥에서 뭐하냐고 꾸짖는 아버지와는 한 2년간 연락을 끊고 살았어요. 상업적 성과는 없었지만 순수하게 음악만 하며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간암 투병중이던 아버지와 프로야구 시구, 시타자로 참가한 모습(왼쪽)과 노 대표의 아버지가 시타 흔적을 표시해둔 공(오른쪽)
서른 한 살이던 2013년,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어느 날 울음 섞인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어요. 아버지가 간암 투병중이라고. 2년 만에 아버지를 만나니 괄괄했던 모습은 없고 뼈만 남아있었습니다. 우리에게 허용된 짧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어요. 함께 바다도 가고 프로야구 경기에서 시구와 시타자도 했어요. 그때 아버지가 제 아픈 손가락임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의 황망한 죽음은 자신의 가장 못난 모습을 들추는 계기가 됐다. “밖에 있다가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연락을 듣고 급하게 병원으로 갔어요. 그런데 그 순간조차 병원비가 걱정돼 택시를 탈까 버스를 탈까 고민했습니다. 버스로 병원에 갔더니 5분 전에 아버지가 숨을 거두셨어요. 비참하고 참담했습니다. ‘앞으로 엄마는 이렇게 보내지 않아야 겠다’ 수없이 다짐했습니다. 서른 다섯까지만 음악하고 안되면 내려놓겠다 마음먹었습니다.”
◇Challenge: 사기 당하고 낙향, 사업가로 재기 결심
노 대표의 반려견 은비
서른 넷 되던 2016년. 뼈에 새긴 다짐이 무색하게 믿었던 이에게 큰 사기를 당했다.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 부산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18년 동안 서울에서 버텼는데, 제 짐이 차 한 대를 못 채우더라고요. 그때의 쓸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뭐라도 하자는 생각에 2017년 초 부산 해운대의 1인 창조 비즈니스 센터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평생 음악인으로 산 그에겐, 창업 지원 서류 꾸미는 것 부터가 과제이자 도전이었다. “20년 넘게 기타만 쥐었던 터라 엑셀, 한글 파일 양식은 외계어처럼 낯설었습니다. 양식을 어디서 다운받고 어떻게 채우고 제출하는지 하나하나 센터 직원의 도움을 받아가며 헤쳐 나갔습니다.”
반려동물 동반 카페 미미에토(왼쪽)과 반려동물 영양제 펫 테리토리.
다음 단계는 사업 아이템 찾기. 자신의 목표와 일의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고민했다. 14년간 함께한 반려견 은비가 힌트를 줬다.
“은비는 유기견 출신입니다. 태어나고 2년 가까이 이집 저 집 떠돌아다녔습니다. 누군가 거둿다가 버리고, 또 누군가 거뒀다가 버리고 한 거죠.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예민합니다. 에디슨병(부신 기능 저하증)까지 앓고 있어 지극 정성으로 보호해야 합니다. 사실 동물이 유기되는 가장 큰 이유가 건강입니다. 유기견은 건강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인식 때문에 오랫동안 가족을 찾지 못하고, 아프다는 이유로 버려지기도 하죠.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반려동물 헬스케어 사업을 구상했습니다.”
◇Dreaming: 반려동물 종합 영양제 개발, 유기견 기부 캠페인 진행
펫테리토리를 함께 연구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2018년 3월 서울로 돌아와 반려동물 헬스케어 스타트업 아워테리토리를 설립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협업해 반려동물 영양제 ‘펫테리토리’를 개발했습니다. 대표성분인 아라자임 효소는 43개국에서 특허를 받았습니다. 제품 하나로 장&소화기계, 관절, 간, 눈물 흘림, 피모 관리를 할 수 있어서 만능입니다. 반려동물이 선호하는 맛으로 만들어서 부담없이 먹일 수 있죠. 기호에 맞게 사료나 펫 밀크에 섞어서 주면 됩니다.”
아라자임 효소는 유산균이 들어 있어 장내 환경을 개선시키고 나이가 듦에 따라 관절 연골이 소실되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부염을 일으키는 성분의 분비를 감소시키고 알레르기 반응 등에 의한 눈물흘림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간세포 손상을 보호하는 효과도 있다는 게 노 대표 설명이다.
미미에토에 비치된 펫테리토리와 가게를 정리하는 노 대표
제품 개발 후 유기견 기부 캠페인을 통해 제품 출시를 알렸다. 세상의 모든 반려동물이 행복하길 바라는 취지를 담은 것이다. “2018년 말 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 유기견 건강을 위한 기부 캠페인 ‘건강하개! 가족찾개!’를 진행했습니다. 이후 다른 플랫폼에서 제품 펀딩을 2회 실시했어요. 2019년 2월 진행한 펀딩에서는 달성률이 337%이었는데 올해 진행한 펀딩에서는 2324%나 기록했습니다. 그 사이 제품이 많이 알려진 덕입니다.”
현재 주요 온라인몰(https://bit.ly/38sCOUo) 뿐 아니라 강남 롯데 백화점, 대형 동물병원 등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제품이 유통되고 있다. “지금까지 5000여개 가까이 생산해서 3000개 가까이 팔렸습니다. 공격적으로 마케팅 하지는 않습니다. 첫 3~5년은 제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구축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신뢰는 마케팅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서 얻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To Be Continued: 연희동에 반려동물 카페 오픈, 펫 CBD 신제품 개발
지난 11월 ‘2020 대한민국 반려동물 문화대상' 시상식에서 스타트업 부문 대상을 수상한 노 대표
‘사업가 노민혁’의 고난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지난 5월 서울 연희동에 반려동물 동반 카페 ‘미미에토’를 오픈했고, 11월에는 ’2020 대한민국 반려동물 문화대상' 시상식에서 스타트업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미미에토는 국내 최초의 ‘펫 CBD(칸나비디올) 콘셉트의 카페’입니다. CBD는 의료용 대마로 뇌전증, 치매, 항암, 통증 완화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분리불안, 우울증, 공격성 등의 정서 안정에 효능이 있죠. CBD 국내 독점 수입업체인 그리너리와 손을 잡고 오일, 통증 크림 형태의 차기 상품을 출시할 계획입니다. 현재 행정절차를 밟는 중이고, 미미에토를 소비자와 CBD 제품의 연결 플랫폼으로 활용할 구상입니다.”
-돌아보면 기타를 내려놓고 사업 전선에 뛰어들었을 때 막막하지 않았나요.
“모르는 만큼 바쁘게 다녔습니다. 진짜 말 그대로 열심히 했어요. K스타트업이나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모두 듣고, 지원 사업이 있으면 무조건 신청했습니다. 사업 초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을 통해 1억원의 대출을 받았는데요. 수십 번 탈락 끝에 받은 겁니다. 올해도 수출 바우처 같은 크고 작은 제작 지원 사업에 많이 선정됐습니다. 창업 관련 기관과 펫 박람회를 문지방이 닳도록 누비며 버틴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천재 기타리스트에서 반려동물 헬스케어 사업가로 거듭난 노 대표.
-무대 밖의 세상은 어땠나요.
“사람 공부가 필요하다 느꼈습니다. 일이 이제 좀 순탄하게 진행되나 싶을 때 마다, 사람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동업 계획이 어긋나고, 하루 아침에 카페 직원이 일을 관두면서 저 홀로 남겨지기도 했어요. 혼자 오래 하면 번아웃이 옵니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겠어요. 버티는 거 하나는 자신 있으니까 그저 버티는 거죠. 그러다 보니 감사한 인연도 눈에 들어오고 지켜야 할 게 분명해지더라고요.”
-앞으로 계획과 목표는요.
“우선 자사몰의 제품군을 늘릴 계획 입니다. 앞서 말한 펫 CBD 상품뿐만 아니라 순창 발효미생물산업진흥원과 신제품 개발을 논의 중입니다. 품질이 입증된 타사의 제품도 소싱할 계획이고요.
궁극적으로는 반려동물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동물은 사람보다 고통을 잘 참아서, 동물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미리 건강관리를 해서 예방하는 게 정말 중요하죠. 소중한 반려동물을 하루 아침에 떠나 보내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아프다는 이유로 유기되는 아이가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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