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아동용 1:1 영상통화 매칭 앱 '놀잇'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이들에겐 MZ도 구세대다. 2010년 이후 태어난 '알파 세대'는 현존하는 세대 중 연령대가 가장 낮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다루며 자라서, ‘아날로그’는 역사책 속 이야기일 뿐이다. 코로나19 이후엔 교육 측면에서도 디지털 기기 사용이 필수가 됐다.
이쯤되니 부모들은 불안하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뛰어 놀 시간에 혼자 스마트폰만 만지더 보니 학습능력이나 사회성이 떨어지지 않을지 걱정된다. 실제로 알파세대는 사회성과 문해력이 이전세대보다 떨어지는 걸로 알려졌다.
놀잇의 최다은(35) 대표는 알파 세대의 ‘사회성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애플리케이션(앱) 서비스를 만들었다. 중앙대학교 유아교육과 졸업 후 같은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따고 키즈 유튜버로 활동하다 창업했다. 최 대표를 직접 만나 창업 계기와 과정을 물었다.
◇조회수 7000만회 영상의 주인공, 유아교육과 출신 키즈 유튜버
놀잇은 시공간 제약 없이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는 6~10세 아동용 영상 통화 앱 서비스다. 유치원이나 학교, 학원 일과를 모두 마친 오후 6~10시 사이에 놀잇 앱에 접속하면 실시간으로 친구와 연결된다. 한 회당 20분의 영상 통화로 이뤄진다. 처음 만난 아동들은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관심사에 대한 대화를 나누거나 그림, 노래 부르기 등의 놀이를 함께 즐기게 된다. 20분이 지나면 통화가 끝나는데, 원하면 새로운 친구들과 통화할 수 있다. 게임처럼 놀잇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
베타 단계에서 2023년 1월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데이(스타트업 경진대회)에서 우승했다. 서울대기술지주 등 투자펀드에서 초기 투자금 유치에 성공했다.
‘다니유치원의 다니’
최다은 대표를 부르는 말이다. 학창 시절 교내 방송부 아나운서 활동을 하며 방송인의 꿈을 키우다, 중앙대학교 유아교육과에 진학했다. “고3 시절 지원할 대학의 학과를 정할 때 담임선생님께서 유아교육과를 추천하셨어요. 유아교육에 대한 관심이나, 선생님에 대한 꿈이 없었지만 제 학교생활을 지켜본 어른의 말씀을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지원했고, 합격했죠.”
입학하자마자 유아교육의 매력에 푹 빠졌다. “아이를 인간답게 기르는 학문인 만큼 심리학과 철학부터 배웁니다. 유치원에서 실습을 하며 유아 교육에 큰 매력을 느꼈어요. 아이들은 스펀지 같거든요. 배운 걸 적용하고, 긍정적으로 변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꼈죠.”
이때부터 ‘유아교육 전문 방송인’을 꿈꿨다. 여러 일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전공과 하고 싶던 일을 접목하게 된 것이다. “방송인에 대한 꿈을 접은 건 아니었기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모델, 방송 리포터, MC 일을 병행했습니다. 프리랜서로서 성공하기 위해선 나만의 강점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죠.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도 즐거웠기 때문에 유아교육과 방송 두 분야를 합친 곳에서 제 잠재력이 발휘될 거라 생각했어요. 방송을 통해 제가 배운 교육학적 지식을 여러 아이에게 동시에 전달할 수도 있고요.”
◇일방향 소통 대신 쌍방 소통의 장 만들 수 없을까
2014년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유아교육과 석사과정에 진학해 전문성을 키웠다. 2016년에는 유튜브 키즈 크리에이터로 데뷔했다. “유아용 콘텐츠 제작 기업에서 3년 8개월 동안 1000편이 넘는 영상을 기획하고 촬영했습니다. 2019년까지 구독자를 70만명 넘게 모았죠.”
2020년 6월 개인사업자 등록을 마치고, 지금의 활동명인 ‘다니’로 제작까지 맡으며 사업에 발을 들였다. “소속됐던 회사와 계약이 끝나 사업에 도전할 적기라고 생각해 바로 창업했습니다. 초반에는 매출 안정화를 위해 콘텐츠 제작에 집중했어요. 제가 직접 7세 여자아이 캐릭터인 ‘다니’로 출연해 월 16편의 영상을 제작했죠. 연간 구독자가 20만명씩 늘었어요. 인지도가 쌓여 KBS ‘TV유치원’에 고정 출연하게 되고, 영상물을 IPTV 채널에 공급하기 시작했죠.” 현재 유튜브 채널 팔로워수는 58만4000명에 달한다.
유아·아동을 위한 새로운 서비스 구상에 돌입했다. 기존 영상 콘텐츠 제작으로는 한계점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영상은 일방향이에요. 양질의 콘텐츠라 해도 실생활에서 직접 해보는 상호작용의 시간을 거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사회화 훈련을 할 기회가 적죠. 맞벌이 가정 외둥이가 많거든요. 코로나19 이후엔 외부 활동에 더 제약이 생겼고요. 일회성 시각적 자극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의 사회화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서비스를 만들기로 했어요.”
디지털 사용을 억지로 제한했을 때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우려가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로블록스나 제페토 등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접하게 됩니다. 어리다고 무조건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제한받던 아이들은 준비 과정 없이 디지털 기기에 맞닥뜨리게 되는 거죠. 지나친 통제는 몰래하고 싶어지는 욕구도 낳게 되고요. 적절하게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법을 알려줘야 했습니다.”
◇아이들끼리 영상 통화하며 노는 신개념 앱 서비스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기 시작한 화상 통화 앱에서 서비스를 착안했다. “아이들끼리 어른의 개입 없이 처음 보는 친구와 영상 통화하며 놀이시간을 갖는 겁니다. 놀이터에서 모르는 친구와 만나 놀고 헤어지듯 디지털 환경에서도 새로운 친구와 놀며 사회성을 기르는 거죠.”
새로운 기술이 필요한 서비스는 아니었다. 개발자를 고용해 2개월 만에 시제품을 완성했다. ‘아이들이 실제로 이 서비스를 놀이로 받아들일지’가 관건이었다.
8개월 넘는 검증 과정을 통해 서비스의 효과를 입증했다. “2022년 6월 베타 버전을 출시하고 서비스 체험단을 모집했습니다. 이 기간 500명 넘는 아이들이 놀잇에 가입해 새로운 친구들과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무작위로 1:1 매칭이 되고 종료 5분 전 알림만 제외하면 다른 지시나 개입은 없습니다. 처음 경험하게 되면 상호작용을 시작하는 데 평균 6분 정도 걸려요. 이후부터는 같이 노래를 부르거나, 관심사에 대한 대화, 그림 그리기, 게임 등 알아서 주제를 정해 놀이 활동을 이어가게 되죠. 놀잇을 여러번 경험할수록 상호작용을 시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계속 짧아집니다.”
영상을 분석하면서 아이들의 사회성이 어떻게 발휘되는지 확인했다. “의사소통 능력·정서 표현·또래 관계성·놀이성으로 범주를 나눠 참가자의 특성을 분석한 리포트를 만들어서 학부모에게 제공했습니다. 언어적·비언어적 표현, 주도성, 발화 내용, 놀이 지속 시간 등 사회화를 측정할 수 있는 척도를 활용해 평가하죠.”
체험 기간 부모들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참가 아이들의 부모와 연락해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놀잇’이 안전한 디지털 기기 사용의 첫걸음이 되어 줬다는 후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제가 추구했던 놀잇의 역할과 일치하거든요.”
유아·아동이 타깃인 서비스인만큼 제한을 뒀다. “정상 발달 단계에 따라 타인 조망 능력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6세부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요. 처음 보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배려, 질서, 경청 등의 사회적 가치를 배우죠. 그래서 20분의 시간 제한도 뒀습니다. 서비스 특성상 화면 밖으로 이탈하지 않고 활동에 집중해야 하는데요. 검증 과정에서 집중도가 최고점에 달하는 시간이 평균 20분이었거든요. 또 한 친구와 오랫동안 이야기하는 것보다, 다양한 친구를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 비대면 환경의 장점을 극대화할 방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안전 장치도 마련했다. “2022년 12월 ‘CUBOX’라는 얼굴인식 기술 기업과 업무협약을 했습니다. 보호자 이름으로 회원가입 후 사용할 아동의 얼굴을 등록하면, 해당 아동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등록된 얼굴이 아닌 다른 사람이 화면에 등장하면 서비스가 멈추죠. 이외에도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화면에 ‘SOS’ 버튼을 마련해두고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업계 종사자로서 느낀 책임감을 창업으로 승화
2023년 4월 정식 서비스를 출시했다. 서비스는 구독제로 운영된다. 월 9900원의 구독료로 놀잇을 이용할 수 있다. 지금은 참가자 무작위 매칭을 통한 영상 통화가 주 기능이지만, 향후 참가자가 늘면 주제·나이·놀이별 매칭이나 앱 내 학습 영상 콘텐츠 추가 등으로 프로그램을 다양화할 전망이다.
다양한 수익 모델도 접목할 수 있다. “유아 교구, 장난감, 학습 콘텐츠 등의 홍보 창구로 활용할 수 있어요. 단순 광고가 아닌 체험식으로요. 예를 들어 교구 체험단을 모집해 놀잇 활동 전 체험 교구를 집으로 배송하고, 아이들이 놀잇에 접속에 같은 교구를 갖고 함께 노는 식이죠.”
유아 교육 현장의 중심에 있던 업계 종사자로서 사명감을 느껴 창업했다. “시장의 개척자 역할을 하려면 힘듦도 2배죠. 시각 자료 중심의 일방향 콘텐츠에 한계가 있다는 걸 느낀 이후로는 육아 방법 자체를 바꿔야겠다는 책임감이 있어요. 저도 언젠가 부모가 될 텐데 죄책감을 느끼며 아이에게 디지털 기기를 손에 쥐여주고 싶진 않거든요.”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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