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25. 11:33ㆍ인터뷰
장례 서비스 전문 스타트업 고이장례연구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내 보내는 일은 인생에서 가장 무겁고 슬픈 과업이다. 순간이 닥치면 유가족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생소한 용어와 복잡한 절차, 예상치 못한 비용 앞에 당황하게 된다. 장례 절차와 비용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소비자 보다는 공급자 관점에서 시장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장례는 오랫동안 효도의 일환으로 간주돼, 비용을 꼼꼼히 따지는 행위 자체가 금기시돼 왔다. 유가족은 관련 항목과 비용을 일일이 따지는 대신 장례식장의 안내를 따를 수밖에 없고, 산업 전반의 불투명성으로 이어졌다. ‘고이장례연구소’는 폐쇄적인 장례 문화 바꾸기에 나선 스타트업이다. 고이장례연구소의 송슬옹(32) 대표를 만나 사랑하는 이를 고이 보내는 법에 대해서 들었다.
◇스타트업에 빠진 청년, 현장에서 답을 찾다

송 대표는 대학 시절부터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일하는 것을 꿈꿨다. 경제학과 벤처경영학을 전공하면서 학교 근처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상권 분석과 컨설팅을 제공하는 동아리 활동을 했다. “자문에 그치지 않고 간판 디자인 변경, 원가 분석, 전단지 제작까지 진행했어요. 책상 앞에서 전략을 짜는 것보다 제 손으로 직접 뭔가를 만들고, 실행하는 데서 보람을 느끼는 성향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창업 전 두 곳의 스타트업에서 초기 멤버로 참여하며 겪은 치열한 경험은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첫 회사에서는 사업계획서 작성부터 회사 비품 구매 등, 온갖 일을 도맡으며 실행력을 길렀습니다. 기업의 본질은 이윤 창출이라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죠. 두 번째 회사에서는 말 그대로 돈 버는데 집중했습니다. 두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할머니를 향한 죄책감이 일깨운 추모의 본질

그가 장례 시장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우연히 만난 멘토의 조언이었다.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싸이월드 창업자를 만났는데요. 그 분이 사업은 어차피 잘 안되는 것이니, 오래 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런 아이템은 우리의 삶 속에 있다고 첨언했죠. 지난 시간을 돌아봤어요. 문득 20살에 겪은 할머니의 죽음을 반추하게 됐습니다.”
할머니와의 이별은 여태 경험하지 못한 종류의 충격이었다. “할머니 아래서 자라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장례를 치를 때 제게 필요한 방법으로 할머니를 추모하지 못했습니다. 장례식을 어떻게 치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어요. 할머니를 떠나 낸 후 침울한 마음을 안고 살았습니다. 이 무거운 감정은 오랜 시간 가시지 않는 죄책감으로 남았죠.”

부정적인 감정에 짓눌려 살던 그를 구원한 것은 할머니 기일에 모인 가족들이 나눈 이야기였다. “무뚝뚝한 아버지가 할머니를 보내기 싫어 울었던 사연, 어머니와 할머니 사이의 재미있었던 일, 여동생과 할머니의 일화 등을 공유하며 여러 관점에서 할머니의 삶을 돌아보게 됐어요. 관계성 속에서 할머니의 삶을 재정립하니 죄책감이 사라지더군요. 추모는 거창한 형식이 아니라, 사랑했던 사람의 생을 이야기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정리하는 시간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성찰은 훗날 진짜 필요한 장례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창업 동기로 이어졌다. “오늘날 장례식장에서는 고인의 생애를 기리는 진정한 의미의 대화가 실종됐습니다. 형식적이고, 관행적인 절차가 애도를 대체했죠. 정보 비대칭도 심각합니다. 일반 상조 서비스는 패키지 여행처럼 세부 항목이 얼만지 알 수 없는 구조입니다. 어떤 항목이 필요 없어도 해당 비용을 제하지 않아요. 마치 결혼 시장과 유사한 공급자 중심적인 시장입니다. 이 시장을 보다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무엇보다, 특별한 장례식이 가능한 풍토를 만들고 싶었어요.”
◇슬픔을 파는 시장에서 ‘진짜 추모’하는 시장으로

창업 후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직접 장례지도사로 활동했다. 현장에서 목격한 문제는 가설보다 심각했다. “상조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요. 이곳은 전쟁터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일부 업체는 가족들의 슬픔을 이용해 비싼 상품을 팔아야 한다고 가르치기도 했어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만들 회사의 장례지도사는 영업사원이 아니라 진정한 추모를 돕는 조력자가 돼야 한다는 토대를 세웠습니다.”
기존 장례 서비스의 가장 큰 문제인 정보 비대칭 해결을 위해 장례 견적 서비스부터 론칭했다. “보험, 자동차, 여행, 인테리어 등 타 산업은 정보 비대칭 문제가 해소되면서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재편되고 있었는데 장례 시장은 아직 그렇지 않았어요. 장례 관련 콘텐츠, 장지 및 장례식장 관련 정보, 장례 비용 계산 등 장례 치르는데 필요한 모든 정모를 한데 모아 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

플랫폼 출시 후 다양한 비즈니스를 시도했다. “장례식장 비교 서비스, 장례지도사 역경매, 상조회사 플랫폼 등 정보 비대칭을 풀 수 있는 모든 모델을 다 해봤어요. 비슷한 문제를 푸는 다른 산업의 스타트업 모델을 장례 버전으로 전부 실험한 셈이죠. 안타깝게도 대부분이 실패했어요. 하지만 실패 속에 길이 보였습니다. 정보 검색에 그치지 않고, 저희에게 장례까지 맡긴 고객이 100명이나 있었거든요. 플랫폼에 그치지 않고, 이들이 필요로 하는 걸 끝까지 해주는 서비스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고이장례연구소에 장례를 맡긴 이들의 행동 양상부터 분석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전화 상담을 원했습니다. 온라인에서 아무리 정교한 서비스를 만들어도, 결국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어했어요. 꼼꼼하게 비교해서 완벽하게 준비하고자 하는 결혼식과 달리, 장례 준비를 나서서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대략적인 비용을 파악할 수 있고, 마음이 동할 때 전화를 걸면 누군가가 구체적으로 상담해주는 서비스로 방향성을 잡았습니다.”
2022년 후불식 상조 서비스를 시작했다. “기존에 운영하던 서비스들을 모두 내부 프로덕트로 전환하고, 수요자에게는 간소화된 견적 계산기만 남겼습니다. 그 이후의 내용은 상담사가 전화로 안내하는 구조로 바꿨죠. 관건은 서비스 품질이었습니다. 장례는 다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한 건 한 건의 경험이 브랜드 이미지와 직결됩니다. 그래서 관, 상복 등 세부 품목별로 정찰제를 도입해 깜깜이 시장 우려를 없앴습니다.”
◇매달 100원만 받는 상조 서비스를 출시한 이유

후불식 상조 서비스를 운영해보니, 구조적인 한계가 보였다. “매달 10만명이 플랫폼을 방문하고, 상담을 받고, 좋은 관계를 형성해도 나중에 연락 드렸을 때 ‘이미 장례를 치렀다’는 말이 돌아온 적이 많았습니다. 장례 시점을 예측할 수 없는 화근이었어요. 좋은 유인책 뿐만 아니라 이들과 관계를 유지할 수단이 필요했어요. 그 수단은 바로 ‘계약’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를 계약으로 묶는 선불식 상조 서비스를 운영하라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발급하는 할부거래업 라이선스가 필요합니다.다. 라이선스 취득에 필요한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투자를 유치해 자본금을 확충했죠.”
2024년, 선불식 상조 서비스를 시작하며 ‘월 100원 상조’를 출시했다. “사실 누구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상황에 나서서 대비하려 하지 않을 겁니다. 미리 준비해야 더 좋은 장례가 가능한데 말이죠. 그래서 장례 준비의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데 주안점을 뒀어요. 월 1만원, 3만원, 10만원 내는 상조를 론칭한 데 이어 100원 상조를 시작했습니다. 다양하게 테스트해보니 100원이 가장 반응이 좋았습니다. 사실 100원이라는 금액은 수익보다는 고이장례연구소의 지향점을 고려한 액수입니다. 누구나 부담 없고, 예상 가능한 가격으로 좋은 이별을 준비할 수 있다는 걸 알릴 수 있으니까요.”

고이장례연구소의 행보는 시대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 “형식에서 의미로, 사후 대응에서 사전 준비로 장례 문화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조문객 수나 화환 규모 같은 형식적인 요소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고인의 삶을 어떻게 기릴 것인가에 집중하는 추세에요. 스몰 웨딩이 늘어나는 것과 유사한 흐름이죠. 또한 장례에서 금전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효에 반하는 일이 아니라 합리적인 준비라는 인식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에 대응해 ‘의미 있는 장례’를 위한 메모리얼 테이블, 고인 영상 제작 등을 도입했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장례지도사가 각종 서류를 내밀기 전에 다도로 유가족을 위로하거나, 감정을 쏟아낼 수 있도록 상주에게 손수건을 건네는 등의 의미 있는 실험을 해봤어요. 그 중 반응이 좋고 임팩트가 있다고 판단한 것들을 정식 서비스로 전환합니다. 정답은 없어요. 저희끼리 연구하고 실험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명이 장례연구소일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죽음은 좋은 삶 위에서만 가능하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겨냥한 진심 어린 도전은 괄목할 만한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누적 견적 건수는 30만건을 넘어섰으며, 매달 10만명 이상의 방문자가 플랫폼을 통해 정보를 얻고 있다. 2025년 매출 68억원을 기록했다. 벤처 생태계에서도 가치를 인정받았다. 지금까지 누적 119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고,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배치 5기’ 기업으로 선정돼 멘토링 등의 지원을 받았다.
28세 젊은 상주와의 인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젊은 나이에 투병한 어머니를 보내면서 저희 장례지도자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단순한 장례식이 아니라 고인의 마지막 안녕이자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느낄 수 있게 해줬다고요. 또한, 가장 어두운 순간 조금이라도 빛을 보게 해줬다고 했습니다. 이 후기가 의미 있었던 건, 저희가 지향하는 바를 고객이 정확히 느꼈다는 점입니다. 장례지도사 한 분 한 분이 진심으로 가족분들의 마음을 살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고이장례연구소의 시계는 이제 시작이다. 하고 싶은 것도,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장례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는 것입니다. 장례지도사 교육 체계 강화와 업무 효율화에 집중할 구상이죠. 가입 고객을 위한 멤버십 서비스도 확장합니다. 장수사진, 자서전, 요양 및 간병 서비스 등 부모님과 함께 할 때 더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생전 서비스 라인업을 강화할 겁니다. ‘고이니까 믿고 맡기자’라는 말이 나오는 브랜드를 만들겠습니다.”
송 대표는 좋은 죽음은 오직 좋은 삶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장례식이 후회와 회한의 자리일 필요는 없습니다. 장례식이 고인의 삶을 돌아보고, 남겨진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그게 일상을 살아갈 힘이 됩니다. 수백 건의 장례를 거치며 느낀 건 좋은 죽음은 좋은 삶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후회 없이 살아온 분들의 장례는 슬프지만 따뜻합니다. 그분의 삶을 긍정하고 축복하는 자리가 되거든요. 만남이든, 하고 싶은 말이든 미루지 않았으면 해요. 사람이 죽고 나서 남겨야 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는 오늘부터 쓰는 겁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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