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바다를 위해 고안된 아이디어
우리는 바다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지구 표면의 약 71%를 차지하는 바다는 지구상에 최초로 생명이 탄생한 신비로운 공간입니다. 해조류, 어류, 파충류, 갑각류 등 각종 생물의 보고이기도 하죠.
인류에게 풍부한 자원과 아름다움 풍광을 선물한 바다가 고통받고 있습니다. 각종 선박 사고로 기름이 유출돼 바닷물이 오염되고, 무분별하게 버려진 쓰레기들이 모여 섬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 동물의 뱃속에서 발견되는 끔찍한 일까지 벌어지고 있죠.
우리의 소중한 바다를 지키기 위해 나선 세계 각국의 과학자와 기업가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해양 오염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기술과 비즈니스로 풀어나가고 있는데요.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함께 알아볼까요?
그동안 몰랐던 해조류의 힘
바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해조류는 바다 동물들에게 먹거리리와 쉼터를 제공하는 든든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해조류에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하는 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호주 플린더스 대학(Flinders University) 연구진과 독일의 바이오소재 개발 기업 원·파이브(one·five)는 무공해 해조류 기반 필름 ‘바이오플라스틱’을 개발 중입니다. 기존의 석유기반 플라스틱 필름을 대체하는 것이 목표죠.
햄버거 등 식재료를 포장할 때 사용되는 포장재는 음식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플라스틱 코팅을 씌웁니다. 문제는 기존의 석유 기반 코팅재는 생분해되지 않고, 마이크로플라스틱이라 불리는 작은 조각으로 쪼개져 바다를 비롯한 생태계에 침투해 오염을 유발한다는 점이죠.
개발 중인 해조류 필름은 종이로 재활용 가능합니다. 가격 경쟁력이 있는 데다 플라스틱 사용량을 70% 저감하는 효과도 있죠. 연구진과 원•파이브는 해조류 기반 바이오플라스틱을 패스트푸드 포장재에 적용할 계획입니다. 아직 상용화 단계는 아니지만 그날을 꿈꾸며 열심히 연구에 매진하고 있죠.
생선, 잡지 않고 만들어요
“보다 건강하고, 지구에 더 좋고,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필레만큼 바삭하고 맛있습니다.”
21세기 중반의 바다에는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농담이 있습니다. 지구온난화 같은 기후 변화가 바다 자원에 큰 피해를 주는 가운데 바다로 유출되는 쓰레기는 빠르게 증가하는 탓이죠.
미국의 릴푸드(Reel foods)는 세포 배양 기술로 대체 식품을 개발하는 기업입니다. 바다 자원을 더 이상 고갈하지 않으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해산물 수요를 충족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됐죠. 양식도 바다를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바다 자원 고갈 문제의 온전한 대안이 될 수 없거든요.
릴푸드의 창업자들은 바다 주변에서 성장하며 서핑, 카약, 수영 등의 활동을 즐겼다고 합니다. 삶의 터전이었던 바다를 지키기 위한 방법을 구상하다가 어획하지 않고 생선 요리를 먹을 방법을 고안했죠.
릴 푸드 팀은 심장 조직 공학 기술을 활용해 세포로 배양한 생선 필레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진짜 생선과 구별할 수 없는 수준의 필레를 만드는 게 목표죠. 시일 내에 대체 해산물로 만든 스시 스타일의 요리를 선보일 것이라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바다의 유령 폐어망의 생산적인 변신
우리나라의 스타트업 넷스파는 ‘폐어망’에 주목했습니다. 폐어망은 조업을 마치고 배출되는 ‘다 쓴 그물’을 말하는데요. 우리나라에서 그물은 주로 나일론이 주원료인 ‘자망’이 쓰이는데, 일회용이라 한 번 조업하면 버려야 합니다. 연간 4만3000톤의 폐어망이 버려진다고 하죠.
넷스파는 어촌에서 버려진 폐어망을 수거해 나일론을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어망은 나일론 외에 PE(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 등 섬유를 여러 가닥으로 꿴 것인데요. 세 섬유 간의 물리적 결합을 끊어내고 나일론 원사만 추출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넷스파는 이 기술을 개발해 순도 98% 이상의 고품질 나일론을 생산합니다. 친환경 나일론은 섬유, 자동차, 전기기기 등의 기초 소재로 활용됩니다.
넷스파의 여정에 LG소셜캠퍼스(이하 LG소캠)가 손을 보탰습니다. 넷스파는 LG소캠 12기 출신인데요. LG소캠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준 덕분에 좋은 기회도 거머쥐었습니다. 2023년 1월 LG화학과 업무 협약을 맺고 석문국가산업단지의 LG화학 열분해유 공장에 원료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넷스파의 정택수 대표를 만나서 간단히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Q. 바닷가를 자주 다닐 것 같은데 우리나라 해양 오염의 실태가 어느 정도인가요.
A: 어망에 일반 쓰레기까지 무분별하게 버려지고 있습니다. 보기에 좋지 않은 건 물론이고 악취까지 심해요. 처음 실태를 접했을 땐 많이 놀랐습니다.
Q. 넷스파 창업 전에는 멸종 위기종인 바다거북이의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를 론칭하셨더라고요. 해양 생태계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요.
A. 부산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바다에 관심이 많습니다. 요즘 지구온난화가 화두가 되면서 폐기물 처리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요. 상대적으로 해양 생태계 문제는 주목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쉬웠어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상기하고 싶었습니다.
Q. 매년 어느 수준의 폐어망을 처리해 얼마큼의 나일론을 생산하나요?
A. 매년 3000~4000톤 정도를 수거해 1500~2000톤 정도의 나일론을 생산합니다. 수거한 어망의 절반가량이죠.
Q. LG소캠에 참여한 계기가 궁금해요.
A. LG라는 대기업과 협업 가능한 포인트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저희같은 덩치가 작은 스타트업 입장에서 대기업과 접점을 찾는 것도 큰 과제입니다. LG소캠이라는 프로그램은 기회 모색이라는 큰 문턱을 낮춰주는 좋은 기회죠.
무엇보다 저희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팀인데요. 대기업의 도움을 받으면 파급력이 클 것이라고 예상했어요.
Q. 그러면 LG소캠을 통해 그 목표를 이뤘나요.
A. 희망했던 대로 LG화학과 연결이 됐습니다. 협업 모색 단계로 끝나지 않고 사업적으로 연결하는 데까지 성공해서 의미가 컸죠.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A. 우리나라에서는 이 비즈니스를 일정 궤도에 올렸다고 판단합니다. 추후 글로벌 진출할 계획이에요. 해양 생태계 문제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니까요. 지금은 어업이 활발한 동남아시아 시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계절과 시간에 따라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는 바다처럼 바다를 위한 아이디어도 참 다채로운 것 같습니다. 맑고 푸르른 바다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어려운 길을 택하고, 매일같이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의 도전이 정말 멋지게 느껴지네요.
바다의 날을 맞아 우리가 바다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그 과정에서 새로운 위대한 아이디어가 탄생할지도 모르니까요.
/진은혜 에디터