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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천차만별 인테리어 가격, 온라인에 그대로 공개한 결과

리모델링 플랫폼 창업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똑똑한소비자 이지혜 대표와 에이비랜드의 시공사례. /더비비드, 똑똑한소비자

좋아하는 것과 직업이 일치하는 경우는 드물다. 답답한 나머지 관심을 창업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인테리어 스타트업 ‘똑똑한소비자’ 이지혜 대표의 창업기가 그렇다. 친구들 사이에서 소문난 ‘인테리어광’이었던 이 대표가 관심사를 창업으로 푼 과정을 들었다.

◇경제학을 전공한 인테리어 애호가

에이비랜드 리모델링 사례. /똑똑한소비자

똑똑한소비자의 ‘에이비랜드’는 욕실이나 주방같은 작은 공간을 디자이너의 지휘 하에 탈바꿈시키는 리모델링 서비스다.
작은 공간 리모델링은 몇몇 표준화된 디자인을 바탕으로 시공 기술자 주도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에이비랜드는 작은 공간도 초기 상담부터 설계까지 디자이너가 주도한다. 수도권 중심으로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오래된 시골집을 직접 리모델링해 파티 장소로 쓰기도 했다. 왼쪽이 전, 오른쪽이 리모델링 후. /본인 제공

이지혜 대표는 자타공인 인테리어 마니아다. 어릴 때부터 인테리어 책을 끼고 살았다. 성인이 돼서도 취미를 잃지 않았다. “공간의 힘은 큽니다. 인테리어는 장소를 예쁘게 꾸미는 걸 넘어, 긍정적인 힘을 만드는 작업이죠. 오래된 시골집을 꾸며 파티 장소로 쓴 적도 있어요. 결혼하는 친구가 생기면 신혼집 인테리어를 도맡았죠.”

전공은 의외의 선택을 했다. 대학에서 경제학과 소비자심리학을 전공했다. 증권사를 거쳐 리서치회사에 취직했다.
행복하지 않았다. 딱딱한 조직 문화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때 지인을 통해 스타트업의 세계를 알게 됐다.

"스타트업 개념이 막 부상하던 2015년이었어요. 친구가 패스트트랙아시아라는 스타트업을 만드는 회사를 소개해주더군요. 곧장 지원서를 내고 비즈니스 애널리스트로 2년간 일했어요. 다양한 창업팀을 만나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안정된 직장을 뒤로하고 창업한 사람이 많더군요. 잊고 있던 열정을 되찾은 기분이 들었죠."

똑똑한소비자 이지혜 대표. /똑똑한소비자

도전정신이 샘솟았다. 창업 아이템은 고민 없이 인테리어 분야를 택했다. “2017년 퇴사 후 작은 인테리어 업체를 세웠습니다. 디자이너로 일하던 지인과 함께 공간 디자인과 리모델링을 조금씩 진행했죠. 전공자가 아닌 만큼 두 배로 노력했습니다. 내향적인 성격임에도 타 업체 대표들과 시공자들을 무작정 찾아가 조언을 구했어요. 그때 알게 된 기술자들에게 지금도 시공을 맡기고 있죠. 주말엔 관련 서적을 쌓아두고 공부했습니다."

현업에 뛰어드니 기존 시장의 문제점이 눈에 들어왔다. "인테리어 시장은 크게 개인 사업체와 디자인 스튜디오로 나뉘어요. 개인 업체는 시공에 특화돼 있어서 기술력은 좋지만, 디자인 감각까지 요청하긴 힘들어요. 반면 디자인 스튜디오는 전문 디자이너가 참여하지만, 비싸고 집 전체처럼 큰 공간 위주로 작업해요.

디자인 스튜디오를 거치면 30평 아파트를 리모델링 하는 데 1억원 정도 듭니다. 개인 업체의 두 세 배 가격이죠. 이 둘의 교집합을 떠올렸어요. 일단 방 한 칸이나 욕실 같은 작은 공간으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작은 공간도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리모델링 해주는 플랫폼 구상에 들어갔습니다."

◇견적서 받기 전에 벌벌 떨 필요 없어요

대표적 디자인 여섯 가지는 위 같은 식으로 가격을 명시했다. /에이비랜드 홈페이지 캡처

2019년 11월 똑똑한소비자를 설립했다. “먼저 욕실 리모델링에 집중했습니다. 거실이나 방은 도배, 장판, 페인트 등으로 비교적 손쉽게 변화시킬 수 있어요. 셀프 인테리어 정보도 꽤 많죠. 반면 욕실은 기존 물품 철거, 방수, 타일, 천장 등 건드려야 할 게 많아요. 가격도 업체에 따라 천차만별이죠. 소비자가 어렵게 느끼는 걸 쉽게 풀어 제공하면 반응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가장 먼저 도입한 건 온라인 견적서다. “대부분 업체가 견적을 의뢰하면 집에 방문할 수 있는지 물어봐요. 물론 직접 보면 확인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아집니다. 하지만 사진과 공간 크기, 벽을 두드렸을 때 나는 소리 등의 정보를 주고받으면 온라인 상담도 충분히 가능해요. 업체 입장에서는 인건비가 줄고, 소비자는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구조라 생각했어요.”

견적서를 받기 전까지 비용을 가늠할 수 없는 ‘깜깜이 견적’에 대한 소비자 불만 해소를 위해 홈페이지에 가격을 밝혔다. 기본 디자인을 정해 가격을 명시한 것이다. "디자이너들과 기본 욕실 디자인을 만들었어요. 오래 봐도 질리지 않으면서, 요즘 트렌드를 반영한 인테리어죠. 그리고 일반 가정집의 평균 규격에 맞춰 가격을 책정했습니다. 변기 및 세면기 교체 비용, 부자재 가격, 인건비 등 항목별로 세세히 적었습니다."

◇욕실 인테리어도 ‘인스타그램 감성’으로

여러 자재를 비교하고 있는 디자이너와 시공 중인 기술자. /본인 제공

2020년 6월 리모델링 서비스 ‘에이비랜드’를 출시했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착안한 ‘앨리스 인 빌더랜드(alice in builderland)’의 약자다. 막막한 인테리어 현장에 놓인 소비자를 돕겠다는 뜻이다. “홈페이지에서 리모델링 신청서를 작성하면 유선 혹은 모바일 메신저로 상담이 진행됩니다. 욕실의 크기와 사진 등 소비자가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견적서가 작성되죠. 계약 후, 디자이너와 함께 자재 등을 고른 후 리모델링이 진행됩니다.”

에이비랜드가 리모델링한 욕실의 비포, 애프터 사진. /똑똑한소비자

욕실 리모델링에 시공 기술력뿐 아니라 디자이너의 안목도 중요하다는 걸 강조했다. "대부분 소비자가 원하는 느낌은 있는데, 어떤 부분을 신경 써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당연한 반응이죠. 타일과 천장, 조명, 부품 등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뤄야 하니까요. 예를 들어 같은 모양의 타일도 크기가 어떤지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져요. 그런 부분까지 챙기는 게 디자이너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취향을 살려 공간을 가꿀 수 있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디자인 시안을 올렸더니 신혼부부들의 의뢰가 빗발쳤다. “신혼부부들은 주어진 예산으로 집을 예쁘게 꾸며야 해서 골머리를 앓아요. 집 전체를 고칠 것도 아닌데 전문 스튜디오에 맡기기엔 부담스럽고요. 저희는 홈페이지에 대략적인 디자인과 가격을 제시해 놓으니 접근하기 쉽다고 하더군요. 견적 제시와 상담 과정이 온라인으로 진행돼서 편하다는 반응도 많고요."

◇서비스 영역과 지역 확대

최근 주방까지 영역을 넓혔다. /에이비랜드 홈페이지 캡처

1년 동안 백수십개의 욕실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디자이너도 추가 채용해, 최근에는 욕실을 넘어 주방까지 영역을 넓혔다. 서비스 지역도 점점 늘릴 예정이다. “저희가 요청하지 않았는데, 결과물이 맘에 들어 블로그에 자세히 후기를 써준 분들이 있어요. 그럴때마다 정말 뿌듯합니다. 보다 많은 분들에게 공간 변화의 힘을 알리고 싶어요."

당면한 과제는 안정된 수익 구조다. “아직 리모델링 과정 속 디자이너의 필요성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워요. 우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디자이너들의 마진을 최대한 줄이고 지역 업체 수준으로 가격을 맞추고 있습니다. 재료비와 인건비를 제하면 남는 게 거의 없어요.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선 감내해야 하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업무 시스템을 체계화해 몸집을 키울 계획이다. “상담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것처럼 디자이너가 현장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려 해요. 절약한 시간 동안 더 많은 작업을 맡아 매출을 늘리는 거죠. 시공 과정에 디자인을 접목하는 과정을 매뉴얼로 만들고 있어요. 시공 건수를 늘리면서 데이터를 쌓고 있습니다."

사업 아이템과 전공의 적합도가 창업 필수 조건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전공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는 서비스를 구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끊임없는 탐구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소속 디자이너들과 함께 매번 작업한 인테리어에 대해 분석해요. 자기 전에 인테리어 사진만 몇백장 보며 요즘 트렌드를 파악하죠. 관심과 열정이 있다면 노력은 저절로 하게 될 거예요.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세요.”

/장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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